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순의 선생님
정 순 덕
광역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달려 도착한 곳은 공항 신도시. 이 도시에서 노란 빌딩이라 불리는 2층에 자리한 서예학원을 찾아갔다.
교실에는 커다란 책상이 여러 대 놓여 있고 연세 지긋하신 분들이 열심히 서예를 하고 계셨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규모가 이렇게 크리란 상상을 하지 못했다. 93세의 어르신 선생님께서 가르치신다고 해서 별로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먹을 갈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벽에 붙여진 작품의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모습은 볼수록 대단했다. 작은 체구이지만 다부진 모습이 전혀 백 세를 바라보는 연세로 느껴지지 않았다. 원생들 한 명 한 명에게 돌아다니시면서 글씨를 지도하시는데 위엄이 느껴졌다. 음성 또한 카랑카랑하신데 콕콕 짚어서 지도하시는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먹을 한참 갈고 있는데 쓰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 구절을 전서로 단기간에도 배울 수 있냐고 여쭈었다. 오래된 비석이나 옛날 건축물에 있는 글씨체를 여러 곳에서 보아 왔기에 전서를 써 보고 싶었던 것이다. 선생님은 내가 쓰는 것을 보고 결정하자고 하셨다. 이틀 동안은 가르쳐 주시는 대로 줄긋기만을 했다. 사흘째 되던 날 필력이 있다고 하시면서 미리 써 놓은 체본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시편 127편 1절 말씀으로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이었다. 그런데 체본을 받고 보니 갈등이 생겼다. 여호와를 한자로 ‘약비주’라 쓴다. 더구나 전서로 쓴 것은 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한자와는 많이 다르다. 과연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렇지만 그동안 써 보고 싶은 전서였기에 써 보기로 했다.
일주일에 5일간 학원에 나가면서 하루에 7∼8시간 동안 서너 자씩 썼다. 학원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선생님의 하루 일과를 자연히 알게 되었다. 아흔셋의 연세에 그 열정의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궁금했다.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과식은 하지 않으셨다. 매일 일정한 시간에 자전거를 타고 신도시를 돌면서 운동을 하셨다. 무엇보다 긍정적인 생각으로 원생들 한 명 한 명을 챙기시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늘 웃는 모습이고 새로운 것을 즐기셨다. 호기심도 많고 무엇이든지 해 보려고 하셨다. 어떻게 저러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셨다. 움직임도 재빠르셨다. 유머 또한 뒤처지지 않았다. 풍부한 상식과 지혜로움에 그 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주말을 지내고 학원에 가니 선생님이 더욱 활기차 보였다. 옆에 앉은 동료가, 매주 월요일마다 볼 수 있는 일이라며 기대하고 있으란다. 원생들이 거의 다 오자 선생님은 두 팔에 가득 작품을 들고 하나하나를 펼쳐 보이시면서 설명하셨다. 화선지의 전지에 쓴 작품들이었다. 글자에 사물을 형상화한 그림으로 글자 크기의 조합이 멋있었고 응용하는 창의력 또한 대단하셨다. 글자체와 제작 의도를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서예 전시장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여러 번 관람했지만 선생님의 작품은 전혀 달랐다. 완성된 작품에 대한 자부심도 크지만 새로운 방법으로 창안해서 하신 것이 마냥 기쁘신지 연신 웃으셨다. 창작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좋아하는 일을 힘들어하지 않고 하시는 그 열정이 존경스러웠다.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지내는 삶, 활기찬 선생님의 모습에 원생들은 새로운 자극을 받았다. 그 모습에 나 또한 노년을 즐기면서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3주가 지나자 화선지 반 장에 작품을 쓸 정도가 되었다. 선생님께서 낙관은 해서로 써 보라고 하셨다. 한 번도 써 보지 않았던 글씨라서 자신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선생님은 써보라고,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셨다. 걱정하는 마음으로 선생님이 쓰시는 것을 눈여겨보았다. 힘을 주는 것과 빼는 것, 붓끝이 돌아가는 방향, 손의 움직임 등을 살펴보았다. 체본을 보니 정말 멋있어서 빨리 써 보고 싶었다. 귀가한 후 늦은 밤까지 썼다.
다음 날 설레는 마음으로 학원에 갔다. 선생님의 마음에 어느 정도 들까, 평가를 어떻게 하실까 궁금한 마음에 떨렸다. 글씨 쓸 준비를 마친 후 낙관을 쓰기 시작했다.
시편 백 이십 칠편 일절 병술년 하 수진 정순덕
(詩篇 百 二十 七篇 一節 丙戌年 夏 守眞 鄭順德)
해서로 조심스럽게 써 내려갔다.
“이럴 수 있나, 정 선생. 이래 쓰면 우짜노? 서예 하는 사람 다 굶겠다.”
선생님은 쓴 낙관을 들어 보이시면서 소리 높여 과한 칭찬을 해 주셨다. 하루 만에 쓴 것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몸 둘 바를 몰랐다. 만족하신 듯 활짝 웃으시면서 이제부터 작품을 써도 된다고 하셨다. 그 후 선생님은 나에게 천자문 쓰기를 권하시면서 더 관심을 갖고 지도해 주셨다.
무덥고 긴 여름 방학 동안 더위를 잊으면서 하고 싶었던 전서를 썼던 일이 두고두고 잘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령화 시대의 대열에 낀 나를 생각하니, 선생님의 삶이 새삼 부럽기만 하다. 하고 싶은 일을, 잘할 수 있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능력이 너무도 행복해 보여서 더 부러웠다. 그동안 퇴직 후를 생각해서 봉사활동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몇 가지 획득했지만 아직 쓰이진 않고 있다. 우선은 배우는 즐거움을 더 느끼고 싶어서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선생님은 백수를 다 누리시지는 못하셨지만 열정을 다 하시던 그 모습은 마치 어제 일같이 생생하기만 하다.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 어르신 선생님의 삶을 닮고자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오늘도 민화와 보태니컬에 도전하려고 화구를 챙겨 집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