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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령에서 오색 만물상 암벽을 기어 오르고 점봉산 황홀경에 빠지다
제 38차 백두대간
1) 언제 : 2018년 4월 29일(일) 2시~14시
2) 어디를 : 한계령~망대암산~점봉산~단목령~조침령~터널 관리사무소,,24.9km(누계761.15km)
3) 누구와 : 나와 강쌤
4) 산행이야기 : 어제는 구룡령에서 조침령구간을 9시간 이상 걸었다.그리고 양양시 낙산사 해변으로 이동하여 밤 9시에 잠이 들었다.그리고 겨우 3시간 자고 12시에 일어나 예약한 택시를 이용하여 12시30분 한계령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양양 개인택시 양승복기사님은 백두대간 산행중인 사람을 많이 접하신 분이다.그래서 오늘의 산행 들머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초행자인 우리 둘이서 왔더라면 찾을 수 없는 엉뚱한곳이 들머리였다. 그리고 깊은밤 한계령 어둠속 수직암벽을 기어 오르고 초행길 서툰 방향 감각을 감내하고 마침내 점봉산(1,424m)을 오르고 단목령을 지나 조침령까지 무사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었다. 조침령에 도착하니 오후 3시, 다시 양기사님을 만나 강릉으로 이동하여 3시30분에 출발하는 광주행 직행버스를 탔다.이제 백두대간 남한구간의 끝이 보인다. 한계령에서 설악산을 넘어 진부령까지는 2코스 남았다. 드디어 백두대간이 끝나가는 것인가? 다음구간은 5월18일~20일에 걷기로 하고 마침내 설악산 중청대피소 예약을 성공했다. 모든것이 순조롭고 설악산 대피소에서의 하룻밤과 다음 산행이 기대된다.
오늘의 산행기를 쓴다.
(한계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며)
겨우 3시간 자고 나와 새벽 1시에 남진하는 들머리 한계령에 도착한다.
이번 코스는 비법정 등산로여서 산행을 통제하는 국립공원초소가 한계령과 단목령에 있는데
2곳 모두 출근 시간전에 통과 해야 한다. 대간꾼에겐 법을 어길 수 밖에 없는 숙명이다.
괜시리 마음이 무겁다.깜깜한 밤에 한계령으로 가는 길은 빛 한점 보이지 않은 깊은 어둠속
고요한 산중이며 이 시간 인간도 산도 모두가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세찬 바람이 부는데 가만히 서 있기 조차 힘든 태풍같은 바람이다.
새벽 1시20분 도로 옆 1.2m쯤 되는 시멘트 옹벽을 기어 올라
철조망 아래을 포복하여 통과하고 곧장 비탈을 기어 올랐다.
철조망을 지나 오르는 흙비탈은 50~60도쯤 되는 급경사 비탈이다.
지금처럼 세찬 바람이 불고 차디찬 밤, 칠흙같은 어둠속에
가보지 않아 알지 못하는 산을 오른다는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우린 이미 이런것을 각오하고 왔었기에 기어 오르고 걸어 전진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35년전에 경험했던 군인정신 일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 일것이다.
한계령 철조망을 통과하여 가파른 비탈길은 두손을 땅에 짚고 올라야 했고
한참을 엉금엉금 기어 올랐다. 그리고 군사시설인 시멘트 군 벙커 초소가 나오고
그 옆을 지나는데 국공 통제초소가 나온다.
그리고 순간 국립공원초소 감시장치에서 자동음성이 나온다.
"이곳은 비법정 산행지역입니다,되돌아 가십시요" 나는 화들짝 놀랐고 법을 어겼다.
(한계령 보름달)
설악산 한계령 밤하늘에 둥근달이 떴다.안개에 가린듯 휘엉청 밝은 달은 아니지만
보름달 처럼 둥근달 주위에 달무리 서렸는데 땀흘려 걷는 우리를 위로 하는둣 하다.
사실 전혀 모르는 바위산을 더듬어 올라야 하고 표식도 드문 길을 찾아가야 하기에
많이 두렵기도 했었다. 낮에 움직이는 산행이면 아무런 염려가 없으나
오늘처럼 야밤에 설악산의 주등산로가 아닌 비법정 등산로을 오른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였다.
다행이 밤하늘에 떠 있는 저 달이 길을 안내하는것 같았고 말없이 동행하는 친구 같았다.
