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선독서: 에세 S01E39 - 홀로 있음에 관하여
이번 챕터도 아르테에서 출간된 <좋은 죽음에 관하여>에 수록되어 있어 다시 그 책을 읽고 씁니다.
아르테에서 나온 책이 번역이 편하네요. 이번에도 해당 챕터가 여러 장으로 나뉘어 실려 있길래 아래 소제목을 정리해둡니다.
<<3장 과거를 한탄하지 않고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 남겨둔 것을 돌아보면 자유로워질 수 없다
2장 인생의 파고가 높을 때, 우리는 진정한 삶을 배운다 - 마침내 진정한 자유를 찾으리라 / 타인의 시선과 판단에 나의 행복을 두지 말라 / 고독 속에서 만나는 진정한 나>>
몽테뉴는 '우리는 세상을 이롭게 하기 위해 태어났다'는 거창한 말의 이면에는 야망과 탐욕, 비열한 사리사욕이 자리잡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야망에 관해서는 오히려 홀로 있는 삶에 대한 취향이 야망이라고 말하며, 그 근거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이야말로 야망이 추구하는 것이라 말한다.
'야망'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 보면 '무언가를 크게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이라 나오는데, 그것이 개인의 능력에 한계를 두지 않고, 어떤 틀이나 제도를 벗어나 호연지기를 갖는 것이라고 하면, 자유로움이 야망의 필요 조건이라는 데 동의가 된다.
그러면 야망이 추구하는 것이 왜 홀로 있는 삶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사람들 틈에 껴서 있을 때 그들이 행하는 악덕에 전염되거나, 묵인하거나, 증오하거나 하는 식의 마음으로 인해 자신 또한 악덕에서 중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만큼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인간과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는 없다고 몽테뉴는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게 한다고 덧붙이는데, 나도 그말에 동의한다.
홀로 있는 삶을 추구한다는 것이 타인을 배척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도 스스로에게 만족을 구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몽테뉴가 말하는 홀로 있는 삶은 고요함과 평온함을 추구하는 삶이다. 이 평온함은 온전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을 때 찾아올 수 있는 것이므로,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잘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는 불온한 쾌락과 진정한 쾌락을 구별해야 하며, 육체와 영혼의 평온을 해치는 온갖 정념에서 벗어나 자기 성정에 맞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장의 마지막에 실린 에피쿠로스와 세네카의 편지에는 몽테뉴가 말하는 ‘홀로 있음’의 핵심이 담겨 있다. 내용이 길어 직접 옮기진 못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첫댓글 제목도 참 마음에 들었고, 긴 글이었지만 생각을 끌어내는 글들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우리 영혼을 데려와 자신 안으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홀로 있으이며, ------ 남들과 어울리기를 그만두고 홀로 살아 보기로 한 이상, 우리 만족은 오직 우리 자신에게만 달려 있게 해 놓자. 우리를 타인들과 묶어 놓은 모든 끈에서 풀어주자. 정말로 혼자 살아가는 힘, 그리고 마음 편하게 그런 방식을 고수해 갈 힘을 우리 자신에게서 얻도록 하자."
“군중 속의 감염은 매우 위험하다.”
“홀로 있는 목적은 단 한 가지, 즉 더 한가롭고 자기 편한 대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몽테뉴는 39 장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주제인 ‘홀로 있는 법’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타인들과 섞이면서 겪어야 하는 감염에서 벗어나, 여행을 해도 해소가 되지 않는 내적 짐을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을 추구해보라고 촉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1차적으로 물리적 장소를 벗어나고, 2차적으로 심리적으로도 남들과 어울리려는 성향까지 포기해야 한다고 직언한다.
“분명 생각이 깊은 인간은 자기 자신만 잃지 않으면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셈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일은 자신을 자기 소유로 만들 줄 아는 일이다.”
심지어, 독서에도 너무 지나치게 몰입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책을 자주 읽다가 결국 그 때문에 우리가 지닌 최상의 것인 쾌활함도 건강도 잃게 될 참이라면, 책을 덮도록 하자.”
마지막으로, 진정한 본인의 삶을 추구하라고 마무리한다.
“세상이 자네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이 자네가 추구할 바는 아닐세.”
“그대 마음을 고결한 심상으로 가득 채워.” (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