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는 어떤 곳일까?
- '어지럼증'으로 비행기를 못타는 아내를 남겨두고 혼자만 해외여행을 한 것이 미안하여 선박을 이용하여 다녀온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 여행기로 '동영상'과 함께……. -
☞ 2017.8.20.(일) - 24(목) 4박5일(선박 2일, 현지호텔 2박)
금년에도 어쩌다 보니 2번째로 가게 되는 해외여행이다.
지난 3월에 '미국 시애틀과 캐나다'를 다녀온 후에 아내에게 적금을 하나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비행기를 못타는 아내가 내가 해외여행을 한다고 하면,
“건강이 허락하거든 다녀오라.”
고 얘기는 하면서도 그다지 밝은 표정이 아니었다.
아마도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으로 인하여 만감이 교차하리라!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또다시 하게 될 해외여행도 어차피 혼자서 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이용하여 아내와 함께하는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내에게 드는 안전한 적금인 셈이다.
비행기는 어차피 안 되니 선박을 이용하여 갈 수 있는 곳을 찾아보았다.
그 결과 [동해시]에 본사를 둔 [동해크루즈]라는 선박여행사를 발견하였다.
이 회사는 [DBS크루즈]라는 선박을 이용하여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과 '일본의 사카이미나토항' 두 곳만 운행하는 상품을 운영하는 곳이다.
참고로 승객수송이 주가 되는 선박은 [페리호]라고 부르고 승객과 화물을 함께 수송하는 것이 목적인 배는 [크루즈]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배는 1만3천 톤 급으로 승객정원이 530명이다.
배에는 레스토랑, 사우나, 노래방, 편의점, 면세점, 나이트클럽 등의 부대시설이 되어 있다.
혹시라도 이곳을 여행할 계획이 있는 분들은 동해크루즈 본사를 통한 직접 예약은 절대로 하지 말 것을 권유하고 싶다.
그 이유는,
[하나투어]등의 기존 여행사를 통한 예약 시는 VIP룸 등으로 선실을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거의가 불가능하다.
그것은 특실 방은 숫자가 적은데 비하여 선착순으로 업그레이드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본이 다인실에 배정이 되는데 부부만 여행을 하는 우리는 전국에서 모인 낯선 일행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고 별다른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특실로 업그레이드를 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1인 왕복 10만원의 업그레이드 비를 지불하면 Tv, 냉장고, 샤워실이 있는 화장실, 침대 등이 구비된 단독으로 된 방이 배정된다.
10만원 투자로 오며 가며 호텔기분을 낼 수가 있기 때문에 본사를 통한 사전예약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사를 통한 예약이 좋지 않은 이유다.
그것은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한 후 하선을 할 때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급호텔같은 VIP룸에서 편안한 밤을 보낸 우리는 도착 후 하선을 위하여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런데 나 원 참!
이곳은 재정러시아 시절에 만들어진 항구 시스템이 현대화된 요즘도 고치지 못하고 그대로 운영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의 특성 때문이다.
새롭게 자본을 투자하여 장사를 잘 되게 하는 현대화된 시스템 도입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나서서 승객들이 편하게 출입국을 할 수 있게 발 벗고 나설 일이 없단다.
왜냐하면 그들은 봉급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 많은 승객들이 예전 시스템으로 한 줄로 길게 늘어서서 오직 한곳뿐인 좁은 심사대에서 출입국 신고를 한다.
그 바람에 시간이 엄청 많이 소요된다.
게다가 본사를 통한 직접 예약 승객인 경우는 동해항에서 승선할 때만 본사직원이 나와서 미팅을 하고 간단한 주의 사항만 전달하고 배에는 동행을 하지 않는다.
도착후 함께할 일행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라서 혹시라도 단체로 온 일행들과 행동이 같이 하지 못할 까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런데 내리라는 안내는 없고 방송에서 호명하는 팀만 내리도록 한다.
나머지 팀들은 호명할 때 까지 승무원들이 내려가지 못하게 통제를 한다.
안전사고를 우려한 조치라니 그 것은 이해가 된다.
