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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이란 무엇일까” - (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불기2570년 2월 교육법회 봉행!
삼보에 귀의 하옵고_()_
1. 법 회 개 요 |
⊛주 제: “수행이란 무엇일까”
⊛일 시: 2026년 2월 13일(금)저녁7시00분
⊛장 소: 조계사 극락전
⊛법 사: 원지 스님(조계사 종무행정지원단장)
⊛사 회: 기획부장 월도 임병웅
⊛참석자:총동문회 대경 박수정 회장 외 60명 참여
⊛집 전: 신행부장 거연 강민구
2 .법 회 식 순|
▲개회사 ▲삼귀의 ▲우리말 반야심경 ▲인사말(대경 박수정 회장)▲음성공양(부처님 뜻 따르리/ 관세음을 부르리)▲청법가 ▲입정
▲법문(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 스님) ▲발원문( 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 공지사항 ▲사홍서원 ▲산회가 ▲폐회사 ▲기념사진 촬영
◑일상에 지친 사람들! 여기 진신사리탑을 들여다보며 스윽 눈을 감고, " 진짜 나" 를 찾을 수 있어요.. 이 탑은 그런 곳입니다._()_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53선지수 합창단 음성공양
◑ 곡명 : 부처님을 따르리 / 지휘 : 박경태교수 / 반주:정진경 삼조 /포교부장: 고정숙 여실심
3. 공 지 사 항 |
❏ 2026년 신년하례
⊛일 시: 2026년 02월 22일(일)요일 오후2시 (육화당 집합)
⊛장 소 : 관음전 오후 2시 45분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3월 운영위원회의
⊛일 시: 2026년 03월 10일(화)요일 저녁 7시
⊛장 소 : 추후 공지 예정
⊛문 의 :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2026년 3월 교육법회
⊛일 시 : 2026년 03월 13일 (금)저녁 7시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법 사 :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주 제 : 대승과 소승, 출가와 재가
❏2025년 동문회 임원모집
⊛자격: 2026년 졸업예정자 및 졸업 동문(신청서는 동문회 사무실에 비치)
⊛문의:총무부장 세정화 설민경 010-3789-8621
❏ 3월 만발봉사
⊛일 시 : 2026년 03월 07일 10시~14시
⊛장 소 : 만발공양간
⊛문 의 :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천수다라니 기도법회
⊛ 일 시 : 03월 27일(금) 저녁 7시
⊛ 장 소 : 조계사 극락전
❏총동문회 합창단 모집 및 연습
⊛53선 지수합창단 상시 모집합니다. (즐겁게,아름답게,행복하게)
⊛조계사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가입하여 음성공양 할 수 있습니다.
➪일 시:매 월 :1, 3, 4주(토)12시30분~2시까지
두 번째주(금)오후5시~6시30분
➪장소:안심당 지하 합창단실
⊛문의:포교 부장 고정숙 여실심, 010-9983-5778
❏동문회비 및 정기법회 보시 계좌 안내
➪동문회비:연회비-5만원,평생 회비-50만원
⊛하나은행111-054579-03005.예금주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
➪임원회비:회장(3백만원),감사(50만 원),부회장(50만원),부장(30만원)
수석차장(15만원),차장(10만원)
⊛하나은행, 263-910588-27607,예금주: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010-8736-0372
❏장학기금 후원(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장학회)
➪조계사 불교대학 동문이면 누구나 월1천 원 이상의 장학기금 후원 가능
➪장학회 정회원 조건:출자금10만 원 월1천 원 이상 후원하시는 분
⊛후원계좌:신한은행100-030-532200 (조계종 조계사 불대총동문회)
⊛문의:장학회 보현행 안영주010-6272-2895
❏어르신 배식 봉사
⊛일시: 3월 20일(금),10시~14시
⊛종로노인종합복지관
⊛문의:봉사부장 반야월 강승희 010-2292-3533
❏총동문회 행복 나눔터
➪참기름(12,000원)들기름(13,000원)볶음참깨(5,000원), 약조청1.5kg(70,000원)
➪들깻가루(5,000원)약조청1kg(50,000원) 약조청1.2kg (60,000원)
⊛하나은행: 263-910588-28207,예금주 박수정(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
⊛문의: TF팀 대덕행 이후남(010-2325-6719) 여해심 이성숙(010-3897-4568)
4. 인 사 말 | 회장 대경 박수정
동문회장 인사말
안녕하세요 대경 박수정입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 아래 한마음으로 모여 교육법회에 함께 하게 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먼저 부처님의 법을 전해 주시려 귀한 걸음 해주신 종무행정지원 단장스님이신 원지스님께 감사드립니다.
조계사 불교대학 총동문회는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며,
그 뜻을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지혜와 자비의 공동체입니다.
배움으로 얻은 깨달음을 서로 나누고, 함께 공부한 도반들과의 인연의 끈을 이어가며,
불자로서의 서원을 다지는 곳이 바로 총동문회입니다.
‘나루’는 예로부터 사람과 사람, 지역과 세상을 잇던 강가의 나루터를 뜻합니다.
배가 머물고 떠나듯, 교육법회도 동문님들이 한달에 한번 모여 부처님 말씀을 듣고 정진할 수 있도록 신심을 확인하고 다시금 발심하고,
일터나 가정에서 더 나은 자리이타의 새로운 길을 열어가게 하는 곳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이 자리 또한 원지 단장스님의 귀한 법문을 듣고 배운 가르침의 지혜와 자비가 세상으로 흘러가 많은 이들의 마음을 적셔주는 살아 있
는 수행의 나루터가 될 것입니다.
감사한 인연의 흐름을 다시 확인하는 기쁨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며 동문님들 어디에 계시든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모든 동문들의 마음이 자
비의 등불이 되기를 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회장 대경 박수정 합장]
5. 발 원 문 |
발 원 문
지극한 마음으로 삼보에 귀의합니다. _()_
끝없는 자비의 빛으로 중생을 깨우치시고, 길을 밝혀 주어 가르침을 주시는 부처님과 수행으로 본을 보이시는
청정한 승가에 감사와 찬탄을 올립니다.
오랜 세월 무지로 인한 분별과 탐욕으로 괴로움의 세월을 살아온 것을 참회합니다.
긴 겨울을 지나 따뜻한 봄바람이 대지를 깨우듯,
오늘 이 교육법회가 우리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새로운 출발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굳었던 마음은 녹고, 망설이던 발걸음은 가벼워져 배움과 실천으로 전법의 열매가 무르익게 하여 주옵소서.
