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오늘이 4월 1일. 아침 산책길에 나서보니 호수 가에 벚꽃이 만개 했어요. 물속에 잠긴 산의 영상이 천고의 비밀을 간직한 듯 수려하게 보이고, 맑고 부드러운 바람살의 속삭임이 어딘가로 나들이라도 해보라고 부추기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이요.
있잖아. 기회가 되면 한번 가보자고 했던 곳. 북유럽의 최북단 노드캅(north cape)말이야. 북극해 물결이 넘실대는 노르웨이 북쪽 마게뢰위 섬 해안가. 그곳에 가면 지구 최북단에 와봤다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 같아요.
위도가 71도 10분 21초되는 곳이어서 5월부터 7월 사이에는 언제라도 백야(midnight sun)를 경험 할 수 있다고 해요. 백야란 일몰 후에도 해가 수평선 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한밤중에도 태양을 볼 수 있다는 거야. 유럽 사람들은 이런 풍광을 체험하고 싶어서 그곳으로 여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우리도 살아있는 동안 한 번은 이런 경험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어!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야.
세계지도를 펴고 북유럽을 한번 살펴봐요. 스웨덴 북쪽 국경을 넘어 노르웨이 해안가에 있는 작은 도시 나르비크를 찾아봐. 나르비크는 북유럽에서도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들 중의 하나인데 열차가 갈 수 있는 마지막기착지라오. 노드캅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야 하는데,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열차를 타야 한데. 일찍이 스웨덴 사람들이 스웨덴북쪽지방에서 광산을 개발하고 여기서 생산한 철광석을 운반할 항구가 필요했어. 스웨덴이 접한 발트 해 연안의 항구들은 겨울철이면 꽁꽁 얼어서 이용이 불편한데 반하여 나르비크 항은 북해의 난류 영향으로 부동항이래. 그래서 스웨덴 사람들이 험난한 산악지대를 개발하여 그곳까지 철도를 연결시켰다는군요. 지금은 수출과 어업의 전진기지이면서 알파인스키나 피오르드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각광을 받고 있데.
스톡홀름에서 나르비크까지 거리는 1540km, 열차로 20시간 정도 소요된데. 노드캅을 방문하려면 그곳에서 다시 버스와 보트를 이용하여 노드캅의 거점도시인 호닝스보그까지 가는 거야. 한 이틀정도가 걸린다네. 호닝스보그는 마게뢰위섬 남쪽지역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3천5백 명 정도 주민이 살고 있데. 여기서 노드캅까지는 불과 34km. 노드캅으로 가는 버스가 매일 네 차례 운행 된데요. 낮에 두 번 야간에 두 번.
그런데 낮 시간에 가면 백주 대낮이 되므로 별 의미가 없고, 야간버스를 타고 가야 백야를 체험할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저녁 9시 이후 출발하는 버스를 타라는 거야. 노드캅에 가서 한 2시간 정도 머물다가 돌아온데. 노드캅에는 입장료도 있고 물가도 비싸기 때문에 필요한 용품들을 미리 준비하라는 군요.
어때요! 문제는 체력인데 여행을 감당 할 수 있을 것 같아? 사실 나도 우려되지만 젊은 시절 배낭여행을 했던 경험을 살리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 그 때 우리는 40여 일 간 열차에 의지하여 남 북 유럽을 누비고 다녔었지 않아. 열차나 기차역에서 자기도 했고 유스호스텔에서 젊은이들과 어울리며 여행정보를 묻기도 했었지. 이번에는 그 때 미뤄뒀던 여행의 연장이라 생각하여 철저히 준비하면 될 것도 같아요.
노드캅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트롬쇠라는 곳도 들려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트롬쇠는 북극권 최대의 도시이며 북극탐험대의 출발지로 유명하데요. 그곳에서는 극지방 밤하늘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현상인 오로라를 잘 볼 수 있데요. 오로라는 밤하늘에 펼쳐지는 환상적인 빛의 향연이라오. 여러 색깔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무늬의 조합이 거대한 활동사진처럼 전개된다오. 상상만 해도 가슴을 떨리게 하는 광경이 아니겠어. 그렇지만 오로라는 겨울철에만 볼 수 있다니 이번 여행에 기대할 수는 없다고 봐요. 그곳에 발자취를 남겨 놓았다는 보람으로 족해야 할 것 같아.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스웨덴의 달라나 지방도 들려보려고 해요. 지난번 여행 때 학문과 문화의 도시 웁살라까지만 보고 발을 돌렸었거든. 그곳에서 좀 더 북쪽에 위치한 곳이야. 달라나 지방은 스웨덴 사람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긴데요. 이 지방 최대호수인 실리안호 주위에는 스웨덴 전통 민속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마을들이 있고, 농업 국가였던 시절을 상상해 볼 수 있는 야외박물관도 볼만하데요. 특히 호수 북쪽에 자리 잡은 「모라」라는 도시는 민속음악과 포크댄스를 선보이는 하지축제가 유명하다고 해요. 북유럽의 전통문화를 접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해요.
또 스웨덴의 남단 스코네 지방은 북유럽의 유일한 곡창지대래요 하늘에서 보면 산림과 호수 그리고 누런색의 보리밭과 초록빛의 감자밭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다고 해요. 풍요로운 지방이어서 중세기에 지방영주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래. 지금도 크고 작은 고성들이 200개 정도 남아있데요. 「닐스의 이상한 나라 여행」이라는 동화 속의 주인공이 거위 등을 타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 이상한 나라가 바로 스코네 고성이라 해요. 우리도 그곳에서 닐스의 흉내를 내보며 여행을 마치면 될 것 같네요.
