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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실록 5권, 명종 2년 2월 7일 己丑 3번째기사 1547년 명 가정(嘉靖) 26년
홍문관 부제학 주세붕이 《대학》과 《중용》에 대해 설명하며 올린 상소
○弘文館副提學周世鵬上疏曰:
臣竊惟殿下幼況臨御, 聲律身度, 聰明睿智, 超出百王, 加以聖學日就, 早事四勿, 已究一貫。 當此之時, 誠宜盡擇博約之士, 八侍經筵。 況臣以草萊寒蹤, 衰鈍之資, 鹵莾之學, 亦忝經席, 至爲長官, 非徒不能導廣聖心, 亦多不得曉析文義, 進退躓澁, 語言吃陋。 撫躬非分, 慙懼交極。 且臣逮事先朝, 曾侍經幄, 猥受天地莫量之恩, 顧乏涓埃有闕之報。 正當(附)〔祔〕 廟之後, 愈新隙駟之痛, 誠欲以未及效先王者, 冀報殿下。 蒼顔白髮, 已迫遲暮, 犬馬之懷, 豈敢有隱? 又於前所畢進《大學》一部之中, 撮其要的, 爲殿下申之。 區區賤悃, 天地祖宗, 實所鑑臨, 伏惟殿下, 留神而洞省焉。 臣聞《大學》者, 帝王垂世立敎之大典, 僅一千七百五十有一字, 而其規模外大, 節目內密, 本末次第, 至切至詳, 未有滲漏。 學之之要, 貴在服膺而踐履。 自古爲人君者, 孰不欲使是身, 爲二帝三王, 爲人臣者, 孰不欲使是身, 爲皋、夔、伊、周? 然而後世之君臣, 所以遠有愧於虞、夏、殷、周者, 誠以《大學》之敎無傳, 而《大學》之道不行也。 昔禹儆于舜曰: "無若丹朱傲。" 周公戒成王曰: 無若殷王受之酗于汃德。" 爲人臣者, 固未嘗以吾君爲聖, 而不盡吾忠, 爲人君者, 亦未嘗以吾身爲聖, 而不喜受規。 今夫閭巷小兒, 皆知讀《大學》, 問其所以明明德, 則必曰格致誠正修, 問其新民, 則必曰齊治平, 相應答如影響。 然問其所以行之之方, 則范然不知所向。 嗚呼! 是果大學之學乎? 夫學貴眞知, 旣知須力行。 臣以爲欲學湯盤之 ‘日新’, 須勤太甲之顧諟, 必自强不息, 健行如天, 然後吾之所得於天者, 當復其全體, 無時不明也。 虛靈之地, 旣齊昏翳, 則其本體明於明鏡, 寂然不動, 而事物無窮之變, 可泛應曲當, 所謂感而遂通天下之故者是也。 臣伏讀《大學》經一章曰: "知止而後有定。" 朱子釋之曰: "定謂志有定向。" 蓋言爲學, 必以知止而定向爲先也。 苟不知定向, 則是猶瞽者之擿埴, 長安在西而未免東笑, 雖日行千里, 徒勞而無益。 故君子必先爲之格物, 以致知然後, 爲能知止而定向。 此固初學入德之門也。 夫五帝之聖, 莫如堯、舜, 三王之聖, 莫如文王。 然而究其所止, 則莫先乎仁之一字。 故《大學》只引三聖, 以爲萬世人君之標準。 其稱文王曰: "爲人君止於仁。" 稱堯、舜曰: "率天下以仁。" 嗚呼! 彼二帝一王, 其知止而向行類此。 其又贊爲仁之効曰: "一家仁, 一國興仁。" 又曰: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誠使人君, 必止於仁, 如射者之的, 行者之歸, 惟精惟一, 克之復之, 無一毫人欲之私, 則其爲心, 如白日靑天, 雲消霧歛, 無一査點綴。 蓋將參二氣而妙萬物, 亦必無一物之不得其所矣。 天下之大, 可運於掌, 況於一國乎? 如有一物不得其所, 則仁之道歉, 而爲餒於一物, 爲愧於天地矣。 嗚呼! 爲帝王者, 不亦勞乎? 昔汲黯, 告其君曰: "陛下內多欲而外施仁義。" 其言至懇, 而武帝不悟, 窮兵惑仙, 幾踵亡秦之覆轍, 是初不知定向而然也。 仲尼十五而志于學, 伊川, 十四而學聖人。 伏念 聖學知止定向, 正在今時。 夫道, 一而已矣。 人皆可以爲堯、舜, 有爲者亦若是。 願殿下, 勿以堯、舜、文王, 爲高遠不可跂及也。 臣伏讀《大學》, 其書至約, 四引《康誥》, 僅十五字。 其曰克明德者, 修已之謂也, 其曰作新民者, 治人之謂也, 其曰如保赤子者, 仁民之謂也, 其曰惟命不于常者, 甚言天命之難諶, 而人事之當盡也。 嗚呼! 誠使人君, 日誦此十五字, 念念佩服曰: "吾之學, 果能克明吾所初受之明德, 而無一毫些累乎, 抑一毫有所未盡乎? 吾之道, 果能作新吾天吾祖宗所付之億兆, 而無一民舊染乎, 抑一民有染乎?" 又曰: "我之仁恤, 一國之民, 果能如父母之保赤子乎, 抑有所未盡乎?" 每以天命之難諶爲憂, 人事之未盡爲戒, 日復日日, 夜復夜夜, 無時豫怠, 終始惟一, 則此十五字, 與舜之十六字, 當竝爲帝王之明師, 而明德自明於上, 億兆自新於下, 如傷子惠之澤, 自洽於天下, 將不必析天而天命亦爲之雀新, 自底於億萬年, 無(彊)〔疆〕 其永矣。 臣伏讀《大學》, 至於《秦誓》, 獨引九十七字, 何其引之不憚煩也。 嘗怪穆公, 西戎之君也, 其所言, 未必如二帝三王之聖, 而孔子必取而不刪, 以續夫四代之書者, 豈無微意乎? 此固曾子之徒, 所以引證於是書者, 多至百言而無厭也。 其曰: "若有一介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已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又曰: "人之〔有〕 技, 媢疾而惡之, 人之彦聖而違之, (偶)〔俾〕 不通, 寔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蓋前六十一字, 極言君子優容樂善之量, 後三十六字, 極言小人忌疾厭善之態。 