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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 간 문 학 이 야 기 원문보기 글쓴이: 마운틴
9. 프란체스카의 편지
프란체스카 존슨은 1989년 1월에 세상을 떴다. 사망할 당시 예순아홉 살이었다. 로버트 킨케이드가 살았다면 그는 일흔여섯 살이었을 것이다. 사망 원인은 '자연사'로 기록되었다. 의사는 마이클과 캐롤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돌아가셨습니다. 사실 우리는 약간 당혹스러워요. 특별한 사망 원인을 찾아낼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부엌 식탁 위에 넘어져 있는 것을 이웃에 사는 사람이 발견했습니다."
1982년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프란체스카는 시체를 화장하고, 재는 로즈먼 다리에 뿌려 달라고 요청했다. 매디슨 카운티에서는 화장이 흔한 일이 아니어서 -- 어쩐지 약간 급진적인 행위라는 관점이었다 -- 그녀의 이런 소망은 카페와 텍사코 주유소, 농기구 상점에서 열띤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장례식이 끝나고, 마이클과 캐롤린은 천천히 차를 몰아 로즈먼 다리로 가서 프란체스카의 소망대로 재를 뿌렸다. 집 근처에 있는 다리이긴 했지만, 존슨 가족에게는 이 다리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 곳은 아니었기에 그들은 의아스럽기만 했다. 지각있는 어머니가 어째서 그렇게 수수께끼 같은 유언을 하셨을까. 어떤 이유로, 보통의 관습대로 그들의 아버지 곁에 묻히기를 원하지 않았을가. 암만 생각해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재를 뿌린 마이클과 캐롤린 남매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집안을 정리하고, 대여 금고에 보관된 물건들을 변호사의 입회하에 찾아서 집으로 갖져왔다.
그들은 상자에 있던 물건을 나누어서 각자 검토하기 시작했다. 마닐라지 봉투는 캘롤린이 맡은 물건더미 거의 아래쪽에 들어 있었다. 그녀는 봉투를 열어 안에 든 물건을 꺼내 보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로버트 킨케이드가 1965년 프란체스카에게 보낸 편지를 읽어싿. 그 다음으로는 1978년의 편지를 읽었고, 다음에는 1982년 시애틀의 변호사에게 온 편지를 읽었다. 마침내 그녀는 잡지 스크랩을 찬찬히 살피게 되었다.
"마이클."
그는 놀람과 우울함이 뒤섞인 캐롤린의 목소리에, 곧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캐롤린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어머니는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남자를 사랑했어. 그는 사진 작가였지. 우리 모두 다리 이야기가 나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봐야 했던 게 기억나? 이곳의 다리 사진을 찍은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어. 그 당시 아이들이 떠들어 댔던 이야기가 생각나,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이상한 차림의 남자에 대해 모두들 수군거렸지."
마이클은 타이를 느슨하게 하고 셔츠의 단추 하나를 푼 채로 그녀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다시 한 번 천천히 그 이야기를 해봐, 네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 모르겠어."
편지를 다 읽은 후, 마이클은 아래층의 옷장으로 갔다가 다시 프란체스카의 침실로 올라갔다. 그는 전에는 있었는지 몰랐던 호두나무 상자를 열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부엌 식탁으로 왔다.
"캐롤린, 여기 그의 카메라가 있어."
상자의 끝쪽에는 프란체스카의 필체로 캐롤린이나 마이클 이라고 적힌 봉인한 봉투가 있었고, 카메라들 사이에는 가죽 표지의 공책 세 권이 끼여 있었다.
"내가 이걸 읽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 괜찮다면, 네가 내게 큰 소리로 읽어 줘."
그녀는 봉투를 열고 큰 소리로 읽어내려 갔다.
1월 7일, 1987
캐롤린과 마이클에게
지금은 몸이 아주 좋지만, 이제 내 일을 정리할(사람들은 그렇게 표현하더구나)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희가 알아야 할 굉장히 중요한 일이 있다. 그래서 내가 이 편지를 쓰는 거란다.
금고를 뒤져서 1965년 소인이 찍힌, 나에게 온 커다란 마닐라 봉투를 발견한 후, 너희가 이 편지를 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부엌의 낡은 식탁에 앉아서 이 편지를 읽도록 해라. 너희는 내가 왜 그런 요청을 하는지 곧 이해하게 될 게다.