내리는 순서는 자국민 우선 원칙에 따라 한국을 드나드는 엄청난 수의 러시아인 일반승객이 1차로 내린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우리팀의 러시아 현지 가이드가 개입을 하였다.
너무 늦게 하선을 할 경우 첫날 일정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하여 내리는 순서를 호명하는 방송실에 연락을 하여 우리 일행 중 대형여행사인 [하나투어], [모두투어]팀들은 우선하여 하선을 시켰다.
그리하여 나머지 개별여행객들은 앞서 내린 그 팀이 우리 일행인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승무원들이 내리라는 순서에 따라 얌전히 내려가니 제일 마지막 순서로 내리고 말았다.
2시간이 넘도록 지루한 기다림 끝에 하선을 한 기쁨도 잠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과 합류하기 위하여 버스에 올라타니 사정을 모르는 먼저 탄 일행들은 우리 때문에 1시간 넘게 기다렸다고 엄청 투덜대며 언성을 높인다.
우리 잘못이 아니지 않은가?
미리 안내를 하지 않은 본사와 선내에서 대형여행사 승객을 미리 내리게 한 승무원들의 잘못이지…….
‘에이 재수 없다.’
속으로 삭힐 수밖에…….
▶ 1일차 : 8월 20일(일)
사전에 예약한 일정에 맞추어 승용차를 이용하여 '동해항'으로 달리다.
항구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엄청 넓었다.
차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까지 무료로 주차가 가능하니 그 점은 잘되어 있었다.
본사에서 나온 가이드를 만나서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 승선을 하다.
넓은 배 안을 여기 저기 구경을 하다가 업그레이드를 한 '특실'인 우리 방으로 향하다.
선박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고급 호텔에 들어온 것 같다.
우리나라 배여서 방송도 우리 방송이다.
10만원의 위력이 이렇게 좋다면 다음에 또 이런 기회가 있다면 이용을 해야지…….
물론 많은 일행들과 동행을 할 때는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둘만의 여행 시는 이 방법이 좋을 것 같았다.
▶ 2일차 : 8월 21일(월)
잠을 자고 기상을 하니 [블라디보스톡]항이다.
밤새 북한땅 앞바다를 통과해서 왔다니 아내는 조금은 겁먹은 표정이다.
하선할 때의 불편함과 에피소드를 뒤로 하고 현지가이드와 만난 우리들은,
첫 코스로 [연해주 주청사]를 둘러보았다.
[블라디보스톡]은 인구가 73만 명으로 극동 지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이곳은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 러시아 동쪽의 군사요새지로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1992년 1월까지는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에게도 출입이 통제되었던 군사도시이다.
1992년 1월 1일부터 외국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한 후 국제도시로 급격히 부상하였으며 한국 총영사관은 1992년 10월 22일 개설되었다.
러시아 전역이 원래가 추운 곳이므로 재정러시아 때부터 얼지 않는 항구를 간절히 바라고 원해왔다.
이곳이 바로 얼음이 얼지 않는 항구로 러시아의 군사요충지이다.
하얗고 높은 것이 인상적인 중요한 이 건물은 러시아 극동지역의 중심역할을 하는 연해주주청사 건물이다.
러시아 하면 사회주의 혁명이 가장 유명한 만큼 혁명의 성공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혁명광장]을 둘러 보다.
이곳은 드넓은 광장을 자랑할 뿐만 아니라 영화 [태풍]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레닌이 성공시킨 사회주의 혁명을 기념하는 곳이며 전승기념일을 비롯한 각종 행사가 벌어지는 곳이다.
멋진 포즈의 동상까지 함께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개선문]에서 이어진 거대한 벽은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군인들의 이름을 세긴 거대한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거대한 국가인 미국이나 러시아는 나라를 지킨 전쟁영웅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러한 것 하나에도 국가에서 엄청 세밀하게 챙긴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는 어떤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거대한 벽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긴 기념비 -
[개선문]은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파괴되었다가 2003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
재정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는데, 알록달록 밝은 색채의 개선문은 영원의 불꽃, 승리의 아치라고도 불린다.
