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스코틀랜드의 대학자 데이빗 흄 (David Hume. 1711~1776)은 경험론자이면서 회의론자이다.
그의 대표 저서 『인간성의 논문』(A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1740)과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에서 인상(impression)과
관념(idea)을 다룬다. 인간이 지성과 오성을 갖는데는 실제의 감각적 경험이 쌓여서 관념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성이 아니라 관습(custom)과 감정(passion)으로 철학의 기초는 아닐 수 있지만
인간은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는엄연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경험은 항상 인과율을 통하여 발생한 결과를 토대로 삼는다. 이런 신념이 모여 이념(ideology)으로 발전하고,
이념은 이제 도덕의 신념을 향한다. 이 신념은 이념이 모여서 형성된 것이다. 이념은 경험의 집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경험주의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존 로크(John Locke. 1632~1704)는
『인간 오성에 관한 에세이(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89』와
『정부론 두 가지』(Two Treatises of Government. 1689)에서 경험의 현상을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백지론(Tabula Rasa)이다. 인간은 본래 선천적 관념을 지니지 못하고
지성은 백지와 같은 상태이기에 오직 경험을 통해서만 이식, 신념, 관념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인간성, 오성, 지성, 이념, 관념, 신념에 관한 개념을 갖고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직관이지 분석하고 해석하여 적용하려는 성향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지만 이 자유를 찬탈당하며 산다.
문제는 이런 철학적 태도가 인간의 지성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더라도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은 다른 영역이다.
인지력이 경험을 통해 형성해 간다는 것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인간의 인지력을 자세히 살핀 연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은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에게서 신랄하게 비판받으면서 18세기 철학 이후에
고전으로만 남고 만다.
이런 것이 신앙과 무관할까? 그렇지 않다! 신앙을 일으키진 못해도 거짓신앙에 빠지지 않게한다.
이것은 인간성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신앙인도 예외가 아니기에 이런 과정을 통해 신앙을 수용한다고 봐야한다.
그렇다고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무시하거나 간과해선 안 된다.신앙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인간의 능력에 근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철학의 사고가 필요한 이유는 인간 측면에서 인지력과 신앙의 수용 과정을 해석하고
분석해 본다는 것이다. 철학적 사도가 행동을 유발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의 과정을 이끌지 못해도 제한의 설명을
제공한다.
근본적으로 신앙과 철학은 논쟁의 뜨거운 감자였지만 전자는 하나님의 측면으로 향하고, 철학은 인간의 측면에 머문다.
전자가 하나님 측면이라고 말하지만 인간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것도 아니기에 신앙은 철학의 신념보다 훨씬 범위가 넒고
깊다. 신앙과 신념은 헷갈린다. 철학적 신앙은 옳지만 신앙적 철학은 그릇된 것이다. 철학적 신념이 철학적 신앙을
이끌 수도 지속하지도 못한다. 신앙은 철저하게 성경과 신앙고백 위에 서 있고, 세 위격의 하나님의 신비롭고 경이로운
사역에 한결같이 근거해야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 이념으로 발전하는 것처럼 신앙이 이념으로 발전할 수도 있는데 이 경우 신앙이 아니라 신념을 신앙으로
여기며 살았다는 것이다. 일반인은 이 두 개념을 늘 헷갈리며 산다. 이것을 해결하는 길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