穆公, 其始也, 不用百里奚、寒叔之言曰: "若爾何知? 中年梓木拱矣。" 蓋甚其言老謬, 而用憸小行師, 至於隻輪不返, 於是大悔, 乃作是誓。 然百終不能盡用耆舊, 使憸小再擧而河舟焚, 此固(奏穆)〔秦穆〕 , 劣於五伯也。 然而夫子取之者, 以其所言則至善, 故不以人廢言也。 嗚呼! 誠使穆公, 踐其所言, 則其治豈可量哉? 以又人君之所當深念也。 臣伏讀《大學》曰: "生財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 爲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臣聞國之所依者, 民也, 民之所依者, 稼穡也。 故周公之輔成王, 先陳稼穡之艱難。 其《詩》曰: "饁彼南畝, 田畯至喜。" 孟子之陳王道, 必曰: "不違農時, 穀不可勝食也。" 又曰: "民事不可緩也。" 詩云: 晝爾于芧。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 今之民俗務本者少, 而逐末者多。 末愈多而食愈少, 食愈少而末愈多, 靡然日趨於飢饉而不自知也。 夫一國之土田有限, 一夫惰農, 一田不牧, 十夫百夫, 至于千夫萬夫, 不執耒耜, 則其不牧者千萬其田矣。 故臣以爲今之人災, 甚於天災, 何者。 今之審天災者亦然。 以四分食而六分不食者, 謂之六分災, 三分食而七分不食者, 謂之七分災。 臣所謂人災者亦然。 夫農必使盡人力, 然後可以盡地力。 故上農貴在糞田, 而耕次之, 耘次之, 歛又次之。 其必欲不違時者, 所以惜其力也。 臣故曰: "四人農之, 而六人食之者, 六分災也, 三人農之, 而七人食之者, 七分災也。" 以此言之, 今之人災, 不止七分也。 不昏作勞, 《啇書〔商書〕 》所戒, 帶牛佩犢, 漢吏所恥。 今也氓之蚩蚩, 爭希登隴以罔市, 不肯服田而力穡, 南畝漸空, 西成安望? 草窮起於貧窮, 白日屠掠, 此皆殿下之赤子, 豈不傷怛? 苟無人災, 則九年耕, 裕三年之食, 公私滿溢, 露委於外, 菽粟如水火, 求之而無不應, 行者可無齎糧, 民俗自厚。 雖間有天災, 不足恤也, 況於盜賊之虞乎? 我祖宗朝, 諸道監司, 皆職帶勸農, 祖宗之務本, 亦可見矣。 伏願殿下, 爲政必以民産爲先, 於宮中圖《無逸》, 誦《豳》詩。 又敦諭八路, 驅民於農, 使小民, 皆知務本業而恥末利, 革巧詐而爲朴實。 然後申之以孝悌之義, 勵之以廉讓之風, 以隆初服大化之治, 不勝幸甚。 臣伏讀《大學》, 其引詩一十有二章, 凡一百四十五字, 所謂反覆吟詠之間, 使人心融神會, 不知蹈舞者, 誠深於詩矣。 嘗試誦之, 則其命雀新之可喜, 峻命不易之可畏, 民之父母之可愛, 民具爾瞻之可謹。 向非緝熙而敬止, 安得於戲之不忘, 至於邦畿之諭, 黃鳥綠竹之敎, 愈可以起人於百世之下, 桃庂蓼蕭之得宜, 鳲鳩之不忒, 所以爲貴也。 其稱君子者, 一十有三處, 皆喫緊爲學之要, 臣不必一一歷陳, 而其爲道, 必先愼乎德, 有諸己而后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母自欺, 無所不用其極者, 皆是。 夫《中庸》, 亦繼《大學》而作, 其引《詩》凡一十有六章, 其稱君子, 凡三十有四處, 皆可以改目歛觀。 臣每誦味于此, 益知前後聖賢用心之獨苦也。 嗚呼! 《庸》、《學》二書所論, 皆格言, 然而臣於先儒訓話章句之外, 別有所感焉者, 故敢竭獻芹之愚。 伏願殿下, 始于《大學》, 終于《中庸》, 反覆溫理, 體而行之, 靜而安之, 無忘引《詩》, 必念君子, 則《傅說》所謂: ‘念終始典于學, 厥德修罔覺者。’ 正在於此也。 臣伏讀《大學》其, 誠意章曰, 必愼其獨者再, 其平天下章曰, 有絜矩之道者再。 臣每讀至此, 未嘗不悚然而畏之, 蹙然而敬之, 欣然而悅之。 夫聖賢所以言之之足, 必再言而無厭者, 亦豈無微意乎? 誠以愼獨之似易而實難, 絜矩之似約而至博, 爲義之似無利而有利也。 然臣以爲三說, 雖若有異, 而其實一也。 蓋愼獨不已, 則母自欺, 而絜矩之情, 油然而發矣, 絜矩不已, 則老老幼幼, 而爲義之心, 藹然而生矣, 雖勸之爲利, 亦不可得矣。 伏願殿下, 潛經而沿于傳, 究傳而會于經。 拳拳乎十仁字, 反覆乎一恕字, 驗一心有無之七病。 察楚書舅犯之所寶, 敦五止而惕五僻。 又必以四命字四愼字四義字, 念念存省。 不忽細行, 不厭小善, 勿貳賢正, 勿親巧令。 臨民如祭, 親物如傷, 事大以誠, 事小以仁。 忠信必先, 驕泰必戒。 高明法天, 博厚法地。 以不忍人之心, 行不忍人之政, 好生之德, 協于乾坤, 融爲大和。 和氣充積, 風雨自順, 百穀登而萬物育, 於變時雍之治, 不獨專美於帝堯矣? 臣無任激切屛營之至, 謹齋沐百拜, 昧死以聞。
仍啓曰: "館中論學問之事, 已上章矣, 臣累侍經筵, 不能分明啓達, 故別錄所懷以啓。" 答曰: "今觀疏辭, 誠意懇切。 予雖幼愚, 未能行之, 豈不留念乎?"
