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달린다 이연수
유신이 아빠가 취직을 했습니다.
"아빠, 어디 취직 했어요?"
아빠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 아빠는 병원차를 모는 운전기사가 되었단다. 우리 가족 때문에 고생을 하는 거야."
엄마가 말했습니다.
"아빠 오늘 운동회 올 거죠, 꼭 오셔야 해요?"
"그래 아빠가 꼭 갈게, 오늘은 B조가 쉬는 날이야."
유신이의 말에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유신이는 청군입니다. 하얀 체육복에 파란색 모자를 쓰고 집을 나섰습니다. 식구들 모두 유신이가 다니는 학교로 향했습니다. 운동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아 놓았습니다.
그 때 유신이 아빠가 재빠르게 한 남자에게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습니다.
“나오셨어요, 원장님.”
“김 기사 아니세요? 김 기사도 운동회에 오셨군요.”
유신이 아빠가 공손하게 인사를 한 신사는, 바로 유신이 아빠가 취직한 병원 원장님이었습니다. 아빠는 원장님께 가족들을 소개 했습니다.
“아무쪼록 아이아범 잘 부탁합니다.”
할머니가 허리를 숙이며 인사 하자, 엄마도 유신이도 동생 유화도 모두 인사를 했습니다.
“오늘 새벽에 생긴 응급환자, 급하게 대학병원으로 이송 시킨 일, 수고 많았어요.”
"아, 네."
유신이 아빠가 웃는 낯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렇지요, 원장 아저씨? 우리 아빠 아픈 사람 옮겨주는 훌륭한 일 하는 거 맞죠?”
유신이가 자기 아빠를 칭찬하는 소리에, 명랑한 목소리로 끼어들었습니다.
“그럼.”
원장님이 유신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유신이 아빠에게 말했습니다.
“김 기사님, 아들이 똑똑하군요.”
“감사합니다.”
“유신이라고, 몇 학년이지?”
“2학년 1반입니다.”
유신이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우리 아들이랑 같은 반이군.”
병원 원장님의 말에, 유신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원장 아저씨 아들 이름이 뭐에요?”
“영웅이란다.”
“영웅이요? 우리 반 반장인 대요!”
“영웅이랑 친하게 잘 지내라.”
“네.”
유신이는 크고 씩씩하게 대답했습니다.
북 소리가 울리며 운동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학교 운동장은 함성소리로 가득찼습니다.
달리기가 한차례 끝났습니다.
멀리서 유신이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뛰어왔습니다. 온통 땀범벅이 된 채 1등이라고 찍힌 손 등을 내보였습니다.
“할머니, 달리기 1등 했어요!”
“우리 손자 최고다.”
할머니가 유신이의 땀을 닦아 줍니다.
아빠도 엄마도 행복한 표정이 되었습니다.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기는 김밥을 먹으며 오랜만에 가족들은 웃었습니다.
오후에 2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 달리기시합을 한다고 방송을 했습니다.
“아빠 달리기 잘 하죠, 아빠 고등학교 다닐 때 육상선수였잖아요?”
“그건 옛날이지.”
“아빠는 운동도 열심히 하잖아요, 아빠 빨리요.”
마지못해 아빠는 유신이에게 끌려 담임선생님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 자리에는 영웅이 아빠인 병원 원장님도 나와 있었습니다.
“원장님, 달리기에 나오셨어요?”
아빠는 또 허리를 굽혔습니다.
“영웅이 아버님, 병원일도 바쁠 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담임선생님이 깍듯이 병원 원장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빠도 나오셨어요, 우리 아빠도 달리기에 참가하신대요.”
“아, 그래.”
담임선생님은 유신이 아빠에게는 가볍게 눈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영웅이 아버지에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영웅이 아버님, 학급 일에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힘드시죠?
웃으며 얘기하는 담임선생님과 병원 원장님을, 유신이가 지켜봅니다.
유신이는 선생님이 영웅이 아빠에게 더 친절하게 행동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습니다.
“탕.”
총 소리와 함께 깃발이 펄럭 내려지자, 아빠들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출발을 지켜보는 유신이가 작은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모두들 열띤 응원을 했습니다.
유신이 아빠는 힘차게 땅을 치며 출발했습니다. 이겨서 아들을 기쁘게 해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날개인 것처럼 펄럭이며 달렸습니다.
아빠는 달리면서 유신이를 찾아보았습니다.
"아빠, 아빠 힘내요. 달려요 아빠, 달려요 아빠!"
유신이가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아들 유신이의 빛나는 눈을 보며, 아빠는 꼭 1등을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유신이 아빠에게 달리기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드디어 맨 앞에서 달리게 된 유신이 아빠가 무심결에 뒤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유신이 아빠 뒤를 바짝 붙어 달려오는 이는, 병원 원장님이었습니다.
갑자기 유신이 아빠는 등 뒤로 따가운 시선을 느꼈습니다.
다리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점점 달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병원 원장님을 이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유신이 아빠를 꼭 잡고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자랑스럽게 1등으로 들어온 이는 병원 원장님, 바로 영웅이 아빠였습니다.
일부러 꼴찌를 한 유신이 아빠는, 터벅터벅 운동장을 걸었습니다. 맥이 빠지고 숨이 찼습니다.
“유신이는?”
유신이 아빠가 물었습니다.
“금방 저쪽으로 갔어요, 화장실 갔나 봐요.”
엄마가 말없이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운동회가 끝났습니다.
"유신이가 많이 속이 상했나보다. 애비가 유신이 기다렸다가, 달래서 데리고 오너라.”
“네 어머니."
가족들을 보낸 후, 유신이 아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못난 아빠의 마음을, 아들이 알아차린 것이 아닐까?
운동장에 석양이 졌습니다.
하늘에 붉은 노을이 그림자처럼 퍼졌습니다.
그 때입니다.
“아빠.”
유신이가 나타났습니다.
“유신아, 너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아.”
아빠는 유신이를 꽉 끌어안았습니다.
유신이의 눈은 빨갛게 부풀어 있습니다.
“아빠! 원장 아저씨한테 져준 거 다 알아요.”
유신이의 말이었습니다.
한국불교아동문학회 2008년 연간집 작품
석주큰스님 탄신 100주년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