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마을 시인선 040
2020년 5월 30일 발행 도서출판 작가마을
부산광역시, 부산문화재단 지역문화예술특성화지원 '부산문화예술지원사업'으로 지원 받음.
벚나무 지옥
온 몸으로 웃는 당신
얼굴뿐 아니라 엉덩이로도
웃는 당신
누가 당신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랴
누가 당신 앞에서 스스로를 저주하랴
사람들이여
만약 당신이 단 1초라도 당신 스스로를
벚나무 앞에 세우고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0.001g의 어둠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아름다움은 참이나 착함도 품어 안나니
나는 오늘 이 순간
화려한 지옥에 갇힌다
사람들아, 너희는 다른 곳에서 성자를 찾지 마라
바로, 지금, 여기에
그들이 있나니.
결코 슬픈 손을 흔들지 말자
까마귀가
아/ 아/ 아/
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기표가 다르니
사랑하고 싶어도 서로가 벽이다
산은 벌써 가을을 마셔 얼굴이 벌겋다
바람에 몰려가는 가랑잎들의 눈들이 붉어 있구나
공수래공수거
하늘은 너무 멀리 달아나서 잡을 수가 없구나
그래도, 그래도 나는 당신을 포기할 수 없어
인생은 미완성 쓰다가 마는 편지?
그래도 우리는 외로운 가슴마다 별을 따 담고
아침 해를 마시고 가야해
우리, 언젠간 노을처럼 스러지지만
해는 언제나 다시 뜨는 것
우리는 꽃이 되고 별이 되어야 해
사람아, 사람아, 우린 모두 별이야
결국 떨어지는 꽃이지만
그래도 그날까지 뺨 부비며 살자
언제나 봄날인 것처럼
눈에 봄을 담은 소녀야
가을이 와서 우리가 낙엽이 되더라도
결코 눈물을 보여선 안 돼
결코 슬픈 손을 흔들지 말자
우리,
어느 변방의 길손이 되더라도
또 한 번 모란이 필 때까지
동백처럼 붉게 살자
믿음의 흰 나무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할 거야
아/ 아/ 아/
까마귀가 운다. 까마귀가 운다.
혼밥
혼밥을 먹고 식탁에 앉았으니
오래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오셨다
같이 요거트를 떠 먹는다
산다는 건 뭔가
이렇게 가끔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요거트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
산다는 건 내가 요거트를 먹으며
요거트를 먹고 있다는 걸 아는 것이다
산다는 건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우리는 모자를 거꾸로 쓰고 살아왔다
모자는 빗물과 햇빛을 막는 게 아니라
빗물을 담고 햇빛을 담는 것이다
산다는 건
모자를 뒤집어쓰는 거야
*벨기에 화가
새
새는 달을 물고 날아가기를 좋아합니다
달은 초콜렛보다 더 달고 고소합니다
새는 달을 물고 서쪽으로 가기를 좋아합니다
거기는 기화요초가 만발하고 언제나 무지개가 뜨는 동산입니다
새는 땅에 내려 앉아 있을 때도
마음은 언제나 달을 물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는 더 많은 달을 물고 있습니다
구름도 달을 물고 가기를 좋아하지만
구름은 가끔 달을 놓칩니다
* 단시 실험
2어절 시
사계2
봄
꼼지락 어질어질
여름
송글송글 찐득찐득
가을
가실가실 동글몽실
겨울
따끔따끔 쿨럭쿨럭
20190121
1행시
1. 삶
삶은 죽음 위에 핀 꽃이다
2. 죽음
죽음은 삶의 변이형이며 삶의 다른 이름이다
3. 사랑
사랑은 청맹과니가 심연에서 건져 올린 자아이다
4. 증오
증오는 사랑의 반어법이다.
5. 결혼
결혼은 직진하던 차가 우회전하거나 좌회전하는 것이다
2행시
1. 은자와 성자
벽을 등지는 자는 은자
벽을 안는 자는 성자다
2. 산
내려 올 낀데 말라꼬 산에 가노?
허허, 그라마 니는 결국 죽을 낀데 말라꼬 사노?
20190321나무
3. 그분
어디 있는데 그분?
아주 먼 데 있지… 아주 가까이 있는 지도 몰라.
20190320물
3행시
장미
나는 악의 꽃
밤이 두렵지 않다
당신이 오면, 확! 태워버릴 거야
능소화 2
능소화가 까치발로 담 밖을 내다보다가
담 안을 기웃거리던
머리 깎인 향나무를 보자 화들짝 얼굴을 붉히네
20190624달
4행시
삶
삶을 포기해야 살 수 있다
살겠다고 버둥거리면 죽는다
삶은 모순 덩어리
우리는 모름지기 매 시간 죽어야 한다
20191119불
죽음
죽음은 없다
죽음은 삶의 변이형이다
우리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뿐이다
'우리'가 죽을 때 있는 그대로가 보인다
5행시
가을 11
은행나무가 가지가 휘어지도록
새끼들을 조롱조롱 달고 힘겨워 하자
지나가던 실바람이 등을 두드려 주고
매미가 폴테시모로 축가를 불러 주었다
지나가던 나도 손바닥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20180901토
눈眼 2
나는 아홉 개의 눈을 가졌다
보는 눈, 소리를 보는 눈, 맛을 보는 눈, 냄새를 보는 눈,
사물의 형질을 보는 눈, 생각하는 눈,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조상이 전해 준 눈,
우주를 보는 눈.
새의 눈에 꽃이 피고
새의 눈에 꽃이 피고
나무가 새를 낳고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니
아궁이 속에 꽃이 피고
돌들이 너털웃음을 웃는다
사람이 신이다
낮에는 태양의 눈으로 살펴도 사람들은 죄를 잘도 감춘다
밤이면 수억 개의 별빛으로 감시하고 환한 달빛 비추어 살피건만
사람들은 더 많은 죄를 이불로 덮는다
새벽이면 신의 가슴에 맺힌 서리가 땅을 적신다
이제는 사람이 신이다.