비탈을 오르고 숲을 지나 바위구간을 올라 타는데 커다란 바위 아래 하얀눈이 남아 있다.
지금 4월말 남녁은 이미 절정의 봄이 지나고 있는데 아직 녹지 않은 상태의 눈이 남아 있었다.
나는 산행중에 작은 디카를 찍으며 걸었고 눈을 찍으면서 카메라가 이상한것 같아 확인해 보니
스위치가 자동 촬영에서 수동으로 변형되어 있었다.그래서 밤새 찍은 사진은 촛점이 맞지 않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버렸다.
(밧줄을 붓 잡고 직벽을 오르며)
"친구야 ! 밧줄 잘 잡고 천천히 건너 오시게"
한계령에서 망대암산으로 오르는 구간은 실로 아찔한 직벽 밧줄구간의 연속이다.
그러나 고소공포가 있는 나로서는 차라리 어둠속 암벽구간이 편하기도 했다.
천길 낭떨어지을 보고 올랐다면 무서움증이 더 심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 암벽구간은 비법정 등로이고 이 야심한밤에 이렇게 험한 구간을 가는것은
지극히 잘못된 무모한 행동이었지만 백두대간 완주를 위해서 가야 했다.
수직암벽을 기어 오르고 옆으로 건너며 밧줄구간을 기어 오르기를 여러번 반복한다.
그러다 어느 지역에서 구간길을 놓쳐 버렸다.그리고 길이 없다.
전망좋은 바위에 이르러 내려다 본 길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천길 낭떨어지이다.
또한 바위 위에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세찬 바람 지나고 있었다.
구간길을 놓친것 같아 뒤로 되돌아가 다시 길을 잡는다.그런데 이길이 맞은것 같아 다시 와 보면
또 길이 안 보이고 낭떨어지만 보일 뿐이다.
참으로 난감하여 이번에는 한참을 더 뒤로 내려갔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 다시 오르니 우측으로 길이 보였다.
바위구간에서 길을 잘못 든 것이 무언가에 홀린듯하기도 하고
도깨비 장난 같기도 하여 등골이 오싹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어린시절 나의 동내에 있었던 도깨비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내가 어린시절 아마도 초등 1~2학년쯤 일이다.
내가 살았던 우리동내 아저씨 한분은 자전거를 타고 석정리에서 십리쯤 떨어진
용두리 라는 마을에 있는 석회석 공장으로 일하러 다니신분이 계셨다.
여름철 어느날 그분은 예성산 아래 지석강옆 금사바위길을 따라 자전거로 퇴근을 하시다가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동내는 야단이 났고 경찰은 금사바위 아래 지석강 물에 빠진것으로 생각하여
강가를 수색하고 마을사람들과 경찰은 몇일동안 사방을 찾았으나 행방을 알수 없었다.
그런데 그분은 14일만에 어스름한 해질녁에 동내에 나타나셨다. 아저씨의 행색은 그동안 굶은듯
살이 빠지고 무언가에 홀린듯 정상이 아닌 모습이셨다.아저씨가 정신을 차리니 동내분들이 물었다.
어디에서 살다가 왔느냐고 하니,그날 퇴근길에 도깨비가 나타나 자꾸 자기들과 놀다 가라고 하여
따라 갔더니 도깨비가 사는 마을이였고 잠깐 잘 놀다 오는길이였다고 하셨다.
그리고 도개비들과 있는 동안 그들이 잘 먹여주고 했다는것이다.
그래서 동내분들과 경찰은 그분이 말하는 곳을 따라가니 마을앞 예성산 자연동굴속 이였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동굴을 깊숙하게 들어가 보니 아저씨가 14일동안 머문 흔적들이
있었다고 하셨다. 그후 그 아저씨 가족은 어디론가 이사를 가셨다.
내가 어릴적 우리 마을의 큰 사건이라서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오늘밤 우리는 생사가 넘나드는 암벽구간을 여러번 더듬어 올랐던 것이
도깨비에 홀린건 아니것인지? 의심을 해 본 것이다.
좀전에 올랐던 바위 정상은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만큼 강한 바람이 불어서 비틀거렸고
그때 나의 등산 모자도 바람과 함께 날라가 버렸다.
세찬바람은 도깨비 바람이 아니였을까? 혹 내 모자가 탐이 나서? 라고 생각도 해 보았다.
그때 뒤돌아 오지 않고 조금 더 내려 갔었더라면 천길 낭떨어지로 갔을 것이니
얼마나 아찔 한 일인가?