초록색과 회색빛이 인상적인 이 잠수함은 2차 세계대전 당시에 실제로 사용되었던 [C-25 잠수함]이다.
14척의 독일 군함을 침몰시킨 구소련의 전설적인 잠수함 C-56을 개조하여 지금은 박물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태평양함대가 첫 항해를 시작한 105주년을 기념해서 세운 기념비와 러시아 내전 당시에 적군을 지휘했던 [라조장군]의 동상을 둘러 본 후, 스베틀란스카야 대로를 관람하는 것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무리 하다.
♣ 러시아는 추운 곳이다.
'블라디보스톡'은 러시아에서는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그래도 따뜻한 편이다.
이곳의 집들은 거의가 서유럽과 마찬가지로 회색 톤이 주류를 이룬다.
건물 벽의 두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 두껍다.
이는 추운 날씨에 적응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벽이 두꺼워야 열손실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건물의 창을 가능한 작게 만들고 벽을 두껍게 만든다고 한다.
반면에 기름이 많이 생산되기 때문에 거리에서는 승용차를 많이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승용차는 일본차가 거의 대부분이다.
이는 자기 나라에서 차를 만드는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름 값은 싸므로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차를 거의가 구입해서 운행을 한다.
- 길거리에서 우연하게 발견한 우리나라의 수출 1호차인 [포니승용차] -
반면에 시내버스를 비롯한 버스종류는 대부분이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중고차량이다.
운행 중인 차량에서 [현대], [대우]로고를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심지어 ‘**학원’, ‘**태권도’등의 한글 부착 차량도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이곳은 사회주의 체제여서 봉급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생활하는데 그다지 큰 불편이 없다고 한다.
기름이 많이 나는 나라여서 기름 값이 싸고 물가가 비싸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 3일차 : 8월 22일(화)
오늘의 첫일정은 [레닌공원]이다.
러시아 공산당,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국가의 창설자인 레닌!
오직 레닌을 위해 조성해 놓은 공원이다.
다음은 블라디보스톡 시민들의 휴식처로 젊음의 거리로 불리는 [아르바트]거리를 찾았다.
이곳은 블라디보스톡에서 가장 유럽의 정취를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아르바트 거리를 본떠 만든 아름다운 거리!
아름다운 외관의 유럽풍 건물들과 유유히 자태를 뽐내는 분수까지 덤으로 볼 수 있다.
건물이 너무 예뻐서 가만히 서서 찍기만 해도 인생샷 등극이다.
다양한 맛집과 카페들이 즐비해 있어서 여유로움을 즐기기에도 너무 좋은 곳이다.
다음은 여름이 되면 일광욕과 해수욕장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해양공원]이다.
웃통을 벗어젖히고 해변에서 낚시를 하는 풍광은 지중해 연안 어느 따뜻한 휴양지를 보는 느낌이었다.
해안선을 따라 산책길이 있는 이곳은 잔잔한 파도가 함께하는 곳이라서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걷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다음은 [우수리스크]지역을 방문하기 위하여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으로 이동을 하였다.
이 역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시발역이자 종착역이다.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영화 [태풍]의 촬영 장소이기도 한 이곳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우골나야]까지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이곳에서 부터는 다시 버스로 바꿔타고 [우수리스크]로 이동을 한다.
블라디보스톡 기차역에는 시베리아 횡단열차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 보면 '9288'이라고 적혀 있는데 블라디보스톡에서 모스크바까지 운행하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철로의 길이를 뜻한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기차를 탔다.
이 열차는 우리나라의 60년대 완행열차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정해진 좌석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선착순으로 앉으면 된다.
그런데도 승객들이 엄청 북적댄다.
워낙이 국토가 넓다가 보니 승용차가 없는 사람들이 이동을 하려면 이 열차를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다.
도로망이 발달하지 못한 관계로 철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교통현실이기 때문이다.
시내를 벗어나자 대평원이 끝없이 이어진다.
밀림지대도 아니고 듬성듬성 침엽수가 자라는 드넓은 초원에는 방목을 하는 가축조차 전혀 보이지를 않는다.