단시 여행 5수
- 4행시
철학과 시
철학과 시는 분명히 다르다
그러나 시를 철학으로 보는 사람은 시인이고
철학을 시로 보는 사람은 철학자다
다른 것을 같은 것으로 보는 사람은 성자다
20181218
해탈
대여大餘 = 부처 = 삼 세근 = 똥막대기 = 대여大與
대여大餘 = 하나님 = 늙은 비애 = 푸줏간에 걸린 커다란 살점
= 놋쇠항아리 = 순결 = 연두빛 바람
= 대여貸與
20181218
광고
99% 거짓말
부가가치만큼
그러므로 이윤은 거짓의 앞면이다.
그것은>섹스
20181218
해탈2
부처=삼 세근
부처=똥막대기
이를 용인하는 자는 극락
이를 부인하는 자는 지옥이다
20181218
예수
예수는 거짓말쟁이다
현실에서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저 세상에다 천당이 있다고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거짓말쟁이다
20181219
죽는다는 건
죽는다는 건 데페이즈망이다
내가 이승에서 추방되어 낯선 저승에 서 있는 것이다
낯설겠지만 내가 내가 되는 것이다
무능한 국가주의와 유능한 국가주의가 위험한 회담을 한다
모든 뉴스가 가짜라는 대통령
가짜가 가짜를 가짜라 한다
플라톤이 말했다
세상에 진짜는 없다고
모든 게 가짜이므로 가짜가 진짜이다
가짜를 데페이즈망하면 진짜가 된다
죽는다는 건 내가
앤디 워 홀이 되는 것이다
* 20180829수
겁외사劫外寺*
발끝을 디밀자
와장창 깨지는 외로운 마당
삼 세 근을 두르고 고속으로 달리는 겁을 깔아뭉개고 겁
밖에 핀 잔인한 매화
흰 소나무들이 멀찌감치 지켜서 있다
목탁은 잠들어 있고
어둠 태우는 촛불 하나
언제부턴가 문을 나서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을 들고
똬리를 튼 배암
밑 빠진 체를 들고 벽에 붙은
새까만 두꺼비 잡아먹고 있다
꿰뚫을 것도 없는데 무얼 뚫겠다는 건지
봄바람 드나드는 예담 밖에
다시 피는 그 매화
* 경남 산청군에 있는 성철 스님의 절.
기호
세상은 기호들이 넘쳐흐르고
보이지 않는 거대한 거미는 끊임없이 그물을 짠다
우리는 그 그물에 갇힌 고기들
아니 그물 한 코를 조심조심 당기며 끌고 가는 물고기
새는 날아서 자유롭지만
날개를 달고 싶은 고기는
오늘도 하루를 갉아 먹는다
20190121
꽃 3
당신은 아름다움의 완벽한 블랙홀이다
진眞도 선善도 다 빨아들인
당신은 특수한 집합이다
당신은 특수한 부분이지만 전체다
당신은 지금까지 인간이 풀지 못한
가장 어려운 수학문제보다 더 어렵다
당신은 이름이 없다
우리가 이름을 부르면 당신은 당신을 떠난다
당신은 항상 우리 앞에 있지만
우리는 당신을 볼 수 없다
당신은 항상 우리의 맞은편에 있다
가끔 당신이 우리 옆에 있어도 당신은 항상 우주 너머에 있다
우리는 당신이 항상 곁에 있기를 기도하지만
당신은 곧 우리를 떠난다
20180330쇠
셈본
대부분의 사람은, 껍데기<알맹이
그러나, 껍데기>알맹이
아니지, 껍데기=알맹이
아니지, 아니지, >, <, =, ≠도
아니지,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는
사람들의 셈본이지
자연의 셈본은 아니지.
20181219
바다를 자르는 여자
- 독거도*
밧줄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파도와의 전쟁
바위의 거웃을 자르는 일이다
물이 나갔을 때 그 뿌리를
재빨리 잘라 갯바위에 내동댕이쳐야 한다
물이 내려가면 허리에 두른 밧줄을 풀고
물이 올라오면 줄을 당겨야 한다
산다는 건 파도와 호흡을 맞추는 것
미역 한 줄기가 목숨 한 줄기
물 밑에서 춤추는 유혹
깊은 곳일수록 더욱 탐스럽다
거친 숨소리, 파도로 일어서는 근육
시퍼런 낫날이 8월의 햇빛을 잘라낸다
산다는 건 죽음과 맞서는 것
노부부는 바다와 바위의 경계선
그 어두운 곳과 싸운다
진저리가 나는 바다
그러나 그 바다보다 넒은 목숨
독거도의 여름은 전쟁보다 뜨겁다
*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에 있는 섬.
201809011525토
달아, 안녕?
달아, 안녕?
암스트롱을 왜 미 투하지 않니?
예전엔 넌 우리 모두의 애인이었지
밤이면 너의 가슴에 안기고 싶었지
이백이는 너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너를 사랑했지. 미치게 사랑했지.
너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였고 우리의 신이었지
그러나 오늘 우리는 너보다 더 밝고 아름다운 달
을 발명하고 너를 배신했지
이제 너를 보며 소원을 비는 어리석은 놈은 없지
아직도 마음이 호수인 여인들이, 어둠에 빠진
여인들이 가끔 너를 찾지
마음에 늘 눈:이 내리는 어린 아이들만 너를 보고
안녕! 하고 인사하지
불쌍한 시인들이 가끔 너를 호명하며 신세타령을 하지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암스트롱에게 성폭행 당한 달아, 그래도
오늘 밤 나는 너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이제 인간들은 해도 보지 않는다
해를 만든 신을 부정한다
베드로가 그러했듯이 세 번이나
아니 열 번, 스무 번 부인한다.