이 편지를 내 자식들에게 쓰는 것이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지니고 죽기에는 너무나 강하고, 너무나 아름다운 일이 여기 있단다. 그리고 너희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려면, 모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다 알려면, 내가 앞으로 하게 될 이야기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단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라.
벌써 알았겠지만, 그의 이름은 로버트 킨케이드였단다. 중간 이름자의 이니셜은 'L'이었는데, 어떤 이름의 약자였는지는 나도 몰랐지. 그는 사진 작가였고, 1965년 지붕 있는 다리를 찍으러 여기 왔단다.
그 사진이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에 났을 때, 이지역 사람들이 얼마나 흥분했는지 기억해 봐라. 또 내가 그 시기부터 그 잡지를 받기 시작했다는 것도 아마 생각날 거다. 이제 너희도 알았겠지. 내가 갑자기 그 잡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를. 그런데 시더 다리 사진을 찍을 때는 나도 그와 함께 있었단다. (그의 카메라 배낭을 옮기는 일을 맡았지.)
이해해 주렴. 난 너희들의 아버지 또한 사랑했다는 것을, 열광적인 그런 사랑은 비록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때도 그걸 알았고, 지금도 그걸 알고 있단다. 그이는 내게 잘해 주었고, 내게는 보석 같은 너희를 주었지. 그 점을 잊지 말아라.
하지만 로버트 킨케이드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평생토록 보지도, 듣지도, 어디서 읽어보지도 못했던 그런 사람이었지. 너희가 그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무엇보다도 너희는 개가 아니니까.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가 진화의 막다를 가지에 다다른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면, 너희도 그의 주위를 맴돌 수밖에 없었을 거야. 어쩌면 내 노트들과 잡지 스크랩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만, 그것들로는 충분하지 않을 게다.
어떤 면에서, 그는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니었지. 내가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점이야. 나는 늘 그를 유성 꼬리 위에 탄 표범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지. 그는 그런 식으로 움직였고, 그의 몸은 꼭 그랬단다. 그는 따스하고 친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대단히 강인한 사람이었다. 그에게는 애매하지만 비극적인 분위기가 풍겼지. 그는 컴퓨터와 로봇이 판을 치는 조직화된 세상에서 스스로 낙오되고 있다고 느꼈단다. 그는 자신을, 그의 표현에 따르자면, 마지막 카우보이 가운데 하나로 보았고, 자신을 구식이라고 생각했지.
그가 차를 세우고 로즈먼 다리까지 가는 길을 물었을 때, 나는 처음 그를 보았지. 아버지와 너희들은 일리노이스 주 박람회에 갔을 때였어. 내 말을 믿어 주렴. 나는 모험심이 발동해서 그를 쫓아 다닌 것은 결코 아니었어. 하지만 그르 본 지 5초도 지나지 않아서, 난 그를 원한다는 것을 알았지. 내가 나중에 그를 원하게 된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러니 제발, 그를 시골 여자들을 희롱하고 돌아다니는 카사노바쯤으로는 생각하지 말렴.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단다. 사실 그는 약간 수줍어했어. 우리에게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은 그 사람 탓이 아니야. 나에게도 절반은 책임이 있어. 사실은, 내게 더 많은 책임이 있는지도 몰라. 그의 팔찌에 달린 쪽지는, 우리가 처음 만난 다음 날 아침 그가 볼 수 있도록 내가 로즈먼 다리에 붙여놓은 것이란다. 그가 찍은 내 사진을 제외하면, 그 쪽지야말로 내가 살아 있는 인물이라는 유일한 증거물이었어. 그 사람은, 내가 꿈 속에서 만난 사람이 아니라는 증거로, 그렇게도 오랜 세월 동안 쪽지를 간직해 왔단다.
자식들이란 부모를 섹스와는 관계 없는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너희에게 충격을 주지 않기를 바라며, 너희가 나에 대해 갖고 있는 추억을 망가뜨리지 않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집의 낡은 부엌에서 로버트와 나는 몇 시간을 함께 보냈지. 우린 이야기하고, 촛불을 켜고 춤을 추어어. 그래, 우린 거기서 사랑을 나누었고, 침실에서도, 초원의 잔디 위에서도,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어떤 곳에서도 사랑을 나누었어. 그것은 믿을 수 없는 강인한, 탁월한 사랑의 행위였어. 며칠간 거의 쉬지 않고 계속되었지. 그에 대해 생각하면 '강인하다'란 말을 언제나 떠올리게 되지. 적어도 우리가 만났을 당시에는 그랬어.
