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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베델(Bedel Pass)고개를 넘어 '천산북로'로 나아가다
* 현장법사의 발길 따라 천산산맥을 넘는다.
* ‘하늘 뫼’ 칸텡그리산
▼ 천산산맥과 칸텡그리산 그리고 이식쿨호수
제⓷번 도로가 베델고개를 넘는 ‘현장로’이고. 제⓸번 도로는 토르가르트고개를 넘어 이식쿨호수로 이어지는 현재 사용되는 도로이다
* 현장법사의 발길 따라 천산산맥을 넘는다.
현장법사는 장안을 떠나 하서주랑(河西走廊)을 빠져나와 한 달간 머무르던 고창성(高昌城)을 떠나 본격적으로 천축으로 향했다. 전통적인 ‘서역북로[천산남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굴지국[高車國]을 지나 발록가국(跋祿迦國), 즉 현재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아크수[阿克蘇:Aq-su]를 지나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아커수국은 동서로 6백여 리이고 남북으로 3백여 리에 이른다. 나라의 큰 도성은 둘레가 5∼6리이다. 토산품과 기후, 사람들의 성품이나 풍속, 그리고 문자와 법칙은 굴지국의 것과 똑같으며 언어는 조금 다르다. <『대당서역기 권 1』>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현장의 행로는 『대당서역기』보다도 현장의 개인적인 전기체 기록인『대당대자은사삼장전』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기서 서북쪽으로 3백 리를 가서 사막 하나를 지나 능산(凌山)에 이르렀다. 이곳은 총령(蔥嶺)의 북쪽 기슭으로서 그 산은 험준하고 하늘에 닿을 듯이 높았다. 개벽 이래 빙설이 쌓이고 쌓여서 빙산(氷山)이 되었는데, 봄과 여름에도 얼음덩이가 녹지 않고 빙산처럼 얼어붙어서 마치 하늘과 맞닿아 있는 듯하였다. 쳐다보면 흰 빛이 끝없이 뻗어 있는데, 얼음 봉우리가 길옆에 무너져 있는 것이 어떤 것은 높이가 백척 가량 되고 어떤 것은 넓이가 수백 평이나 되었다.
이 기록을 보면 현장의 발길은 전통적인 천산남로상으로 나아 가는게 아니라 엉뚱하게도 능산(凌山)이란 설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여기서 현장은 그 능산을 ‘총령의 북쪽’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사실은 이 능산은 천산산맥(天山山脈, Tian Shan Mt Range)의 한 갈레이다. 현장은 총령의 범위를 현대 지리학보다도 좀 더 넓게 포괄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현장은 7일 만에 능산을 넘었는데, 무지하게 고생을 했는지, 다음과 같이 구사일생의 고행담을 술회하고 있다.
길이 좁고 험해서 이 고개를 넘기가 무척 어려웠다. 거기에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아무리 털옷을 겹겹이 입어도 추위를 면할 수가 없었으며,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할 때에도 머물 만한 마른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솥을 걸어 밥을 하고 얼음 위에서 잠을 자야만 했다. 이렇게 7일의 여행 끝에 비로소 산을 벗어났는데 일행 중에 열이면 서너 사람은 병들어 죽거나 얼어 죽었다. 더구나 소나 말은 그 보다 더 희생이 많았다.
다시 한 번, 현장의 발길을 정리해 보면, 아커수에서 ‘천산남로[서역북로]’를 따라 카슈가르로 나아간 것이 아니라 바로 천산산맥을 넘어 현 키르지즈스탄의 이식쿨호수로 나아간 것이 확실하다. 이 루트는 보편적인 행정이 아니다. 말하자면, 구법승들 중에서는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색다른 ‘천산남, 북로’를 넘나드는 루트를 개척한 셈이다. 이에 대해 좀 더 부연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다.