나와 너를 가르지 않는 화합의 정신으로, 선배는 길을 열어 주고 후배는 그 뜻을 이어 받아 서로를 아끼고 격려하며
한마음 한뜻이 되어 우리 총동문회가 수행과 봉사의 든든한 도량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배우는 기쁨에 머무르지 않고, 들은 법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하시며.
누군가의 손을 잡아 도량으로 이끌고,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더 따뜻하게 품는
부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기를 서원합니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는 용기를 주시고,
함께한다는 믿음 속에서 더욱 굳건한 인연을 맺어
우리의 걸음 걸음이 곧 도량을 넓히는 공덕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법회로 지은 모든 공덕을 널리 회향하오니,
오늘 함께하는 동문님, 불자님과 일체중생의
괴로움은 사라지고, 모두 함께 성불하여지이다.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석가모니불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_()_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재무부장 청정화 김애숙 합장]
6. 법 문 |수행이란 무엇일까요 - (원지스님)
법문-“수행이란 무엇일까요? -(종무행정지원단장 원지스님)
반갑습니다.
저는 종무행정 지원 단장이라는 소임을 하고 있는 원지 스님입니다.
우리 불교대학 총동문회 여러분들과 몇 번 인사 나눴죠
오늘 그 첫 번째 시간으로 제가 가지고 있는 영화 중에 그 시대 순으로 1981년도 작품인 “만다라”라는 영화를
가지고 여러분들하고 한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도 이 강의를 기획한 지는 꽤 오래 됐는데 실제로 해본 적이 없어요.
이 시절 인연이 안 맞아가지고 그래서 이번에 처음인데 한번 해보도록 할게요.
우선은 이제 좀 있으면 설날이잖아요. 내일 설 명절 내려가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제가 이번에 설 명절 때
우리 신도님들께 드리려고 준비한 거 먼저 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둘 다 받으셔야 돼요. 요거를 보시며 설명을 드릴게요.
글씨를 저희 은사 스님이시자, 또 주지 스님의 은사 스님이신 백양사 원로위원 성오 큰 스님께서 쓰신 글씨입니다.
“팔풍부동 선용기심 (八風不動 善用其心)”이라는 글씨를 쓰셨어요.
그리고 밑에 있는 말은 병오년 붉은 말의 기운을 담았고요. 그리고 해석은 뒤에 명함 사이즈에 여기에다가 해석을 달아놨어요.
그래서 팔풍부동이라는 말은 8가지 바람 뭐냐 하면 이익과 손해,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즐거움과 고통을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게 되는 그러한 8가지 반대되는 것들인데요.
거기에 누가 칭찬해 주면 좋아하고 누가 비난하면 짜증내하고 싫어하고 듣기 싫어하고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흔들리지 않고 선용기심 그 마음을 잘 써라 이런 뜻입니다.
그래서 2026년 병오년은 “감정이 안 생기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감정에 끌려가지 말고
그 마음을 잘 쓰면서 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는데요.
왜 두려운 마음이 있죠? 이 생각은 제발 좀 안 났으면 좋겠는데 하는 그런 생각이나
어떤 마음의 상처 같은 것들 그런 것들도 있을 텐데요.
그런 것들이 내 머릿속에 떠오를까 봐 두려워하는 경향들이 있으세요.
근데 마음의 상처라는 것은 상처가 이미 난 걸 어떻게 해요.
그게 내가 떠오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떠오르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제 손에 여기 상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벌써 한 20년 전에 난 상처인데요.
이게 슬슬 안 보이기도 하는데 또 보다 보면 또 보여요.
이런 것들이잖아요. 마음의 상처도 마찬가지거든요.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완전히 없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완전히 없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불쑥불쑥 생각이 났을 때,
아! 왜 또 이런 생각들이 나를 괴롭히나 이렇게 짜증도 내고 싫은 마음도 내시는데요.
고려 시대 때 보조 지눌국사(知訥國師) 스님의 수심결(修心訣)이라는 책에 보면은
어떻게 나오냐면 그 마음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지 말고,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할까 두려워 해라.” 이런 말이 있습니다.
아까 우리가 얘기했던 그런 마음들 수치스러웠던 그런 추억 그런 기억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은 이제 아예 그냥 생각이 안 났으면 좋겠는데 그런 것들이 불쑥불쑥 다시 떠오르는
그 마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것이 일어날까 두려워하지 말고
보조 지눌국사 말씀은 “그것이 일어났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까 두려워해라” 이런 말씀하셨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내가 일어난 마음을 알아차림 하면 내가 나의 생각을 제 삼 자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흔들리지 않아요. 그냥 과거에 났던 상처가 어쩔 수 없이 또 보이는 거다. 그렇죠?
그런데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 마음의 소용돌이에 또 휘말려 들어가요.
왜? 나는 그때 이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어, 이러면서 다시 한 번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또 휘말려 들어가는데 그러한 것들을
알아차림하면 화두라든지, 어떤 염불이라든지, 이런 것들로써 알아차림 하라는 뜻인데요.
여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이 안 생기길 바라는 게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감정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감정에 끌려가지 말고 잘 쓰면서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그 흔들림 자체를 공부로 바꾸는 것 그것이 팔풍부동 선용 기심입니다.
여기 선용기심(善用其心)이라는 말은 여기 선(善) 자는 착할 선이 아니고 잘 이라는 뜻입니다.
잘 써라 선용 잘 써라 그 마음을 잘 써라 이렇게 표현된 건데 선용기심은 화엄경 정행품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분들이 올해는 이런 칭찬과 비난 이익과 손해 뭐 이런 데 흔들리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면서 그 없을 수는 없거든요.
그런 것들을 바라보면서 그 내 마음을 잘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낙관은 옴자예요.
잘 보이시면 옴자 보여요 보이세요? 그리고 여기 있는 음각은 부귀평안(富貴平安)이라고 써 있는 겁니다.
여러분 다 부자 되시고 다 평안 하시라고 부귀평안입니다. 그 밑에 있는 양각은 이게 영수가복입니다.
영수가복. 영원할 영 자, 받을 수자 영원히 받아라.
어떤 복을 말씀드리자면, 가 자는 아름다운 가 자인데 가복 해갖고 좋은 복이에요.
영원히 좋은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라고 새해에 이제 보통 이제 스님들한테 세배 하러 오잖아요. 요거 복돈 대신에 준비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올해는 팔풍부동 선용기심의 마음으로 한번 살아가시기를 제가 축원드리고 바라는 마음으로 이렇게 준비 했습니다.
