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바라봅니다.♡
24.10.20(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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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꿈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한정된 시간 내에서 사람들은 품은 꿈을 이루기 위해 무한 경쟁을 합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더 큰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룬 사람에게는 위대하다든지 아니면 성공한 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됩니다.
높은 꿈을 갖자는 표어는 학교나 대기업에서 널리 활용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높은 곳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큰 꿈을 갖자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 눌려서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은 성공에 제한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주는 너무도 광활하여 사람이 아직도 그 크기를 상상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은 얼마나 크신 분이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꿈은 바라보는 것이고 믿음은 그것의 실상(實相) 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높은 곳에 꿈을 두어야 크게 성공한 자도 되는 것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말하기를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라고 했습니다. 꿈을 가져야 합니다. 꿈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 땅에서 풍족하게 살고 다복과 건강을 누리려는 이생의 꿈을 갖는 사람과 영원한 하늘나라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높은 꿈을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꿈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고 더 큰 꿈은 없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요시야 왕 시대의 예언자였습니다. 하박국이 활동할 당시에 유대 나라는 바벨론의 위협을 받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쳐들어온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대는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바벨론과 맞서 싸울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그 시기에 하박국 선지자가 쓴 것입니다.
하박국서를 보면 하나님께 드리는 간절한 기도로 가득 차 있습니다. 구원을 바라는 애절한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입니다. 3장 16절에 하박국은 바벨론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라고 말합니다. 바벨론이 유다로 쳐들어오면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 분명하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거나 온갖 비참한 일을 다 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담대하게 3장 17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나라가 비참한 상황에 빠지게 되고 남아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이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는 하박국의 신앙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먹을 것이 없어지고, 가축들도 없는 환경이 될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소망이시니 그분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게 될 것이라는 신앙의 꿈인 것입니다.
하박국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회복시키시기를 원하시고 우리의 감사를 받기 원하시는 그 하나님이 언젠가는 구원의 손길을 펼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이런 신앙이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바라는 사람들의 꿈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물질이 있고 없고, 많고 적음을 떠나서 오직 하나님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즐거움의 이유를 하나님에게서만 찾는 것이 참신앙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주어진 환경에 따라 흔들리는 신앙은 아닙니까? 주시니까 감사했고, 평안하게 해주시니까 찬송은 했었지만, 주리게 되거나, 고난이 깊어질 때는 좌절하고 원망하던 우리가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이유는 형통하게 해주시고, 풍성히 물질을 주셨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분을 섬기는 이유는 그분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게 된 이유는 우리를 주격으로 생각하여 하나님은 항상 나를 보호해야만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했었기 때문에 짜증도 내고 원망도 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 먼지보다 못한 존재가 아닙니까? 사람은 아직도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의 크기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별이 몇 개가 있는지 항성과 행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우주보다 수천조 배나 더 크고 많은 다른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중에 우리 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떠며 우리의 존재는 어떨까요? 그것도 모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원망하고 비방합니까? 말이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되십니까? 하나님은 경배의 대상이시지 원망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사방에서 옥죄어드는 압박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의 치열한 세력다툼에 끼여 어떻게 할 바를 알지 못하는 지경에 처해 있습니다. 과연 국익을 위해서 어떻게 처신을 할 지 누구의 편에 서는 것이 옳을지 쉽게 결단할 수 없는 난국에 처해 있습니다.
그토록 괴롭히던 코로나바이러스가 겨우 지나갔지만, 또 다른 질병의 공포가 다가오고 있고, 단기간에 끝날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이어 중동전쟁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 전쟁으로 말미암아 지구촌에 고난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식량과 자원을 무기화한 러시아의 피 말리는 정책으로 온 세계가 식량 고갈과 물가 폭등으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생활이 더 어려워지고 삶의 고통이 견딜 수 없을 정도까지 깊어질까 염려가 되는 것입니다.
국내 문제로는 청년실업과 인구 고령화, 그리고 경기침체 물가 폭등과 같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라의 경제가 침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게 합니다. 실로 저출산의 문제는 국가의 존폐를 위협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결론부터 말한다면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박국 선지자처럼 믿음의 꿈을 꾸며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것에 소망을 두고 요행을 바라다가는 신속히 망하게 될 것입니다. 더 크고 더 높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분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오히려 이때가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며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을 기다려야 하는 때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비록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했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담대한 믿음을 가져야 할 것입다.
욥기 1장 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일컬어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그러자 사단은 1장 9~10절에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르심 때문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의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의 소유물이 땅에 넘치게 하셨음이니이다.” 라고 대답합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주시고 물질로 복을 내려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도 그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까? 결코, 아닌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졌다고 불안이 사라지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불행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게 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근심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은 일용할 양식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의 일용할 양식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양식입니다. 환난이 나거나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으로 산천초목이 다 말라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함께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면은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때부터 행복은 사라지고 불행은 찾아옵니다. 재난이 옵니다. 전쟁이 옵니다. 기근이 옵니다. 전염병이 돕니다. 다 잃어버리고 쓰러질 것입니다. 그때 다시 하나님을 찾는다 해도 회복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설혹 회복된다고 하여도 그 기간은 길고 길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을 찾고 의지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지금부터라도 치료하시고 고쳐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그것이 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환경이 평화로워서 감사하고 기뻐했던 것이 아닙니다. 고통 속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도우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기뻐하였고 감사하였던 것입니다.
환난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까? 고통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습니까? 괜찮다. 괜찮다. 하며 속이는 마음의 소리에 현혹되어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 재난은 도둑같이 찾아옵니다. 이젠 깨어나십시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성령님께서 우리를 도우셔서 하나님으로만 기뻐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해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라고 하며 닥칠 환난으로 인하여 두려워 떨지만 다시 고백하기를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과 우리의 꿈을 이루기 위하여 밤낮으로 쉬지 않고 일한다 해도 어느 날엔가 하나님 부르시면 모두 내려놓고 가야 함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함을 기억하게 하소서!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가 그렇게 애쓰며 쌓아 올린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그 누구도 함께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만이 우리를 구원하며, 우리가 전한 복음과 우리가 하나님 앞에 행한 선한 행실만이 우리의 상급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날마다 주의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능력을 덧입으며, 성전 된 우리 몸과 마음을 성결하게 하오니 날마다 주의 말씀의 깊이와 넓이와 높이를 깨닫고 알아가며 그 말씀의 신비를 체험하는 삶이 되게 하소서! 또한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 때 주님 주신 참된 평강과 기쁨이 함께 하며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삶이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올렸습니다. 아멘.
#설교/이경준목사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