명종 2년 정미(1547) 2월 7일(기축)
02-02-07[03] 홍문관 부제학 주세붕이 《대학》과 《중용》에 대해 설명하며 올린 상소
홍문관 부제학 주세붕(周世鵬)이 상소하였다.
“신은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유충(幼沖)하신 때 보위에 오르셨지만 언행이 법도에 맞고 총명하고 슬기가 있어 어느 왕보다 뛰어나신데다가 학문이 날로 성취되어 일찍부터 사물(四勿)을 일삼았고 일관(一貫)을 궁구하셨습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박문약례(博文約禮)한 선비를 가려 뽑아 경연에서 모시도록 해야 마땅합니다. 신은 초야의 한미한 신분에다 둔한 자질과 거친 학문으로 경연에 참여하여 장관(長官)의 지위까지 이르렀으나 전하의 마음을 넓은 데로 인도하지도 못하고 글뜻을 분명하게 알지도 못하며 걸음걸이는 단정치 못하고 말은 더듬습니다. 자신을 돌아보니 분수에 넘쳐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극도로 교차됩니다. 신이 선왕조를 섬길 적에 경악(經幄)에서 모셨지만 외람되게 헤아릴 수 없을 막대한 은혜만 받았을 뿐 성상의 잘못을 깨우쳐 드리는 하찮은 보답도 못하였습니다. 부묘(祔廟)를 하고 나니 덧없는 세월의 아픔이 더욱 새로와져 진실로 선왕께 갚지 못한 은혜를 전하께 갚고 싶습니다. 창안 백발(蒼顔白髮)에 이제 황혼이 임박했으니 신의 가슴에 품은 생각을 어찌 감히 숨기겠습니까. 전에 진강(進講)을 마친 《대학》 일부 가운데서 요긴한 것만 모아서 전하를 위해 아뢰겠습니다. 조그마한 천한 정성을 천지(天地)와 조종조(祖宗朝)는 실로 아실 터이니, 전하께서는 유념하여 살펴주소서.
신이 듣건대 《대학》이란 제왕(帝王)이 세세토록 입교(立敎)하는 큰 법입니다. 글자 수는 겨우 1천 7백 51자이지만 밖으로는 규모가 크고 안으로는 절목(節目)이 세밀하며 본말(本末)의 차례가 지극히 간절하고도 자세하여 조금도 소홀한 데가 없습니다. 이를 배우는 요령은 가슴에 새겨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임금된 자면 그 누가 자신이 이제 삼왕(二帝三王)이 되고 싶지 않았겠으며, 신하된 자면 그 누가 고요(皐陶)ㆍ기(夔)ㆍ이윤(伊尹)ㆍ주공(周公)이 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후세의 임금과 신하들이 우(虞)ㆍ하(夏)ㆍ주(周)에 조금도 미치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대학》의 가르침이 전해지지 않고 《대학》의 도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옛적에 우(禹)가 순(舜)을 경계하기를 ‘단주(丹朱)처럼 오만하지 말라.’고 하였고, 주공(周公)은 성왕(成王)을 경계하기를 ‘은왕 수(殷王受)처럼 술에 빠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신하된 자들은 그들의 임금을 성인으로 여기지 않고 충성을 다하지 않았으며, 임금된 자 또한 자신을 성인으로 생각한 적이 없어 경계 받기를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거리에 있는 어린아이들도 다 《대학》을 읽을 줄 알며, 밝은 덕[明德]을 어떻게 밝히느냐고 물으면 틀림없이 격물(格物)ㆍ치지(致知)ㆍ성의(誠意)ㆍ정심(正心)ㆍ수신(修身)이라고 답하며, 신민(新民)을 물으면 제가(齊家)ㆍ치국(治國)ㆍ평천하(平天下)라고 말하여 그 대답이 마치 메아리나 그림자와 같이 상응(相應)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물으면 멍하여 그 향배조차 알지 못합니다. 아, 이것이 과연 《대학》의 학문입니까! 대저 학문이란 참으로 아는 것[眞知]을 귀하게 여기며 이미 알았다면 모름지기 힘써 행해야 합니다.
신의 생각엔 탕(湯)임금의 반명(盤銘)에 ‘날로 새롭게 한다[日新]’는 것을 배우려면 모름지기 태갑(太甲)에 이른바 ‘하늘의 밝은 명[天之明命]을 살핀다.’는 것을 스스로 힘써 쉬지 아니하여 하늘처럼 강건하게 행해야만 우리가 하늘에서 얻은 것이 그 전체(全體)가 회복되어 밝지 않은 때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허령(虛靈)한 경지에 이미 어두운 막이 걷히면 그 본체(本體)가 밝은 거울보다 더 밝고 고요한 채 움직이지 않지만 무궁한 사물의 어떤 변화에도 곡진하고 알맞게 두루 응할 수 있으니 이른바 ‘감동하여 드디어 천하의 일에 통한다[感而遂通天下之故]’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신이 《대학》 경일장(經一章)을 읽어 보니 ‘그칠 데를 안 뒤에야 정함이 있다.[知止而後有定]’고 하였는데, 주자가 해석하기를 ‘정(定)이란 뜻에 정해진 방향이 있음[志有定向]을 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대개 학문은 그칠 데를 알아서 방향을 정하는 것을 반드시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정해진 방향을 모른다면 이는 마치 장님이 지팡이로 땅을 더듬는 것과 같아서 장안(長安)은 서쪽에 있는데 동쪽을 향해서 웃는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설령 하루에 천리를 간다고 하더라도 수고롭기만 하고 이익은 없는 것입니다. 때문에 군자는 반드시 격물(格物)하여 치지(致知)한 뒤에야 그칠 데를 알아서 방향을 정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처음 배우려는 자가 입덕(入德)하는 문이 됩니다.