다들 받으셨죠? 괜찮으세요?
글씨만 있으면 모르니까 이제 해설을 달아드린 건데 이거는 뭐 이렇게 책상에 붙여 놓으시든 뭐 액자 속에 넣어 놓으시든
그렇게 해갖고 잘 보이는 곳에 잘 두시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듭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만다라 영화 못 보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솔직하게 만다라 영화 근데 보신 분들은 어떠세요?
한번 보신 분 중에서 소감 말씀해 주실 수 있는 분, 우리 회장님 81년도에 뭐 하고 계셨어요? 연애하고 계셨나요?
학교 다녔어요. 혹시 학교 초등학교요. 저는 세 살이었고요.
저는 아장아장 세 살이었고요. 81년도에 대학교 다니신 분 계세요?
영화 보시고 소감이 어떠셨어요?
딱 기억나는 게 하나 있어요. 영화 스토리는 대충 기억이 나는데 그래도 또렷이 기억나는 말 한 마디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 중에 술이 한 잔 쫙 돼서 “부처님은 뭐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를 그렇게 괴롭힐까” 라는
그 문구는 또렷이 기억이 나요.
예 맞습니다. 빌어먹을 하면서 여기 제가 나눠드린 그것도 나오는데 “왜 부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셔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나” 근데 여러분 부처님한테 괴롭힘 당해 본 적 있으세요?
여러분들은 없으실 것 같은데 저는 괴롭힘 당했습니다.
그래가지고 이거는 사실 이제 수행자 특히 스님들 입장에서 아니 이제 삶의 어떤 괴로움 또는 수행의 어떤 측면에서
여러분들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씀해주실분 계십니까요? .
“제가 그때는 불교에 대해서 잘 모를 때 봤을 때 그때 하고, 지금 제가 불교 대학을 나와서 느낌이 완전히 다르고,
그때는 그냥 왜 이런가? 이렇게 뭐 별로 그렇게 크게 깊이 와닿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뭔가는 울림이 있었는데 그 울림이나 지금 울림이나 비슷하기는 하더라고요.
이제 이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근데 지금은 속속들이 좀 그 느낌을 알 수가 있을 것 같고 그 당시는
잘 모르니까 어떻게 스님이 이러냐 막 이러면서 이렇게 보았죠”
그렇죠? 스님이 술 마시고 담배 피고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화하면서 좀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이게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는 누구나 다 접할 수 있는 거고
영화를 본 사람이 누구나 다 소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혹시라도 다음에는 “아재아재바라아재” 볼 텐데
그 영화는 안 보신 분 없고 다 같이 보고 오셨으면 좋겠고요. 그리고 제가 좀 전에 우리 회장님 통해 요거 핸드폰으로
지금 보시면은 제가 볼 그 화면들을 다 보실 수 있어요. 다 한번 보셨나요? 그걸 보셔도 되고요.
만다라에 대해서 제가 간단하게 말씀을 좀 드리고 시작을 할게요.
이 영화 얼마 전에 안타깝게 타계하신 안성기 배우님이 나오시는 영화인데 법운 스님으로 나오죠.
그다음에 배우 전무성님 나오시는데 지산 스님으로 나옵니다.
이 영화가 전무성 배우님의 데뷔작이에요. 데뷔작이고 그 해 대종상 남우조연상을 받으셨더라고요.
그다음에 안성기 배우님은 백상예술대상 남자 배우 최우수 연기상을 이 영화를 통해서 받으셨고
임건택 감독도 이 영화부터 해가지고 예술 감독으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던 아주 훌륭한 작품 중에 하나입니다.
우선 법명을 한번 볼까요? 일단은 캐릭터가 대비돼요. 법운 스님은 모범생 스타일입니다.
근데 지산 스님은 어때요? 땡중 스타일이죠. 땡초 제가 중학교 때 별명이 땡초였는데 땡초 스타일입니다.
근데 법명은 그게 또 대비가 있어요. 지산 스님은 산이잖아요.
산은 못 움직이죠 땡중인데 묶여 있어요.
말은 깨달은 것처럼 하는데 자기의 본 마음은 산이 어디 못 가고 묶여 있는 것처럼 어딘가에 꽉 묶여 있죠.
어디에 묶여 있습니까? 과거에 어떠한 잘못된 행동이라든지 계를 범한 것 그 여성과 사랑을 나눈 것
거기에 끝까지 묶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보기엔 영화이기 때문에 이제 다른 해석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리고 모범생처럼 보이는 법운스님은 구름 운자를 쓰죠.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닙니다.
마음이 이렇게도 됐다가 저렇게도 됐다가 이 어떠한 깨달음에 이루지 못하고 계속해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어떤 그런 캐릭터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좀 그렇고요. 이제 영화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이제 잠깐 말씀드리면 아재아재바라아재도 마찬가지인데
두 인물의 다른 숙제를 받는데 다르게 해결해 나가고 있는 두 인물의 삶을 대비하는 영화로 나옵니다.
여기 만나라에서는 두 남성의 이야기, 아재아재바라아재에서는 두 여성의 이야기 으로 나오고요.
그중에 지산 스님이 소주 마시면서 뭐라고 그래요?
나무소주불 그러죠? 그거는 여러분 이제 거기에 대사가 어떻게 나오냐면 “여기에 있는 부처만 부처가 아니다.
내가 찾는 부처는 바로 지금 여러분 여기는 법당이 있고, 부처님이 계시니까 부처님이 보이지만 여러분들이 계시는 곳은 어디예요?
여러분들이 계시는 집, 가정 뭐 운전하시는 분들은 자동차 안 될 수 있고, 그렇죠? 모든 곳 술집에 가면 술집에서 밥집에 가면
밥집에서 그런데 바로 지금 이 술잔 속에 있어 하면서 나무 소주불 그러거든요.”
지산 스님이 공부도 많이 했고 배운 것도 많고 고민도 아주 깊습니다.
근데 제가 스님의 입장에서 봤을 때 지산 스님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부족한 점은
제가 보기에 스승이 없이 혼자 공부한 겁니다.
지산 스님이라고 하는 이분 제가 봤을 때 근기가 아주 훌륭한 분으로 보이거든요.
아주 열심히 노력하고 고뇌하고 그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이렇게 고뇌하는 모습이 나오잖아요.