‘이 넓은 초지를 왜 방치해 두었을까? 하다못해 옥수수나 감자라도 심어서 수확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궁금증을 못 이기고 기어코 가이드에게 해답을 구하였다.
“이 곳은 사회주의 체제이기 때문입니다. 자본주의 방식으로 생각해서는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이기 때문에 개인이 개간을 한다거나 농작물을 재배하여 이익을 내는 것은 생각해 보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굳이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국가에서 주는 봉급으로 생활이 된다.
그러므로 내 땅도 아닌것을 굳이 개발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거주하는 주택 인근에 부지런한 사람들은 채소나 가축을 기르기도 합니다.
그것도 자급자족용이지 많이 재배해서 시장에 내다 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사회주의 구조입니다.”
듣고 보니 이해가 되었다.
‘사회주의란 이런 것이구나!’
횡단열차를 이용하여 [우골나야]에 도착한 우리들은 다시 버스로 옮겨 타고 드디어 [우수리스크]에 도착을 하다.
이곳의 인구는 16만 명 정도 된다.
1991년 러시아가 소비에트연방으로 부터 분리되자 옛날 스탈린에 의하여 강제로 이주되어 연해주를 떠났던 한인들이 다시 블라디보스톡 한인촌으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그러자 [블라디보스톡] 시에서는 한인들의 이주를 거부하였다.
그대신 그나마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우스리스크시에서 거주를 할 수 있게 해주어 현재 이곳을 중심으로 인근에 고려인 5만여 명이 살아가고 있다.
1907년 안중근의사가 일제치하를 피하여 이곳에 와서 재력가인 최재형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독립운동을 하였다.
1909년 9월에 한국 침략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가 만주지역을 방문 한다는 소식을 듣고, 10월 21일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하여 우수리스크역에서 열차를 타고 중국 하얼빈으로 향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독립운동가 [이상설 유허비, 최재형 생가]등이 남아있다.
또한 고구려가 신라로 부터 멸망되고 30년이 지난 698년에 우수리강을 따라 광활한 벌판위에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던 유적지가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수이푼]강변에는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의 밀사로 파견되어 활동을 했었던 독립운동가 [이상설선생 유허비]가 있다.
1917년에 이국땅인 이곳에서 순국을 했는데,
“내손으로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먼저 떠나니 화장을 한 후에 유골을 이 강가에 뿌려 달라!”
는 유언에 따라 그렇게 한 후 후세 사람들이 이 강가에 유허비를 세웠다고 하는 숙연한 장소이다.
이어서 인근에 위치한 우리 민족이 세운 거대한 영토를 소유한 국가였던 [발해]의 성터를 보기 위하여 이동을 하다.
[솔빈강]을 해자를 이용해서 적의 침입을 막았다는 발해의 옛 절터 및 성터를 둘러본다는 사실에 엄청 큰 기대를 했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해 보니 다소 실망이 되었다.
왜냐하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흔적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다만 성터가 이곳이었다는 위치만 확인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어지는 도로는 아직도 비포장인 탓으로 흙먼지만 잔뜩 구경한 탐방이 되었다.
다음은 [우수리스크 시청사]를 둘러 보았다.
러시아 땅이지만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관계로 우리와는 깊은 관계가 있는 곳이다.
다음 코스는 [중앙광장]이다.
광장 한켠에서는 [발해]때 만들어진 돌로 만든 거북이 발견되었다.
이로서 이곳이 예전에는 우리 민족이 건국한 [발해]의 영토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이 거북은 현재 이곳에 보관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러시아정교회]를 탐방하다.
러시아의 정교회들은 정말 아름다운 자태를 풍긴다.
노란 빛깔과 뾰족한 금색 지붕이 화려함을 맘껏 풍기는 이곳은 약 110년이 넘는 동안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사회주의 나라인 러시아에서 종교를 허락하였다는 사실이 의아하였다.
항일운동의 대부이고 러시아 한인 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지도자, 독립운동의 아버지라 불리는 최재형 선생!