그렇게 점봉산은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다시 길을 찾아 조심스럽게 오른다.
위험스런 바위구간을 지난듯 하더니 이번에는 출입금지 푯말을 만난다.
처음에는 저 금지줄을 넘어 수십미터 걸었더니 강쌤이 이 길은 아닌것 같다고 한다.
그래서 되돌아와 좌측으로 다른길을 더 걸으니 선명한 대간길이였고
망대암산으로 가는 정상적인 길이였다.
이제 바위구간은 없고 산죽숲을 지나며 이름 모른 봉을 넘는데 여전히 바람이 세다.
오늘밤 세찬 바람은 나무을 꺽어 버렸다.1,157m봉을 넘어 십이담계곡 갈림길을
가는 길에 수 많은 잔가지가 떨어져 있고 제법 큰 나무도 통째로 쓰러져 있다.
단단하면 꺽이고 유연하면 흔들거리긴 하나 꺽이지는 않는 진리를 본다.
(UFO를 닮은 바위)
UFO를 닮은 바위다.작은 바위인데 영락없이 UFO를 닮은 바위다.
이곳을 지나는 분들이 찍어 올린 사진을 본 적이 있어 점봉산을 향하여 잘 가고 있었다.
다시 산죽밭이다. 그런데 사철나무인 산죽에 잎이 없고 죽은듯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강한 바람때문일까? 모를 일이다.
산죽밭을 지나 십이담계곡 갈림길에 도착한다.
출입금지 저 금줄을 넘으면 남설악 십이담폭포로 내려가는 길이다.
어느덧 하늘은 열리며 밝아지고 이제는 망대암산(1,236m)에 이른다.
바위구간을 지나면서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한계령에서 망대암산까지
거리는 5.7km인데 4시간이 걸렸다. 도깨비에 홀린듯 길을 헤메이기도 하였고
그 만큼 힘든 구간이기도 했다.
망대암산은 공룡능선처럼 뾰쪽한 바위가 겹겹히 늘어선 바위군락의 산이다.
그산의 두 갈래 길중에 안전하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여 지난다.
저 바위 정상에 올라가고도 싶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그냥 지나친다.
사람은 두뇌의 생각으로 몸이 움직이지만 피곤히 쌓이면 머리가 생각하기전에
몸이 먼저 반응을 하는듯 하다.
망대암산을 지나며 동해에 떠오르는 아침 해를 본다.
오늘의 산행이 무사하게 완주하기를 기원하며 걸었다.
그리고 망대암산을 한참 지나 일출을 보며 걸어 온 바위들을 뒤돌아 보았다.
망대암산 아래 바위는 겹겹히 차곡차곡 쌓아 놓은 불상 같았으며
저 거친 바위는 서로의 모습이 달라서 또 다른 아름다움이였다.
호흡이 멎을 지경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곳은 설악산 만물상이였다.
만물상의 기암괴석은 각각 모습이 다르고 크기나 규모가 컸다.
그 아래 계곡에 가보진 않았지만 만물상 바위틈에 단풍이 필때 다시 한번 와보고 싶어졌다.
그 주변에는 주전골과 망경대가 있는데 훗날 보러 올 만한곳으로 남겨둔다.
이제 점봉산(點鳳山 1,424m)에 오른다.
이곳의 나무는 키가 작다.바람이 세차게 불어 스스로 낮게 엎드려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다.
저 주목나무는 바람에 한쪽은 가지가 없고 다른 한쪽으로만 살아가고 있다.
바람에 살아 남기 위해 키을 낮게하여 안간힘으로 살아가는 나무군락을 본다.
생명은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신은 치열하게 인내하며 살아가고 있는거다.
높은곳에 올라오니 조망이 좋다.
그리고 아침 햇살 적당하게 내리 째주어 멀리 환하게 보였다.
나는 이렇게 내려다 본 세상이 좋아서 눞은곳에 오르곤 하는것이다.
저 멀리 설악의 준봉이 보이고 지나온 만물상 바위와
망대암산이 보이는 점봉산에서 조망을 즐긴다.
햇살의 따뜻함도 새찬 바람 때문에 정상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했다.
다만 곰배령 능선이 평화롭게 보이고 멀리 설악의 준령이 희미하게 보였다.
오늘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점봉산은 편안하게 받아 주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에서 나만의 감정과 탁트인 정상의 모습에서 산이 주는 희열을 느낀다.