『대당서역기』에는 자세한 해명이 없지만, 그와 쌍벽을 이루는 현장의 전체 기록인『대자은사 삼장법사전』<이하『자은전』으로 약칭한다>에 의하면 순례초기 법사가 고창국의 국왕 국문태(麴文泰624~640 延寿)를 만나 한달간의 설법을 해주는 조건(?)으로 천축행의 후원을 약속 받았고, 국왕은 약속을 지켜 당시 서돌궐의 대칸(大汗)이 머물고 있었던 소엽성(素葉城)으로 현장을 안전하게 호송해 주었다.
국왕은 법사를 위해 법복 30벌을 만들고 또한 서역이 매우 춥기 때문에 면의(面衣), 장갑, 신발, 버선 따위의 [방한복] 여러 가지도 준비했다. 그리고 황금 1백 냥과 은전 3만, 비단과 명주 등 5백 필을 법사의 왕복 20년 동안의 경비로 보시하였다. 또한 말 30필과 일꾼 25명과 시어사(侍御史) 환신(歡信)을 보내어 서돌궐의 대칸인 섭호가한(葉護可汗)의 아문(衙門)까지 배웅하도록 안배를 해주었다.
게다가 24나라에 보내는 24통의 서신을 준비하고 그 나라마다 비단 한 필씩을 선물로 함께 보내도록 했다. 그리고 대칸에게는 따로 비단 5백 필과 과일 두 수레를 헌상하면서 아울러 별도의 편지를 보냈다. <『자은전』권 1>
위의 기록을 보면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인『대당서역기』가 탄생시킨 숨은 공신은 바로 고창국왕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현장이 나라의 법을 어기고 맨 몸으로 밀출국을 하였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큰 공덕을 베푼 고창국은 바로 당나라에 대항할 의도를 가졌다는 괘씸죄에 걸려, 640년 당 태종에게 침공을 당해 멸망당하고 말았으니 역사의 은원(恩怨)은 마치 ‘정글의 논리’처럼 비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물론 본 주제와는 상관없는 사족이지만, 이 국문태의 고창국과 우리 신라가 교류를 한 물증이 발견되어 한 때 학계가 떠들썩했던 적인 있었으나 이는 각주로 돌리고 다시 현장의 발길을 따라 가보도록 하자.
▼고창국의 연호인 연수가 새겨진 은그릇이 신라 서봉총에서 발견되어 실크로드를 경우한 고창극과 신라가 교류했을 근거가 되고 있다.
최근(2012년 3월 필자의 현지확인) 현장의 개척한 이 루트는 현 신장위구르의 아커스[阿克蘇]→우쉬마을[烏什]→베델촌[別達村]→베델고개(Bedel, 4,284m)→키르기즈스탄의 베델마을→카라세이(kara-say)→이시쿨호반의 바르스쿤(Barskoon)→토크마크(Tokmak/素葉城)를 잇는 로정이다.
그리고 나서 다시 키르기즈스탄을 동서로 통과하여 우즈베키스탄의 사마르칸트로 이어진다. 그곳에서 계속 남행하면 철문을 거처 아무다리아 강을 건너 아프칸으로 나아가고, 서행하면 →부하라→히바→투르크메니스탄 메르브→이란으로 이어진다.
▼ 현장법사가 넘어간 능산-천산으로 가는 길
/베델고게? VS 배달민족 ?