그는 강렬함에 있어서 화살 같았지. 그가 내게 사랑을 해줄 때면, 나는 그냥 무기력해졌지. 나약해진 건 아니었다.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어. 그냥, 글쎄, 그의 강렬한 감정과 육체적인 힘에 압도되었다고 할가. 내가 그 말을 그에게 속삭였더니, 그는 무심코 이렇게 말하더구나. "나는 고속도로고, 유랑자고, 바다로 가는 돛단배요."라고.
나는 나중에 사전을 찾아봤지. 사람들이 '유랑자(peregrine)'란 말을 들으면 처음 생각하는 것은 매지 하지만 그 단어에는 다른 뜻이 있고, 그는 그것을 알고 있었을 거야. 하나는 '외국인, 외래인'이라는 뜻이지. 두 번째로는 ' 방랑하거나 떠돌아다니거나, 헤매다니는'이란 뜻도 있어. 어원은 라틴어 'peregrinus'인데 그것은 이방인을 뜻한단다. 그는 그 모든 것을 지닌 사람이었어. 이방인, 더 일반적인 의미로는 외래인, 방랑자. 그리고 이제 생각해 보면 매와 같은 사람이기도 했지.
얘들아, 내가 말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는 것을 표현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 주렴. 나는 다만 언젠가 너희들도 내가 경험한 것을 경험하게 되기를 바랄 따름이란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구나. 이렇게 문명화된 세상에서, 로버트 킨케이드가 지녔던 것 같은 특별한 힘에 사로잡힐 여자가 어디 있겠니.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가 않아. 그러니까 마이클, 너는 안 되겠다. 캐롤린으로 말하자면,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그 사람 한 명뿐이지 더는 없다는 나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것 같아 안됐구나.
너희 아버지와 너희 둘이 아니었다면, 나는 곧자 어디든 그와 함께 떠났을 게야. 그는 내게 가자고 부탁했지. 거의 간청하다시피 했단다. 하지만 나는 그러려고 하지 않았고, 그는 너무나 민감하고 또, 다른 사람을 종중하는 스타일이어서, 그 후로는 우리의 생활에 끼여들 수가 없었지.
모순은 이런 점이야. 만일 로버트 킨케이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오랜 세월을 농촌에 머무를 수 있었을 것 같지가 않구나. 나흘 동안, 그는 내게 인생을, 우주를 주었고, 조각난 내 부분들을 온전한 하나로 만들어 주엇어. 나는 한 순간도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단다. 그가 내 의식속에 있지 않을 때도, 나는 어디선가 그를 느낄 수 있었고, 그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
하지만 그런 것이, 너희 둘이나 너희 아버지에 대해 내가 느끼는 무엇을 빼앗아가지는 않았단다.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내가 옳은 결정을 했다고 자신할 수가 없어. 하지만 가족을 생각해 보면 나는 내가 옳은 일을 했다고 확신한단다.
난 나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고, 너희에게도 정직하게 말하려고 한다. 스스로에게 정직하자고 몇번이나 다짐해 보아도 이것만은 진실인 것 같아. 우리 둘이 함께 지은 '사랑의 집'에 대해 로버트가 나보다 더 잘 이해했다는 것. 나는 시간이 흐르고 난 후에야 점차 그 상징성을 이해하기 시작했단다. 그가 나와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가자고 청했을 때 내가 그 점을 이해했다면, 아마 나는 그와 함께 떠났을 게야.
로버트는 이 세상이 지나치게 이성적으로 되어서 마법을 믿지 않게 되었다고 믿었지. 나는 내가 결정을 내리는 데 있어서 너무 이성적이 아니었는지, 돌이켜보곤 한단다.
너희로서는 장례 절차에 대한 내 요구가 이해하기 힘들었으리라 믿는다. 어쩌면 머리가 맑지 않은 노인네의 요구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 1982년 시애틀의 변호가가 보낸 편지와 내 공책을 읽으면, 내가 그런 요구를 한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게다. 나는 내 가족에게 인생을 주었고, 로버트 킨케이드에게는 내게 남은 것을 주었다.
