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내 몸을 관통하는 쓸쓸함에 동의하며
시집『그녀의 외로움은 B형』서두에 나는 이렇게 썼다.
이것들은 슬픔의 협력자 서글픔에 기대어 시를 쓴다
막무가내 내 몸을 관통하는 쓸쓸함에 동의하며.
외로움은 공격적이고 방어할 힘이 없는 나는 나를 방치했다. 저녁노을이 지고 서서히 번져오는 아릿한 어둠의 농도에 먼 산의 능선이 사라지고 마당의 분꽃이 어슴푸레 피기 시작하면 견딜 수 없는 간절한 것들이 가슴에서 꿈틀거렸다. 조금은 저릿하고 조금은 서럽고 조금은 설레는 그 정도의 통증을 “나는 아직 살아있다”라고 해석했다. 그때 나는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은밀하게 키우고 있었다. 밤하늘을 홀로 날아가는 새, 우수수 마른 수수밭을 헤집는 갈바람소리, 뻘밭에 버려진 폐선, 파도에 밀려온 구두 한 짝, 밭둑에 우두커니 목이 잘린 해바라기… 막무가내의 슬픔은 늘 곁에 있거나 멀리 있었다. 외로움은 치명적이었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를 베고 잠이 들었던 일곱 살, 뻐꾸기가 뒷산에서 울 때면 괜스레 눈물이 고였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맡겨진 나는 해수(咳嗽)를 앓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혼자 말하고 혼자 놀았다. 만화책이나 동화책은 더없이 좋은 친구였다. 고향을 떠나 수십 년 서울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부터 칭찬을 받았던 글쓰기는 잊은 지 오래였다. 어느 날 “왜 좋아하던 글을 쓰지 않느냐”는 어린 막내딸의 질문과 오랫동안 방치했던 나의 감성이 충돌했다. 아! 나지막이 신음이 흘러나왔다. 글을 쓰겠다고 딸과 약속을 한 이틀 뒤 ‘제1회 동대문주부백일장’에 도전했다. 수필을 쓰려고 갔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짧은 시를 택했다. 뜻밖에 난생처음 쓴 시가 장원이었다. 그때 심사위원의 권유로 문화센터 시창작반에 등록했고 한 달 후 후배의 권유로 ‘전국 마로니에 주부백일장’에 나갔다가 문학의 열기에 깜짝 놀랐다. 지방에서 올라와 하룻밤을 자고 왔다는 젊은 여인, 몇 년을 벼르다가 왔다는 중년 여인, 머리 희끗한 노년들로 백일장 분위기는 긴장과 설렘으로 들떠있었다. 이렇듯 치열한 경쟁에서 시의 초보인 내가 어처구니없이 준장원을 차지했다. 이때부터 시에 미쳐 살았다. 시에 대한 감각을 익히기 위해 서점을 돌며 당선시집을 사 모았다. 1990년 신춘문예 당선시집부터 2000년 당선시집까지 빠짐없이 구해서 세끼 詩를 먹었다. 도가 지나친 몰입이었다. 시인이 되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렇게 시 쓰기는 운명처럼 시작되었고 우여곡절이 많았다. 시를 쓰기 시작한 삼년 째 신춘에 도전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기에 응모한 사실조차 잊고 있었는데 당선소식이 날아들었다. 경황없이 전화를 끊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착오가 생긴 것 같아 전화를 걸어 당선작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었다. 신춘문예의 벽이 얼마나 높은지 익히 알고 있었기에 한 번의 어설픈 도전으로 얻어낸 결과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일기장처럼 써내려간 당선작 신발論은 경험에서 우러난 시이다. 딸만 셋을 둔 우리 집은 가끔 넘치는 신발을 정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신발을 보내며 느낀 감정을 쉽게 써내려갔다. 그 작품이 당선작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지만 그 작품을 쓰고선 웬일인지 기분이 무척 좋았다. 문학은 치명적인 부위를 건드려 진실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기에 “시 쓰기는 간절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간절함을 전하거나 견딜 수 없는 간절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간절해지는 작업”이라고 말해왔다. 문학은 우리의 태도와 의식을 바꾸기도 한다. 행동하는 양심, 분노하는 용기가 없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타락했을까. 황현산 평론가는 “문학은 고통스럽게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고통이 행복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니 그 가능성이 문학의 힘이 아닌가.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은 자신이 쓴 시들은 “유리병 편지”라고 했다.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쓴 시편들은 어디론가 흘러가서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간절한 “유리병 편지”였을 것이다. 그 유리병 속에는 시인이 지우고 쓰고 구겨버린 숱한 “실패의 시간”과 “파지가 된 생각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나의 시 쓰기 역시 이 “유리병 속의 편지”와 같다. 어디까지 흘러가 누구의 가슴에 닿을 것인가. 지금도 막막한 심정으로 시를 쓴다. “내 피의 절반은 소금이다”라고 고백한 적이 있다. 파도에 너울거리는 미역처럼 참을 수 없는 비릿한 것들이 내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출렁거린다. 글을 쓰는 것은 외로움에 노출된 나를 달래는 방법이지만 시인이 고민해야할 것들은 개인의 사소한 걱정보다는 “삶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우선일 것이다. 시를 쓰는 힘은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 이 세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라고 한 어느 시인처럼 시 쓰기는 “괜찮은 일 중에서도 제법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부인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 하나를 제외한 전부를 포기한 시인이 선택한 실패는 세상이 선택한 성공보다 월등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다”는 말에 동의하며 나는 외로움에 동참한다.
<시인시대 >2020. 여름호
마경덕 시인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신발論』『글러브중독자』『사물의 입』『그녀의 외로움은 B형』(개정판) 제2회 북한강문학상 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