그 최재형 선생이 머물렀던 생가가 바로 이곳에 있다.
그는 함경북도에서 노비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연해주로 이주해 기업가로 크게 성공한 뒤로는 항일 독립운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한인 후손에 대한 교육 지원도 아끼지 않아서 연해주에 세운 학교만 30개에 달한다고 하니 우리나라의 독립과 후세 교육에 힘쓰셨던 매우 중요한 분이다.
독립운동의 산실인 연해주의 의미를 간직하여 준공된 [고려인 문화센터]는 고려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8년에 세워진 건물이다.
소련 시절에 독재자[스탈린]에 의하여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 이주민들은 연해주 일대에 집중적으로 뿌리를 내렸다.
이곳은 이들을 위한 문화시설과 박물관이다.
이주민의 역사와 이주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알 수 있는 여러 정보들이 가득한 곳이다.
우리 민족의 아픈 과거와 바른 역사들이 남아있는 이곳은 우리의 소중한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곳이었다.
♣ 관광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블라디보스톡]으로 이동을 했다.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이동을 했었는데 특이한 점을 발견하였다.
또다시 가이드에게 궁금증을 해결 할 수밖에…….
첫째, 고속도로라고 하는데 [톨게이트]가 없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인 이곳은 고속도로 통행료가 무료이기 때문이란다.
둘째, 휴게소가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고속으로 달리는 중간 중간에 이동식 상인들이 소형트럭에서 과일이나 기타 생필품 등을 팔고 있었다.
이런 현상도 자본주의의 흔적이 조금씩 나타나기 때문에 보이는 현상이라고 한다.
▶ 4일차 : 8월 23일(수)
이곳에서의 마지막 일정이다.
블라디보스톡의 전경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이 [독수리전망대]에 올랐다.
시내의 랜드 마크인 이곳은 금각만과 아무르만, 그리고 금각교의 풍경과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금각교는 우리나라 기업이 건설한 다리라고 해서 더 관심이 가는 곳이었다.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우수리스크' 방면이 아닌 '블라디보스톡' 시내에도 우리나라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곳이 있다.
1863년에 스탈린이 연해주로 한인들을 강제 이주시킨 후에 블라디보스톡에는 [신한촌]이 형성되었다.
새롭게 만들어진 한국인 마을이란 뜻이다.
그 신한촌은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3·1 독립선언 80주년을 맞이하여 이곳을 기리기 위하여 [신한촌 기념비]를 세워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곳이다.
3개의 큰 기둥과 8개의 작은 돌로 이루어져 있는 [신한촌 기념비]!
우리나라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곳이다.
러시아 정교회인 [성모 승천 대성당]은 러일전쟁과 혁명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러시아만의 독특한 건물 양식이 잘 드러난 건물로 파스텔 톤의 벽 색깔과 반짝이는 지붕의 조화가 돋보이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기념품점을 들리다.
러시아 하면 [보드카]다.
아내의 눈치를 실실 봐가며 운을 떼니,
“그놈의 술, 맨날 술, 술 하면서도 지겹지도 않나봐!”
하면서 구박을 한다.
그러나 웬걸
“자식들에게 협찬을 받았는데, 그냥 갈 수는 없잖아? 술이라도 한 병…….”
하면서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다. ㅋㅋㅋ
출국 수속후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배를 탑승하니 블라디보스톡이 점차 멀어져 간다.
‘언제 이곳을 또다시 찾을 수 있을까?’
상념에 잠기며 일정을 마무리 하다.
▶ 5일차 : 8월 24일(목)
아침에 기상을 하니 동해항이다.
입국 수속후 내려오는 길은 오늘 중으로 포항에 도착하면 되니 일정이 여유롭다.
애국가에 등장하는 [촛대바위]를 비롯하여 동해안 볼거리를 구경하며 천천히 내려오다.
삼척시 원덕읍에 위치한 [해신당공원]도 들리다.