대저 오제(五帝) 중엔 요ㆍ순(堯舜)이 가장 거룩하고 삼왕(三王) 가운데는 문왕(文王)이 가장 거룩합니다. 그러나 그 그칠 바를 궁구한다면 ‘인(仁)’자보다 우선하는 것이 없습니다. 때문에 《대학》에 다만 세 성인만 인용하여 만세 인군의 표준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문왕(文王)에 대해 일컫기를 ‘임금이 되어서는 인(仁)에 멈추었다.[爲人君止於仁]’고 하였고, 요ㆍ순에 대해 일컫기를 ‘천하를 인으로써 거느린다.[率天以仁]’고 하였습니다. 아, 이 두 황제[二帝]와 한 왕[一王]은 그 그칠 데를 알아서 방향을 정한 것이 이와 같습니다. 또 인의 효과를 찬(贊)하기를 ‘한 집이 인하면 한 나라가 인에 흥기한다.[一家仁一國興仁]’고 하였습니다. 또 말하기를 ‘위에서 인을 좋아하는데 아래에서 의를 좋아하지 않을 자가 없다.[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임금으로 하여금 반드시 인에 그치게 하기를 활쏘기에 있어서의 표적과 같이 하고 나그네의 목적지와 같이 하여 오직 정하게 오직 한결같게[惟精惟一] 하며, 사욕(私欲)을 누르고 천성(天性)을 회복하여 조금도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없으면, 그 마음이 대낮의 푸른 하늘처럼 구름도 사라지고 안개도 걷혀 티 하나 없이 맑아질 것입니다. 대개 이기(二氣)가 조화되어 만물을 생육하는 것이니 결코 한 가지 물(物)도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큰 천하도 손바닥 위에서 운용할 수 있거늘 하물며 한 나라쯤이겠습니까. 만약 한 물(物)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한 것이 있다면, 인(仁)의 도가 부족하여 한 물에 혜택이 미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니 천지에 대하여 부끄러움이 되는 것입니다. 아, 제왕이 된 자 어찌 수고롭지 않겠습니까!
옛적에 급암(汲黯)은 그 임금께 고하기를 ‘폐하께서는 마음속에 욕심이 가득한데 겉으로는 인의(仁義)를 베푸는 체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매우 간절하였거늘 무제(武帝)가 깨닫지 못하고 전쟁을 일으키고 신선에 미혹되어 망한 진(秦)나라의 전철을 밟을 뻔하였으니, 이는 처음에 방향을 정할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중니(仲尼)는 15세에 학에 뜻을 두었고 이천(伊川)은 14세에 성인을 배웠습니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그칠 데를 아는 것[知止]과 방향을 정하는것[定向]을 배울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대저 도는 하나일 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요ㆍ순이 될 수 있으되 행하는 자가 요ㆍ순처럼 되는 것입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요ㆍ순과 문왕을 높고 멀어 미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소서.
신이 《대학》을 읽어 보니, 그 글이 지극히 요약되어 있어 네 번 강고(康誥)를 인용하였는데 겨우 15자입니다. 그 ‘능히 덕을 밝힌다.[克明德]’는 것은 몸을 수양함을 말하고, ‘새로운 백성을 진작한다.[作新民]’는 것은 사람을 다스리는 것을 말하며, ‘갓난아이처럼 보호한다.[如保赤子]’는 것은 백성을 인애(仁愛)함을 말하고, ‘명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惟命不于常]’는 것은 하늘의 명은 믿기 어려우니 마땅히 사람이 할 일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아, 진실로 임금이 날마다 이 15자를 외워 순간순간 마음에 새기기를 ‘나의 학문은 과연 내가 타고날 때 받은 밝은 덕[明德]을 능히 밝혀서 조금도 가리움[累]이 없는가, 아니면 조금이라도 미진한 점이 있는가? 나의 도가 과연 우리 하늘과 우리 조종(祖宗)이 나에게 맡긴 억조 창생들을 새롭게 하여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낡은 옛 버릇을 버리지 못한 자가 없는가, 아니면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옛 버릇을 가지고 있는가?’라고 하고, 또 ‘내가 내 나라 백성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과연 어린아이의 부모가 아이를 보호하는 마음과 같은가, 아니면 미진한 점이 있는가?’라고 하며, 늘 천명의 믿기 어려움을 근심하고 인사(人事)의 미진(未盡)함을 경계하여,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어느 때든 안일하거나 나태하지 않으며 처음과 끝이 오직 한결같다면, 이 15자(字)는 순(舜)의 16자(字)와 함께 제왕(帝王)의 밝은 스승이 되어 밝은 덕은 저절로 위에서 밝아지고 억조 창생은 저절로 아래에서 새롭게 될 것이며, 백성을 마치 다친 사람 보듯이 불쌍히 여기는 은택이 저절로 천하에 흡족하여 반드시 하늘에 기도하지 않더라도 하늘의 명[天命] 또한 그를 위하여 유신(維新)해 줄 터이니 자연 억만년토록 무궁하고 영원할 것입니다.
신이 《대학》을 읽다가 진서(秦誓)에 이르러 유독 길게 97자(字)를 인용한 것을 보고 ‘무엇 때문에 이리도 번거롭게 했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일찍이 목공(穆公)은 서융(西戎)의 임금으로 그가 한 말은 이제(二帝)나 삼왕(三王) 같은 성인의 말씀과 반드시 같지는 않을 터인데 공자께서 깎아버리지 않고 기어이 취해서 사대(四代)의 서(書)에 넣은 것을 괴이하게 여겼었는데, 이것이 어찌 은미한 뜻이 없겠습니까. 이 점이 바로 증자(曾子)의 문도가 이 글을 인용하여 증거한 것이 1백 자(字)에까지 이르러도 싫증을 내지 않은 까닭입니다. 거기에 인용하기를 ‘만약 한 신하가 성실할 뿐 다른 재주라곤 없으나 그 마음이 넓어 포용력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재주있으면 마치 자기가 가진 듯이 여기며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마음으로 좋아하여 입으로 말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면, 이는 충분히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므로, 능히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전할 터이니 또한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재주를 시기하고 다른 사람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막아 통하지 못하도록 한다면 이는 포용력이 없는 사람이므로 우리의 자손과 백성들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니 역시 위태로울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앞의 61자는 넉넉하고 포용하며 선(善)을 즐기는 군자의 도량을 극언(極言)한 것이고 뒤의 36자는 시샘하고 미워하며 선을 싫어하는 소인의 태도를 극언한 것입니다.
