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부터 새롬인은 봄철에 등산, 가을철에 달리기, 여름엔 이따금 한강 달리곤 했다. 올해는 마라톤 대회에 참석이 불가능하기에 자체적으로 4년 전에 했던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운동장을 넘어 전체 달리기를 기획했다.
연휴로 육체적으로 피곤하지만 모든 힘껏 참석했다. 어떤 이는 직접 참석이 불가능하지만, 점심 식사로 후원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데리거나 태아와 함께 참석했다. 오전 10시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최대한 가벼운 옷차림과 체온을 보존하기 위한 복장을 하고 참석했다. 오늘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동영상 촬영은 염두에 둔 김찬종 선생은 분주하게 성도 각 사람의 착의와 움직임과 달리는 모습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남겼다. 실제로 역사는 지나고 나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마는데 기록으로 남기므로 그 자취는 기억할 수 있는 한 보존하여 대화의 꽃을 피운다.
서울 과학기술 대학교 전체 길이는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언덕을 포함하여 대략 2.3km이다. 지금까지 3바퀴를 뛰어봤어도 4바퀴는 시도하지 않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겼다. 모두 처음 뛰는 자도 있지만 수년 전에 뛴 경험이 있는 자는 힘을 비축하면서 마지막 바퀴를 나름대로 준비했다. 어떤 이는 2바퀴, 3바퀴 도는 4바퀴를 잠정적으로 목표를 정했다. 나는 4바퀴를 정했다. 몇 년간 뛴 적이 있는 곳이기에 나름대로 각오는 세워져 있었다. 그땐 50대였지만 이제는 60대...
400m 트랙을 한 바퀴 돌고 이제 힘든 코스를 향해 일렬로 뛰었다. 함께 달리긴 하더라도 누구를 도와줄 수도 없다. 넘어지면 부축할 순 있어도 대신 뛸 수 없다. 언덕을 올를 땐 숨이 목까지 이르러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숲 속을 뛸 때 곳곳에 솟아나 있는 나무뿌리와 돌부리를 유의하며 뛰어야 했다. 하지만 정상에서 내리막길을 달릴 때 숨을 내쉬기 쉬웠다. 하지만 위험은 여전히 있기에 난 달리면서 각자의 안전을 걱정했다. 4~5년간 뛴 경험에서 두 차례 넘어져 찰과상을 입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선두에서, 두 바퀴째부턴 이상범과 함께 나란히 뛰었다.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동영상을 찍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김찬종 선생의 모습을 보곤 했다. 세 바퀴째 될 땐 앞서 달리는 형제자매를 보곤 했다. 각자는 최선을 다해 헉헉거리며 뛰는 모습과 뒤에서 거센 숨소리를 들으면서 나도 뛰었다.
마지막 네 바퀴째 달리면서 만상이 떠올랐다. 언제까지 이렇게 달릴 수 있을까? 내 몸 조건이 언제까지? 오늘을 그리워할 때가 언제 도래할는지? 오늘이 나에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자 한다. 그땐 오늘을 그리워하며 떠올릴 것이라 본다. 찍은 동양상을 하나씩 몇 차례 보곤 한다. 기억해야 할 순간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함께 달린 자들과 출발점에 이르렀다. 모두 격려하며 위로했다. 이어서 조문일 집사가 준비한 게임과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오랜만에 모두와 함께 즐겁게 지냈다. 나는 오늘을 기억할 것이다. 미처 떠오르지 않은 순간은 기록을 통해 내 기억에 남길 것이라고 여긴다.
이번 달리기에서 하나 얻은 교훈은 그렇게 힘들었던 고갯길이 예상보다 힘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틀 전(토, 9/30) 조문일 집사와 신혜수 집사와 함께 예행으로 뛰었을 때도 느꼈다. 이땐 3바퀴를 뛰는데 49분이 걸렸는데 이번 4바퀴를 뛰어 1시간 4분이 걸렸다. 모두 하는 말이 그동안 수년간 중랑천을 달리기를 매주 토요일 한 것의 효력이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힘든 것이라도 훈련된 자에겐 그렇게 포기할 정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또 함께 달리기에 담대해졌다. 혼자로 외롭고 지칠 수 있지만 목표지에 이르면 기다리는 성도를 만난다는 기대감이 고통을 극복하게 헸다. 목적지에 이르렀을 땐 언제 힘들었는지 달릴 때 겪은 고통을 잊어버리고 함께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천국의 모습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