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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18장21~32절
제목 : 성막에서 일한 이들의 보수
하나님은 제사장들(아론과 그 후손들)에게 성막에서의 평생 봉사를 명하셨고, 그에 대한 대가로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평생의 보수를 약속하였는데 모두 여섯 종류였습니다.
첫째, 지성물 (소제와 속죄제와 속건 제물)중에 불사르지 아니한 것은 제사장들의 몫으로 하였습니다(9절).
이 제물은 제사장들과 남자들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10절)
둘째, 거제물과 모든 요제물입니다(11절).
이것은 제사장들의 모든 가족이 먹을 수 있었지만 단 정결한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셋째, 첫 소산물입니다(12,13절).
그해 수확한 모든 추수물중 첫 번째 생산물중 가장 좋은 것입니다.
넷째, 백성들이 특별히 드린 모든 것입니다(14절).
모든 것에는 물건뿐만 아니라 사람까지도 포함됩니다.
다섯째, 사람과 짐승의 첫 태생들입니다(15절).
사람의 경우는 은 다섯 세겔을 대속제물로 받았고,
짐승의 경우에는 내장과 콩팟과 간엽을 제단에서 태운 뒤 먹었습니다.
여섯째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레위인들의 일에 대한 보수로 주십니다.
그들은 받은 현물 중 가장 좋은 것을 거제로 드린 후에야 가족들과 함께 먹을 수 있었습니다.
1. 레위 자손이 받을 십일조(21~24절)
1) 백성들이 바친 십일조입니다(21절)
“[21]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이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구약의 십일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1) 족장 시대의 십일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의 십일조를 말합니다.
① 아브라함의 십일조(창 14:18-20)
아브라함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 전리품 가운데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아브라함 십일조의 특징은 대략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
첫째, 땅에서 나는 ‘소출의 십일조’가 아니라 ‘전리품의 십일조’였다는 것,
둘째, 매년 혹은 매월 드린 것이 아니라, 평생 한번 드린 ‘단회적인 십일조’라는 것,
셋째, 의무사항이나 강제조항이 아닌 ‘자원하여 드린 십일조’ 였다는 것입니다.
② 야곱의 십일조(창 28:20-22)
야곱의 십일조는 ‘조건부 십일조’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은 조건을 답니다.
* 창 28:20-22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2) 광야시대의 십일조
‘광야시대의 십일조’라 함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시행했던 십일조 라는 뜻입니다 .
이 기간에는 십일조에 관한 세세한 규정이 드러납니다 .
이 시기에 언급된 십일조 본문은
레위기 27 장 30-33 절,
민수기 18 장 21-32 절,
신명기 12 장 4-19, 14 장 22-29 절 , 26 장 12 절입니다 .
광야시대에 제정된 십일조는 ‘의무조항’으로 변경되었으며,
그 용도는 레위인의 생활비로서의 십일조,
제사에 참여한 이들이 먹고 마시는 잔치의 십일조,
사회적 약자 (고아, 과부, 나그네)를 구제하기 위한 십일조였습니다.
이를 오늘날 용어로 표현하자면, 목회에 전념하는 목회자의 생활비,
교회 관리운영비, 구제비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3) 왕정시대의 십일조
‘왕정시대의 십일조’란 ‘이스라엘의 왕이 시작된 사울 왕부터 남 유다의 멸망’(주전 587년 )까지의 십일조를 말합니다 .
① 사무엘상 8 장 15-17 절
여기에서 언급된 십일조는 일종의 국가에 네는 세금의 성격입니다. 하나님은 왕을 달라는 백성들의 요구를 용납하시면서, 십일조를 정부에 내도록 한 것입니다. 일종의 국가에 내야하는 세금의 십일조입니다 .
② 역대하 31 장 5-6 절
역대하 31장 5-6 절, 12절의 십일조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를 말 합니다. 역대하 31장의 역사적 배경은 분열왕국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 그 가운데 남 유다 왕 히스기야의 종교개혁을 다룹니다 .
오랜 기간 동안 남유다는 ‘레위인들과 사회적 약자들 (고아, 과부, 나그네 )을 위한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통해, 그 동안 시행하지 않았던 십일조를 회복합니다.