리처드는 그가 다다를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내 안에는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생각해. 때로는 그가, 화장대에 숨겨 놓은 마닐라 봉투를 몰래 본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도 했어. 그이가 죽기 직전, 내가 디모인의 병원의 그의 침상 곁에 앉아 있을 때,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어. "프란체스카,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꿈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미안하오, 당신에게 꿈을 심어 주지 못해서." 우리가 함께 살았던 생에 속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지.
너희에게 죄책감이나 연민이나 그런 것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아. 지금 나의 목적은 그것이 아니란다. 다만 너희가 알기를 바랄 뿐이야. 내가 로버트 킨케이드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그가 그랫듯이, 나는 그 사랑의 감정을 오랜 세월 동안 날이면 날마다 지니고 살았단다.
두 번 다시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우린 두 사람이 뭉쳐질 수 있는 최대한의 강도로 굳게 맺어져 있었지. 이런 걸 충분히 표현할 만한 말을 찾을 수가 없구나. 우리는 분리된 개체가 아니고 우리 두 사람에 의해 제3의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고 그이가 말했을 때가, 최고 절정이었지. 우리 둘 다. 그 제3의 존재에서 떨어져 존재한 적은 없어. 하지만 우리가 만든 하나의 존재는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되었지.
캐로린, 전에 내 옷장에 있는 밝은 핑크색 원피스를 놓고, 우리가 심하게 말다툼을 벌였던 것을 기억하니? 너는 그것을 입어보고 싶어했지. 내가 그걸 입은 걸 본 기억이 없다면서, 그러니까 네게 맞기만 한다면 넘겨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어. 그 원피스는, 로버트와 사랑을 나누던 첫날 밤 내가 입었던 옷이었어. 평생토록 그날 밤처럼 그렇게 멋지게 보였던 적이 없었지. 그 원피스는 그 시절에 대한 나만의 작고 바보스런 추억이었어. 그래서 다시는 입지 않았고, 네가 입어보는 것도 거절했지.
1965년 로버트가 떠난 뒤, 나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그의 가족사라든가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야. 며칠 안 되는 시간동안 그에 대해 거의 모든 것을 알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다 알았지. 그는 외아들이었고, 양친이 다 죽었고, 오하이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지.
그가 대학에 다녔는지, 고등학교에 다녔는지도 확실히 모르지만, 그는 원초적이고 본능적이고 거의 신비스러울 정도로, 뛰어난 지성의 소유자였지. 아, 그래.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 종군 사진 작가로 참가했었지. 남태평양에서, 해군으로.
그는 한 번 결혼하고 이혼했는데, 나와 만나기 오랜 전이었지. 아니는 없었어. 그의 아내는 음악가였는데, 포크싱어라던가. 그가 촬영 여행 때문에 오래 집을 비우는 것이 결혼 생활을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더구나. 그는 파경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렸지.
내가 아는 바로는, 로버트에게 다른 가족은 없었어. 너희에게 부탁한다. 그를 우리의 일부로 받아들이자고. 처음에는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게는 가족이 있었고, 다른 사람들과의 생활이 있었지. 하지만 로버트는 혼자였단다. 그것은 불공평한 일이었고, 나는 그것을 알아.
나는 존슨 가족 안에 이 모든 것이 보존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구나. 리처드에 대한 기억과 사람들이 그에 대해 말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너희 판단에 맡기긴 하겠지만.
어찌 됐든, 나는 로버트 킨케이드와 내가 함께 나눈 것들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야. 오랜 세월에 걸쳐 그를 절실하게 사랑했지만. 내 쪽에서 그에게 연락하려고 애썼던 것은 딱 한 차례뿐이었어. 너희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였어. 시도는 실패했고, 나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가 걱정스러웠어. 그런 두려움 때문에 다시는 연락하려고 애쓰지 않았지. 현실과 마주할 수가 없더구나. 그러니 1982년, 변호사의 편지와 소포가 왔을 때, 내 기분이 어땠을지 이젠 너희도 상상할 수 있겠지.
말했듯이, 너희가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한 일도 사랑해야 하는 거야.
로버트 킨케이드는 대부분의, 아니 모든 여자가 경험하지 못할 방식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어. 여자가 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그는 멋지고 따스한 사람이었고, 분명히 너희의 존경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란다. 너희가 그에게 존경과 살을 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는 나를 통해, 그 사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너희에게 잘해주었으니까.
