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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올 때에는
올라 가지마라
가슴을 떠밀어도
꼭 올라와야 할 이유가 있어
기어이 올라온 산
모두 다 날려 버릴 듯이
불어오는 회오리 바람에
차마 눈을 뜰 수가 없다.
머지 않아서 얼마 남지 않은 이 동학산 자락을 모두 밀어내고
라인 중설을 한다는 소문들이 싸늘한 봄 바람 타고 여기 저기서 수런거린다.
처음에는 어느놈의 입방정인 줄 알았다.
벌써 이십년이 넘는 그 때 그 시절 저 아래 산자락을 밀다가 뜻밖의
유물들이 출토되고 공사는 중지되었다.
전문가들이 모여 갑론을박 끝에 내린 결론은 이미 일천 오백년 전에
당시로서는 최첨단을 걷는 공장들이 이 곳에 줄비했다는 것이다.
시공을 뛰어 넘는 말들이 있다.
시대의 언어는 언제나 최첨단 글로벌 기업경영이다.
표현만 달리 할 뿐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머지 않아 사라질 늙은 이 느티나무는 오늘도 아랫 마을만 바라보다가
아랫마을 느티나무를 향하여 소리를 지르듯이 가지마다 바람만 윙윙거린다.
"늙은 느티나무 한 그루 남겨 놓는다고 최첨단이 갈 길 못가려나?"
확인 차 나온 공무원들 왈 "너무 늙어서 보존가치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짤라버릴 이유도 딱히 없습니다."
굳이 마을 지명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치고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아니 되어 본 사람이 없다.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지난 상처를 다시 건드리고 싶지 않다.
흔히들 이렇게 말을 한다. 말쟁이들 말을 빌어서...
이미 다 흘러간 냇물과 강물이 바다에 이르기 전에 서로 만나 지줄대던
일들은 옛날 일들이라 말하리라.
과연 그렇게 단순한 옛날 이야기인가?
사람은 사람이지 냇물! 강물! 이 아니다.
사람이란 옛일들을 잊지 않고 사는 감성의 무리들이다.
서로들 피해자라고 우겨대며 마치 성질머리 나쁜 황소들이 만나면 머리를 맞대고
서로 밀어내기 하듯이 아니면 먹이를 앞에 둔 개들처럼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 거리며 또 음흉한 무리들은
겉으로는 상냥한 미소를 띄우지만 속내는 독사의 혀를 닮았다.
저기 보이는 저 마을도 그저 그렇고 그런 촌락이었는데
근동의 개발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마을이다.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일백호가 채 되지 않는 집들이 서로서로 지붕을 맞대고
살던 곳이였는데 이제는 머지 않아 옛 모습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은 당최 저 형편없이 가난해 보이던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파고드느냐고 되물어온다.
그러다가 대충 설명을 하면 그런 일들은 당신들이 쓰는 소설이나
아니면 남의 이야기를 각색하는 영화쟁이들이 만들어 내는
영화 속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고 아니면 또 어느 놈이 허풍치는 줄로만 알았는데
그런일들이 저 마을에서 실제 있었다니..........!
끌끌 혀를 치며 돌아서서 눈물짜는 사람 여럿 보았다.
갈 수 없는 땅이 아닌데도 갈 수 없는 마을을 거의 일년동안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만 바라 볼 수 있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그 마을 리장이 코로나 핑계로 우리들의 출입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들 출입은 눈감고 아예 모른 척 했다.
"리장! 이 코로나도 언젠가는 물러 갈 것이다.
너 그때 두고 보자! 그냥 두지 않을테니까!"
그러고보니 몇 달 전 만났던 서울의 모 신문사 기자가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선배님! 더 이상 건들이지 않는게 좋을 것 같아요!
저도 생각 같아선 다 까발리고 싶은데...그러다가는 도리어 역풍을 맞을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역풍이라..........
하기사 말이 큰 신문사 기자지 나이 오십이 넘도록 구두짝이 닳아 빠져
양말이 숭숭 구멍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기사 작성을 하면 뭐하나
편집장 새끼가 다 짤라 먹고 걸핏하면 사표 쓰라고 악을 쓰고 승진때가
되면 엉뚱한 놈이 자리 차지하고 이래라 저래라 구정물 끼얹고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고급승용차에 고급스러운 표정까지...거기다 마누라 명품까지....."
"그러니 선배님도 너무 깊숙히 들어가지 마세요!
