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귀국해 보니,
어머니는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내가 돌아오자 그나마 의식을 회복하신 상태여서, 병원은 싫다며 집에 돌아가기를 원하셔서 집으로 모신 뒤,
두 달 정도의 치료와 자식들의 보살핌으로 겨우 거동을 하시게 되었고,
그 상황을 함께 했던 나는,
어떻게든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엉뚱하게도,
내가 돈을 벌기 위해선 다른 방법은 없고, 책을 써서 '베스트 셀러'가 되어야만 한다. 며(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형님 지인의 비어 있는 집(그 집은 군산 앞 '고군산 군도'의 한 섬인 '관리도'에 있었다.)에 가서 20 여일, 책을 쓰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는데......
그건 '멕시코 벽화 운동'이 아니라(그건 돈이 될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 당시 한창 인기를 몰던 '여행 에세이'를 쓰기로 했는데,
내 지난 스페인에서의 생활을 소재로(다양한 에피소드를 독립시켜 하나씩의 에피소드로 작성한, '어느 화가의 스페인에서의 이야기'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스페인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위, 아래) '관리도'에서의 흔적들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름 그런 시도까지 한 건 좋았지만, 내가 '책 내는 일'을 우습게 보았던 오류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것도, '멕시코 벽화 운동'이라는 책 작업을 해봤기 때문에, 그런 미술이론서보다는 '에세이'식의 여행서적이 나에겐 훨씬 쉽고도 어울리리라는 생각으로), 만용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절실한 상황에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어차피 휴식은 필요했으므로 잠시잠시 가졌던 휴식 시간이(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거나 해루질을 조금 했던 것 등),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재미있었다.
그렇게 초고를 대충 완성하고 딴에는 한 권의 책이 되리라 생각하고 섬에서 나와,
이제 본격적으로 출판사와 접촉을 시도해보았는데,
나는 그들로부터 비웃음만을 받았던 기억이 크다.
(그들의 시각은, '화가가 무슨 글을 쓴다고......' 하는 식이었고, 내 자신 역시 책내는 걸 너무 우습고 쉽게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어차피 그런 일은 서울에서 해야 했으므로,
어머니를 고향에 남겨두고(형님이 모시고 있어서), 당시 '산본'의 누님 아파트 조카방을 빼앗아 지내게 되는데......
그렇게 어정쩡한 상황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뭔가 확실히 결정된 게 없었으므로), 더구나 몸도 성치 않았는데 다시 그 암울한 독일 생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어떻게든 한국에서 뭔가를 해보려고 했는데,
그 와중인 그해 연말(세모)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난 어머니 살아 생전에 효도 한 번 못했다.)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나는,
당시, 공교롭게도 산본에서 '한의원'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그와 나는, 내가 막 교직에 들어갔을 때 1년 가까이를 홍대쪽에서 자취를 했던),
그가 그 지역의 한의사 모임의 장소로 빌려놓았지만 사용하지 않는다는, 산본 중심상가의 한 건물 지하 2층의 한 방에 들어가, 작업을 하게 된다.
'지하 작업실'의 모습들(위, 아래)
아래) '지하 작업실'. A3. 펜 크레파스. 1999
그 건물 자체는 산본에서 제일 번화가에 있었지만,
나는 그런 건물 중으 하나의 지하실, 그것도 지하 2층에서의 생활은, 너무 답답했고 또 암울하기만 했는데......
위) '산본 중심 상가'. A3. 펜. 1999
아래) '불야성'. A3. 크레파스. 1999
그런 내 상황의 심리상태가 아래의 드로잉에 잘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위) '정전'. A3. 펜. 1999
아래) '날 사가지 않으시겠소?'. A3. 펜. 1999
그리고 그 해 봄부터 서울의 한 대학에 '시간강사'로 나가게 된다.
거기서 내가 가르친 과목은 '회화'가 아닌(그 분야엔 내가 디밀고 들어갈 자리는 없었으므로) '입체 조형'이었다. (그나마 여태까지 배우두었던 조각(입체) 덕분이었다.)
물론 내 생활은 여전히 불안하기 그지 없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던 '멕시코 벽화 운동'에 대한 출간 문제와,
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어느 화가의 스페인에서의 이야기' 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장 출혈'은 수시로 나를 괴롭혔으며,
그 와중에,
당시 '여의도 공원' 조성사업 차, '조형물 공모'가 있어서 응시를 했는데,
내 지난 독일시절의 절박함을 표현한 '극한 상황'이 당선 되어......
'극한상황'이란 작품의 태동과정이다.
그것도 우스운 게,
내 젊은 시절에 수 차례 '미술 공모전'에 그림으로 냈을 땐 단 한 번 '입선'마저 되지 않았었는데,
뒤늦게 '조각' 분야에서 그나마 당선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작품의 완성과 여의도 공원에 설치된 모습인데(위 사진) 이 작품 처리 과정에에 대한 그 뒤의 에피소드는 차라리 서글프기까지 하다.
(그 작품은 지금도 군산의 한 친구 사무실 옆 텃밭에 놓여 있다.)
첫댓글 지금 쯤에서 인생을 돌아보면 다 웃음만 나옵니다.
잘했든 잘못했든 좋았든 나빴든 삶은 흘러갔으니까요.
그렇다고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