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회라는 전제를 받아들이면서 삶의 기준이 달라지다 」
Q. 부처님을 만나기 전과 후에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A. 그냥 인생을 보는 눈이나 행동이나 완전히 달라졌을 것 같지 않습니까?
Q. 당연하죠 그 전에는 어떠셨는지, 법관 되고 싶으셨어요?
A. 아니, 뭐 그런 생각도 있었겠죠. 그 판사 하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으면 아마 그렇게 저도 갔을 거예요. 근데 판사 하는 일이 너무 너무 힘들어요. 그러니까 내가 그만둘 때만 해도 매일 보따리 싸가지고 밤낮으로 일을 해야 되는데. 일이 많은데 판단하는 거는 쉬우냐. 어떤 일에 대해서 이거냐 저거냐 판단하는 거는, 일이 많아서 고생한 거 이상으로 판단하는 것도 어렵고 회의가 많이 생기죠.
이게 과연 옳은 일일까,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그런데 일은 잔뜩 많죠. 저 판사 처음 그만둘 때가 마흔 살인데 그러면 이렇게 머리 썩여가면서 일해 가지고 잘 되면 한 15년 20년 후에 대법관 하겠지. 그럼 그렇게 해가지고 대법관 되면 그러면 잘 살은 건가?
도저히 나는 그럴 것 같지 않더라 말이죠.
Q. 원래 지혜로운 분이셨네요, 그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게. 사람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뭔가 있는 줄 알더라고요, 전부 다.
A. 그래서 그때는 불교 생각도 안 하고, 일단 그만두고 시간을 두고 좀 놀아봐야 되겠다.
시간 두고 놀아보는 과정에 우연히, 하여튼 불교에 관한 책 같은 걸 보게 되었고,
보니까 이제 기본적으로 윤회를 한다는 건데 윤회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게 옳은 방법인가?
Q. 윤회를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받아들이셨어요?
A. 그건 모르겠어요. 많이 뭔가 이게 좀 잘 가는 방법일 것 같지 않을 수도 있다.
잘 가는 길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선 윤회하는 게 정말로 개연성이 큰 일인지, 우선 이걸 알아야 돼요.
윤회한다는게 그냥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꾀기 위한 가르침이거나, 호기심을 충족하는 정도의 가르침이라면 그건 따르기 어려울 텐데 ‘그게 만약 진실이라면 사는 방식이 달라져야 될 거야’, ‘지금 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을 거야’, ‘내가 지금 계속 지금까지 계속 살아왔고 앞으로 또 계속 태어나서 살아야 된다는데 지금 이 세상에서 뭘 좀 성취한다는 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그런 생각을 그게 자연스러운 생각의 연결 아니겠어요? 그렇죠, 이제 그런 흐름을 따라온 거죠.
Q. 그런 작은 시발점이 지금 이 많은 책을, 보는 것도 힘든 이런 책을. 진짜 인연법이 아니면 하기 힘든 겁니다, 아무리 봐도.
「 변화를 만든 것은 책이 아니라, 가르침에 대한 이해였다 」
Q. 책은 인식된 내용을 개념화해 글로 옮기는 작업인데, 그렇게 책을 쓰는 과정에서 인식의 변화는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 궁금합니다.
A. 책을 통한 변화였다기보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함으로써 생긴 변화일 뿐이고, 책을 쓴 거는 원래는 아까도 잠시 말씀드렸지만, 제가 공부하는 과정에서 제 메모 비슷한 개념으로 쓰다가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이 잘못된 것도 많고 도움이 안 되는 게 많아서 제가 번역하는 걸 내는 게 불교 공부하는 사람한테 그래도 이게 좀 도움이 될 수 있겠다 이런 생각 때문에 책을 낸 거고요. 책 자체를 내는 걸 목표로 하거나 이렇게 한 적은 없어요.
Q. 그러니까 그 부분에서 이제 실제와 개념은 이제 수행 쪽에서 우세해야 될 게 개념을 타파하고 실제를 있는 그대로 봐야 되는데, 그런 부분에서 이제 또 다른 보완책을 가지고서 무엇인가를 했어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자꾸 이제 모양을 만들어서 그것을 정확한 방법으로 표현하려고 노력을 하거든요 글로. 근데 이제 그게 역부족이니까 자꾸 억지를 부려서 막 그냥 결국은 ‘할’ 이런 소리까지 나오게 되는데 그럼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을 법사님도 아셨을 텐데.
A. 아니요. 책 때문에 그런 염려를 하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Q. 교리에 대한 기본 카테고리를 갖다가 계속 만졌어야 되잖아요.
A. 아니, 그거는 이제 예전부터 만들어져 온 교리, 만들어진 걸 써놓은 그 원리를 제가 이제 잘못 전달되고 있는 것을 내가 공부를 해보니까 그게 잘못되어서, 그걸 약간 좀 바로잡을 수 있겠다 싶어서 책을 낸 거고.
그 책은 저한테 무슨 그게 개념으로 작용하거나 제가 그런 영향을 받지는 않아요. 그 개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붙잡히지 않는 것은 결국은 내가 수행을 통해서 나아가야 할 일이지 그게 책 때문에, 물론 책을 지금 당장 작업을 함으로 인해서 내 수행에 지장이 되고 하는 이런 측면은 있지만, 책을 붙잡고 있음으로 인해서 책에서 말하는 교리가 나를 붙잡아 가지고 수행을 못하게 한다, 이런 건 아니고.
책을 번역하고 그런 펴내고 하는 작업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고. 뭐 그것 때문에 제가 수행을 지장을 받는 거는 있을지 모르지만, 책에 있는 개념 때문에 붙잡혀 가지고 수행을 방해받거나 그런 건 아니니까 그런 관점에서 저를 방애하거나 그런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합니다.
Q. 수행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A. 다들 하고 있는 초기불교에서 설명하는 그 방법이죠. 4념처 수행이죠. 불교에 의하는 한 다른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윤회를 한다는 걸 전제로 하면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사는 게 옳은 방법인가?
사두 사두 사두🙏🙏🙏
Sadhu! Sadhu! Sadhu! 🙏🙏🙏
“세존께서 잘 설하신 이 법은
직접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에 매이지 않으며
와서 보아야 할 것이고
자기 안으로 이끌어지며
지혜 있는 이들이
각자 스스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