저도 너무 자괴감이 들어 이놈의 생활을 이제 그만 때려치우고
다른 길을 가렵니다!"
더이상 무어라 할 말이 따로 없다.
그래!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멀쩡하게 잘 돌아가는 시계를 보고 고정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개혁을
해야한다며 시계를 거꾸로 달아 놓고 그 시계 바늘에다 생활을
맞추라하니 처음에는 어리둥절하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시계의 시간이 맞다고 우겨대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세대이다.
이런 세상에 정상적 눈을 가진 기자가 할 일이 뭐 있겠나?
어디를 가든 몸이나 건강하게 잘지내게!
정상으로 돌아가는 날은 꼭 다시 돌아올거야!
세상은 언제나 평등하니까!...........
그리고 이 자료들은 자네가 가져다가 꼭꼭 잘 숨겨놓게
이 자료들이 세상에 알려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네
그리고 절대 보안이 필요하다네
잘못하면 한 집안을 도륙내는 일이야
멀어져가는 후배기자 머리위로 검은구름이 모여든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턱턱 막힌다.
하기사 뭐 탈출구 없는 세월들이 어제 오늘의 일이랴만은 너무 답답하다.
아침에 손주놈에게 오늘은 꼭 끊고 들어오겠다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맹세한 담배에 불을 붙힌다.
그래 담배야말로 영원한 친구지 안그려 이사람들아...!
그때 등 뒤에서
"어쭈구리 늙은 쫄다구 주제에 근무지 무단이탈하고 금연구역에서
담배까지 피워!
당신 목이 열개쯤 되나 보지! 엉?"
돌아보지 않아도 누구인 줄 안다.
그러지말고 나도 한 대 줘봐! 후욱- 허공으로 사라지는 연기들...
이놈의 세상 담배처럼 배신없는 세상을 살아야 하는데 말이야!
정차장은 그들을 향해 걸핏하면 배신자들이라고 말하고는 했다.
바로 담배를 끊고 어제의 동지들에게 담배 좀 끊으라고 하는 놈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뭐 끊어야 할 것들이 어찌 담배뿐이랴만은 해도 해도 너무들한다.
"머리 허연 늙은이들이 귀때기 새파란 젊은 놈들에게 핀잔 듣는 세상에
뭘 더 볼 것이 남아 있다고 삶에 애착을 느끼느냐 이말이야!?
그나마 이 담배라도 있어 조금 위안을 얻을 수 있거든!"
그러고보니 속에서 분노의 버러지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저런 작은 촌락에서 리장이 코로나 정치를 한다는 소문때문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우리들이 그 마을에 자주 드나들어서는
좋을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다고 해서 포기 할 우리들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들은 다시금 그 곳의 일들을
끝까지 다 파헤쳐서 이 세상에 진실을 알릴 것이다.
그러기전에 오래 전 부터
몇천번이고 진심으로 머리숙여 사과를 하고 마음 깊이 참회하며
아무도 모르는 곳에 정착을 했더라면 그냥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었을 것을 즈그 할배,애비가 하던 일을 반복하다니
더 이상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
공연히 썩은 똥물에 텀벙 뛰어 똥물을 퍼서 사람들에게
끼얹고 있으니 이놈이야말로 역사의 죄인중에 죄인이다.
비단 이것은 정차장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담배를 무려 세 가치나 연달아 피워댔다.
짧게 말을 했다. "준비해 오셨나요?"
정차장은 말없이 품속에서 누런 봉투하나를 꺼내 건내준다.
"뜯어봐!"
떨리는 가슴 진정시키며 봉투를 뜯어 보고는 잠시 멍을 때렸다
오래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옷고름과 같은 자주색 낡은 옷고름이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열입곱살 어린나이에 조혼을 하고 일년도 채 되지도 않아서
철없는 동갑내기 남편이 징병이란 이름으로 끌려 갈 때
자신의 옷고름 두개를 모두 떼어주며 꼭 살아서 돌아오라고
울며 불며 절규했던 그 옷고름이다.
그 심정 제 삼자가 아무리 잘 표현하려해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자신도 돌도 되지 않은 핏덩이를 강제로 빼앗기고
일본군 정신보급대로 끌려 갈 때에는 정신이 아득했으리라
우리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나니 분통이 터졌다.
그것도 남이 아닌 형제간에 벌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살이 부르르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사흘 밤 낮을 식음을 전폐했다.
