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전율을 일으키게 한 영화속 한 장면!
15년 전 쯤에 보았던 한 영화를 다시 보았습니다. 교양강좌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화를 고르든 중 눈에 띄는 영화가 있어서 컴퓨터로 다시 보았습니다.
마더 데레사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였습니다. 아래의 장면은 평범한 한 수녀의 삶에서 자신의 소명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저 장면이 나에게 다시 한 번 ‘전율’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5년 전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때, 저 장면에서 ‘감동’을 느꼈는데 이번에 다시 보면서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차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처음 저 장면에서 느꼈던 감동은 버림받고 죽어가는 가난한 이에 대한 마더 데레사의 사랑이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죽어가는 생명에 대한 연민, 즉 인간애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15년을 철학공부하면서 지내온 저로서는 저 장면에서 새로운 무엇을 느꼈습니다. 그것이 저로 하여금 순간적으로 ‘전율을 일게’ 하였습니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속에 내 정신 속에 그리고 내 육체 안에 ‘전율’을 일으키게 한 그 무엇, 그것은 아마도 연약하고 나약한 한 인간이 일종의 ‘절대적으로 되는’ 순간을 목격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그리고 데카르트가 그리고 키르케고르가 그리고 그 외 여타의 철학자들이 그렇게 추구하였던 그 ‘절대적인 무엇’을 저 장면 속에서 발견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더 데레사는 저 사건을 통해 더 이상 외롭고 고독하게 죽어가는 이들의 외침을 외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자신의 내면에서 어떤 절대적인 음성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힌두교와 이슬람이 그리고 가톨릭이 함께 공존하던 인도의 켈커타에서 수녀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톨릭이라는 혹은 자신의 수녀원 공동체의 보호 속에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환경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자신의 수도원에서도 물러나야 하고, 힌두인들이나 이슬람인들의 적대적인 시선들을 마주하면서 혼자서 고독한 길을 가야 합니다. 곧 아무도 가지 않았던 ‘성인의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죽음’을 받아들였고 데카르트는 더 이상 의심할 없는 명석 판명한 진리들을 추구하기 위해 혼자서 고독하게 17년간 유럽을 떠돌며 진리를 추구하였습니다. 그리고 키르케고르는 ‘절대자 앞에선 단독자’가 되기 위해서 국교화된 덴마크의 ‘프로테스탄’들과 그리고 당시의 주류 철학자들과 고독하게 싸워야 했습니다.
연약하고 나약한 한 인간이, 대중이나 민중 혹은 권력자의 시선을 의식하여 늘 망설이고, 헤아리고 또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더 이상 눈치를 보거나 헤아리거나 망설이지 않고, 자신 속의 양심의 소리를 듣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위해서 나머지 평생을 결정하게 되는 위대한 순간! 바로 그 순간을 보여주고 있는 장면이 위의 장면이었습니다. 이 순간 마더 데레사는 가족이나 민족, 국가나 이념, 종교적인 종파나 대중의 시선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오직 자신의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신성한 그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곧 상대적이고 시간적이며 역사적 환경 속의 순간에서, 절대적이고 영원한 무엇과 마주하는 ‘절대적인 사건’을 말하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