그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말뫼」라는 도시에서 기차를 타면 바로 코펜하겐에 도착해요. 여기서는 바다를 사이에 둔 두 도시를 카페리를 이용하여 철도를 연결하는 모습도 체험 할 테니 이색적인 경험이 될 것이요. 코펜하겐에서 인천행 비행기를 타면 우리의 여행도 무사하게 끝나지 않을까 생각해요. 어때요 나의 여행계획이.
당신을 배려하는 남편으로부터.
내가 노드캅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덴마크에서 만난 한 독일인 때문이다. 그 때 나는 덴마크 주재 독일 대사관에 일이 있어서 갔다가 코펜하겐중앙역 부근에 있는 티볼리 공원을 둘러보는 중이었다. 그는 퇴직생활자였는데 열심히 저축하여 3년마다 한 번씩 해외 여행하는 것이 노년의 보람이라고 했다. 노드캅으로 여행경험을 들려주고 나에게도 한 번 가보라고 자세히 설명해줬다.
1991년 여름 아내와 함께 북유럽 여행에 나섰다. 유레일패스에 의지하여 코펜하겐에서 출발하여 스톡홀름을 거쳐 핀란드의 헬싱키까지, 다시 스톡홀름으로 돌아온 다음 노르웨이 오슬로를 거쳐 서쪽 북극해에 접한 베르겐까지. 그리고 다시 오슬로로 돌아온 다음 예타보리를 거쳐 데마크의 본토로 이어지는 대 장정이었다. 그 때 빼뜨린 곳이 나르비크를 거쳐 노드캅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다음기회로 미룬다는 것이 영영 기회가 오지 않고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제 하나의 환상으로 끝나지 않을까 여겨진다.
편지를 읽고 아내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하다. 속도 모르고 좋아할지, 아니면 꿈 깨라고 핀잔을 줄지. 신라시대 백결선생은 가난하여 명절이 되어도 떡방아를 찍을 형편이 못되었다. 아내의 넋두리를 잠재우기 위하여 거문고에 시름을 싣고 방아타령을 연주하며 부인의 마음을 달랬다 한다. 이 편지가 아내의 마음에 위안을 주는 메신저가 될지? 화난을 일으키는 불쏘시개가 될지? 아무려나 괜찮다. 오늘은 만우절이기 때문이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백결선생의 떡방아소리보다도 선생님의 편지는 너무나도 실감이 났습니다. 그리고 사모님과 반드시 그곳에 다녀올 수 있는 기회가 오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만우절을 떠나서 마무리 짓지 못한 여행코스로 부부간 여행을 떠나 보시기 바랍니다. 사모님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덕분에 제가 가보지 못한 북유럽에 대한 여행정보를 많이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여행 코스인 것 같습니다. 그게 현실이 될른지 아닐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깉습니다. 동반자의 가슴에 그런 꿈을 꾸고 상상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이 편지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운 꿈은, 꿈만으로도 그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한번쯤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여행코스 같습니다. 그러나 이쩌면 만우절 아침에나 상상해볼 나에겐 그림의 떡 같은 이야기로 들립니다.
만우절에 써본 편지가 실현되길 기원드리며 좋은 내용과 멋진 글 잘 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젊은 시절 긴 배낭여행을 함께 하셨다니 두분은 여행마니아이며 취향이 잘 맞으신 것 같습니다. 아쉽게 남겨둔 북유럽의 최북단 노드캅으로 꼭 멋진 여행하실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이미 세세한 여행 계획을 세우셨으니까요! 잘 읽었습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여행도 자주다니던 사람이 즐긴다고 합니다.현직에 있을땐 비행기를 한번도 못타 봤습니다. 대사관에 근무했던 시동생, 조카가 귀국해 그 말을 듣고 나를 쳐다보더랍니다. 돈만벌던 형수를 보고 대구서 서울까지 왕복 비행기표를 부쳐줄테니 우리집에 놀러오소 할 정도로 외국여행은 꿈도 못꾸었습니다. 명퇴 후 처음 비행기타고 미국카나다로 다녀왔지요. 그 후페키지 여행으로 가이드를 앞세워 바쁘게 몇군데 모임에서 가보았습니다. 부부가 함께 40일동안 남 북부 유럽 여행을 다니시던때가 지금 추억으로 간직되어 행복했던 날들을 글로 써주셨어 읽는 저도 선생님의 지난날이 무척 행복해 보이고 부럽습니다
저는 풀무질만하다 아직 북유럽을 가보지 못했는데 글따라 멋진 북유럽여행을 하였습니다. 여행 안내서 같은 계획에 따라 북유럽을 여행한다면 정말 알찬 여행을 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만우절에 쓴 편지 실천으로 옮기셔서 사모님께 기쁨과 감격의 선물을 드리는 메신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ㅎㅎ
실제로 여행을 갈 생각이 있어야만 가능한 면밀한 여행계획입니다 .만우절 일지언정 사모님은 편지를 읽으면 절로미소가 나오고 행복할 것 같습니다. 지리교사였던 저로서는 나르빅은 무척익숙한 지명이네요.북쪽에 있지만 부동항인지라 철 수출항으로 늘 강조하던 도시였습니다. 북유럽 저도 한번 가고싶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