목공(穆公)이 처음에 백리해(百里奚)와 건숙(蹇叔)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기를 ‘너희가 무엇을 아느냐? 얼마 못 살고 죽을 늙은이가!’라고 하여 늙고 쓸모가 없음을 극언하였고, 간사한 젊은 무리를 기용하여 기어이 전쟁을 일으켰다가 한 대의 수레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참패를 당한 뒤에야 크게 뉘우쳐서 이 진서(秦誓)를 지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끝내 기구(耆舊)를 쓰지 아니하고 젊은 무리들을 다시 등용하여 강을 건넌 뒤 배를 불태우게 했으니 이 점이 진실로 진 목공이 오패[五伯]보다 열등한 점입니다. 그런데도 공자께서 이를 취하신 까닭은 그가 한 말만은 매우 선(善)하여 그 말한 사람이 선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말조차 폐할 수는 없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아, 만약 목공이 그가 말한 대로 실천하였던들 그의 다스림이 얼마나 훌륭했겠습니까! 이 점 또한 임금으로서 깊이 유념해야 할 점입니다.
신이 《대학》을 읽어 보니 ‘재물을 생산하는 데는 큰 방법이 있는데, 생산하는 자가 많고 먹는 자가 적으며 만드는 자가 빠르고 쓰는 자가 느리면 재물은 항상 풍족하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들으니 나라가 의지할 것은 백성이요, 백성이 의지할 것은 농사입니다. 그러므로 주공(周公)이 성왕(成王)을 보필할 적에 먼저 농사짓기의 어려움부터 진언(陳言)했던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남쪽 들에 점심을 내가니 권농관이 기뻐하네.[饐彼南畝 田畯至喜]’라고 하였고, 맹자(孟子)가 왕도(王道)를 설명할 때는 반드시 ‘농사철을 어기지 않으면 곡식이 넉넉하여 남아돈다.[不違農時 穀不可勝食]’고 하였으며, 또 이르기를 ‘농사일은 늦출 수 없다.[民事不可緩也]’고 하였습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낮엔 이엉을 엮고 밤엔 새끼를 꼬아서 서둘러 지붕을 인 뒤에야 비로소 백곡을 파종한다.[晝爾于茅 宵爾索綯 亟其乘屋 其始播百穀]’고 하였습니다. 오늘의 민간 습속을 보면 근본[本]을 힘쓰는 자는 적고 말업[末]에 종사하는 자는 많습니다. 말업이 많으면 많을수록 먹을 것이 더욱 적어지고 먹을 것이 적을수록 말업이 더욱 많은 법인데, 날마다 굶주리는 길을 쫓아가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저 한 나라의 농토는 한정이 있으니 한 농부가 농사일을 게을리 하면 한 마지기의 밭을 거두지 못하며 열 사람, 백 사람, 천 사람, 만 사람이 쟁기와 보습을 잡지 아니하면 거두지 못하는 밭이 천 마지기, 만 마지기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오늘날의 인재(人災)는 천재(天災)보다도 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천재라는 것을 살펴보면 또한 그러합니다. 4분(分)은 먹는데 6분은 먹지 못하는 것을 6분재(六分災)라고 하며 3분은 먹는데 7분은 못 먹는 것을 7분재(七分災)라고 합니다. 신이 말하는 인재(人災)라는 것도 역시 그러합니다. 대개 농사라는 것은 인력(人力)을 다한 뒤라야 지력(地力)을 다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농(上農)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밭을 걸우는[糞田] 것이며 밭을 가는 일이 다음이요, 김을 매는 일이 그 다음이며 거두어들이는 일이 또 그 다음입니다. 각각 제때를 어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힘을 아끼려는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4인이 농사지어 6인이 먹는 것은 6분재요, 3인이 농사지어 7인이 먹는 것을 7분재(七分災)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말한다면 오늘날의 인재(人災)는 7분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땀흘려 수고하지 않는[不昏作勞] 것은 《상서(商書)》에서 경계한 바요, 칼을 팔아서 소를 사도록 한 것[帶牛佩犢]은 자기 고을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것을 한(漢)나라 관리가 수치로 여긴 바입니다.
지금 어리석은 백성들이 앞을 다투어 시장의 이익을 차지하기를 희망하고 밭에 나가 땀흘려 농사짓기를 싫어하여 논밭이 차츰 비게 되니 가을에 거두기를 어찌 바라겠습니까. 빈궁한 탓으로 좀도둑이 생기어 대낮에 죽이고 강탈하지만 이들도 모두 전하의 백성이니 어찌 애달프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인재(人災)만 없다면 9년 농사에 3년 먹을 것이 저축되어 공사(公私)간에 곡식이 넘치어 밖에까지 쌓이게 되며, 곡식이 물이나 불처럼 풍족하게 되어 곡식을 요구할 적마다 줄 수 있어 행인은 먹을 것을 싸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며, 민속(民俗)은 절로 후해지게 됩니다. 이렇게 된다면 설령 간혹 천재(天災)가 있다 해도 문제될 것이 없을텐데 하물며 도적의 염려가 있겠습니까. 우리 조종조 때는 각도의 감사가 모두 권농(勸農)의 직무를 겸하게 되어 있었으니, 조종조에서 근본에 힘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정사(政事)를 다스림에 있어 반드시 민산(民産)을 우선으로 하시어 궁중(宮中)에선 무일(無逸)을 도모하고 빈시(豳詩)를 외우소서. 또 팔도에 돈유(敦諭)하여 백성들을 농사에 종사케 하고 소민(小民)으로 하여금 본업(本業)인 농사에 힘쓰고 말리(末利)를 수치로 여기게 하며, 교묘한 속임수[巧詐]를 고치어 질박[朴實]하게 만드소서. 그런 뒤에 효제(孝悌)의 뜻을 널리 펴고 염치와 겸양의 기풍을 권장함으로써 즉위한 처음의 대화의 다스림[大化之治]을 높이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신이 《대학》을 읽어 보니 《시경》을 인용한 장(章)이 12장, 1백 45자(字)인데 이른바 되풀이 해서 읊조리는 사이에 사람으로 하여금 심신(心神)으로 융회(融會)되게 만들어 자신도 모르게 춤이 나온다는 것은 진실로 《시경》을 깊이 알았기 때문입니다.