달아, 달아 미안하다. 부끄럽다.
나의 손자는 지금 너를 보고 “안녕!”이라고 인사한다.
오, 나의 산다화여!
사람들의 가슴에 불을 질러라!
201901140030해
페루
붉은 호수가 춤춘다
플라밍고가 물속의 자아를 뒤진다
새들은 날아가도 그림자는 남는다
실재는 언제나 상식과 편견을 깨고
나를 경악케 한다
그림자가 새들을 끌고 간다
하늘보다 아름다운 땅
우리의 존재여!
20191010
악어 백*
1
악어는 누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고
여인들은 그 악어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아, 저
비린
내
2
악어는 누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고
여인들은 그 악어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아, 저
비린
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아니야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들
3
악어는 누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고
여인들은 그 악어를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
아, 저
비린
내
아니야, 아니야, 나는 아니야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검은 그림자들
여성 비하다. 집어 치워라!
그렇다면 <목걸이>를 쓴 모파상부터 고소하라.
이건 문학이다. 표현의 자유다.
사물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경계는 가를 수 있는가?
* 생명 존중 사상을 위해 불특정 일부 여성들의 성격을 이용하여
시적으로 표현한 것임.
안데스의 콘도르여
안데스의 깊은 골짜기를 박차고 오르는 콘도르여
하늘은 나의 것이라고 외치는 콘도르여!
진정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넓히려 하는가?
아니 초월하려 하는가!
콘도르여 답해다오.
오늘도 애달픈 가락은 티카티카 호수에도 흐른다
그들의 모자를 스친다
그들의 검은 얼굴과 눈동자에 비치는 콘도르의 그림자여!
리마의 광장을 너의 넓은 날개로 덮어라
엘 콘도르 파사!
201706
보안사保安司
나라의 비밀번호를 해체했다 불확정의 시대, 평화는 차연되고, 남북은 상호텍스트가 되었다
존재자는 존재의 비밀번호다 우리는 그 비밀번호를 알고 싶어 신전을 세우고 새벽마다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비밀의 성에 산다 내가 내 집에 들어갈 때도 현관에서부터 비밀번호의 검색을 받아야 하고 방문 앞에서도 비밀번호의 몸수색을 받아야 한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나도 내 집에 들어갈 수 없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리면 컴퓨터에게 수색 당하고 카톡과 페이스북과 트위트와 이메일에게 쫓겨난다
그런데 이걸 도둑맞으면 알거지가 될 수도 있다 그래 재산이 많을수록 비밀의 문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고 꼭꼭 잠그고 확인에 또 확인, 여행 가방은 번호를 돌리고 돌리고 돌리고도 열쇠를 채운다 목숨보다 무거운 금고의 비밀번호-자다가도 더듬는다 그러나 당신의 천정에는 그 소리를 엿듣는 간교한 쥐들이 있다
우리는 모두 스파이다 개인정보를 1급 비밀로 관리하는 보안 프로그램을 겹겹이 깔고, 날마다 벽을 높이고 성을 높이 쌓는다
세상에 믿을 놈은 하나도 없다 자식에게도 그걸 알려서 안 되고 비자금 통장은 마누라에게도 알려선 안 된다 권력가들은 더 커다란 비밀번호 꾸러미를 가지고 숲 속에 숨어 숫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오늘 우리는 스스로 비밀번호의 쇠사슬에 묶이기를 좋아한다 자유보다 비밀을 사랑한다 평화보다 비밀번호가 더 좋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늘어나는 건 비번
우리는 모두 각자 보안사령관이다
그 지하에는 늘 욕망이 활활 타오른다
20181024수
포스트 예술
변기를 미술관에 갖다 놓고 미술품이라 하네
비누 상자를 쌓아놓고 미술품이라고 하네
제작이 예술이 아니라 배경이 예술이 되네
외계어나 욕설, 삼류 뽕작 가사, 광고문, 남의 시를 기워
문학잡지에 올려놓고 시라고 하네
의미가 탈색된 기호들을 나열해 놓고 시라고 하네
무의미 철자들을 제멋대로 흩어놓고 시라고 하네
사각형의 철판에 자연석을 모아 놓고 미술품이라 하네
왜 그것이 미술품이 되는지를 사유하는 것이 미술이라 하네
사물과 사물의 관계가 빚어내는 그늘과 여백, 위치가
미술작품이 되는 시대
뒷골목에서 노는 불량배들
가난한 흑인 아이들이
심심해서 너무너무 심심해서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넉두리와 몸부림이
음악이고 춤이라네
예술 그거, 참 쉽죠이?
순수와 비순수
보살과 중생이 원래 한 몸이니
경계가 있으랴
어짜피 모두가 가짜이니 가짜의 가짜인들 무슨 시비가 되랴
예술이라면 예술이 되는거지
20150603수
횡설수설
꽃은 먼지에서 왔고
먼지는 꽃에서 왔도다
가고 오고 돌고 돌고
바람은 가고 오고 지구는 돌고 돈다
이것이 진리다
하늘의 절반은 땅이고 땅의 절반은 하늘이다
사람의 절반은 짐승이고 짐승의 절반은 사람이다
- 그러니 걱정 말어. 모든 건 절반이야. ½.
알았어? 알었어?
- ??????
요즘 철없는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말로 “노프로브럼!”
이제 알았어?
중국어로 해? 이써가만발이나빠질놈아!
반을 얻으면 반을 잃는 법이야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법
그늘이 짙을수록 햇빛이 더욱 밝지!