풍랑에 휩쓸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처녀를 위로하는 작은 사당인 [해신당]이 바다와 접한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억울한 처녀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남성의 성기를 본 딴 나무 조각 공원을 조성하여 매년 정월과 시월 두 번씩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어린 자녀들과 동행하면 민망할 정도로 남근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곳은 2004년 8월에 설악산 대청봉을 산행하면서 처음 둘러본 후, 2005년 대송초등에 근무할 때 직원 여행 시에도 들리고 2015년에도 돌아본 곳이다.
배경을 이해하고 둘러보면 아주 흥미롭게 관찰을 할 수가 있다.
울진에서는 [금강송군락지]를 둘러보다.
♣ [금강송]이란 많은 사람들이 소나무의 다른 품종으로 알고 있다.
소나무는 수입소나무인 [리기다소나무]가 있다.
토종소나무는 한번 잘라지면 새순이 돋아나지 않아서 죽는다.
반면에 리기다소나무는 소나무 중에서는 유일하게 잘린 자리에서 새순이 자라나서 죽지 않고 살아나는 나무이다.
그래서 '사방사업'을 많이 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전역에 이 나무를 많이 심었다.
토종소나무는 자라는 곳에 따라 주로 해안가에서 자라는 [해송]과 해안과 먼 곳에서 자라는 [육송]으로 분류를 한다.
또한 나무껍질의 색깔에 따라 [흑송]과 [적송]으로 구분을 한다.
[해송]은 대부분이 검은색이라서 [흑송]이고 육송은 붉은 색이라서 [적송]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전역에 골고루 자라고 있는 이 적송이 토질이 깊고 기름진 곳에서는 똑바르게 엄청 크게 자란다.
같은 품종이지만 바위가 많은 곳에서는 뒤틀린 자세로 아주 고생스럽게 자라니 [분재용]이나 [정원수용]으로 적당하다.
반면에 토양조건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 나무는 [목재용]으로 귀한 대접을 받아 궁궐을 짓는데 사용이 된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법으로 정해서 함부로 벌목을 하지 못하게 한 흔적이 울진에 가면 볼 수 있다.
이는 단단하면서도 곧게 높이 자라기 때문에 귀한 목재용이기 때문이다.
[금강산여행기]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금강산지역에서도 토질 조건이 맞아서 목재용으로 아주 적당한 소나무가 많이 생산된다.
그래서 이 지역의 이름을 따서 [금강송]이라고 부른다.
또한 나무가 미끈하게 잘 생겼다고 해서 [미인송]이라고도 부른다.
봉화군 춘양면을 여행해보면 이런 종류의 소나무가 엄청 많다.
일본 침략시대 이곳의 목재를 무단 벌채하여 일본으로 빼돌리던 일본인들이 봉화군 춘양면에서 생산된 나무라고 하여 [춘양목]이라고도 불렀다.
따라서 [금강송]이나 [춘양목], [미인송]은 별도의 소나무 품종이 아니고 결국 근본은 육송이라 불리는 [적송]인 셈이다.
어느 곳에서 자라느냐에 따라서 받는 대접과 이름이 달라지는 좋은 예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지역, 봉화군 춘양면지역, 춘양면과 가까운 울진군 금강송면 등이 대표적인 자생지이다.
Ps : 덤으로 동영상을 첨부합니다.
우리가 여행하는 사실을 알고 난 자녀들이 여행경비를 부담 했다.
여행후 자녀들에게 여행결과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동영상 제작을 했는데, 설명으로 부족한 부분은 사진으로 보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첫댓글 배려와 사랑이 넘치는 모습 보기 좋습니다.
직접 부른 하모니카 곡에 여행 흔적 잘 보았습니다.
송이골님 부인은 농협에서 같이 활동하던분 입니다.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걸로기억되는데~~
아내복은 있으시네요.
그러세요?
ㅎ~~~
인연이란...
지금 시점에서 보니 2017년 동영상 제작 당시의 하모니카 연주력은,
고칠점이 너무 많은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반성'이란,
또다른 발전을 위하여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송이골님의 여행담은 읽을수록 생생하고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저도 보람을 느낍니다.
저는 그곳을 한번 더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혹시라도 이곳을 여행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