이 장면이 나오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두 하나에 전신을 던져 몰두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두는 끝내 풀리지 않고 나는 답답하고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해서 선방의 문을 열고 말았다.”
이 말은 정말 끝까지 흔히 말하는 목숨 걸고 수행해 보지 않으신 분들은 이렇게 말하기 힘들죠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부분이거든요.
근데 이런 근기를 가지신 분이 바른 스승과 인연되어 자기를 압도할 수 있는 스승 밑에서 공부했다면 이렇게 고생하지 않고
수행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수업의 부제는 “수행이란 무엇일까요?”
이렇게 달아놨어요. 커리큘럼 거기에 수행은 여러분 혼자서 하지 마시고요.
꼭 스승 밑에서 하시기를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선어록을 공부해 보면 선어록에도 반드시 스승 밑에서 공부해야 된다라고
되어 있고 부처님 당시의 이야기를 생각해 봐도 어떤 스님이 오자마자 출가하자마자 혼자서 숲속에 가서 공부하겠다라고
수행하겠다라고 부처님한테 얘기하거든요. 부처님한테 혼이 나거든요.
“내 밑에서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방법도 알고 수행하는 것도 알고 그다음에 득력하고 난 이후에 선방에 또는 숲속에 가서
혼자 수행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수행을 할 때에는 반드시 스승을 찾아서 먼저 스승에 의지해서 수행하시기 말씀을 드릴게요.
수행이라는 것을 어떻게 말할 수 있냐면 북한산 꼭대기에 올라가는 거라고 할 수가 있어요.
북한산 정상에 인수봉 꼭대기 올라가 보신 분이 여기 많으시네요.
인수봉 꼭대기에 올라가면 만약에 내가 지도도 없고 먼저 올라가신 분을 따라가지도 않고 혼자서 간다고 그러면 어떨까요?
내가 지금 북한산 꼭대기에 와 있는지, 인왕산 꼭대기에 와 있는지, 도봉산 꼭대기에 와 있는지 알지 못할 거예요.
그렇죠 누구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리고 길을 여기로 저기로 잘못 들 수 있습니다. 제가
2주 전인가 아무튼 지난달에 선방 대중공양 갔다가 저기 도봉산 망월사에 선방 대중공양을 불대 제가 1학년 주간반 담임을 했거든요.
거기에 보살님들 열 분 모시고 갔다가 망월사에서 그 반대편에 천축사라고 있어요.
천축사로 넘어가려고 보살님들 모시고 천축사에 갔어요.
제가 지도만 보고 갔다가 안 가 보고 갔다가 정말 개고생을 했습니다.
망월사에서 넘어오는 그쪽 비탈길이 그 햇빛이 안 드는 곳인데 눈이 와가지고 얼었어요.
거기를 보살님들을 모시고 네 발로 기어서 넘어왔거든요.
이게 스승이 없으면 이렇게 고생을 하는 겁니다.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혼자서 해보려고 하면은 그래갖고 제가 보살님들한테 얼마나 미안해 가지고 진짜 너무 그랬는데
아무튼 스승이 없이 혼자 수행하면 이렇게 정말 말 그대로 개고생을 합니다.
근데 이 지산 스님도 제가 봤을 때는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이렇게 고생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요. 하지만 얼마나 멋있습니까?
영화 가운데 우리 법운 스님은 이제 이 스님이 괜찮은가 보다 하고 같이 가려다가 그 사창가라고 해야 되겠죠
그 사창가에 가서 앗 뜨거워 하고서는 그냥 확 도망 나와버리죠.
그리고 난 다음에 이제 선방에 갔는데 선방에서 같이 계를 받았던 수계 도반을 만나잖아요.
수계 도반을 만나서 너무 반갑고 해서 ”아이 도반 어떻게 지내고 있어“ 했는데 수계도반 스님 목에 묵언이라고 딱 걸려 있죠.
그러면서 아 지금 열심히 정진하려고 하는 그 마음을 느끼잖아요.
그러면서 이제 아무튼 그 거기 안에 스토리가 있고, 그리고 이제 해제를 하고 나와서 이제 같이 걸어가는데
그제서야 이제 그 묵언을 하던 도반이 말을 하잖아요.
그 영화 안 보신 분도 대충 이야기 쫓아오실 수 있겠어요.
계속. 그래서 그때 도반이 뭐라고 그래요? 죽도라는 섬에서 진짜 스님을 만났다.
그 장면 나오죠. 지산 그때 이제 그 상황이 이렇죠
”섬 안에 전염병이 돌았는데 그 1천여 명이 되는 대개의 사람들이 다 병에 걸렸는데
그래갖고 막 진짜 막 죽어 나가는 사람도 있었고 했는데 지산이라는 땡중이 이 죽은 사람 염해주고 염불해 주고,
그리고 다 그렇게 자기도 병에 걸려서 죽을 수 있는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계속 그걸 해줬다“는 거 아니에요.
보름 동안 계속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걸 해줬더니 보름이 지나서 진정이 됐고 전염병이 이제 싹 다 나았는데
마을 사람들이 고마워서 스님에게 절을 지어주려고 했는데 이미 떠나가 없더라.
”근데 그동안 그 스님은 뭐 했어“라고 했더니 뭐라고 해요?
이 스님이 나는 산속에 천막을 치고 왜 산속에 천막을 치고 있었어요. 전염병 걸리면 안 되잖아요. 그죠? 무섭잖아요.
나도 스님도 다들 죽어 나가고 있는데 그래서 산속에 천막 치고 그리고 뭐 했어요?
”관세음보살님께 가련한 중생 구제해 주세요“라고 목탁을 치면서 계속 기도만 하고 있었다는 거 아니에요 그렇죠?
이 지산 스님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중생들에게 다가가서 염해주고 씻겨주고 돌봐주고
그런데 이 스님은 굉장히 손가락을 소신 공양까지 하는 그런 독한 마음이 있고 그런 열심히 공부하려고 하고 있는
마음이 있는 그러한 스님마저도 그 죽음이라는 그 공포 앞에서 도망을 가서 산속으로 도망가고 천막 치고 거기서
아이고 부처님 우리 중생 좀 살려주세요.
이러고 있었던 거 아니에요 그렇죠 얼마나 지산 스님이 대단합니까?
그렇죠 지산 스님이 정말 훌륭하고 대단한 스님이다라고 알 수가 있는데 아무튼 이러한 캐릭터가 있는데
지산 스님 이야기 쭉 한번 해볼까요?