노래는 슬플수록 즐겁다
아니 노래는 슬퍼도 즐겁다
그러므로 너는 슬픈 노래를 불러라
네가 예수이고
네가 부처이니까
20190112
대한민국
너는 유치찬란한 슬픔이다. 자다가 일어나 생각해도 너는 사랑을 팔고 사는 홍도다 너는 구름에 가린 달이다 그러나 오빠는 없다 너는 통속소설이다 아니 화려한 저질의 잘 익은 복숭아가 옷을 홀랑홀랑 벗는 주간지다 너는 티 브이에 효도하며 스마트 폰을 스승으로 섬기며 유투브나 카톡을 신으로 모시는 사이비 신도다 그게 없으면 단 1초도 못 사는 무식한 홀릭이다 너는 외국어로 된 높은 집에서 살며 외제차를 타고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하는 요트처럼 날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유한 마담이다 그러나 마음은 언제나 사막이고 거지다 너는 사대주의자다 영어로 된 것은 무조건 좋아하고 섬긴다 너는 대한大寒 나라의 불쌍한 부자다 너는 맑스ㆍ레닌이 버린 낡은 옷을 신주단지로 모시고 정처 없이 헤매는 정신 나간 나그네다 너는 염색을 좋아하고 손발톱까지 화장하고 귀걸이 코걸이를 달고, 팔찌, 발찌를 달고, 눈을 파랗게 만들고, 모든 걸 감추고 바꾸고 싶지만 뼈와 피를 바꾸지 못해 안달하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가련한 뿔난 계집애다 너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지만 그게 모두 영어로 된 남의 노래다 거리에는 언제나 패륜 횡령 사기 살인 강간 매음이 먼지처럼 펄펄 날리고 뉴스는 날마다 수사 구속 수감 재판뿐이고높은 사람과 부자는 모두 도둑놈으로 몰리다 잡혀 간다 임기가 끝나면 대통령은 언제나 인생무상의 코미디를 보여주는 참 재미있는 나라다 걸핏하면 촛불을 들고 떼창을 부르는 데모 만능의 사회 - 공부보다 데모를 해야 출세하는 나라 너는 암만 생각해도 유치찬란한 부생식물이다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그러나 너는 곰녀의 아들 딸 그러나 그 신화는 너무 부끄럽다 오늘 너는 사이보그 - 사막을 떠도는 거지다. 뿌리 뽑힌 교목이다 바닷가에 버려진 폐선이다 단식하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너는 콜렉션이다 너는 비둘기를 쫓아내는 무당이다 너는 네모다. 너는 칼보다 무섭다.
2019
나의 시론
‘새로운 시’의 도래를 위하여
강준철
들머리
한국시는 현재 시의 종류별로는 주정시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고, 문예사조상으로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뒤섞여 있다. 그러나 모더니즘적 경향이 주류다. 그리고 사회적 리얼리즘과 낭만주의(이상주의) 혹은 참여문학과 순수문학이 대립되어 있으며, 문단은 좌파와 우파로 분열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은 근대 이후 계속되어 온 것으로 근 100년 가까이 변화가 없다. 주지시나 주의시는 없고, 서사시나 극시도 거의 없으며, 장시도 없다. 한마디로 다양성이 없다. 한 세기가 지났는데도, 세상이 그렇게 빨리 많이도 변했는데도 문학 특히 시가 변화가 없다는 것은 이상하다.
필자는 이 시점에서 우리 시에 어떤 면으로든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새로운 시(장르)를 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고에서 ‘새로운 시’라는 용어는 전위시(前衛詩, 아방가르드, abant-garde) 또는 실험시와 같은 뜻으로 쓰고자 한다.
한국의 전위시 어디까지 왔나?
먼저 전위의 개념부터 알아보자.
<전위>라는 말은 전투적(도전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당대의 예술을 앞지르고 있다. 소수에 의해 수행된다는 의미도 있다. 군사용어인 <첨병>에 해당된다.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혁명적, 파격적 예술이다. 전위시는 당대의 시적 규범이나 그때까지의 시적 전통을 무섭게 파괴하면서 당대보다 앞서가려는 의식으로 지탱된다.(이승훈, 『포스트모더니즘 시론』, 세계사, 1997, 137쪽)
실험시는 정상적인 문법ㆍ통사ㆍ의미론을 파괴한다. 이러한 노력은 어느 시대에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존재해 왔다. 즉 아방가르드 예술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다.
전위는 새로움의 추구다. 지금까지 시의 역사는 전위의 역사였다. 그것은 언제나 있어왔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전위시는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 하나는 내용적 전위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적 전위이다. 내용적 전위를 이승훈은 도덕주의적 측면이라고 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도덕적이라기 보다 사상, 서정 등의 변혁을 의미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사회적 리얼리즘에서 현실에 대한 인식을 더 깊게 파악한다든지 다르게 해석하는 것 등이다. 그리고 형식적 전위는 미적 전위로 시의 형식이나 표현을 변혁하는 것이다.
<전위>라는 말은 군대의 첨병과 같은 말이다. 첨병의 임무는 적정의 탐색이다. 현시대 한국의 시에서 적은 누구인가? 그것은 한국의 현대시가 된다. 따라서 한국 현대시의 양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승리가 보장된다.
여기서는 서론에서 살펴 본 것 중에서 서정시(주정시)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하여 살펴 볼 것이다. 장르상 서정시, 문예사조상 모더니즘의 시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포스트모더니즘적 시가 약간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의 서정시는 대부분 낭만주의 시이다. 우리 신문학사를 대충 살펴보면, 1920년대 『백조』 동인들을 중심으로 낭만주의 시가 성행한 이래 1930년대 시문학파, 1940년대의 청록파와 생명파의 시들이 있었고, 이후 한국 시단에는 그들의 영향 하에 서정시의 계보를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중간에 상징시나 주지시 모더니즘의 시도 그 뒤를 이었지만 해방 이후까지 주류는 청록파와 생명파로 볼 수 있다.