레위인들을 위한 십일조와 제사에 참여한 이들이 먹고 마시는 십일조는 매년마다 드려졌고 , 구제용 십일조는 삼년에 한번 드려졌습니다.
(4) 포로기 이후의 십일조
① 느헤미야10장 37-39절, 12장 44-47절, 13장 5,12절
느헤미야의 역사적 배경은 70년간 동안, 바벨론에서 남유다로 돌아온 ‘귀환 공동체’의 상황을 다룹니다.
이때, 당시 총독이었던 느헤미야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백성들이 드리는 밭의 십일조를 받을 것과 그것의 십일조를 여호와의 전에 갖다 놓으라’고 했습니다(느10:37-38, 12:44-47).
② 아모스 4장 4절
“삼일마다 너희 십일조를 드리며”(아 4:4).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은 복을 더 받으려고, 삼년마다 행하던 십일조를 삼일에 한 번씩 드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아모스는 이런 자들에게 그 십일조는 단지 ‘너희의 기뻐하는 바라’(아 4:5)고 비꼬고 있는 것입니다 .
③ 말라기 3장7-12절
아마도 말라기의 십일조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본문입니다.
그런데 말라기서의 수신자는 ‘일반 백성’이 아니라 ‘제사장’입니다(말1:6, 2:1,7). 당시, 제사장들이 ‘더러운 떡’(말1:7)과 ‘병든 짐승’(1:8)으로 제사하여 성전을 더럽혔기에 (1:10),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저주를 선언하십니다 (2:2).
십일조가 언급되는 말라기 3장7-12절 역시 제사장들에게 적용 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나의 것을 도적질했다’고 질타하십니다.
포로기 이후에는 십일조가 제사장들에 의해 도적질 당하기도 했습니다.
레위인의 생계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십일조가 제대로 쓰이지 않고,
제사장들이 자기의 이권을 챙기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도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약의 십일조는 주로 ‘성전 중심’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을 위한 십일조와 그곳에서 제사하던 자들의 먹고 마시는 십일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당시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단 ‘한 곳’이었기에
그곳에서 십일조가 사용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교회는 더 이상 건물로서의 성전은 없습니다.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설립 되었습니다.
‘성전의 파괴’와 ‘제사장의 부재’는 십일조의 용도에 대한 일대의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바침)과 이웃(생계 수단이 없는 레위인)에 대한 사랑(나눔)이라는 2중적 성격을 지닙니다.
신약성경에 십일조가 언급되는 곳은 총 네 곳입니다
(마 23:23, 눅 11:42, 눅 18:12, 히 7:1-10).
하지만 마태복음 23장 23절과 누가복음 11장 42절은 ‘동일사건’에 대한 ‘다른 기록’이기에, 신약의 십일조 언급은 ‘세 번’입니다.
그런데, 유념할 것은 히브리서를 제외한, 신약성경의 십일조 언급은 주로 ‘바리새인의 외식을 비판하는 문맥’(마 23:23, 눅 11:42, 18:12)에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마23:2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눅11: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눅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히7:1~10 [멜기세덱]“[2]아브라함이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니라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4]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가를 생각해 보라 조상 아브라함도 노략물 중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느니라[9]또한 십분의 일을 받는 레위도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십분의 일을 바쳤다고 할 수 있나니”
고전16:1,2 “[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2]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구약의 십일조 정신과 신약의 정한 정신과는 동일한 것입니다.
십일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논쟁에 낄 필요가 없습니다.
십일조든, 십이조든 어려운 지체를 생각하며 그들을 섬기려는 자세로 드려야 합니다.
인색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여 드려야 합니다.
감정이 아닌 의지와 계획에 따라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십일조의 정신을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하여야 합니다.
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22절).
“[22] 이 후로는 이스라엘 자손이 회막에 가까이 하지 말 것이라 죄 값으로 죽을까 하노라 ”
이 후로는...가까이 말 것이라 - 1:51 및 3:10 주석 참조.
죄를 당하여(나사 헤테)- 직역하면 '죄를 잉태하여'(bear sin)가됩니다.