▼ 천산산맥의 중국과 키르기즈스탄의 국경의 마지막 마을 탁운마을 이정표
▼ 중국측 경계비
▼ 키르기즈의 경계비
여기서 내친 김에 한 숨 쉬어가며, 현재 천산산맥을 넘는 방법을 총괄해보고 나서 그리고 현장의 발걸음을 뒤 쫓아가보기로 한다. 현재 천산산맥을 넘는 방법은 크게 ‘5개’인데 북쪽으로 내려오면서,
⓵ 우루무치→[국제기차]→아라산[阿拉山]고개→카자흐스탄 알마타로
⓶ 이닝[伊寧市]→[국제버스]→코르고스 고개(Khorgos Pass)→카자흐스탄의 알마타로…
⓷ (현장로) 아커스→베델촌(別達村)→보그콜도이 산맥의 베델고개(4,284m)→키르기즈스탄의 베델마을(Bedel)→카라세이→바르스쿤→이시쿨호수를 우회하여→토크마크→ 비슈케크(Bishkek) …
⓸ 위의 ‘현장로’ 대신으로 현대에 활성화된 루트로 카슈가르→토르가르트 고개(吐爾葛特/Torugart Pass, 3,630m)→키르기즈스탄의 나린(Narin)→이시쿨호수 서쪽의 발리크치(Balikchi)→토크마크→비쉬케크
* 이 길은 현재(2014년 6월) 중국과 키르기즈스탄의 국경무역이 활발한 곳이고 국제버스도 운행한다. 그러나 외국관광객들에게는 여행사를 통한 대절차를 준비한 여행객에게 열려있기는 하지만, 상황변동이 심하니 미리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⓹ (A351번 도로) 카슈가르→이르케쉬탐 고개길(Irkeshitam Pwy, 伊爾克什坦, 3,536m)→타지키스탄 사리타쉬(Sari Tash)라는 분기점에서 4 갈레로 갈라진다. 이 길은 현재(2014년 6월) 중국과 키르기즈 및 기타 중앙아시아독립연합국[CISI]과의 중계무역이 활발한 곳으로 동절기만 제외하고는 외국관광객들에게 열려진 유일한 국경선이고 ‘카슈가르↔오쉬’ 간 국제버스도 이용할 수 있다. 단 사리타쉬에서 두산베로 서행하는 ⓹-2)는 외국인에게 열려있지 않다.
⓹-1) 북쪽으로 키르기즈스탄의 오쉬(Osh)쪽으로 올라가 페르가나 계곡을 따라 소그드(Sogd)지방의 중심지인 사마르칸트로 나아가는 루트이다.
⓹-2) 사리타쉬에서 바로 직진[西行]하여 타지키스탄의 수도인 두산베를 거처 우즈벡의 테르메즈에서 철문을 지나 아무다리아 강을 건너 아프간으로 들어가는 루트이다.
⓹-3) M41번 도로, 이른바 ‘파미르하이웨이’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무르갑과 알리추르를 지나 타지키스탄의 고르노바닥샨주(GBAO)를 관통하여 호로그에 이른 다음 다시 두산베로 나아간다.
⓹-4) M41번 도로의 중간지점인 알리추르에서 카르구쉬 고개를 넘어 랑가르에 도착하여 와칸주랑과 나란히 파미르천 북안을 따라 내려가 이쉬카심(Iskashim)에서 아비판지강을 건너 아프간령 바닥샨주로 내려가 카불로 이어지는 루트이다. 단 호로그에 있는 아프간영사관에서 아프간비자를 받을 수는 있으나, 한국인은 현재로서는 발급중지 상태이니 이점 참작하기 바란다.
▼ 중국과 키르기즈 간에 열린 국경선인 토르가르트 체크포인트
단, 현지인들 이외의 외국인은 국제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
▼ 천산산맥의 중국측 토르가르트 체크포인트
▼ 서역으로 가는 객차
* ‘하늘 뫼’ 칸텡그리산(汗騰格里山, Mt Khan Tengri, 6,995m)
현장법사가 능산(凌山)이라고 불렀던 산은 사실은 천산산맥의 한 줄기로, 넓게 보면 파미르고원의 동쪽 줄기에 해당된다. 여러 개의 거대한 산맥들이 사방팔방에서 가운데로 모여들어, 마치 ‘거대한 매듭(G.Knot)’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곳이 ‘세계의 지붕’이란 명칭으로 알려진 파미르고원인데, 그중 동북쪽으로 길게 3천㎞나 뻗어 내려 거대한 산맥이 바로 천산산맥이다. 그리고 칸텡그리산은 그 안에 속해 있는 한 봉우리이다.
지형학적으로 보면 천산산맥을 분수령으로 하여 북쪽으로는 키르기즈스탄과 카자흐스탄의 드넓은 초원지대인 중가리아 분지(Dzungarian Basin,準噶爾盆地)가 펼쳐지고 그 사이로 실크로드의 ‘천산북로’가 지나간다. 그리고 남으로는 신장위구르의 타림분지, 즉 타클라마칸 사막이 펼쳐지며 그 북쪽으로 5일 일정으로 늘어서 있는 오아시스 마을을 연결하며 ‘천산남로=서역북로’가 지나간다.