신이 읽어 보건대 ‘기명유신(其命維新)’은 기뻐할 만하였고 ‘준명불이(峻命不易)’는 두려울 만하였으며, ‘민지부모(民之父母)’는 사랑할 만하였고 ‘민구이첨(民具爾瞻)’은 삼가할 만하였습니다. 앞서 ‘집희경지(緝熙敬止)’가 없었다면 ‘오호불망(於獻不忘)’이 어떻게 될 수 있겠으며, 방기(邦畿)의 비유와 황조(黃鳥)와 녹죽(綠竹)의 가르침은 백대[百世] 후의 사람을 오히려 흥기(興起)시키며 ‘도요(桃夭)’와 ‘육소(蓼蕭)’의 올바름과 ‘시구(鳲鳩)’의 어긋나지 않음은 그 시가 바로 사랑을 받는 이유입니다.
‘군자(君子)’를 칭한 데가 13군데인데 모두가 학문을 함에 있어 매우 긴요한 것들로서, 신이 하나하나 말씀드릴 필요가 없겠으나 그 방법을 대강 들자면 ‘반드시 먼저 덕(德)을 삼가라.’ ‘자신에게 갖춘 다음에 남에게 요구하고 자신에게 허물이 없는 다음에 남을 책망하라.’ ‘자신을 속이지 말라.’ ‘지선(至善)의 경지에 도달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 등이 다 이것입니다.
대체로 《중용》은 《대학》을 이어서 지은 것인데 《시경》 인용이 16장(章)이요, 군자(君子)를 칭한 곳이 34군데로, 모두가 다시 보고 익혀야 할 것들입니다. 신은 이 글들을 외고 음미할 적마다 옛 성현들이 얼마나 고심하였는가를 깨달았습니다.
아, 용학(庸學) 두 책은 모두가 격언(格言)이지마는 신은 선유(先儒)가 풀이한 장구(章句) 외에 따로 느낀 바가 있으므로 감히 변변치 못한 정성을 바친 것입니다. 삼가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대학》에서 시작하여 《중용》을 마칠 때까지 반복해서 이치를 익히며, 본받아 실행하고 고요하게 즐기며, 인용된 《시경》의 내용을 잊지 말고 반드시 군자(君子)를 생각하소서. 그러면 《서경(書經)》 열명편(說命篇)에 이른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생각으로 학문에 뜻을 두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덕(德)이 닦여진다.’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신이 《대학》을 읽어 보니 성의장(誠意章)에 ‘신기독(愼其獨)’이란 말이 두 번 나오고 ‘혈구지도(絜矩之道)’란 말이 두번 나옵니다. 신은 이 글을 읽을 적마다 두려움과 공경스러움과 즐거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대개 성현이 한 번의 말로는 부족하여 두 번 말하기를 싫어하지 않은 것이 어찌 은미한 뜻이 없겠습니까. 진실로 신독(愼獨)은 쉬운 것 같지만 실은 어렵고, 혈구지도(絜矩之道)는 간략한 듯하지만 지극히 넓으며, 의(義)를 행하는 것은 이로움이 없는 듯하지만 이로움이 있습니다. 이상 신이 말씀드린 세 가지 말은 다른 듯 하지만 실은 한 가지입니다. 대개 홀로 있을 때를 삼가면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없고, 혈구(絜矩)의 마음도 저절로 우러나오며, 혈구의 마음이 우러나오면 노인을 노인으로 대하고 어린이를 어린이로 대하는 의로운 마음이 막을 수 없이 우러나오게 되어 설사 이익으로 꾀인다 하여도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경(經)에 침잠(沈潛)하여 전(傳)을 따르시며 전을 궁구(窮究)하여 경(經)을 깨달으셔야 합니다. 10군데의 인(仁)자를 가슴속에 깊이 간직하시고 하나의 서(恕)자를 반복하여서 마음에 일곱가지 병[七病]이 있는지 없는지 증험하소서. 초서(楚書)와 구범(舅犯)이 보배로 여기던 것을 살피고 오지(五止)를 독실하게 하며 오벽(五辟)을 삼가소서. 또 반드시 4곳의 명(命)자, 4곳의 신(愼)자, 4곳의 의(義)자를 항상 간직하여 반성하소서. 작은 행동도 소홀하게 여기지 말고 사소한 선(善)도 싫어하지 말며, 어질고 바른 이를 의심하지 마소서. 백성을 대함에 제사를 지내듯 공경하고 사물을 대함에 애절한 마음으로 아끼며, 큰 나라를 섬김엔 정성으로써 섬기고 작은 나라는 어진 마음으로 섬기소서.
충과 신[忠信]을 반드시 우선하고 교만과 안일[驕泰]을 반드시 경계하소서. 높고 밝음[高明]은 하늘을 본받고 넓고 두터움은 땅을 본받으소서. 차마 못하는 마음 가짐으로써 차마 못하는 정사[不忍之政]를 행하시면 살리기를 좋아하는 덕[好生之德]이 천지와 협화(協和)하고 융화하여 대화(大和)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화한 기운이 충만하여 비와 바람이 저절로 순하게 되어 온갖 곡물이 풍년들고 만물이 잘 자랄 터이니, 오변시옹[於變時雍]이 유독 요(堯)임금 때에만 있겠습니까. 신은 간절하고 두려운 마음을 가누지 못하여 목욕 재계하고 백번 절하며 죽음을 무릅쓰고 삼가 아룁니다.”