아무튼 선방에서 이게 지금 시간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걸 다 하지는 못하고 여러분들이 이제 페이지를 좀 쭉 넘어가다 보면
지산 스님하고 법운 스님하고 두 사람이 등을 보이고 있는 장면 있어요. 넘기다 보면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화두 하나에
전심을 다해 몰두하고 있는지.“ 여러분 혹시 수행에 몰두해 보신 적 있으세요?
제 이야기 하나 해볼까요?
제가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다니다가 출가를 했어요.
그래가지고 처음에는 이제 제가 9살 때부터 어린이 불교 학교인 어린이 법회 다녔는데 그냥 뭐 어린이 법회 학생회 법회는
놀러 다닌 거죠 사실은 놀러 다니는 거고요.
근데 뭐 어쩌다 보니까 어떻게 원서 넣다 보니까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가게 됐어요.
일단은 불교학과 가서 이제 공부하다 보니까 이게 행복의 길이 여기 있는 거예요.
저는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근데 부처님을 따르는 여기에 그 궁극의 행복이 여기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출가를 하고 싶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도 한 번 출가하고 싶었고, 대학교 4학년 때도 한번 출가하고 싶었어요.
그래갖고 ”막 나 출가할 거라고 친구들한테 막 떠들고 다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제 대학교 1학년 때는 선배들이 부르더니
출가라고 하는 게 쉬운 게 아니야.
이렇게 막 얘기를 하더니 너 이런 거 할 수 있겠어?
형 저는 못 할 것 같아요. 바로 이래 가지고 이제 한 번 접었고요.
대학교 4학년 때도 아무튼 어떤 일이 있었고요. 그리고 이제 또 직장 생활 하다가 마지막 세 번째 출가하고 싶은
마음이 딱 일어나더라고요. 이게 평생 갈 것 같은 거예요. 내가 만약에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살고 있어도 삶의
어떤 풍파만 딱 닥치면 어떤 위기 그 힘든 순간만 딱 오면 아! 출가할까라고 하는 생각이 나겠는 거예요.
보니까 근데 그렇게 살면 내 삶이 행복할까 나랑 같이 사는 삶이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지금 한번 해보자. 내가 지금 해가지고 망하더라도 지금 한번 해보자.
그러지 않으면 평생 이 출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며 살겠다라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출가를 딱 감행을 했습니다.
근데 출가해서 보니까 천직인 거예요. 아무튼 뭐 이렇게 그건 그 직업은 아니지만은 아무튼 진짜 타고난 거예요.
전생부터 이어져 오는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아무튼 근데 제가 이제 출가할 때 부처님처럼 깨닫고 싶어서 출가를 했어요.
뭐 다 그렇죠 스님들이 근데 출가를 했는데 스님들이 부처되는 법은 안 가르쳐주고 일하는 거 가르쳐주더라고요.
아무튼 일단은 그런 이제 기본적인 스님으로서 살아야 되는 방법들 그런 거 배우는 데 10년 세월이 갔어요.
경전도 익혀야 되고, 뭣도 익혀야 되고, 염불도 익혀야 되고, 사는 것도 익혀야 되고 스님들 대하는 법도 익혀야 되고,
은사 스님 모시는 것도 익혀야 되고 막 그런 게 많아요.
10년이 지나서 대학원을 마칠 때쯤 됐는데 이제 대학원에 있을 때 이렇게 공부하러 다니는 거잖아요.
대학원 지도교수인 종호 스님께서 간화선 국제 학술대회를 열었는데, 영국 사람도 오고, 미국 사람도 오고, 중국 사람도 오고,
이렇게 하셔서 간화선 학술대회를 국제적으로 진행한 후 이 사람들 전부 다 마곡사로 데리고 와서 일주일 동안
수불 스님 모시고 일주일 동안 용맹정진하자고 하셨어요. 그래서 다 모아서 갔어요.
저는 그때 끌려갈 때 정말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으로 망했다.
수행할 줄도 모르고 화두가 뭔지도 이제 물론 대학원에서 배웠으니까 대충 감은 있는데 뭔지 모르는데 가서 졸다가 오겠구나.
일주일 동안 그냥 정말 끙끙 대다 오겠구나 두려운 마음에 같이 갔습니다.
근데 수불 스님 화두가요 ”여러분 이거 손가락 한번 튕겨 보시겠어요?“
수불 스님한테 배우신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손가락 한번 튕겨보세요.
”탁! 이거 누가 튕겼습니까?“ 회장님 이거 누가 튕겼어요?
근데 나는 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불교는 무아잖아요.
내가 없다라고 했잖아요. 일단 나는 답이 아닙니다.
다시 그러면 튕겨보세요. 거사님 이거 누가 튕겼습니까?
그렇죠 모르겠죠 아무튼 수불 스님한테 이렇게 계속 이렇게 대답을 하면 다 이렇게 아니다 라고 이제 다 이렇게 하고요.
그러면 이제 결국은 아무도 이제 이게 모르는 거잖아요.
대답을 못 하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 모르는 그 마음을 들고 있어라.”
“그게 화두다.” 이렇게 법문을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수불 스님이 근데 이 모르는 이 마음이 형체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자꾸 자꾸 없어져요. 그래가지고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하게끔 하기 위해서 수불 스님이 어디 안 가시고 일주일 동안
저희랑 함께 아침 저녁으로 법문을 계속 해 주시면서 일주일 동안 계셨어요.
제가 처음에는 이건 다른 스토리가 또 있긴 한데 제가 처음에는 너무 걱정했는데 하다 보니까 어쨌거나 하다 보니까 덜커덕 걸려버렸어요.
화두가 근데 여기 또 다른 스토리가 있는데 그거는 나중에 하고 이 화두가 너무 저한테 소중한 거예요. 너무너무 소중했어요.
그래가지고 제가 이제 그래도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제가 대학원에서 2년 동안 선어록을 공부를 했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선어록을 보면은 한 달만 해도 깨닫고 일주일만 해도 깨닫고 3일만 해도 깨달아요.
화두만 제대로 걸리면 그렇게 돼 있거든요. 근데 제가 어쩌다 보니까 이게 그 운 좋게 뒷걸음질 치다가 개구리 밟는다.
그런 거 있는가 아무튼 그런 식으로 걸려버렸어요.
근데 어쨌거나 걸렸으니까 저한테는 너무 소중한 거예요.
이거를 제가 어떻게든 이 시간 안에 깨닫고 싶은 거예요.