낭만시는 <그리움>의 시다. 본원에의 환원, 귀향 의식, 자아와 세계가 하나가 되려는 생각,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 현실을 초월하려는 의식,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생각 등이 낭만주의적 사고다. 낭만주의는 초월주의(신비주의, 범신론), 전원주의, 원시주의와 관련된다.(이상섭, 문학비평용어사전, 민음사, 1980. 40 - 44쪽. 참조)
여기서 우리는 왜 우리의 시의 주류가 서정시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정서가 시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시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정서적 구조다. 이것은 시인의 의식이 지성적이라기보다 근본적으로 정서 의식이기 때문이다.(김준오, 『시론』, 문장, 1982, 66-67쪽).
시의 본령이 사상이 아니라 정서라면 정서를 극대화하는 시 - 극서정시를 전위적으로 써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들의 시론은 엘리엇의 그것과 비슷하다. 이와 같은 시론은 현재도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그 핵심은 폐쇄적 형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폐쇄적 시작 태도는 다양한 시의 생산을 가로 막는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으로 모더니즘 시에 대하여 살펴보자.
문예사조상으로 보면 낭만주의의 반동으로 일어난 것이 사실주의, 자연주의고 이의 반동으로 나타난 것이 모더니즘이다. 모더니즘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현대문학의 여러 경향 중 특별히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것만이 모더니즘과 관계있다. … 19세기 사실주의 자연주의에 대한 반동이다. 모더니즘은 유물론은 물론 일체의 물질주의와 산업주의를 개인정신의 부자유로 보고 반발한다. 표현주의, 이미지즘, 엘리어트류의 고전주의, 다다이즘, 부조리 문학, 초현실주의등이 이에 속한다.(이상섭, 앞의 책, 63-64쪽)
낭만주의의 가장 대척적인 자리에 서 있는 것이 이미지즘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낭만주의가 중요시했던 감성과 음악성을 지성과 회화성(심상)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지즘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고 다음에 포괄적으로 모더니즘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미지스트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흄으로부터 19세기 낭만주의를 배격하고 고전주의적 예술관을 부활시켜야 할 필요를 배웠고, 또한 윤곽이 뚜렷한 시를 짓는 연습도 했다. 그들은 낭만주의의 막연한 정신편향, 센티멘털리즘에 반대하고 정밀함과 억제력을 요구하는 고전적 태도를 가지려고 하였다. 또한 이미지에 대한 확고한 개념을 배웠다. … 현시점에서 볼 때, 이미지즘은 19세기 영미시의 전통을 청산하고 이른바 현대시의 시대로 넘어오는 결정적 단계로 보인다. 즉 하나의 전위적 운동이었다.
이미지스트들은 현실생활의 모든 것을 소재로 하여, 현실감이 있는 산 언어로 시를 쓰고자 했다. 그들은 낭만주의자들이 시정신과 영감에 의존하는 것에 대항하여, 작품을 갈고 닦는 숙련공의 태도를 가질 것을 요청하였다. 이미지즘 운동은 심상에 대한 관심이 보편화되는 계기를 마련했고, 19세기를 청산하는 결정적인 요인의 하나가 되었다. 이미지즘의 근본 주장은 다음과 같다.
1) 일상의 언어를 사용할 것. 그러나 반드시 정확한 말을 쓸 것. 2) 모든 습관화된 표현을 피할 것. 3) 새로운 기분을 표현하는 새로운 리듬을 창조할 것. 4) 주제의 선택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로울 것. 5) 하나의 심상을 제시할 것. 구체적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어야 하며, 막연한 일반론, 추상론은 배격할 것. 6) 견고하고 투명한 시를 창조할 것. 윤곽이 흐리든가 불명확한 시를 피할 것. 7) 집약, 집중을 위해 노력할 것. 그것이 시의 정수임을 알 것. 8) 완전한 진술이나 설명보다는 간략히 암시할 것. (이상섭, 앞의 책, 230-232쪽)
이미지즘 시들의 문제점은 시의 음악성과 의미성을 제외하고 지나치게 이미지만을 강조하였으므로 완전한 미적형식이라 할 수 없다는 점과 제작자의 태도를 취함으로써 억지로 쓰게 되어 감동이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이미지즘 시들이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은 시론을 철저히 이해하고 실천하였는지 의문이다. 감정의 절제와 이미지를 강조하는 시를 쓰기는 했으나 비유적 이미지나 상징적, 원형적 이미지보다 단순한 묘사적 이미지들 위주로 시를 생산하지 않았나 한다. 이와 같은 경향은 아직도 일부 우리 시에 남아 있어 문제가 된다.
모더니즘의 특성은도시주의, 비인간화, 원시주의, 에로티시즘, 반도덕적, 실험주의로 요약할 수 있다. 또한 모더니즘의 시적 특성은 초월적 현실 혹은 이상적 유토피아가 존재했다.”는 특성을 제외하면 엘리엇의 시론과 똑같은데 “차가운 형식성, 몰개성, 폐쇄적 형식, 어려운 시일수록 좋은 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엘리엇(T.S. Eliot)의 시관은 신비평에 막강한 영향을 주었고, 이후 형식주의, 구조주의 등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가장 확고하고 완벽한 이론으로 보이던 모더니즘도 고정불변의 시론이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한 것이다. 아래에서 모더니즘 시와 포스트모더니즘 시(특히 고백파, 투사파의 시)를 비교해 보자.