. 파미르고원과 천산산맥에는 수많은 봉우리가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칸텡그리 성산[St Khan Tengri Mt]이 단연 우뚝하다. 바로 현장법사가 베델고개를 넘으며 바라다보았다던 그 숨 막히게 웅장한 그 설산이다. 비록 지리학적으로 이 산은 천산산맥 안에서 포베다봉(7,439m)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그러나 이 산의 진정한 의미는, 지리학적 해발고도를 떠나서. 까마득한 옛날부터 천산산맥 아니 전 파미르고원의 주인으로,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역할을 해왔다는데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하늘 뫼’였다.
그런 면에서 알타이 신화의 ‘칸텡그리’와 힌두신화의 ‘수메르[St Smeru Mt]’는 대조를 이룬다. 모두 신화적인 품격을 품고 있다는 점은 공통분모로 하고 있지만, 전자가 알타이 샤머니즘을 모태신앙으로 가진 투르크계통의 민족들이 다같이 ‘민족의 뿌리’라고 인식하고 있는 반면에, 후자는 ‘수미산설(須彌山說)’을 공유한 인도아리안계 민족들과 4대종교를 모태신앙으로 한 민족들이 우주의 중심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칸텡그리산에는 만년설과 여러 곳의 빙하가 있는데 이들은 대개 해발고도 2,500~2,800m의 삼림지대 끝에까지 내려와 그 만년설이 녹은 물이 모여서 ‘하늘호수’ 를 이루고 나아가 초원지대를 적시며 흘러내려 메마른 사막 속으로 스며들었다가 때가 되면 솟아올라 오아시스를 만들어 그 아래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생명들에게 생명수를 공급하고 있다. 이른바 천신들이 뭇 중생들에게 내리는 감로수인 것이다.
▼ 천산산맥의 봉우리의 하나인 칸탱그리산의 신령스런 자태
그런데 아무래도 ‘천산산맥’이란 명칭에 대해서는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앞에서 이미 강조한 것처럼, 초원지대의 원주민들은 이 산을 옛날부터 ‘칸텡그리’라고 불러왔다. 이른바 ‘하늘 뫼’ 사상, 즉 ‘천산설(天山說)’의 주 무대인데, 특히 ‘알타이 신화’에서 그 존재가 두드러진다.
이런 범주의 신화나 설화의 해석은 좀 더 은유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메마른 사막이나 막막한 초원지대에서 태어나 싫든 좋든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런 환경에 순응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고대인들에게 초원 건너편에, 마치 신기루 같이 하늘을 반쯤 가릴 정도로 솟아 있는 설산은 자연스럽게 천신들의 거처로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말이나 생각으로 감히 추적해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개념의 것으로 설사 그 산이 눈과 얼음과 바위나 흙으로 만들어진 사실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만년설이 쌓인 설산에서 풍겨져 나오는 거대한 에너지는 인간의 인식의 경계를 넘는 신비스런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 백말을 타고 고깔모자를 눌러 쓴 한 키르기즈인이 칸탱그리산(汗騰格里山, Mt Khan Tengri, 6,995m)위에 뜬 ‘솔롱고스[무지개]를 바라보는 이 민화는 알타이족에게 이산이 어떤 의미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물론 민족주의적 시각으로 보면 모든 민족들의 혈통의 뿌리를 이루는 신화이겠지만, 거시적 진화론으로 재해석해보면 여러 종류의 다양한 ‘버전’의 ‘천산설(天山說)’이 생겨난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특히 인류가 불을 사용하면서 길고 긴 석기시대를 마감하고 청동기 시대로 들어설 즈음 씨족이나 부족형태로 각기 흩어져 살아가던 인류는 민족이나 국가란 보다 복잡한 집단적 형태가 필요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러기 위해서는 초월적인 인물도 필요했을 것이고 그래서 하늘의 혈통을 이은 지상의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역할은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통력을 가졌다는 샤먼(Shaman)이 대신하였을 것이다.