욕심이 너무 많아가지고 이거를 이제 들고 있는데 누가 만약에 저한테 말을 걸면 제가 기분이 좋을까요? 제가 먼저 말을 하겠습니까?
이게 걸렸는데 기회가 왔는데 무슨 얘긴지 아시겠어요? 이거를 내가 살려가지고 내가 깨달음으로 만들어야 되는 거예요.
이 기회가 왔을 때 그러니까 말도 안 해요. 누가 말하면 도망가요.
말 대답도 안 하고 그러면 진짜로요 거짓말 안 합니다.
똥 누면서도 화두 들고 있었어요. 똥 누면서도 화두 들고요. 그러면 밥 먹을 때 어떻게 되냐면은요. 밥 먹을 때 제가 이제 마곡사에서
밥을 계속 먹으면 졸리고 하니까 한 끼만 먹어요. 아침은 조금만 먹고, 점심은 배고프니까 먹고 저녁은 안 먹고 아무튼 그 굉장히 조금만
먹으려고 하는데 그러니까 늘 배고픈 상태로 있지 않겠어요 이렇게 식판을 들고 반찬을 뜹니다. 반찬을 뜨면서도 화두를 들면서 떠요.
진짜로 이게 지금 너무 소중해요. 저한테는 뭐 이렇게 밥 들 때, 국 들 때, 반찬 들 때도 이렇게 화두를 들면서 뜹니다.
화두 이렇게 그래갖고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먹지도 않아요.
혼자 구석탱이에서 혼자 딱 앉아서 먹습니다. 딱 내려놔요.
그리고 밥 숟가락을 들잖아요. 숟가락을 들고 뜰 때도 화두가 있었어요.
여기 갖고 올 때도 화두가 있었어요. 근데 제가 되게 배고픈 상태이긴 해요.
입에 딱 넣어서 혀가 음식에 딱 닿는 순간 진짜 그 직전까지 제가 화두를 들고 있었거든요.
입술이 혀가 음식에 딱 듣는 순간
맛있어 맛있어 맛있어~
이러고 있어요. 그러면서 이게 턱 관절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예요.
와!!! 턱 관절은 자동으로 움직이는 거구나. 그때 알았어요.
진짜 그래요. 사람 마음이라는 게 아무튼 우스갯소리인데 이렇게 뭐 제가 열심히 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아무튼 이런 경험을 하고 수행을 했습니다.
제가 그리고 이제 대학원 마치고 또 인도에 가서 우연치 않게 2년 동안 이제 위빠사나 수행을 했거든요.
근데 이제 그 체력적으로 한계가 오더라고요. 여기는 약간 스파르타 식으로 하는 곳이라서 이렇게 쉬는 시간 잘 안 줘요.
무조건 오후 불식이고 무조건 하루에 14시간 15시간씩 정진해야 되고 그러니까 이게 쭉 하다 보니까
이게 제가 이제 수행 진도가 쭉 잘 나갔어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제 우등생처럼 잘 나갔어요.
어떤 스님이 저보다 먼저 수행하러 오신 분이 있었는데 2년 먼저 와서 수행하신 분이 있었는데 제가 이 스님 수준도 그냥
쑥 넘어가고 그냥 이 스님이 그래서 막 짜증내고 그랬어요. 그렇게 진도가 잘 나가다가 이게 사람마다 그런 거예요.
사람마다 제가 그 스님보다 잘났다는 게 아니고 근기에 따라서 걸리는 데가 있고 그냥 쑥 지나가는 데가 있고 그래요.
제가 이제 걸리는 데를 만난 거죠. 딱 걸려버렸어요.
걸리니까 이게 정말 여러분 그 화두 중에 여러분 공부 많이 하셨죠 그렇죠?
선림원도 다니셨고 화두 중에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라는 화두가 있어요.
백척간도 천길 낭떠러지에 끝에 서가지고 진일보 한 걸음 나아가는, 여러분 이거 할 수 있겠어요? 이게 떨어지면 죽어요. 그렇죠?
한 걸음 나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어요. 나는 지금 부처가 돼야 되겠거든요. 한 걸음 전진할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고 근데 이 경계에는 막혀가지고 뚫리진 않고 아무리 뚫으려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해봐도
체력은 떨어지지 이거는 안 뚫리지 한 발짝 가지도 못하겠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고 정말 진퇴양난 정말 울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정말 뭐 해답은 안 보이고 어떻게든 해내야 되겠는데 해낼 도리는 없고 체력은 떨어지고 막 아무튼 여기서 지산 스님이 이러죠.
“그러나 화두는 끝내 풀리지 않고 난 답답하고 답답해서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해서” 이거는 어떤 마음인지 제가 알겠어요.
저도 경험해 봤거든요. 정말 그래요. 그렇게 제가 바닥을 한 번 치고 수행을 너무 하기 싫은 거예요. 질려버렸어요.
나중에 그냥 그래갖고 사실은 수행 기간 제가 스님한테 2년 동안 수행하겠습니다 하고 들어왔는데 1년 6개월 지점이었거든요.
그런데 이미 바닥이 나버려가지고 스님 저 도저히 더 못 하겠습니다.
좀 쉬어야 되겠습니다 하고 나와버렸어요.
그리고 제가 이제 간을 좀 봤거든요.
하루에 1시간씩 정진을 하면서 내 수행 컨디션 내가 지금 다시 선방에 돌아가도 될까 말까 막 이런 것들을 점검했는데
계속 수행하는 마음이 안 돌아오더라고요.
한 번 질려버리니까 그래서 몇 년 있다가 어머니 모시고 제가 미얀마를 한 번 갔어요.
효도 여행 삼아서 관광 삼아서 이제 어머니랑 같이 보름을 해서 갔는데 일주일은 어머니랑 같이 선방에서 정진,
일주일은 여행, 이러고 이제 일주일 정진하려고 선방 딱 갔는데 제가 미쳐버리겠는 거예요.
엄마는 저랑 같이 있으니까 너무 좋대요. 수행이 너무 잘 되신대요.
안 그렇겠어요 그렇죠? 그런데 저는 질린 이 마음 때문에 1 시간 버티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당장에 도망가고 싶은 거예요. 마음이 근데 엄마는 너무 좋다고 그러는데 와 진짜 미쳐버리겠더라고요.
