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작지 않은 것
손 원
가끔 지하철을 이용한다. 지하철은 도시의 대동맥으로 시민들은 큰 혜택을 누린다. 우리 집도 역세권에 있어 지하철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지난해부터 무료 탑승은 물론 경로석 사용도 가능하지만 얼마 전까지 요금을 내고 탔다. 요금이 소액으로 부담이 적어 익숙한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아직은 장년이란 생각과 서비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합리적이란 생각에서다. 경로우대 혜택을 받지 않고 일 년간은 그렇게 해 왔다. 그러다 아내는 만 65세가 되는 그달부터 경로우대 무임승차를 했다. 나도 언제까지나 지연할 수 없어 지금은 아내와 같이 무료 탑승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한 중국인 청년이 프랑스 유학 때 겪은 일이다. 청년은 버스 탑승 시스템이 완전히 자동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즉, 버스 이용자들이 알아서 티켓을 구입해서 탑승해야 했다. 티켓을 검사하는 일도 드문드문 있었다. 청년은 이 시스템에 허점이 많아서 티켓을 끊지 않고 버스를 탔을 때 걸릴 확률이 극히 낮다는 것도 알았다. 그 후로 청년은 티켓 없이 무임승차를 했다. 조금 양심에 걸리긴 했지만 가난한 학생이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그러고 나서 4년이 지난 후, 청년은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파리에 있는 다국적 기업 여러 곳에 지원했다. 학업 성적도 좋았고 지원한 곳이 모두 아시아 지역으로 시장을 넓히려 한다는 걸 알았기에 그는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상황은 기대와 다르게 흘러갔다. 이력을 보고 처음에 환영하던 회사가 시간이 지나 그에게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그는 다국적 기업에서 중국인인 자신을 차별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이 답답했던 그는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회사의 인사 담당자를 찾아가 자신이 입사하지 못한 이유가 자신이 중국인이기 때문이냐고 물었다. 인사 담당자의 대답은 놀라웠다. "그런 이유로 차별을 하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진출 하려는 곳도 중국 시장입니다. 오히려 중국인이라면 더 도움이 되겠지요. 당신의 이력을 보니 경험도 풍부하고 능력도 있어서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찾는 딱 그런 인재였습니다."
"아니 그런데도 저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당신의 신용카드 기록을 확인해 보니 버스 티켓 때문에 세 번이나 벌금을 물었더군요." ,
"네 그런 일이 있었죠. 그러나 그런 작은 일 때문에 신문에 논문이 실릴 만큼 재능 있는 사람을 뽑지 않는다는 겁니까?"
"그것이 정말 작은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생각은 다릅니다. 프랑스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티켓을 사지 않아 벌금을 물었을 땐 프랑스의 자동발권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2번이나 더 티켓 때문에 벌금을 물었다는 건 다르죠."
"그때 정말 돈이 없었어요."
"아니요, 당신 말에 동의할 수 없군요. 제가 그 정도로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세 번의 벌금을 물기 전이나 후에도 무수히 버스를 공짜로 타고 다녔겠죠."
"그렇다고 그 일이 죽을 때까지 꼬리표처럼 따라다녀야 하나요? 왜 그렇게 빡빡한가요? 제가 바뀔 수도 있는 거잖아요?“
"아닙니다. 당신의 행동은 두 가지를 말해주죠. 하나는 당신은 규칙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법률이나 시스템의 허점을 고의로 이용했으니까요. 또 다른 하나는 당신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죠. 우리 회사는 자신감뿐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하는 일이 많습니다.
특정 지역 시장개발 담당자에게 회사는 많은 권한을 주죠. 마치 자동화된 시스템처럼 사람의 양심을 믿고 운영하는 겁니다.
그런데 당신과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당신을 고용하지 않은 겁니다. 아마 유럽이 아닌 곳에서도 당신이 일할 곳이 있을지 의문이군요."
그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무엇보다 인사 담당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에 그는 양심의 가책과 함께 두려움마저 일었다.
디지털 시대인 만큼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체계가 자동화 되어있다. 오래전 지하철 타기가 익숙하지 않았을 때, 승차권 구입이 서툴러 출입문을 뛰어넘거나 개방문으로 드나든 적도 있었다. 누가 지켜보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금액이 소액으로 어릴 때 참외 서리 정도로 여겼기 때문이다.
누군가 ‘도덕성은 지식의 부족함을 어느 정도 보완할 수는 있지만, 똑똑하다는 것은 절대 도덕성의 부족을 메꿀 수 없다.’라고 했다. 적어도 국가의 지도자들은 도덕적이고 청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다.
청문회 때, 장관 후보자의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인 사연들이 매스컴을 달구었다. 당시 총리는 소소한 것까지 시비를 가리다 보면 장관 적격자를 찾지 못할 거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어느 정도의 위법과 반칙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다고 생각하지만 절대 작지 않다. 작은 규칙이라며 지키지 않는 사람, 늘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사람, 이런 비도덕적인 행동의 결과는 언젠가 자신과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는 것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 2024. 7. 11. 고령신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