하늘을 바라보니 나는 전혀 모른다는 식으로
시치미 뚝 떼고 낮이 되면 지랄같이 푸르르고 밤이 되면 별들만 초롱초롱 빛났다.
그 옷고름을 목에다 걸고 느티나무를 오르기 시작했다.
"잘 보이는 곳에다 걸어 놓으면 할아버지 혼령이 한달음에
달려올거야! 꼭 달려 오실거야!"
할머니는 바로 이 느티나무 아래에서 끌려가는 남편의 마지막 뒷모습을
바라보며 절규를 했을 것이고 할아버지는 저기 보이는 저 느티나무 아래에서
절규하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조금만 더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됐다! 됐어! 그정도 높이라면 아주 잘 보일거야.
그 가지에다 단단히 묶어놔!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단단히 묶어놔!"
"박형!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들이 고작 이것뿐이라니 정말 열받아!"
"이제는 조심해서 내려와! 천천히 조심히 내려와!"
회오리 바람도 눈물을 흘리는지 잠시 그치고 빗방울이 후두둑거린다.
"자 이제는 담배 한 대 더 피우고 그만 내려가자구!
리장! 오늘은 가슴이 덜컹할거다."
그러니까 몇 달 전 구십육세의 연세로 작고 하신 윤노인의 말이 생각났다.
몇 년을 두고 우리들과 왕래를 하면서도 우리를 믿지 못해 망설이던
가슴에 묻어 둔 속내를 털어 놓았다. 노안으로 짓무른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내가 같이 끌려갔지만 그 친구는 일본군이 버마전선을 치고 들어 갈 때
행방불명이 되었어! 그 곳 어디선가 고향하늘을 그리다가 죽었을거야!
더러는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느니 또는 죽는 것을 직접 보았다느니
당최 종잡을 수가 없어! 그러나 죽은 것은 틀림없어!
당시 나는 통신병으로 그 곳에다 연합군이 융단폭격을 했다는 통신을 받았거든!
살았다면 틀림없이 고향을 찾아 왔을거야! 자신이 살던 땅으로!
아니지 죽은 혼령이라도 틀림없이 찾아올거야
암! 꼭 찾아올거야!
그리고 봄바람타고 찾아와 저 들판에 제비꽃으로 피어날거야!"
아니나 다를까 퇴근버스에서 졸고 있을 때 진동음이 울린다.
받자마자 소리치는 음성이 옆 사람에게 들릴 정도이다.
아마도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당신들 끝까지 나하고 한번 해보겠다는거야! 뭐야! 이거!
좋은말로 할 때 당장 지금 즉시 느티나무에 달아놓은 옷고름 풀러버리란 말이야!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겠지!
내가 지금은 비록 촌구석 리장이지만 당신들 목아지 날리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야! 왜 대답이 없어! 엉?"
그러니 내게서 좋은 소리가 나갈리가 있나!
마치 꽈배기 공장 꽈배기 비틀듯이 비비 꼬아 가면서 놈의 심사를
슬슬 건드리니 펄펄 뛰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
어릴 때 미꾸라지를 잡아다가 통에 넣고 왕소금을 끼얹으면
펄펄 뛰던 그 모습일거다.
"마! 사람 잘못봤어! 내가 어리버리하고 다니니까 진짜인 줄 알았지!
그게 다 군대에서 배운 위장술이라는 것이다! 미련한 놈 같으니라구!
옛 말도 모르는 놈이 똥물시국에 텀벙 뛰어들어 사람들에게 똥물을 끼얹고 있으니
어찌 미련곰탱이가 넘치는놈이 아니랴!
세상의 일은 한명의 둔재가 천명의 천재를 손바닥에 올려 놓고
희롱하는 일이란 말이다! 정말 똑똑한 천재는 그 즉시 손바닥에서 뛰어 내린다 이말이야!
그게 임마 바로 깨달음인 것이다!
내가 평생 공부한 결과물이다.
얼마나 둔재인지 원인과 결과 사이를 오고 가며 살아왔다.
천재들은 약삭빠르게 일본에 붙어 돈과 권력을 잡고 얼쑤 절쑤했지만
둔재들은 그것을 마다하고 고난의 여정으로 길을 잡았지!
이제는 머지 않아 이 땅의 둔재들이 잘 살아가는 세상이 곧 올거야"
작고하신 윤노인의 말들이 다시금 주변을 맴돌고 있다.