그런 마음도 있어요. 그런 마음도 정진하다 보면 이 사람 지산 스님은 뭔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거죠. 이분이 가장 잘못한 것은요 풀리지 않는 뭐라고 되어 있냐면 “이 괴로움 고통을 정면 돌파해 보겠다” 라고
한 거예요. 근데 부처님의 계율은 그런 게 아닙니다. 이분이 이제 계율은 그런 거지 뭐 그러면서 이제 하는데, 그런 게 아닙니다.
“부처님의 계율은 무조건 지켜야 되는 거고요. 여성과의 성적인 어떤 그런 범괴를 하면 이 돌에 머리가 부서지면
나무는 다시 붙일 수 있지만 돌은 다시 붙일 수 없죠.
그런 것처럼 다시 비구가 될 수 없다.” 이렇게 되어 있어요.
이거는 뭐 해 볼까 말까 그게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그냥 무조건 안 되는 겁니다. 근데 이 지산스님은 이제 그런 쪽에 계율 쪽의 공부가 좀 부족했는지 아무튼
그냥 직접 부딪혀 보기로 하죠. 그래서 정말 큰 괴로움 속에 이게 들어가 버리게 되는데요.
우리가 여러분 수행하다가 괴로움이 왔습니다.
괴로움. 여러분이 어떤 것 때문에 괴로우세요? 성내는 거 욕심 내는 거 남들보다 많이 가지고 싶죠? 남들보다 좀 편안하고 싶죠? 남들보다
좀 행복하고 싶죠? 아니면 누가 나를 괴롭히는데 저 인간만 없어지면 참 행복할 것 같죠? 뭐 그런 거 있죠? 그렇죠?
그런 것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있을 때 여러분들 어떻게 아세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외면을 합니까? 아니면 뭐 술 마시러 가거나 뭐 노래 부르러 가거나 뭐 그렇게 그런 식으로 합니까?
우리 불교에서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불교에서는 내가 내 마음을 잘 봐야 됩니다.
그 고통의 실체를 잘 봐야 돼요. 고통의 실체 그 고통의 실체는 무엇 때문입니까?”
한 가지만 딱 말씀드리자면 여러분 지금 제가 남들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 때문에 힘들거나 아니면
저 인간만 안 보면 내가 살겠는데 하는 성내는 마음 때문에 힘들거나 그 마음은 불교적으로 해석할 때 어떻게 할 수 있냐면
욕심 내는 거는 가까이 두고 싶어요. 멀리 두고 싶어요. 가까이 두고 싶죠. 성 내는 거는 가까이 두고 싶어요? 멀리 두고 싶어요.
멀리 두고 싶죠. 이거를 그래서 탐진치가 있죠.
탐진치가 있으면 중생이고 탐진치가 없으면 부처인데 탐진치가 있으면 중생이란 말이에요.
탐진치의 탐은 당기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그냥 내가 막 욕심 때문에 못 살겠어.
이것도 당기는 마음이지만 그냥 딱 봤을 때 어 예쁘게 생겼는데 이렇게 하면 요거는 탐이에요 탐심이에요.
딱 봤는데 뭐야 이따우로 생겼어 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들면 이건 진이에요.
뭔 얘긴지 아시겠죠? 근데 그거는 어때요? 당기거나 밀거나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중심이 있어야 이걸 중심으로 당긴다.
이걸 중심으로 해서 멀어진다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렇죠 결국은 나라고 하는 중심이 있고 이 중심 때문에 당기거나 밀어내거나 하는 마음이 생겨요. 그렇죠
어떤 청년이 부처님을 찾아옵니다. 부처님 제가 괴로워 죽겠습니다.
여기 지산 스님이나 법운 스님처럼 괴로워 죽겠습니다.
근데 그 괴로운 거는 중생의 괴로움은 당기거나 밀거나 욕심이나 성냄 때문에 괴로움이 있는데 큰 스님 뭐라고 그래요
조계사에 왔습니다. 청년이 와서 저한테 왔습니다.
그래서 괴로워 죽겠습니다. 저 괴로운 마음을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했더니 제가 뭐라고 그래요 차나 한 잔 마시게 그럽니다.
동문서답 하는 거 같죠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제가 그 얘기 들어보니까 불교의 깊은 뜻을 알면은 그 괴로움에서 벗어난다는데
그 불교의 그 깊은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저한테 와서 물어보니까 제가 뭐라고 그래요 저 마당 앞에 있는 회화나무입니다.
뜰앞의 잣 나무 저 마당에 있는 회화 나무입니다. 그래요 그러면 이게 무슨 소리일까요?
이게 선문답이잖아요. 스님은 큰 스님은 이 중생들은 당기는 거 밀어내는 것 때문에 괴로운데 큰 스님은 “그것은 나가 있다“라고
하는 ”이것 때문에 힘든 거니까 이거를 없애버리면 힘든 것도 없어질 거 아니에요 이거를 없애라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다른 이야기지만 결국 무아를 깨달으면 이것들이 이거를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당기려고 하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밀쳐내는 것 때문에 힘들어요.
이거를 없애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무아만 깨달으면 다 해결됩니다.
어렵나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라는 거를 기도라는 거를 좀 깊이 있게 안 해 보시면 이게 좀 어려울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조금만 해 보시라고 제가 권해드리고 싶어요.
조금만 저처럼 일주일만이라도 좀 아니면 3일 만이라도 좀 한번 해보세요.
해 보시고 해보다 보면 어떤 순간이 있냐면 마음의 그 고요함을 딱 만나는 그 순간이 있어요.
마음의 고요함을 딱 만나는 그 순간 마음이 스스로 알아버려요.
이것이 정말 좋다는 것을 그러면 그 마음이 계속해서 그 좋은 것을 맛보기 위해 위한 방향으로 계속 흘러가게 되어 있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 맛있는 거 먹어보면 또 먹어보고 싶잖아요. 그렇게 똑같아요.
고요한 마음을 경험하면 자꾸자꾸 고요한 마음을 경험하기 위해서 마음이 쭉 흘러갑니다.
그러다 보면 나라는 생각이 ”아“라는 게 없어지고 당기거나 밀어내는 것도 흐려지고 없어집니다.
그러면 정말 눈 녹듯이 사라져버려요. 여러분이 미워하는 사람 여러분이 욕심내는 거 여러분을 괴롭히는 그것들이
정말 눈 녹듯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좀 무거운 주제로 시작하는 것 같긴 해요.
수행이라는 것. 제가 좀 이제 수행에 대해서 저는 스스로 수행자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시간도 지금 오늘 관리가 안 되고 지금 만다라 영화는 했는지 안 했는지도 모르겠고 여러분 지금 일단 법회를 좀 마쳐야 될 것 같아요.