실로 죄는 어머니 뱃속에서의 아이처럼 빠르게 성장합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죽음입니다(롬 6:23;약 1:15).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약1: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3) 레위인의 회막 봉사와 관련하여 그들에게 책임이 부여됩니다(23절).
“[23] 그러나 레위인은 회막에서 봉사하며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 중에는 기업이 없을 것이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라”
자기들의 죄를 담당할 것이요. - 레위인들이 회막에서 봉사하는 책임을 성실히 감당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정죄당하리라는 뜻입니다.
즉 회막 봉사와 관련하여 그들에게 책임이 부여되었다는 뜻입니다.
4)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셨습니다.
“[24]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십일조를 레위인에게 기업으로 주었으므로 내가 그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이라 하였노라”
여기서 '거제'란 단순히 제사 방법으로서의 거제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레위인들에게 돌려지는 모든 몫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레위인들에게 돌아갈 몫의 대부분은 바로 '거제'로 드려지는 예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기업이 없을 것. - 제사장들(아론과 그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레위인들에게도 생계 보장을 위한 땅이 다른 지파 사람들과는 달리 별도로 주어지지 아니하였습니다(26:62;신 12:12;14:27;수 14:3).
대신 그들에게는 '여호와'가 그들의 분깃이었습니다.
즉 여호와의 일에 전념함으로써 여호와께로부터 받는 몫이 그들의 분깃이었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레위인들에게는 달리 땅을 분배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2. 거제로 드릴 십일조의 십일조(25~32절)
1)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하나님께 드리라 하십니다(26절).
“[25]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너는 레위인에게 말하여 그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받아 너희에게 기업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때에 그 십일조의 십일조를 거제로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십일조의 십일조. –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의 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1/10을 다시 떼어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이 비록 성막봉사에 임하고 있지만,
다른 이스라엘 지파와 마찬가지로 그들 역시 하나님을 섬기며,
경배하는 백성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습니다.
한편 레위인들이 낸 십일조는 제사장들의 분깃으로 돌아갔습니다.
2) 하나님께서 거제물을 농부들의 소산물과 같이 여겼습니다(27절)
“[27] 내가 너희의 거제물을 타작 마당에서 드리는 곡물과 포도즙 틀에서 드리는 즙 같이 여기리니 ”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이 일반백성들로부터 받은 십일조의 1/10을 바칠 때 그 십일조를, 일반 농부들이 밭에서 거둔 소산의 십일조를 내는 것과 동일한 가치로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레위인 역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권리와 책임이 주어진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3)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 돌립니다(28절)
“[28]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중에서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고 여호와께 드린 그 거제물은 제사장 아론에게로 돌리되”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모든 것의 십일조. – 수치상으로만 계산한다면, 당시 레위 지파의 장정 수는 대략 12,000명 가량이었고,
나머지 이스라엘 지파의 장정수는 대략 600,000명 가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가 레위인에 비해 50배나 되었으므로, 만일 모세 율법의 규례대로만 지켜질 것 같으면 레위인들에게는 전혀 생계 걱정이 필요 없었습니다(Michaelis).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상 레위인들이 항상 가난한 구제의 대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본 규례가 분명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음이 틀림없었습니다(Keil, Pulpit Commentary).
4)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거제로 드리라(29절)
“[29] 너희가 받은 모든 헌물 중에서 너희는 그 아름다운 것 곧 거룩하게 한 부분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거제로 드릴지니라 ”
아름다운 것(헬레보).-문자적으로는 '그것의 지방질'(its fat)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종종 비유적으로 사용되어 '가장 좋은 것'(the best),
'가장 기름진 것'을 상징했습니다.
결국 본절은 레위인들이 일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 중에서'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께 십일조로 바치라는 명령입니다.
5) 남은 것은 레위인들의 소유가 되었습니다(30절).
“[30] 이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그 중에서 아름다운 것을 가져다가 드리고 남은 것은 너희 레위인에게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 틀의 소출 같이 되리니. – 이것은 일반 농부들이 경작물 중 십일조(1/10)를 제외한 나머지 9/10를 임의(任意)로 사용했던 것처럼, 레위인들 역시 '십일조의 십일조'(26절)를 제외한 나머지를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적절히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본절에서 '타작 마당의 소출'은 보리, 밀, 등 곡물류를, '포도즙 틀의 소출'은 포도, 올리브등 과실류를 가리키는데, 이는 곧 모든 논과 밭의 작물을 통칭하는 표현입니다.