"여보게들 역사를 용서하되 절대들 자손만대에 잊지들 말게나.
누구를 탓하랴! 제 땅을 제 힘으로 못지켜서 생긴 일들이야!
언감생심! 국회의원 출마라니!
절대로 안되는 일이야
제놈의 할배가 조선총독부의 사냥개가 되어서 사냥을 할 때 이 근동의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비명횡사 한 줄도 모르는 놈이 무슨 집권당의 국회의원.....
경상도 말로 아나! 엿먹어라!"
리장이 나에게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이다.
내가 그의 몇 대 조상들의 행적을 모조리 찾아내어 그 자료를
가지고 있으며 리장의 전 날 행적을 모조리 알았기 때문이다.
리장의 할배는 조선총독부 경찰간부였다.
그 할배의 애비는 을사오적 중 한명인 박제순 집안의 마름이였다.
참고로 박제순은 나의 부친 항렬이 되므로 먼친척 아저씨 뻘이고
내가 그 집에서 직접 문서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 자세히 기록을 남겼다.)
박제순은 영악한자였다. 이 마름놈을 그대로 두면 주인을 물어 죽일놈이다.
그래서 송병준에게 넌지시 떠넘겼으나 송병준 역시 생각이 같았다.
어느 추운 날 도조(임대료) 제때 내지 못한 소작인을 혼 좀 내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마을 사람들을 모이라 해놓고는 집이라고도 할 수 없는 초가에다 불을 질렀다.
앞으로 도조를 제때에 내지 않으면 이렇게 될 것 이라는 협박성 본보기이다.
그렇게 해서 알게 된 것이 리장의 가족사이다.
리장의 애비 역시 일본군헌병으로 온갖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 배경에는
고향이 용인인 이완용의 뒷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이 되자 미군 첩보대에 들어가 미군의 사냥개가 되고 6.25전쟁이 터지자
인민군 대좌계급을 달고 나타나서 근동의 젊은이들을 모조리 의용군에 강제징집을 시켰다.
전쟁이 끝나고 죽은 줄 알았는데 또다시 전투경찰 간부가 되어 나타나
부역자들을 색출한답시고 글쎄 자신의 과거사를 잘 아는 집을 한밤중에 찾아가
모조리 쏴죽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자취를 감추더니 5.16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용인 경찰서 간부로 나타난 것이다.
참으로 명줄이 고래힘줄을 닮았다.
그러니 그 애비의 핏줄이 아니던가!
이놈도 대학시절 정보부 사냥개가 되어 운동권 학생들을
여러명 때려 잡은 이력이 있는 놈이다. 훈련병 시절 조교들에게 상납을 하고
집에서 고기반찬 만들어 보내고 아부를 했다.
이등병놈이 상관들의 약점을 찾아내어 공갈 협박으로 군생활을 호텔에서 보냈다.
정차장이 전화를 했다.
"놈이 만나자는데 어쩌지"
"그냥 계세요.
내가 시작한 일 내가 마무리 하겠습니다."
약속장소는 저수지 안쪽 계곡에 있는 한가한 카페였다.
옛날에는 삼계탕과 오리고깃집으로 한때 재미 좀 보던 집이다.
검은색 승용차의 문이 열리더니 나이지긋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이며 눈을 찡긋했다.
아뿔사! 이렇게 까지는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경찰에서 냄새를 맡았구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여기저기 앉은 놈들은
한눈에도 조폭냄새를 풍긴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닌 듯 싶었다.
아직은 젊은놈들 두어명은 상대할 힘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자리에 앉아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쇼핑백을 건네준다.
"박선생!
우리 긴 말하지 맙시다!
그리고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모두 내게 넘기시요!
세상사 좋은게 좋은것 아니겠소?
섭섭치 않게 드렸으니 우리 이걸로 끝냅시다.
이게 다 선생도 살고 나도 사는 길이요. 만약에 내 성의를 거절한다면
저기 보이는 제 친구들이 볼일 좀 보러갑시다. 할겁니다."
"이보슈! 김선생 당신 이상한 사람아니요?
당신같은 사람이 정치를 하겠다니 지나가던 개가 다 웃을 일이요.
아니 그렇소 김~선~생~"
"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의 몇놈이 실실 웃으며 다가온다.
그중의 한놈이 바닥에 침을 타악하고 내뱉으며
"나원참 기막혀서 말이 나오질 않네
모양새를 보아하니 사흘 한나절에 피죽 한 그릇도
얻어 먹지 못했나 보군그래.