오늘 새벽 1시20분에 출발하고 6시 20분에 도착 했으니
7km구간을 5시간 걸어 점봉산에 오른것이니 많이 늦은 산행이다.
(점봉산(點鳳山 1,424m) 표시석)
점봉산(點鳳山 1,424m) 표시석은 2개의 바위를 포게 놓은 정상석이다.
점봉산은 높은산이면서도 정상주변은 광장처럼 넓었고
터을 넉넉하게 가진 봉오리 표시석은 외로워 보였다.
바람 때문에 더욱 외로워 보였지만 햇살은 밝았다.
점봉산은 매끈하고 유려한 곰배령능선에 아름다운 천상의 화원을 품었고
동해를 시원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설악산 귀대기청봉과 대청봉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저 아래 인간 세계을 내려다 보고 있는 모습은 조금 떨어져서 봤을 때 더 멋진 봉우리였다.
언제 다시 한번 더 올까? 다시 온다면 곰배령 천상의 화원길을 걸으리라.
이제 점봉산을 내려서 단목령을 향하다가 7시 아침 간식를 챙겼다. 초쿄파이와 이온음료로
보충하며 잠시 쉬어 간다.나는 쉬면서 "강쌤! 기분 어떻신가?" 라고 물으니
"기분은 최고로 좋다 그리고 오늘 남진를 잘 선택한것 같다" 라 답한다.
조침령에서 북진했었다면 한계령 바위구간을 하산하는데 어려웠을 거라는 거다.
맞는 말이고 이미 지나와서 다행이였다.
점봉산 남쪽 비탈을 내려서 단목령을 향하는데 완만한 능선길이며
아침 포근한 햇살을 품은 편안한 숲길이다.
점봉산에서 단목령까지는 6km구간인데 단목령 국공초소를 9시안에 통과해야 하기에
넉넉하게 걸을 수 없고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시간은 아침 7시를 지나고 있었고 완만한 능선에도 키큰 참나무 몇그루
쓰러져 있었다. 어느날 세참 바람에 넘어진 것이다.
단목령을 향하여 더 아래로 내려 가는데 4월의 나무가지에 아직 신록이 올라 오진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푸른 신록이 올라 올 것 같은 따쓰한 길이다.
편안하게 소소한 이야기 하며 걸었다.
그리고 오래전에 쓰러져 길을 막고 있던 고목 한그루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넘어
껍질이 벗겨지고 윤기가 반지르하다.
그렇게 가파른 비탈과 완만한 능선을 부지런히 걸었더니 오색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기서 남설악 오색리 마을은 3km아래 있다는 이정표가 있었다.
이제는 완만한 작은산을 반복해서 넘는다.
(여성산악인 남난희 선생님과 함께)
조침령에서 2시에 출발했다는 한 무리의 남성 대간팀(40대, 5명)을 만나 지나쳤고
완만한 능선 단목령을 향해 내려 가고 있는데 5~6명의 혼성 대간팀이 올라 오고 있었다.
가까이 지나치려는데 내가 아는분이시다.
"선생님 유명한분이지죠?"라고 물으니 살짝 웃으신다.
동행하시는 남성분이" 선생님을 잘 아시는 분 같아요"라고 하신다.
여성 산악인 남난희 선생님이셨다.
예전에 지리산학교 행사장에서 뵌적이 있으며 선생님의 책 두권에 싸인을 받은적이 있다.
일단 기념 사진 한장 찍고 서로 바쁘기에 긴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헤어졌다.
단목령 국공초소의 단속시간이 가까워졌기 때문이였다.
남선생님은 20대때 1984년 1월 1일부터 하얀능선의 눈길을 헤치고
태백산맥 종주등반을 하셨고 아들과 76일동안 백두대간을 종주하시기도 하셨다.
1986년 세계여성최초로 히말라야 강가푸르나(7,455m)봉을 등정하신
한국의 여성 1세대 산악인중 한분이시다.
특히 산악인의 잡지인 "사람과 산"이라는 창간호(1989년 11월)에서
남선생님의 백두대간 종주산행 글이 연재되었는데 이글이 계기가 되어 일반인들에게
백두대간 종주라는 등산길을 알려지게 되었다.
어찌보면 이렇게 백두대간 산행을 하게 된 계기를 만든분이시기도 하다.
나는 남선생님을 백두대간에서 만나 기분이 너무도 좋았으며
그분 일행도 안전한 산행하시기를 바랬다.
