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자서전중 1부는 나에대한 유년시절 청년시절 고향이야기등 주로성장과정
에대한글을 12회 에걸쳐 놓았고 2부 글모음은 약 20 여년전부터 내가 상수도 분야애서
근무한 물에대한 이야기 친구에게 띠운 편지 아내에게 바치는 편지 역마살이 있어
여행기행문 산행일지 등 마치 굴비 두룹처럼 역어 글모음 으로 이여집니다
2부
글모음
본연의 사무와 일 밖에 모르고 막상 퇴직하게 되면
놀아 본 사람이 잘 논다고 어디 오라는 곳도 없고 소외되어
집에만 있지 않으면 마누라 뒤꽁무니나 따라다니는
소외계층으로 전락하지 말고
시작이 반이라고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용기를 내어
개인특기 하나쯤 개발하여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나의 발자취
본관 전주 이씨 태조로부터 40세손이며 정종대왕 8남 임언군(林堰
君)파 17세손으로 내 조상의 고향은 충북 옥천군 군북면 소정리 소태
골로 물 맑고 경치 좋은 금강변의 아름다운 마을로 현재는 80년대 대
청호 수몰마을로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는 마을 외딴 곳에서 저의 아
버님이 태어나셨다.
나의 아버지는 이기만.(1898년생) 5남매 중 장남으로 할아버님께서 30대의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어 가세가 기울면서 고향에 정착하지 못하고 10대 가장으로
1910여 년 경에 아마 호남선 철도부설 공사에 투입되어 회덕에서 잠시 머물다가
공사 진척에 따라 내려오다가 충남 논산시 강경읍에 정착하면서 경주씨 최옥
열(1899년생)과 1920년대 결혼을 하셨다.
1남 4녀 중 독자로 태어난나는 그 당시 아들 선호 사상에 누구 못지않게 고생을 모르고
성장하여 강경초등학교와 강경중학교, 강경상업고등학교를졸업하였다.
일 년 재수하여 2학년 재학 중 학도병으로 1958년 6월 입대하여 육군25사단에 예속되어,
1961년 3월, 32개월 만에 만기 제대 후 1961년12월 12일, 27세의 나이로
충남 논산 성동면 원남리 파평 윤씨 석기(24세)와 결혼하였다. 1남 2녀를 출생하여
나의 출생지인 강경읍 산양리 소제 삼천평의 농사를 1965년까지 경작하였다.
1965년 6월 처가의 도움으로 한국전력 운수(전차) 사업소에 취직이 되어 1968년까
지 근무하다가 전차사업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전차사업소가
폐쇄, 서울시로 흡수되면서 1968년 8월 15일자 서울지방 공무원으로
발령을 받고 1996년 12월 30일자로 28년간 근무, 61세로 정년퇴직하
여 현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