이어서 아뢰기를,
“관중(館中)에서 학문을 논하는 일은 이미 상장(上章)하였으나 신이 여러번 경연에서 모시는 동안 분명하게 계달(啓達)하지 못한 까닭에 따로 생각한 바를 기록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하니, 답하기를,
“이제 소의 내용을 보니 성의가 간절하다. 내가 비록 어리고 어리석어 능히 실행은 못하지만 어찌 유념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원전】 19 집 480 면
【분류】 정론(政論) /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주-D001] 사물(四勿) :
공자가 제자 안회(顔回)에게 가르친 네가지 경계. 즉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는 것이다. 《논어(論語)》 안연(顔淵).
[주-D002] 일관(一貫) :
공자가 “나의 도는 한 이치로 관통한다.[吾道一以貫之]”라 한데서 온 말이다. 《논어(論語)》 이인(里仁).
[주-D003] 단주(丹朱) :
요임금의 아들.
[주-D004] 태갑(太甲) :
《서경》의 편명.
[주-D005] 하늘의 밝은 명[天之明命] :
마음.
[주-D006] 감동하여 …… 통한다[感而遂通天下之故] :
이 말은 《주역(周易)》 계사상(繫辭上)에 있다.
[주-D007] 두 황제[二帝] :
요와 순.
[주-D008] 한 왕[一王] :
문왕.
[주-D009] 이천(伊川) :
정이(程頤)의 호.
[주-D010] 순(舜)의 16자(字) :
본심(本心)의 바름을 전일하게 지키기 위한 방도로서, 순임금이 우(禹)임금에게 전수(傳授)한 말. 모두 16자로 되어 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인심은 위태롭기만 하고 도심은 은미하기만 하니 오직 정밀하고 전일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으리라.[人心惟危 道心惟微 惟精惟一 允執厥中]” 《서경(書經)》 대우모(大禹謨).
[주-D011] 사대(四代)의 …… 것 :
《서경(書經)》 진서(秦誓)에 나오는 목공은 오제(五帝)나 삼왕(三王) 같은 성인이 아닐 뿐 아니라, 그 말의 내용 또한 지난날의 잘못을 말로만 뉘우친 데 불과할 뿐인데, 공자가 《서경》을 산정(刪定)할 때 이를 빼버리지 않고 남겨둔 것을 말한다.
[주-D012] 강을 …… 했으니 :
진 목공(秦穆公)이 진(晉)에게 대패한 효(殽)땅 전투의 설욕을 위하여 다시 맹명시(孟明視) 등을 기용하여 진의 왕관(王官)ㆍ호(鄗) 땅을 빼앗았다. 이 싸움에 앞서 비장한 결의를 보이려고 목공은 물을 건너가자마자 타고온 배들은 모조리 불살라버렸던 것이다. 《사기(史記)》 진본기(秦本記).
[주-D013] 근본[本] :
농사일을 말함.
[주-D014] 말업[末] :
농사 이외의 장사 등의 일.
[주-D015] 칼을 …… 것[帶牛佩犢] :
칼을 팔아서 소를 산다는 뜻으로 싸움을 그만두고 농사짓는 것을 뜻함. 한 선제(漢宣帝) 때 발해 지방에 흉년이 들어 많은 백성들이 칼을 들고 도둑질을 하였는데, 이곳 태수로 부임한 공수(龔遂)가 그들에게 칼을 팔아 소를 사서 농사지을 것을 가르쳤다는 고사이다. 《한서(漢書)》 권89.
[주-D016] 무일(無逸)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으로 그 내용은 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한 것이다.
[주-D017] 빈시(豳詩) :
《시경》 빈풍(豳風)의 시를 가리킴. 농사에 관한 일을 시가로 표현하였는데, 빈풍시 중에서도 칠월편(七月篇)은 옛부터 농가(農歌)로 널리 애송되어 왔다.
[주-D018] ‘기명유신(其命維新)’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의 “주나라가 비록 오래된 나라지만 그 명은 새롭다.[周雖舊邦其命維新]”는 대문을 말함. 이 대문을 《대학(大學)》 전이장(傳二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19] ‘준명불이(峻命不易)’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의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삼아 볼지어다. 큰 천명은 쉽지 않다.[宜鑑于殷 峻命不易]”한 데서 온 말인데, 이것을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0] ‘민지부모(民之父母)’ :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산유대(南山有臺)의 “훌륭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라.[樂只君子 民之父母]” 한 것을 말하는데, 이 대문은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1] ‘민구이첨(民具爾瞻)’ :
《시경(詩經)》 소아(小雅) 절남산(節南山)의 “혁혁한 태사 윤씨여, 백성이 모두 그대를 쳐다본다[赫赫師尹 民具爾瞻]” 한 데서 온 말인데, 즉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조금만 삼가지 않으면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라까지 망하게 됨을 경계한 말이다. 이 대문은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2] ‘집희경지(緝熙敬止)’ :
《시경(詩經)》 대아(大雅) 문왕(文王)의 “깊고 원대한 문왕이여, 아, 언제나 광명하시고 공경하여 머무신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 한 데서 온 말로, 문왕의 덕을 찬탄한 것인데, 이것은 《대학(大學)》 전삼장(傳三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3] ‘오호불망(於獻不忘)’ :
《시경(詩經)》 주송(周頌) 열문(烈文)의 “아, 전 임금을 잊지 못하리로다.[於戲前王不忘]” 한 데서 온 말인데, 전 임금이란 곧 문왕ㆍ무왕을 가리킨 말로, 후현 후왕(後賢後王)들이 문왕ㆍ무왕의 덕을 깊이 찬미한 것이다. 이것은 《대학(大學)》 전삼장(傳三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4] 방기(邦畿)의 …… 녹죽(綠竹) :
방기는 《시경(詩經)》 상송(商頌) 현조(玄鳥)의 “왕도(王都) 천리는 백성들이 살 만한 곳이라.[邦畿千里 惟民所止]” 한 데서 온 말이고, 황조(黃鳥)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민만(緡蠻)의 “꾀꼴꾀꼴 우는 꾀꾀리는 산이 높고 울창한 곳에 앉는다.[緡蠻黃鳥 止于丘隅]” 한 데서 온 말로, 모두 사람이나 동물이 다 제가 있을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녹죽은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澳)의 “저 기수가를 보건대 푸른 대가 성하도다……우아한 군자여 마침내 잊지 못하리라.[瞻彼淇澳 綠竹猗猗……有斐君子 終不可諠兮]” 한 데서 온 말로 임금의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을 백성들이 잊지 못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상의 시들은 모두 《대학(大學)》 전삼장(傳三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5] ‘도요(桃夭)’와 …… 않음 :
도요는 《시경(詩經)》 주남(周南) 도요(桃夭)의 “복숭아꽃의 아름다움이여, 그 잎이 무성하도다. 아가씨가 시집을 가니 그 집안 사람에게 잘하리로다[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한 데서 온 말로, 부부(夫婦)가 서로 잘 만난 것을 말하고, 육소(蓼蕭)는 《시경(詩經)》 소아(小雅) 육소(蓼蕭)의 “형에게 잘하고 아우에게 잘한다.[宜兄宜弟]” 한 것을 가리킨 말로, 형제간이 모두 화락하게 잘 지내는 것을 말하고 시구(鳲鳩)는 《시경(詩經)》 조풍(曹風) 시구(鳲鳩)의 “그 예절 어긋남이 없으니, 천하를 바로 잡으시리라.[其儀不忒 正是四國]” 한 것을 가리키는데, 이것은 곧 부자 형제가 서로 잘하여 백성의 본보기가 됨을 뜻한다. 이상의 시들은 모두 《대학(大學)》 전구장(傳九章)에서 인용하였다.
