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의 문학사 쓰기
남 진 원
병자년의 새해가 밝았다.
늘 어려움은 삶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새해라고 해서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글을 쓴다는 일이 고행 아닌 고행이었다.
1996년 역시 살아가기가 팍팍하였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학원 사무실에서 생활을 하였다. 강릉시 교동 사거리 2층의 학원 건물이었다.
삼척의 시인 몇 분이 신년 연하장이나 휘호를 보내왔다. ‘미소 꽃’의 시인 최홍걸 시인의 신년 휘호는 인상적이었다. ‘근하신년’의 네 글자에서 두 글자 ‘賀’와 ‘新’을 써서 보내셨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은 사람의 얼굴에서 피어나는 미소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참으로 공감이 되는 시 구절이었다. 전에 사진을 찍은 것을 보고 있으면 너무 내 모습이 무뚝뚝한 표정이었다. 사진을 찍을 때라도 좀 웃으면서 찍어야겠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 않았다. 웃으면서 지낸다는 일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를 알면서도 실천이 잘 되지 않는다.
김진광 시인은 엽서에 자잘하게 글씨를 써서 연하장을 보냈다.
」
「 늘 열심히 삶에 임하고 노력하는 남형을 보면서 나는 늘 놀랍니다.
보내주시는 유인물과 <동해안시대 문학 1집> 잘 받아 보았습니다. 지난 12월 11일은 집사람과 함께 도규 형님 산소에 다녀왔습니다. 남형께 연락하여 함께 갈까 하다가 학원 강의 시간이 끝나지 않았을 것 같아 우리만 갔다 왔습니다. (제사날 무렵이라서인지 처음으로 제 꿈에 나타났어요. ) 새해에는 하시는 일이 모두 이루어지시고 댁내 다복과 건강을 빕니다.
- 새해 아침 삼척에서 김진광 드림
지금 다시 읽어보니 새롭고 고마운 마음 뿐이다. 내가 제일 가까이 마음에 둔 친구가 김진광 시인이다. 돌아가신 도규 형 무덤에까지 부부가 함께 다녀오셨다니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 가. 나는 도규 형이 돌아가셔도 그 무덤이 어디 있는지 조차 모르고 지내왔으니 말이다. 다시 읽고 있으려니 더욱 부끄러웠다.
1996년은 1월부터 신나는 일들이 있었다. 한국동시문학상을 받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신나지 않았다. 내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았다. 큰 상을 받는 데도 즐거워하지 않다니 말이다. 시상식엔 가족들과 동생까지 함께 올라 갔다.
내가 무슨 글을 잘 썼다고 이런 큰 상을 받겠는가? 모두 박종현 선생의 배려라고 여겨졌다. 더욱이 김교현 선생은 아동문예작가상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1996년 1월 16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시상식이 있었다. 그곳에오신 문인 여러분과 사진을 찍었다. 앞 줄을 보니, 내 옆으로 신현득, 유경환, 박홍근 선생이 앉아 계셨다. 참으로 고마운 분들이었다. 이분들 중에 신현득 선생만 살아계시고 두 분은 이미 돌아가셨다. 뒤를 보니 김진광, 권영상 박성배, 이창건, 오순택 선생도 보였다. 박종현 선생도 뒷줄에 서서 사진을 찍으셨다.
남동생 진룡이와 딸 소라, 아내 그리고 동생의 두 딸도 보였다. 형의 시상식에 올라워줘서 고마운 마음 뿐이었다. 이창건, 오순택, 문삼석 선생과도 함께 찍은 사진도 있었다. 지금 다시 보니 모두들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시진 속에 있어야 할, 한 분이 보이지 않으셨다. 삼척군 황지읍 화전 국민 학교에서 시를 배우며 지냈던 최도규 형님! 그 형님이 보이지 않으셨다. 그래, 돌아가신 것이었다. 안타까움이 배로 커졌다.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뻐했을까! 당신께서는 못 받으셨어도 강원아동문학상도 챙겨주신 분이 아니었던가.
박종현 산생께서 직접 상패를 전하는 사진도 있었다.
한국 아동문학인협회 행사가 끝나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모든 회원이 모여 식사를 하였다.
그때, 문득 뒤에서 들리는 음성, “남 진 원!”
박종현 선생께서 반갑다고 부르던 목소리였다. 지금은 가슴 깊은 곳에서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였다.
참으로 인간적으로 따뜻하여 마음 편한 큰 형님 같은 분! 한국아동문학이 성장하는 데 절대적인 힘을 뒷받침하신 분! 든든한 아동문학 성장의 뿌리가 되셨던 분이다.
돌아보니, 철없던 시절이 다 그립고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모르고 살았으니 …….
( 2022년 2월 11일 0시에 적다. 다시 2026년 1월 26일 일부 고쳐 쓰다.)
1996년은 문학회 두 번 째 회장을 맡은 해이기도 하다. 강원도 정선에서 1986년과 1987년 정선아라리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그리고 강릉에 내려와서 강릉의 중진 문인들로 결성된 [대관령 시인들] 초대회장을 맡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동인지 『대관령 시인』을 발간하였다.
다음은 회장이 되어 머리글로 쓴 내용이다.
책 머리에
대관령을 중심으로 시인 몇 사람이 모여 동인회를 조직하였다. 이름하여 [대관령 시인들]이다. 여기 보인 시인들은 나름대로의 시적 특색과 詩歷이 옹골지다. 허나 우리는 같은 地氣를 마시며 대관령의 푸른 하늘을 응시한다.
문학을 통해, 시를 통해 얼굴을 맞대고 마음을 헐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은총이다.
대관령 묵묵한 산의 자태처럼 아침이면 대관령에 올라, 떠오르는 동해 바다의 해를 발밑으로 내려다 보고 저녁이면 채운에 물드는 노을을 등에 받으며 산삼 냄새같은 시를 뽑아 올릴 것이다.
1996년 음력 1월 1일.
대관령시인들 회장 남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