전자는 엄격한 형식을 고수하려는 문학 이론이고 후자는 그것을 해체하여 형식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이론이다. 전자는 언술의 자발성을 극도로 억제한다. 신비평의 시적 원리는 인위적 형식성과 압축된 형식성을 강조하는데 이에 비해 후자는 이것을 창조 과정의 자발성을 규제하는 행위로 본다. 시를 쓰는 것은 삶을 좀 더 자유롭게 실현하기 위한 것이므로 형식에 의해 억압된 삶의 본능적 흐름을 그대로 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음으로 모더니즘은 몰개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시인과 시적 화자는 단절되어야 한다고 한다. 시는 언어로 조직된 특수한 세계이므로 시적 화자는 시인의 개성(시인의 감정, 목소리)이 소멸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T. S. 엘리엇).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시인의 목소리를 강조한다. 목소리는 자전적 요소를 내포하며, 도덕적으로 은폐되어야 할 개인적인 무의식의 세계마저 드러낸다. 또한 전자는 삶의 곤경, 무질서를 표현하면서도 초월의 세계, 신화의 세계를 지향했는데 비해 후자는 일상적 정서와 경험을 소재로 삼으며, 고백파의 경우 그것은 밝고 건강한 것이라기보다 억압되고 비참한 것이다. 전자가 이성, 질서, 의식이 인간성이라고 보는데 비해 후자는 본능, 충동, 무의식이 인간의 본성(자연성)이라고 보는 것이다. 전자가 휴머니즘적 태도라면 후자는 반휴머니즘적 태도라 할 수 있다.또한 전자는 폐쇄적 형식 - 형식의 완결성 즉 내적 유기성, 통일성(구조성), 수미일관성을 강조한다. 한마디로 구성을 중시하는데 비해 후자는 개방성 즉 탈구성(해체)을 강조한다. 인위적 세련성보다 자발적 직접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모더니즘의 단점을 지적하면, 첫째, 비인간화는 시를 너무 딱딱하게 만들고, 문학이 인간의 삶을 표현하는 것인데 인간의 삶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 수 있고, 에로티시즘, 반도덕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일면만을 본 것으로 인간 전체를 본 것이 아니다. 둘째, 폐쇄적 형식성은 시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한다. 아류 양산의 가능성도 있다. 셋째,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쳐 있다. 넷째, 난해성은 소통부재로 독자감소를 가져와 문학의 존립성마져 흔들 수 있다.
다음, 포스트모더니즘의 단점으로는 첫째, 본능, 충동, 무의식을 인간의 본성으로 본 것은 인간성을 어느 한 면만 본 것으로 인간성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둘째, 인간의 동물적인 성격을 강조하면 시가 저속화될 수 있다. 셋째, 시를 쓰는 이유가 자유롭게 살기 위한 것이라고 해서 억압된 본능을 그대로 투사한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생긴다. 넷째, 장르, 표현매체, 기존 문법, 시적 주체, 이념 등을 해체한다면 시는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는 오해를 줄 수 있다.
이러한 대조적인 문학 이론에서에 볼 때 현재 한국시의 양상은 대부분 전자의 이론에 근거한 시들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문학(예술)은 다양성이 중요한데 이렇게 단일한 이론에만 매여서는 발전이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래서 좀 더 자유로운 새로운 시가 나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실험시 또는 전위시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 시점에서는 모더니즘 시(모더니즘도 그 이전 시대의 시들보다는 전위적이었지만)보다 포스트모더니즘 시가 더 많은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시인들이 이런 류의 시를 많이 쓰기를 바라고 나아가서는 이의 단점이나 모순점을 찾아서 더 발전된 새로운 시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위와 같은 견해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이런 점이 새로운 시를 창작하는 출발점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해체이론)을 대체할 만한 새로운 철학사상도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현재 상황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한국 전위시가 어디까지 왔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형식적 전위시를 보면, 이승훈은 “우리시에서 <실험>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분은 김종길이 아닌가 한다.”(이승훈, 앞의 책, 34쪽) 고 하여 ‘실험’과 ‘전위’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전위시는 한국시에서는 1930년대 이상의 시에서 나타났다.
해방기(1945-1948년)에는 『전위시인집』파의 “올바른 세계 인식과 역사 판단”에 근거한 현실로의 환귀를 목표로 하는 정치적 전위와, 정치적 전위와 미적 전위를 통합하려 했던 『신시론』 동인들의 모더니즘적 전위가 있었다.
그 뒤 1950년대의 <후반기>동인 가운데 한 분인 조향에게서, 매우 도식적이긴 했지만 소위 <데뻬이즈망의 미학>이라는 초현실주의적 양상으로 나타나고, 그 후 김수영의 대담한 산문성, 김춘수의 <무의미시>로 변용되면서 토착화된다. (이승훈, 앞의 책, 139쪽).그 외 이승훈의 비대상시, 오규원의 날이미지시, 이성복의 고백시 등으로 비교적 온건하게 이어지다가(이형권, 「시의 새로움에 대하여」, 『애지』, 2013년 여름호, 26쪽) 1960년대로 오면 앞 시대와 다른 실험적 요소가 나타난다. 김종길은 1960년대 전반기의 한국시의 상황을 <하나의 실험기>라고 정의하며, 시의 좁은 폭을 넓히는 노력으로 정의했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1) 어법의 혁명, 2) 넌센스의 추구, 3) 말의 질적 심화, 4) 구문의 해체로 요약했으며, 김열규는 60년대 한국시의 특성을 <비문법적이고, 비통사적이며 아울러 비의미론적>인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하여 한국시는 <개방적 세미오시스semiosis>를 지향하게 된다.(이승훈 앞의 책, 135-136쪽)고 하여 60년대 전반기의 한국 전위시에 대해 요약한 바 있다. <현대시> 동인인 박의상이 이런 비교적 실험성이 강한 시를 썼다. 1970년대로 오면 이러한 실험성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쉬운 시나 민중시에 대한 옹호가 거세어진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 새로운 실험적 요소를 보여준다. 앞 시대의 실험시들이 심미적 경향을 띠고 있었다면 이 시기의 실험시들은 한결 도덕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시들은 현실을 중요시했다.(이승훈, 앞의 책, 140쪽) 이형권은 이 때 황지우나 박남철이 해체시를 썼다고 기술했다.(이형권, 앞의 책, 29쪽)
여기서 구체적으로 어떤 전위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자.