그후 따로 남선생님과 연락이 되었고 나중에 지리산 자락 동반산행을 약속 받았다.
(2014년 7월 불일폭포을 다녀올 때 남선생님을 만난적이 있다.)
("낮은 산이 낫다"의 책에 싸인을 받음)
(단목령 국립공원초소)
8시 30분 단목령에 도착하는데 다행히 국공직원이 출근하기 전에 온 것 같다.
박달나무가 많아 박달령으로 부르기도 하는 단목령은 남설악의 오색리에서
인제군 진동리를 넘나들던 고개이다.
단목령 국립공원 직원은 9시쯤 출근하려나 보다.
산행거리는 중반을 넘었으며 이제 남은 코스는 대체로 완만한 코스여서 다소 여유롭다.
다만 광주로 가는 버스 시간을 오후 6시10분차를 예매하였으나
3시30분 버스를 앞당겨 타기로 한다.
그래서 시간을 오래 지체하지 않고 계속 걸었다.
단목령을 지나 복암령을 향하여 야트막한 길을 걷는데
그 주변을 멧돼지가 여기저기 땅을 깊이 파 헤쳐 놓았다.
이제 복암령도 지난다.편안한 길이지만 야트막한 산을 여러개 넘었고
산행 후반부라서 집중력도 떨어지고 산행 속도도 자꾸 떨어진다.
정오의 햇살은 이마에는 땀이 맺히고 자꾸 쉬어 간다.
그리고 양양 양수발전소 옆을 지난다.
산 계곡이 길지 않은곳에 왠 댐이 있나 했었는데 양수발전소는 2단계 저수댐을 만들고
전기 소비량이 적은 밤시간대에 하부댐에서 상부댐으로 물을 올렸다가
필요할 때 전력을 생산하는 구조였다.
양수발전소을 지나며 막바지 산을 오른다.
(조침령위 진달래길을 지나며)
야트막한 산 마루길에 진달래가 하늘거린다.
산행을 마중하는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이제 조침령이 지척이여서 양양택시 양기사님께 연락을 하여
조침령터널 동쪽에서 만나기로 한다.
조침령 터널위 나무가지에 새싹이 나오기 시작했다.
저 나무의 신록이 번지면 이 산 저 산 골짝에 푸르름이 가득 할 것이다.
조침령위에 요새 보기 드문 허름한 군 경계시설이 있었고 그 위장막은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조침령으로 내려서는 곳에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침네 산행의 끝이 보였다.
오후 1시 50분경 조침령에 내려선다.오늘 산에 머문시간은 대략 11시간 30분 동안 걷고,
하늘을 봤으며 점봉산을 넘어 오래도록 숲에 머물다 내려온 것이다
(조침령(朝寢嶺 877m)이다)
세찬 바람에 날으는 새도 쉬어 간다는 조침령에 섰다.
반대편에서 어느 등산객 한분이 오셔서 서로 번갈아 사진 한장씩 찍었다.
조침령 터널로 내려가는 곳을 바로 찾을 수 없어 어제 하산 했던 진동리 터널 서쪽 임도을
따라 내려간다.임도을 따라 2km을 더 걷는데 산행후 마지막 덤으로 걷는 구간은
심리적으로도 힘들고 멀게만 느껴진다. 마중 나오신 기사님은 우리을 찾는다고
진동리 마을 반대편 임도로 올라 갔다고 하시고 우리는 어제 하산 했던
그 자리에 도착했는데 한참 후에야 기사님이 오셨다.
오늘은 한계령에서 조침령구간을 남진하여 걸었다.
계속 북진하여 걷다가 간혹 남진을 하다보면 헷갈리는 것들이 많고 적응이 쉬 안되지만
상황에 따라 오늘처럼 남진을 선택한것은 잘 한 일이였다.
오늘 25km구간을 12시간에 걸쳐 걸었고 한계령에서 점봉산을 올랐으며
조침령으로 내려 왔다. 택시로 서둘러 강릉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택시기사님이 맥주 두캔을 얼음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오셨다.
이 맥주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이다.
내 친구 강쌤은 금방 깊은잠에 빠진다. 많이 피곤한 모양이다
예상보다 일찍 산행을 끝냈기에
광주로 출발하는 3시 30분 버스를 타고 귀가 했다.
2018년 4월 29일(일) 걷고 5월 9일(수)일 새벽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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