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백수가 속해있는 단체에서 망년회를 한답시고 회원이
운영하는 술집에 갔었다.
무대에서 춤을추는 무희가 있었고, 남자의 술시중을 드는 접
대부가 있는 제법 규모가 큰 술집이었다.
저녁식사에 반주로 들이킨 소주영향으로 대부분 벌겋게 취한
상태였는데, 그곳에 입장하자마자 모두들 산란해지기 시작
하는거였다. 오케스트라는 아니어도 웅장하게 뿜어대는 무대
위의 5인조 뺀드음악에 맞추어, 나이를 망각한체 몸을 흔들어
대는 성급한 친구가 있는가 하면, 벌써 접대부를 불러 옆에
앉히고는 헛수작 부리는 친구가 있었다.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더니 사회자의 실력을 한껏 뽐낸다.
<이제 다시는 우리들 곁에서 볼 수 없는 영국의 5인조 보컬그
룹 비틀즈, 매혹의 음성으로 수많은 여성의 애간장을 녹였던
60년대의 쟈니 허튼, 뭇 여성들의 눈물을 바가지로 받게했던
영국의 페티페이지, 이들은 모두 우리곁에서 노래 할 수 없는
신분이 되었지만, 오늘 우리 회원중에 이들의 노래를 멋지게
리바이벌 할 분이 계십니다. 포마수산 회장님을 무대위로 모시
겠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와..짝짝짝..>
막가파 사회자의 기습공격에 당황은 되었으나, 무대위로 올라
가 마이크를 넘겨받지 않을수가 없었다.
그날 홀에는 우림모임 30여명과 다른사람들의 모임이 두 개가
더 있었기에 얼른 보아도 100여명의 손님이 운집해 있었다.
우리와 무관한 다른 모임이 있었기에 사회자의 요구대로 팝송을
부른다는게 여간 부담스러워 간단히 양해를 구하고는 노래를
시작했다. 아마 이곳의 네티즌들도 내가 부른 노래들을 익히
알고 있을것이며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이 애창할거라고
믿는다. 첫 곡은 <Don't forget to remember>였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 앵콜을 받았다. 넓은 무대위에서 혼자 노래 부른
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지만, 백수의 노래를 들어주는 손님들이
있기에 첫 곡보다 훨씬 부담없이 부를수 있었다.
제목은 <All for the love of a girl>. 이 노래는 미국의 개척
시대때부터 구전으로 내려오던 전통민요인데, 죠니 허튼이라는
가수가 리바이벌해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곡이다.
손님들 대부분이 우리시대를 사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진 몰라도
내가 부르는 노래에 공감하고 찬사를 보내는 거였다.
성급한 손님은 무대위로 술병을 들고 올라와 직접 술을 따르는
호들갑을 떨었고, 많은 사람들은 이구동성 앵콜을 외쳐댔다.
나의 무대분위기도 한 껏 고조되었고, 그들을 위해 신나는 노
래를 한 곡 더 하기에 이르렀다.
80년대초...서울의 봄은 왔으나 또다시 군정으로 회귀하는 암울
한 시대에 디스코 바람을 몰고온 곡이 있다.
대다수의 국민과 젊은 학생들의 희망이 몇몇 군부세력에의해 짓
밟힐때, 이 노래는 그나마 청량제 역할을 한것같다.
바카라의 히트곡 <Yesir, I can boogi>.
어느덧 무대뒤로 무희들이 자리하여 율동을 펴보이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은 훌로링에 올라와 땀을 흘려가면서 디스코를 추어
댔다. 짓굳은 사회자친구는 곱추행각을 하며, 다른 손님의 테이
블에까지 쳐들어가 만원권 팁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이미 시대적 공감, 놀이의 공감이 어우러져 지폐 한 장 내는데는
누구도 인색해 하지 않았다. 이날 거두어진 팁은 댄써들과 종업
들의 봉사료로 주었다니, 아마 상당한 액수였던건 분명한것 같다.
땀에 흠뻑 젖은체 노래를 마치니 짓굳은 사회자가 다시 올라와
마이크를 낚아챈다. <우리들의 영원한 희망 백수의 노래에 이렇
듯 많은 찬사를 주신 이곳의 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꾸벅.. 더 듣고싶은 우리시대의 노래가 많으나, 한 곡만 신청해
서 불러보이는 순서를 마련했습니다. 아침이슬, 박수로 청해주세요...>
이건 예정에 없던 백수의 리싸이틀이 되어버린 거다.
전주곡이 나가고 무희들이 손을 치켜들고 천천히 좌우로 흔들어
대는데, 모든 손님들이 라이타에 불을 켜고는 그 불을 허공에 흔
들어 대는게 아닌가... 문득 백수의 20년전의 일들이 선명히 떠
올랐다. 부질없는 민주화를 외치며 시청앞에서, 광화문 네거리에
서, 종로에서, 서울역에서, 명동성당에서 촛불시위를 했던 그때의
시절이 영화속 한 장면처럼 나의 뇌리를 스치는거였다.
어느덧 나의 노래는 합창으로 이어졌고, 아스라히 노래가 끝나자
대통령후보의 이름이 연호되기까지 했다. 급기야 사태의 심각성이
노출되어져 백수일행은 시급히 나와버렸는데, 망년회가 백수인 나
개인을 위한 무대로 변질되어버렸으니, 여러 회원들께 미안한 마
음만 든다.
대선 투표일이 코앞이다. 누군가는 당선되고 누군가는 낙선하는데,
지역감정을 없앨수 있는 그런 후보가 당선되었음 하는 바램이다.
*이 글에 언급된 막가파 사회자 친구가 홀애비입니다. 아내와 사
별한지가 5년째 되는데, 여식의 교육때문에 재혼을 못하고 있어요.
그녀도 올해 수능시험을 봤으니깐 아빠의 재혼이 더이상 그녀의
성장에 방해되진 않겠죠? 주변에 딱 맞는 여성이 있으면 중매 한
번 서 보세요.
43세. 180cm. 75kg. 차인표 닮아서 별명이 인표.
친구들 결혼식 사회는 도맡아 맡음. 직업은 의료기 오파상.
한양대학교 졸업.
이상이 그의 프로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