형식적 전위에서는 이상의 경우 - 특이한 신조어 사용, 숫자나 부호나 도형 사용, 띄어쓰기 무시, 황지우의 요설체를 통한 해체시, 신문기사나 벽보 같은 일상적인 언어를 시의 문맥에 끌어들이기, 형태시 등과 박남철의 활자 뒤집기, 점층적(점강적) 활자 배열, 이모티콘 활용, 컴퓨터 언어의 카피. 황병승이나 김경주의 활자 누이기, 활자에 중간선 넣기 등이 있고, 이 외에 포스트모더니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장르혼성(패스튀시)도 많이 보인다. 장르 혼성은 소설, 시나리오와 같은 다른 문학 장르, 다큐, 만화, 영화, 드라마, 사진 등 다른 예술 혹은 비예술 장르와의 뒤섞임을 통해 이루어진다.(이형권, 앞의 책, 31쪽). 구체적 사례를 보면 1950년대 조향이 시나리오 용어들을 시에 수용한 것에서부터 비롯되어 1980년대 이후 빈도 높게 나타난다. 황지우의 만화시나 벽보시, 이승하의 사진시, 유하의 영화시, 장정일의 시나리오시, 김경주의 희곡시 등이 있고, 2000년대 중반의 미래파 시인들이 보여 주었던 환상 장르의 차용도 있다.(이형권, 앞의 책, 31-32쪽). 장르 혼성의 또 다른 방식은 다른 예술 장르의 내용을 시에 수용하는 것이다. 그 대상은 소설, 회화, 음악, 만화, 영화 등 다른 장르의 작품이 두루 해당되는데 최근 들어서는 특히 영화 작품들이 시의 문맥으로 편입되는 사례가 빈도 높게 나타난다. 방법은 일종의 패러디에 의한 방법이다.
내용적 전위를 보면, 이상의 초현실주의적 표현, 김춘수의 무의미시, 김수영의 일상시, 이승훈의 비대상시, 오규원의 날이미지시, 이성복의 고백시 등은 내용이 시대를 앞서는 새로운 시로서 전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 앞에서 언급한 해방기의 전위시에서 『전위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서 특히 ‘전진하는 인민 속에 자신들을 위치시키는 것이 진정한 아방가르드의 조건’이라고 부르짓는, 인민들과 함께하는 시의 현실을 중시하는, 이념을 최우선으로 하는 시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내용적 전위는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이면 또는 당대와 다른 특별한 생각을 주제로 삼는다면 모두 전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형식적 전위에는 문법의 파괴, 표현 매체의 개방, 장르의 경계를 무너뜨림, 표현방법의 혁신, 시 형태의 시각화, 시어의 확대, 표현문자의 변형 등이 있고, 내용적 전위에는 이념강화, 무의식의 도입, 무의미 추구, 일상시, 비대상시, 날이미지시, 고백시 등으로 요약된다.
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시사에서 형식적 전위(미적 전위)는 이제 거의 한계에 왔다. 그러므로 앞으로는 내용적 전위(사상적, 철학적 전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은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의 변혁에 의해서 가능하다.이러한 변혁은 뒤집기 정신으로 가능하다.그것은 사상의 발전이 뒤집기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전위시의 방향과 전망
이제 한국시에서 전위시가 더 이상 발전할 여지가 없을 듯하다. 그러나 전위시는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므로 새로운 시에 대한 열망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새로운 장르 창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시대환경의 변화에 따른 독자의 욕구와 취향이 변했으며, 전달 매체가 바뀌었고, 문학의 소비 형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필자가 생각하는 전위시 몇 가지를 제안해 본다.
형식면 : 단시(음운시, 단어시, 1행시, 2행시, 3행시), 애너그램(anagram, 語句轉綴, 철자바꾸기), 사설시조 풍(판소리 풍), 그림시, 의미 조합시, 옴니버스식 시. 디카시. 영상시, 비ㆍ속어, 은어, 약어, 인터넷 언어, 사투리 등 지금까지 금기시 되었던 언어(필요하다면 외래어나 외국어까지)를 혼성하여 사용하는 시. 디지털 문명의 메카니즘을 이용하는 시(비선형시, 쌍방향성시, 실시간성시)
내용면 : 철학시, 연기緣起의 시. 수학적 시.
제작 방식면 : 공동창작시. 담화시(대화시)
여기서 약간의 설명을 덧붙이며, 형식면의
음운시는 한국어의 음운을 이용하여 한시나 영시처럼 운을 맞추어 쓰는 시이다.
단어시는 주제에 연관되는 또는 무관한 단어들을 어떤 질서에 따라 조합하여 제시하거나 그 조합을 독자에게 맞겨 독자가 마음대로 조합하여 의미를 창조하게 하는 방식의 시다.
1행시와 2행시, 3행시는 이미 실험한 바 있는지 모르지만 주제를 최대한 압축하여 압축미(긴축미)를 창조하는 것이다. 3행시에는 단시조도 포함된다. 현대는 속도의 시대이므로 긴 것은 독자들이 싫어한다.
애너그램은 정끝별 시인의 실험시인데 더 확장될 필요가 있다.