이 늙은 놈아 돈이라면 돌아 앉은 부처도 다시 돌아앉는 세상이야!
좋게 말할 때 돈이나 처먹고 꺼져버려! 알았어!"
내 생각이 정확했다.
저런놈이 정치에 입문하면 가렴주구가 어떤 것인지
확실히 보여 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놈의 망상의 꿈일 것이다.
아무리 정치가 혼탁하더라도 저런 인간에게는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봐요! 김선생 내가 답을 드리리다.
천지개벽을 한다해도 소나무는 소나무요.
가시나무는 가시나무라는 것이요."
"뭐~요................"
"당신 참 머리가 아둔하시군 그래
말로해서는 안되는 인간이란 뜻이요."
"응~허~참~"
"이봐요! 박선생!
우리는 이미 당신 뒷조사를 다해두었다구
아주 이력이 화려하시더군 애국적 이력말이야
박선생!
언젠가는 일본은 다시 돌아올거야!
그때가 되면 나는 이 땅의 진정한 애국자가 되는거야!
그래서 그때의 일을 미리 준비하는거야!
내가 죽으면 나의 후손들이 애국자가 되는 것이고 말이야
그런데 당신같은 떨거지들이 내 앞날에 걸림돌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지!
안그런가? 박~선~생~니~임"
"이봐! 김선생!
당신은 우리민족에는 삼세번이라는 말이 있다는 걸
모르진 않겠지! 다시 한번 더 침략을 해온다면
일본은 역사속으로 영원히 사라질거야! 아주 영원히!
안그런가! 김~선~생~개~나~리~"
"됐고! 당신 병원에게 가서 몇 달 동안 평안이 휴가 좀 즐기시라고
내가 사무라 이후예 몇 명을 데려왔지
이봐들! 너무 심하게 다루지는 말게나!
대단한 이땅에 애국자시니까 다시는 입을 열지 못하시게
반병신을 만들어 도로에다 집어 던져 두라고 어느 애국자가
병원으로 친절히 모셔갈테니까!"
몇 일을 굶은 들개들처럼 으르렁거린다.
"이봐! 늙은 영감탱이야!
그러니까 평소에 고분고분해야지!
늙은것도 서러운데 험한꼴을 당해서야 쓰나!"
"흥! 짜식들아! 나의 뒷조사를 했다더니 그래 허접쓰레기나
뒤집어쓰고 다니는 양아치 일곱놈 가지고 되겠어!"
"나원참 저승길 멀지 않은 늙은이가 허풍을 치기는
서로 몸을 날리려는 찰나에 들려오는 발자욱 소리들
닫힌 문이 거칠게 열리며 들어서는 사내들을 흘끔쳐다보던
놈들이 한마디씩 한다.
"그러고보니 큰 소리친 구석이 있었구만!"
"아주 맹탕은 아니였구먼
그러나 소용없어 우리들을 이미 서울에서도 알아주는
왈짜 패거리거든! 쩐냄새따라 촌구석까지 왔지만 말이야!"
"모두 조용히들해라! 우리는 도경 강력계 형사들이다.
반항하면 가중처벌된다.
김선생 당신 체포영장이요!
죄명은 공문서 위조,사문서 위조,선거법 위반,공갈,협박
범죄조직 결성 등등
미란다원칙을 알려주고 도주,증거인멸 등등으로
당신을 체포하는 것이요.
자 어서 손을 내미시요!"
"너희들 누구야? 감히 내게 수갑을 채우려 하다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래!
이 실업자 시대에 정말로 실업자가 되고 싶어! 엉?
이러면 후회들 할텐데! 감히 여당후보를 체포하다니!
"김선생!
우리는 일년 전부터 당신을 보고 있었지!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주민들이 당신을 집단 고발했다는 사실이야
그러길래 떡을 만들었으면 평등하게 나누어 주어야지
고작 마을 리장 직함으로 힘없는 영세상인들을 찾아가 협박하고
반항하면 저 깍두기들을 보내 행패나 부리고 그랬다지
국회의원 후보 공천장! 당대표 표창장! 대통령 면담 일을
너무 크게 벌렸어! 사기행각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대학교 졸업장도 위조되었더군!