여러분 혹시 이거 보면서 제가 지금 나눠드린 요거 여기에 제가 이제 장면 장면에 제가 이렇게 멘트 달아 놓은 거 있잖아요.
여기 중에서 좀 궁금하신 거 있으세요?
일단 다리 한 번 뻗어볼까요? 다리 너무 아프죠? 괜찮아요.
다리 아프시면 좀 뻗으셔도 됩니다.
요것만 하나만 설명해 드리고 오늘 법회 마치고 제가 이 법회를 앞으로 어떻게 할지 좀 고민을 좀 같이 한번 해보고요.
이 지산 스님하고 법운 스님이 비어 있는 절을 발견해가지고 우리 한 철 같이 수행합시다.
그러고 좋아서 이제 같이 수행을 하다가 그 앞장면에 보시면은 굉장히 훌륭한 법문을 하죠.
여기 앞에 이렇게 눈을 부릅뜨면서 하는 이 눈빛이 정말 마음에 드는데 우리도 많은 점안의식 법회 많이 했잖아요.
한번 읽어볼게요. ”돈 주고 사 온 돌땡이 여러분 이런 말 하면 죄송하지만 돈 주고 사온 돌땡이에 땡땡이 중 놈이
점을 찍었다 해서 돌 덩어리가 부처 되겠습니까?
물론 점안 의식 속에 우리가 알 수 있는 신비한 힘이 작동을 하면서 부처님이 되는 겁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절하는 대상물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지극히 사무치는 마음이 가서 닿았을 때 그때 돌맹이도 나무도 심지어는 똥덩어리까지도 모두가 다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 없는 물체에 점안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어두운 나의 마음에 밝은 점을 찍어서 그 불을 켜야 되는 겁니다.
복 달라고 비는 것이 불교가 아닙니다. 마음 깨쳐서 스스로 부처가 되는 것이 불교입니다.“
라고 법문을 기가 막히게 했어요. 그렇죠 근데 그 법당을 딱 나와서 내려오는 그 순간 지산스님이 아직 못 깨달았잖아요.
내가 저 부처 눈에 점을 딱 찍어갖고 부처를 부처로 딱 만들어 줬는데 사실 저도 이거 이 얘기는 다음에 아꼈다 하려고 그랬는데
제가 스님 출가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원담 큰 스님을 뵈러 간 적이 있어요.
제 인생에 최초로 만나는 깨달음 큰 스님이에요. 수덕사에 계셨던 원담 진성 큰 스님.
여러분 경허 스님 아세요?
들어보시죠. 만공스님 들어보셨죠? 만공스님 일대기 보면은 진성 삼위가 나와요.
깨달음은 삼위는 이제 어린 10대 때 이미 깨달았어요.
진성 삼위는 그 진성 스님이 원담 큰 스님이거든요.
제가 이제 원담 큰 스님 돌아가시기 2년 전에 제가 이제 친견을 했던 거예요.
제가 그때 스님한테 질문을 하고 싶은데 차마 이 질문을 못 했어요.
근데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질문은 여러분 깨달은 큰 스님 만나면 뭐라고 무슨 얘기 하고 싶으세요? 저는 출가까지 했잖아요.
정말 하고 싶었던 얘기는 스님 저 좀 깨닫게 해 주세요.
이게 그냥 노력도 하지 않고 그냥 낼름 받아 먹고 싶은 근데 마음은 진짜 그랬어요.
스님 제발 저 좀 깨닫게 좀 해주세요. 근데 지산 스님도 아마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런 마음이 불쑥 생겨나지 않았을까
내가 점을 찍었고 이 부처를 부처로 만들어줬잖아요.
누가 내가 이렇게 하는 것처럼 내가 지금 너무 고생하고 있으니까 좀 쉽게 내 눈에도 누가 좀 점 좀 찍어줬으면 인간적인 그 마음이죠.
안 되는 줄 알면서 그렇게 안 되는 줄 그렇게 작동하는 게 아닌 줄 알면서도 그러면서도 나도 로또 한번 해봤으면 그런 마음으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 좀 해봤으면 하는 마음 그런 마음 빌어 먹을 내 눈에 점안은 누가 해주는거요 그러면서 술 마시러 갔다가
얼어 죽죠. 얼어 죽으면서도 저 탑을 향해서 이렇게 두 손 모으고 이렇게 있잖아요.
그렇잖아요. 죽는 순간까지 구도의 길을 놓지 않았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의 지산 스님입니다.
그리고 법운 스님 얘기도 좀 하고 싶은데 안 되겠습니다.
수행이라는 주제를 제가 좀 너무 좀 진지하게 생각하다 보니까 좀 그런 것 같아서 다음번에 아재아재바라아재 넘어가지 않고
못했던 이야기 좀 더 하고 넘어가도 될까요?
다음 달에 뭐 그래요 천천히 하죠.
인연 닿는 대로 천천히 좀 하고 여러분도 한번 영화 한번 보시고 아니면 이제 또 영화 보면서 궁금하신 거 있으면 또 물어보시고
한 달을 기다리기 너무 힘들어요. 스님! 하시며 저를 찾아오세요. 제가 차를 대접해 드리면서 수행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아무튼 수행뿐만 아니고 여러분 다른 이야기 고민 상담 같은 것도 괜찮으니까요.
여러분들 오셔서 해 주시길 바라겠고요. 우리 총동문회를 중심으로 사회 법회도 이제 여러분들이 이제 많은 활동들
그리고 많은 보시행과 많은 보살행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삶을 스스로 부처로 만들어 나가는 그러한 불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리고
새해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홍보부에서 사진 촬영한 것을 공유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장자가 말한 지리소의 지혜는 "어디에 머물고, 어디에서 떠나야 하는지 아는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기준에 붙잡혀 자신을 소모하는 자리에서 떠날줄 아는 것
남의 기대에 맞추느라 본래의 나를 잃어버리는 자리에서 한 걸음 물러설 줄 아는 것이 지혜라합니다.
그럼 새해에도 동문님 모두들 늘 건강하시고 뜻하시는 바 이루시길 기원드립니다.
다가오는 민족의 대명절 설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_()_
[ 조계사불교대학 총동문회 자문위원 법연 이동엽 합장 ]

첫댓글 원지스님! 이번 만다라 영화를 통해 스승의 소중함을 다시 느껴요.~~
통쾌한 법문 기다려집니다.
스님, 설명절 잘 보내세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