사설시조풍 혹은 판소리풍 시는 일종의 이야기가 있는 요설체이지만 리듬을 살리고 풍자적, 반어적, 역설적 이야기를 통해 해학미를 살리는 시가 될 것이다. 이 또한 이미 실험된 바 있는 것 같은데 더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림시는 시에 그림을 도입하는 시로 언어와 그림을 혼성하여 어떤 사물이나 상황을 암시하는 시로써 시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그 그림은 소묘 또는 만화식이면 될 것이다.
의미 조합시는 의미상 연결이 안 되는 단어들을 상상력을 통해서 연결하여 전체가 하나의 구조를 구축하는 시다.
옴니버스식 시는 하나의 주제에 여러 가지 다른 시들을 연결하거나 하나의 소재를 여러 가지 다른 주제로 표현하는 시 형식이다.
디카시는 잘 아는 시인데 더 보편화할 필요가 있다. 독자 수의 감소, 또는 소통 강화를 위해 사진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는 누리그물망이나 사회적 소통망을 통해서 한꺼번에 많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다. 디카시는 5행 이내로 짧아야 하며, 촌철살인의 충격을 주는 시다.
영상시는 음성, 문자, 음악, 영상을 시청각적으로 융합하여 동영상 시로 제작하는 것이다.
비속어, 은어 등의 시는 비어, 속어, 은어 등 모든 언어를 시어로 채택하는 시다.
비선형시(하이퍼텍스트식시)는 시의 구성을 논리적 순차를 따르지 않고 비논리적, 비순차적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쌍방향성시는 누리그물(사회적 연결망)에 작품을 올릴 때 독자의 댓글을 작품에 반영하거나 작자와 독자가 메일이나 카톡 등을 통하여 공동으로 창작하는 방식이다.
실시간성시는 방송기자가 삶의 현장을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이다.
다음 내용면의 철학시는 지금까지 있어온 사상과는 다른 사상을 시의 주제로 삼는 것이다. 최신의 철학 사상은 해체주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어떤 이는 60년대 이후의 우리 문학의 경향을 포스트리얼리즘 시대 혹은 포스트모던리얼리즘 시대라고 하고 있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않았다. 이제 서양의 철학이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동양의 지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게 세계적 현상이므로 불교나 노장사상 등 동양사상을 연구하여 이를 시에 반영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외래사상보다 동학사상 등 우리의 고유사상을 찾아서 이를 발전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연기의 시는 불교의 핵심사상인 연기 혹은 공사상을 시에 적용하는 것이다.
수학적 시는 수학의 사상을 시에 형상화하는 것이다. 수학은 가장 정치한 철학 사상이기 때문이다. 수학적 기호도 도입한다.
그 외 디지털문명의 폐해를 비판하거나 패미니즘, 생태문학 등도 좋은 테마가 될 수 있다. 이미 이런 종류의 작품들이 많이 나오긴 했으나 관점을 달리하면 전위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공동창작시는 표현형식의 전위라기보다 제작방식의 전위에 해당한다. 두 사람 이상의 작자가 공동으로 시를 창작하는 방식이다.
담화시는 자자와 독자의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시를 정리한 시다. 시를 문자언어로 보지 않고 음성언어로 보는 독특한 시관의 발로이다. 이는 구두시이며 즉흥시이고 일종의 행위문학이다. 소통을 중요시 하는 시이다.
전위시의 방법론
새로운 시(전위시, 실험시)를 창작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자유정신이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정신이다. 그리스인 조르바다. 연기적 삶이다. 공空의 정신이다.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는 정신이다. 고정불변된 것은 없다는 생각이다. 시는 정답이 없다는 생각이다. 선악, 미추, 성속, 이성 : 감성, 좋다 : 나쁘다, 진보 : 보수, 그 어느 쪽에도 머물러서 안 된다는 생각이다.
둘째는 창조정신이다.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누구에게도 영향 받지 않겠다는 정신이다. 이 세상에 없던 시를 쓰겠다는 정신이다. 남과 똑 같은 시를 쓰지 않겠다는 정신이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는 정신이다. 혁명정신이다.
셋째는 도전 정신이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두려움이 없는 정신이다.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정신이다. 새로운 시를 넘어서 새로운 장르까지도 창조하겠다는 용기 있는 정신이다.
또한 사물을 보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것은 대략 다음과 같다고 할 수 있다.
1. 중도의 눈으로 본다. 즉 선악, 미추 등의 이분법적 눈으로 보지 말고 사물을 그자체로 보아야 한다. 2. 맨눈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관념, 이념, 지식, 감정을 떠나서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본다. 3. 뒤집어 생각한다. 모순되는 것을 아우르는 일, 겉으로 일어난 것과 반대로 생각하는 일 등은 예술가의 특권이자 의무이다. 4. 모든 것은 고정불변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본다. 곧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5. 모든 걸 관계의 짜임으로 본다. 의미는 기호들의 관계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상대적이다.
마무리
시의 전위에는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형식적 전위와 내용적 전위가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전위는 배타적으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고, 서로 잘 어울려야 진정한 전위가 된다. 그 동안 우리 시의 새로움의 역사는 어느 한쪽으로 편중되어 왔다. 사회적 리얼리즘 계열의 시는 내용의 전위에, 모더니즘 계열의 시는 형식의 전위를 지나치게 강조했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어느 한 쪽만의 새로움이 아닌 형식에 맞는 내용, 내용에 맞는 형식의 전위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색다른 표현, 신기함만 추구하는 것은 진정한 전위가 아니다. 시의 표현은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특히 바라는 것은 내용이나 형식의 부분적인 전위를 넘어서 장르 창조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행하고, 질문을 하는 힘이 있어야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