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39)
자폐아, 자폐노인
김 할머니는 80세로 태어날 때부터 정신지체아였고 자폐증세도 동반되어 있었다. 선천성장애로 1급지적장애 등급을 받았다. 모친이 평생 간병하다 모친이 돌아가시자 큰 언니가 동생을 데리고 살았다. 평생을 가족의 돌봄 속에서 지내다 큰언니마저 사망하자 1년간 조카가 보살폈는데 구청에 등록하여 도움을 받았다. 그러다 집에서 보살피는 것도 한계가 있어 조카가 구청 직원을 동반하여 본원에 입원시켰다.
환자는 백내장으로 10년 이상 실명 상태이고 거동이 불편하며 의사소통도 전혀 되지 않았다. 죽을 때까지 침상에 누워 지낼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태였다. 환자는 아래턱을 끊임없이 움직이며 뭐라고 중얼거리고 베개를 들었다 놓았다, 이불을 당겼다 놓았다 쉴 새 없이 양손을 움직인다. 불행하게 태어났지만 가족 덕분에 어머니와 언니, 조카, 그리고 정부의 도움으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이모 때문에 우리집은 3대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제 요양병원에 모시게 되어 그나마 숨을 쉴 수가 있네요.”
환자를 맡기고 돌아가는 조카의 얼굴에서 오랜 고통에 찌든 흔적이 보이고 끝도 없는 간병의 늪에서 벗어났다는 안도의 빛을 볼 수가 있었다.
부모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병든 이모를 돌보는 조카는 아주 선한 사람이다.
자폐아로 태어났지만 꾸준한 재활훈련으로 잘 극복하여 인간승리를 보여주는 경우도 TV에서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자폐아의 대부분이 평생 보살핌을 받아야 살아간다.
딸 둘 있는 가정에 시어머니가 아들을 낳아라고 닦달하여 셋째를 낳은 가정이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 기뻐했지만 발육이 느리고 행동도 이상하여 2년 만에 자폐아로 진단받았다. 며느리는 셋째를 낳을 생각이 없었는데 시어머니를 원망하며 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된 경우도 있다.
또 다른 가족의 이야기다. 딸이 둘인데 첫딸을 낳았을 때만 해도 단란하고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었다. 둘째가 자폐아였다. 한 번은 부인의 초청으로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한낮인데도 방이 너무 어두웠다. 보니 두터운 커튼으로 햇빛을 막아두었다.
“방을 왜 이렇게 어둡게 해두었습니까?”
“둘째를 낳고부터 우리집은 즐거움이나 웃음이 사라졌어요. 저는 밝은 게 싫습니다. 애들도 밝은 것을 싫어해요.”
부인이 차를 내놓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첫애를 낳고 남편은 직장일로 늘 새벽에 나가 밤에 들어오고 저 혼자 애를 키운다고 아주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자기주장이 강하여 모든 것을 저와는 상의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부부싸움도 자주 하게 되었고 헤어지려고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덜컥 둘째가 임신되었지요. 이혼을 하려는 판에 임신이라니…. 전 임신중절을 하려고 했지요. 하지만 남편은 가톨릭 신자라 유산하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그 일로 남편과 극도로 사이가 나빠졌습니다. 남편이 미워지니 뱃속의 태아도 미워지고 아기를 떼려고 마음먹은 것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열 달이나 보냈는데 낳아도 될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불안했지만 낳아보니 엄마와 눈도 맞추지 않는 자폐아였습니다. 하느님이 나에게 벌을 주신 거지요. 모든 게 제 탓인데 누구를 원망하겠습니까? 멀리 아무도 (우리를) 모르는 곳으로 애를 데리고 떠나고 싶습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덜한 미국으로 이민을 고민한 적도 있어요. 그래도 선생님에게 털어놓으니 마음이 조금 편해집니다. 큰애에게 종종 말합니다. 엄마 죽고 나면 네가 동생을 보살펴야 한다고요.”
자폐아 하나가 얼마나 한 가정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었는지 알게 된다. 가끔 이들 모녀를 만나면 황급히 자폐아 딸을 뒤로 숨기곤 했다. 자폐아가 신체발육이 좋아 언니보다 더 커지고 말도 횡설수설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니 어머니가 뒤로 감추는 것이었다. 결국 이 가족들은 멀리 자기들을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가고 말았다. 이분은 자폐아의 출생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만 대부분의 자폐아나 정신지체아는 원인도 모르게 태어난다. 부모의 죄가 절대 아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국민소득이 아니라 장애인을 대하는 태도와 시설이라고 한다. 통계에 의하면 요즘은 사고나 질병 등에 의한 후천성장애인이 훨씬 많다고 한다. 누구나 사고에 의해 장애인이 될 수 있는 시대이다. 선천성장애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모두가 보듬어 살아가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자폐아나 장애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