6) 이것은 회막에서 일한 보수입니다(31절)
“[31] 너희와 너희의 권속이 어디서든지 이것을 먹을 수 있음은 이는 회막에서 일한 너희의 보수임이니라 ”
권속(베트켐) - 한 가장(家長)에게 딸린 집안 식구들과 종들을 포함
한 대가족을 의미합니다(창 18:19).
보수(사카르) - 이 말은 원래 '고용하다', '용병(傭兵)으로 삼다'는 뜻인데, 그 의미가 발전하여 '계약금의 지불', '생계비', '임금', '상급'등의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성막에서 일한데 대한 정당한 대가를가리킵니다(고전 9:13;딤전5:18).
7)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32절).
“[32] 너희가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받들어 드린즉 이로 말미암아 죄를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그리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
이스라엘 자손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 – 레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받은 십일조에서 다시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 그것은 백성들의 십일조를 욕되게 하는 것일 뿐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하는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즉 그것은 하나님의 소유를 도적질 하는 것으로서(말3:8),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범죄에 해당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바쳐질 십일조(1/10),
곧 성물(聖物)은 결코 한낱 죄에 오염된 물질로 전락 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거룩히 구별되어 하나님께 온전히 헌상되어야만 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일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막 봉사에 대한 ‘보수’를 잊지 않으십니다.
‘보수’로 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받는 것도 은혜이고, 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은혜입니다.
여섯 가지 종류로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갚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아’ 레위인들에게 주십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 바쳐진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것으로 제사장들에게 나누워 주어 그들이 살게 하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 친히 기업과 분깃이 되어 주셨습니다.
내게 없는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있는 것으로 풍족함을 맛보는 삶,
내게 있는 것에서 풍족함을 맛보기에 다른 이들을 돌아보고 베푸는 삶,
이것이 바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족하는 삶입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십일조 정신을 본 받아 인색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여 드림으로 하나님께 베풀어 주시는 은혜가운데 사시는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주를 위해 일하는 이들의 삶을 책임져주십니다.
자신과 그 가족의 생계를 위해 짊어져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서 대신 지십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일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회막 봉사에 대한 ‘보수’를 잊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십일조로 ‘갚아’주십니다.
회막의 일은 군 복무와 다름없었고(4:30),
자기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고전9:7),
먹고 사는 일에 대한 염려 때문에 주의 일 앞에서 머뭇거리지는 않습니까?
주님은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살게 하십니다(고전9:14).
주를 위해 버린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갚아주십니다.
2)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25~32절).
레위인은 자신들이 받은 심일조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거제로 드려야 했고 그것은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갔습니다.
받은 헌물중에 가장 좋은 것을 구별하여 드리고 난 후에야 그 남은 것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받은 모든 것이 마땅한 권리가 아니라 은혜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보수’로 주셨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받는 것도 은혜이고, 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은혜입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레위 자손을 위해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공동체의 책임이었습니다(24,26,28절).
하나님은 십일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아’레위인들에게 주십니다.
장로들과 말씀 사역자를 위한 경제적 지원 역시 초대 교회에 주어진 공동체적책임이었습니다(딤전4:17).
하나님께서 ‘보수’로 주시는 것을, 받는 이는 ‘은혜’로 여기고 공동체는 ‘책임’으로 여깁니다.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 아닐깡요?
2) ‘그 중 아름다운 것’을 드리고 난 다음에는 ‘타작 마당의 소출과 포도즙틀의 소출 같이’풍족하게 누릴 수 있었습니다(31,32절).
‘거룩하게 한 분분’만 드리면 나머지는 ‘어디서든지’먹을 수 있었습니다.
한계를 받아들이면 풍성해집니다.
성물을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의 유혹은 오늘도 계속됩니다.
삶을 궁핍하게 만드는 것은 한계가 아니라 욕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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