당시 정보부 푸락치를 해주는 조건으로 위조된 졸업장을 받았더군
당신 이번에 들어가면 살아서는 세상 빛 보기 힘들거야
비단 우리 경찰 뿐 아니라 사법부에서도 칼을 갈고 있거든
그러니 아무리 난장판 세상이라도 공권력을 물로 보면 안되는거지!
안그려! 김선생 이~개자식아~!
아~참! 잊은게 있어! 참 많이도 해먹었더군
당신이 일본으로 빼돌린 거액을 두고 하는 말이야
어떡해서 몇백억을 끌어 모으고 관리하고 불법송금을 했느냐 말이야!
그거야 좀 더 수사를 해보면 밝혀지겠지
이봐! 일단 도경으로 압송하고 당분간 비밀유지해!
틀림없이 더 큰 몸통이 있을거야!
물론 언론에도 일체 알리지 말고 보안유지 철저히 하도록!
피의자는 틀림없이 언론사에도 손을 뻗쳤을거야
이런자들 옹호하고 동조하는 자들이 이 땅에는 수없이 많아
또 그러면 인권이 어쩌고 절차가 어쩌고 덤벼들면
피의자의 언론놀이에 우리가 말려 들어가게 되어있어
그래서 벌써부터 체포하려다가 실패를 한거야!"
"이봐! 철딱서니 없는 깍두기들아!
너희들도 속았어! 아주 철저히 속았어!
리장놈의 시키 나를 쳐다보며 하는 말 참으로 불쌍하다.
"야! 박가놈아!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나는 멀지 않아 나오게 될 것이고 너는 그때 아주 끝장을 내주지
네놈이 신념이 있다면 나도 신념이 있다 이 말씀이야!
정의사회! 진실! 평등사회! 헛소리 하지마라!
지하의 보물은 먼저 발견하고 캐내는 놈이 임자야!
네놈들 말대로 하면 이세상에 살아남을 놈 한놈도 없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하는 법이야 이 얼간이놈아!
네놈이 아무리 용을 써봐라! 비웃음만 돌아올테니!"
참을수가 없다. 가슴에서 빨간게 익은 숯덩이가 이글거린다.
철물점으로 달려가 상어 이빨 닮은 톱을 사가지고 들어가자마자
뒷뜰의 사쿠라나무를 사정없이 베어내고 아주 토막을 냈다.
뿌리마저 뽑아 버리려고 삽을 찾으니 삽이 없다.
나무가 무슨 죄가 있으랴만은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해야했다.
그렇게 몇일도안 흥분을 하다가 가라앉은 후에
들국화 몇송이를 꺾어다가 주변에 꽃아 주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다 봉선화,맨드라미,채송화,금잔화를
심어 놓고 정성을 들였더니 이제는 제법 꽃들이 피었다.
들국화는 주눅이 들었는지 아직도 어리다.
오늘도 바람은 구름을 몰아가고 초사흘 달이 뜬다.
날아 가고 달이 지고 또 다시 그 날이 돌아온다만은
아직도 태평양 저 깊은 곳에서 물귀신들이 붙들고 놓아 주질 않는지
아니면 가시덤풀 우거진 밀림에서 길을 잃고 헤메 도는지
돌아오질 않는다.
오늘이 광복 76주년이란다.
이제는 태극기 달고 광복의 노래를 불러보는 이들이 점차 사라져간다.
흙 다시 만져보세 바닷물도 춤을 춘다.
예전에 소설 '싸리골'을 여러번 읽었다.
6.25전쟁때 낙오병이된 김상사 일행이 신분을 몇 달 숨기고
머슴을 등으로 살아가면서 아군의 진격을 기다리는
단순하지만 아주 의미있는 글이다.
그런데 싸리골은 그곳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북한군 치하에서 아군이 잠시 몸을 숨긴 마을이 모두 싸리골이다.
나역시 느티나무의 슬픔과 왜놈들에게 빌붙은 이땅의 모든 위정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보고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이다.
어찌 그것이 작은 촌락의 이야기이랴
한 시대의 견딜 수 없는 아픔들을 어설프게나마 잠시 적어 보았다.
어젯 밤은 공포의
밤이였다.
A급 태풍의 느티나무가
뿌리채 뽑힐듯이
비바람이 불었다.
나무틈새에 둥지를
틀고 살던 새들이
어찌 되었을까
괜찮아 괜찮아
다 괜찮아
이 사나운 바람들도
속히 속히 지나갈거야
그리고 다시 동녘하늘에 커다란 해가 솟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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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