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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행궁1 2017.10. 30. 월
1. 행궁 앞 즉, 신풍루 밖의 모습. 신풍교라는 다리가 있다. 원래 왕궁앞에는 명당수가 있어서 禁川이라고 하는데, 행궁에서는 신풍교가 금천교를 대신한다. 화성행궁 복원 2단계 사업은 2020년 끝난다.
2. 정문 <신풍루>. 한고조가 " 신풍 땅은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다" 라고 한 말의 고사에 의거한 것. 정조는 수원 화성이 새로운 또 하나의 고향이라는 의미다.
3. 홍살문과 신풍루
4. 신풍루앞에 느티나무 3그루. 느티나무 수령 350년.
5. 드라마 <대장금> 촬영지 표시
7. 정문인 신풍문 오른쪽 지상에 <화성행궁> 현판이 놓여있다. 정조 1793년 어필, 복원한 것이다. 원본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화성행궁>
행궁은 왕이 항상 머물며 국사를 주관하는 본궁과 달리 전란, 휴양, 능원 참배 등으로 지방에 행차하여 임시로 거처하는 행재소로 사용하는 곳이다.
화성행궁은 화산 현륭원(정조의 부 사도세자능) 참배의 목적 외에 정조 임금이 1804년 양위 후 장차 수원화성에 내려와 노후를 보낼 시설(정조가 1800년에 별세하므로 이루어지지 못함) 이었으므로 그 어떤 행궁보다도 대규모로 건설되었으며, 팔달산 동쪽 기슭 수원화성의 중심부에 자리잡았다.
화성행궁은 1789년 옛 수원 읍치였던 화산 아래에서 팔달산 아래로 옮긴 수원 신읍의 관아로 건축된 후 이듬해인 1790년 5월 7일 약 340칸의 관아가 완성되면서 행궁의 역할도 아울러 지니게 되었다.
이후 1794년 정조 18년 화성 성역을 시작하면서 각 건물을 증축하거나 재배치하여 1796년 화성성역이 끝날 무렵에 모두 합하여 576칸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1795년 윤 2월 혜경궁(사도세자빈,정조의 모후) 회갑연의 다양한 공연 예술 및 행사가 치러진 중심무대였으며 정조와 후대의 국왕들이 능행차 때마다 머물렀던 조선시대 최대의 행궁이었다.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에 일제에 의해 의도적으로 파괴되어 그 터는 경기도 도립병원, 신풍초등학교 수원경찰서 등이 자리하였고, 낙남헌, 노래당 건물만이 신풍초등학교 운동장 한 귀퉁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이에 1989년 10월 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가 성립되었고 1996년 부터 본격적인 화성행궁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02년 1단계로 전체 576칸 중에 482칸을 복원 완료하였다.
8. 화성행궁 복원기념비
10. 화성행궁 배치도 / 우상 방향에 화령전이 있는데 표시하지 못하였다. 봉수당(정전). 복내당(행궁의 내당, 정조 거처), 장락당(모후 거처), 유여택이 핵심 부분이다.
11. 신풍루 앞
12. 신풍루 앞
13. 궁궐 안쪽에서 바라본 신풍루
14. 이 느티나무는 화재로 불타서 이 모양이 되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살리려고 노력한 결과이다. 저 어린이들이 역사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있을까?
15. 집사청(집사는 주인의 살림 비품 재정관리) 현재 3칸에 궁중의상 모형을 전시하고 있다. 느티나무 옆으로 중약문이 있는데 밖으로 나가면 쉼터가 있다.
16. 좌익문, 좌익은 곁에서 돕는다는 의미다. 중삼문이라고도 한다. 봉수당 앞의 중양문과 첫문인 신풍루 가운데 있는 문이기 때문이다. * 배치 ; 일직선상에 봉수당-중양문(내삼문격)-좌익문(중삼문격) -신풍루 (외삼문격)
17. 중양문 中陽門 ; 정전인 봉수당을 지키는 내삼문에 해당한다. 봄의 별칭인 陽中을 의미한다.
18. 화성행궁의 정궁인 봉수당.왕권의 상징인 편전 공간. 어머니 혜경궁홍씨의 만수를 빈다는 의미가 담겼다. * 삼도-봉수당앞 길은 삼분되어 있다. 가운데는 왕이 다니는 어도, 영옆은 신하들이 다니는 길이다.
<봉수당 왼쪽에는 내당인 福內堂이 있다.> * 복내란? 福生於內, 복내당 원래 현판은 정조가 직접 썼으나 없어짐. * 여러 문 중에 九如門 ; 시경 소아에 9여란? 신하가 임금에게 9가지를 송축하는 것. 1) 산과 같이, 2) 언덕과 같이, 3) 산등성이 같이, 4) 구름같이, 5) 시냇물같이, 6) 달이 점점 차듯이 7) 태양이 언제나 떠오르듯 8) 불변하는 남산같이, 9) 무성한 松栢같이
19. 어좌 뒤로 그림은 < 일월오악도, 혹은 오악일월도>
20. < 일월오악도, 혹은 오악일월도>
21. 1795년 윤2월 13일 혜경궁 홍씨(추존 현경왕후)의 회갑연이 이곳에서 베풀어졌다.
22.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에서 국왕 정조 내외가 모후에게 축수를 드리고 있다.
23. 정조의 모습 모형
24. 정조의 모습
25. 김홍도가 그린 병풍
26. 화로와 화재에 대비한 비품인 드므(물을 보관하는 그릇, 드무라고도 한다)
27. 화성행궁의 정전인 <봉수당> 왕의 집무실
28. 환관. 봉수당과 장락당 뒤편 행각에 위치.
29. 채비하는 환관
30. 궁녀인 나인, 바느질하는 침방나인
31. 궁녀중 가장 으뜸인 상궁
32. 득중정, 활을 쏘는 정자
33. 낙남헌, 공연장소
34.
35. 낙남헌 일제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었던 전각 * 낙남헌은 각종 여흥 잔치 공연 등 행사하는 곳
36. 화령전, 정조 어진을 봉안한 건물. 정조 서거한 다음해 1801년에 설치되었다.
37. 화령전의 운한각. 어진 봉안
38. 화령전의 운한각은 정조의 초상화를 봉안한 건물. 2017년은 정조 탄신 265돌
39. 운한각과 이안청을 연결하는 복도각. 이안천은 필요시에 영정을 임시 보관한다.
40. 복도각 뒤 뜰을 바라보니 돌을 많이 놓아두었다.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공사중 나온 필요없는 돌을 정원 조경용으로 활용한 것같다.
41. <미로한정> 未老閑亭. 복도각 뒤 뜰을 바라보니 팔달산 산비탈 조금 떨어진 곳에 육각정자가 있다. 나중에 늙어서 한적하게 쉴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다.
42. 신연神輦 ; 국왕 장례시 神帛을 모시고 가는 연(가마)
43.정조 어진. 세번 만들어졌다. 이 복장은 융복이라고 한다. 행차시 나들이 간편복, 군복같은 의미가 있다. 현재 것은 2005년 다시 제작된 것이다.
44. 운한각 앞에서. 등산복장도 나의 융복이라고 할 수있겠네.
45. 운한각
46. 운한각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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