잘 지내거라. 내 아이들아.
어머니
부엌에는 침묵이 흘렀다. 마이클은 깊게 숨을 내쉬고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캐롤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싱크댜. 바닥, 식탁, 모든 것을.
그녀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오, 마이클, 마이클. 그 오랜 세우러 동안 서로를 그렇게도 간절하게 원하며 살았던 그분들을 생각해 봐. 어머니는 우리 때문에, 아버지 때문에, 그를 포기했어. 그리고 로버트 킨케이드는 우리에 대한 어머니의 감정을 존중하느라 멀리 떨어져 지냈고. 마이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우린 우리의 결혼 생활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데. 우리 자신이 그런 식으로 끝나버린 믿기 어려운 사랑의 원인의 일부가 되단다.
그분들은 나흘을 함께 보냈어. 딱 나흘. 일생 중에서 말이야. 우리가 일리노이스 주의 웃기는 박람회에 갔을 때였어. 엄마의 사진을 봐. 나는 엄마의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너무나 아름다워. 그건 사진 기술 때문이 아니야. 그 사람이 엄마를 위해 해낸 일이야. 엄마 얼굴을 봐. 얼마나 자유롭고 활달해. 머리는 바람에 날리고,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엄마는 정말 멋져 보이잖아."
"맙소사."
마이클이 할 수 있는 말은 이 한 마디뿐이었다. 그는 타올로 이마를 훔치고, 캐롤린이 보지 않을 때 눈물을 훔쳤다.
캐롤린이 다시 말했다.
"그 세월 동안 그는 어머니와 연락하려고 애쓰지도 않았을 거야. 그리고 혼자서 죽은 게 틀림없어. 그래서 카메라들이 어미니에게 보내진 거야……. 핑크색 원피스를 놓고 엄마와 내가 말다툼을 대판 벌였던 게 기억나. 싸움이 며칠 갔지. 나는 비꼬면서 이유를 물었어. 그리고 엄마에게 말도 하지 않았지. 엄마가 한 말은 단지 '안 돼, 캐롤린. 그것은 안 돼.'뿐이었어.
그러자 마이클도, 그들이 앉아 있는 낡은 식탁을 떠올렸다. 아버지가 죽은 후, 프란체스카가 그에게 다시 부엌에 가져다 놓아달라고 부탁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캐롤린은 작은 봉투를 열었다.
"여기 그의 팔찌와 메달이 달린 은목걸이가 있어. 그리고 어머니가 편지에서 말한 메모도 있고. 로즈먼 다리에 붙여 놓았다는 것 말이야. 그가 보낸 다리 사진에 종이 쪽지가 붙어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어. 마이클, 우린 이제 어떻게 하지? 잠깐 생각하고 있어. 곧 돌아올 테니까."
그녀는 위층으로 올라갔다가 몇 분 후 비닐 봉투에 조심스럽게 집어 넣은 핑크색 원피스를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원피스를 꺼내서 마이클이 볼 수 있도록 높이 치켜들었다.
"어머니가 이걸 입고 여기 부엌에서 그와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 봐. 우리가 여기서 보낸 시간들을 생각해 봐. 우리와 함께 앉아서 우리의 문제나 어느 대학에 갈지,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머니가 눈앞에 그렸을 이미지들을 생각해 봐. 하나님 맙소사, 우린 어머니에 비하면 너무나 순진하고 성숙하지 못해."
마이클이 고개를 끄덕이고 싱크대 위의 찬장으로 몸을 돌렸다.
"어머니가 마실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을까? 대답은 하나님이나 아시겠지. 아까 물었던 것에 대한 대답인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모르겠어."
그는 찬장을 뒤져서 거의 빈 브랜디 병을 찾아냈다.
"두 잔은 되겠어, 캐롤린. 한 잔 할래?"
"그래."
마이클은 찬장에 딱 두 개 있는 브랜디잔을 꺼내 포마이카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프란체스카의 마지막 브랜디 병을 비웠고, 그 사이 캐롤린은 말없이 노트를 읽기 시작했다.
"로버트 킨케이드가 내게 온 것은 1965년 8월 16일, 월요일이었다. 그는 로즈먼 다리를 찾고 있다고 했다. 늦은 오후라 무더웠다. 그리고 그는 해리라 부르는 픽업 트럭을 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