“나의 조상이 너희들을 다스리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이다.” 라고… 이른바 하늘자손들의 이런 ‘천손강림설(天孫降臨說)’은 세계적으로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그중에 우리 배달민족도 당연히 빠질 수 없다. 이른바 ‘마고(麻姑)신화’와 ‘단군왕검(檀君王儉)설’ 그리고 ‘태백산설’ 등인데, 여기서 그것들이 역사니 신화니 하는 논쟁은 우리의 주제에서 좀 비껴나기에 후일로 미루면서 줄이지만, 하여간 이 칸텡그리산을 우리 배달민족적인 언어로 풀이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중간단계의 설득조의 이야기는 생략하고 결론부터 내리자면, ‘칸’은 우리 민족의 ‘한’으로, ‘텡그리’는 ‘단군(檀君)’으로, ‘아스타나(astana)’는 ‘아사달(阿斯達)’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먼 아프리카에서 호모사피엔스로 진화하면서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태고의 인류 중의 한 무리가 바로 우리들 배달민족이란 대 전제 하에서 그들이 한 때 머물다가 떠나온 고향이 바로 칸탱그리산이라는 일종의 ‘가설’은 의미심장한데, 이것들이 바로 『부도지』나『한단고기』같은 아직은 야사적인 고서들이 힘주어 말하고 있는 ‘환인(桓因)할배설’의 실체이다.
알타이어의 ‘칸탱그리’를 한자의 뜻으로 의역하면 ‘천산(天山)’이 된다. 그리하여 칸텡그리 대신 중국어식 발음인 ‘티엔샨[Tian Shan Mt]’으로 세계지도에 버젓이 이름을 올리면서 칸탱그리에 얽힌 알타이문화 자체를 중원문화권으로 편입시켜 버렸다.
더구나 최근 고고학적 발굴에 의하면, 배달민족의 터전이었던 동북아시아의 여러 곳에서 황하문명보다 기천여 년이나 앞선, '요하문명'(遼河文明)은 그 실체를 드러냈으나 아직도 서안 인근에 있다는, 거대하고 막대한 피라미드군 같은 이질적인 고대문명은 중국당국의 고의적인 은폐작전으로 아직도 베일을 벗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동이족문화를 야만시했던 중국 역사학계가 황하문명보다 적어도 천년 이상 오래된 초고대문명이 동이족(東夷族)의 특색이 분명한 것이기에 진퇴양난의 입장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문제의 키워드는 바로 ‘고조선’이란 나라이기에, 그래서 고심 끝에 찾아낸 대안이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역사개편작업이었다. 그 골자는 동이족의 문화도, 현 '중국내 조선족'의 것이기에 당연히 중화민국의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논리이다.
우리 역사힉게가 그 동안 이른바 이병도학파의 반도사관에 매달려 '고조선'을 신화로 만들어 내 팽겨쳐온 사이에 중국 사학계에서는 고고학계의 발굴을 통해 고조선이란 동이계민족이 세운 왕조를 정식으로 인정하고는 중국의 고대사로 편입해버린 것이다.
사족하나 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광대한 옛 고조선뿐만 아니라 고구려의 땅도 중국의 것이라는 논리로 귀결시킬 것이 뻔하니 우리로선 심히 우려가 되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는 고구려 땅이었던 북조선땅도 중국의 것이라눈 말이아닌가?
참 참 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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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서안 근처의 미공개된 피라미드군 사진들/ 동이족의 특징이 분명한 고분군으로 고조선의 것이기에 공개를 못하고 있다고 한다.
첫댓글 칸텡그리가 천산이라...
그럼 원래의 태벡산에 해당되는 산이 칸텡그리산이란건가여?
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이야기지만, 그런 셈입니다. 태백산-백두산-곤륜산-천산으로 이어지는 '성산 천산설'의 무대로 꼽는 곳입니다.
그런 거창한 의미가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