[주-D026] 용학(庸學) :
《중용》과 《대학》의 병칭.
[주-D027] 선유(先儒) :
주로 주자를 지칭함.
[주-D028] ‘신기독(愼其獨)’이란 …… 나오고 :
신기독은 혼자만 알고 있는 곳에서 삼간다는 뜻인데, 이 말이 《대학(大學)》 전육장(傳六章)의 “所謂誠其意者 無自欺也……故君子必愼其獨也”에서 한 번 나오고 “小人閒居 爲不善 無所不至……故君子必愼其獨也”에서 또 한 번 나온다.
[주-D029] ‘혈구지도(絜矩之道)’란 …… 나옵니다. :
혈구지도는 마치 곡척(曲尺)으로 물건을 재듯이, 자기의 마음을 척도로 삼아 남의 마음을 추측해서 방정(方正)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곧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쳐가서 사람마다 자기의 분원(分願)을 달성하도록 하는 방도인데, 이 말은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의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君子有絜矩之道也”에서 한 번 나오고 “所惡於上 毋以使下……此之謂絜矩之道也”에서 또 한 번 나온다.
[주-D030] 전(傳) :
경에 대한 설명.
[주-D031] 10군데의 인(仁)자 :
《대학(大學)》 전삼장(傳三章)의 “爲人君止於仁”에서 1자, 전구장(傳九章)의 “一家仁一國興仁”과 “堯舜帥天下以仁”에서 3자, 전십장(傳十章)의 “舅犯曰……仁親以爲寶”와 “唯仁人放流之……此謂唯仁人爲能愛人”과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와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에서 6자, 그래서 모두 합해 10자이다.
[주-D032] 하나의 서(恕)자 :
《대학(大學)》 전구장(傳九章)의 “堯舜 師天下以仁……所藏乎身不恕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에서 나온다. 서(恕)의 뜻은 곧 남을 남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미루어서 생각하는 것으로 곧 추기급인(推己及人)의 뜻이다.
[주-D033] 마음에 일곱가지 병[七病] :
희(喜)ㆍ노(怒)ㆍ애(哀)ㆍ구(懼)ㆍ애(愛)ㆍ오(惡)ㆍ욕(慾)의 칠정에 너무 편벽된 병통.
[주-D034] 초서(楚書)와 …… 것 :
초서에서는 선(善)을, 구범(舅犯)은 인친(仁親)을 각각 보배로 여겼다.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
[주-D035] 오지(五止) :
문왕이 실천한 5가지 덕목인 인(仁)ㆍ경(敬)ㆍ효(孝)ㆍ자(慈)ㆍ신(信). 즉 “詩云穆穆文王……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을 말함. 《대학(大學)》 전삼장(傳三章).
[주-D036] 오벽(五辟) :
사람이 가지고 있는 5가지 편벽된 점. 곧 친절과 사랑[親愛], 천시와 증오[賤惡], 두려움과 공경[畏敬], 슬픔과 동정[哀矜], 오만함과 게으름[敖惰] 등 5가지 감정에 치우치는 것을 말한 것으로 《대학(大學)》 전팔장(傳八章)의 “所謂齊其家……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를 가리킨다. 《대학(大學)》 전팔장(傳八章).
[주-D037] 4곳의 명(命)자 :
《대학(大學)》 전수장(傳首章)의 “太甲曰顧諟天之明命”에서 1자 전이장(傳二章)의 “詩曰……其命維新”에서 1자, 전십장(傳十章)의 “詩云……峻命不易”와 “康誥曰惟命不于常”에서 각 1자, 모두 합해 4자이다.
[주-D038] 4곳의 신(愼)자 :
《대학(大學)》 전육장(傳六章)의 “所謂誠其意者……必愼其獨也”와 “小人閒居……必愼其獨也”에서 각 1자, 전십장(傳十章)의 “有國者不可以不愼”과 “是故君子先愼乎德”에서 각 1자, 모두 합해 4자이다.
[주-D039] 4곳의 의(義)자 :
《대학(大學)》 전십장(傳十章)의 “未有上好仁 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 其事不終者也”와 “孟獻子曰……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와 “長國家而務財用者……此謂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에서 모두 4자가 나온다.
[주-D040] 차마 못하는 정사[不忍之政] :
어진 정사.
[주-D041] 오변시옹[於變時雍] :
요(堯)의 선치(善治)로 태평 성세가 되자 백성들이 악한 마음을 버리고 차츰 선하게 교화된 것을 말함. 《서경(書經)》 요전(堯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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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불망(於獻不忘)’이 어떻게 될 수 있겠으며, -> 安得於戲之不忘
於獻헌不忘 -> 於戲희之不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