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안식처에서
제주도에 온지 4개월이 지났다. 내가 머무는 이 지역은 무위자연의 이상향의 세계다. 환상적이면서 인간과 자연, 산과 풀, 나무와 새, 경계를 허물고 조화의 세계를 나타내고 있으나 날씨만은 하루에도 변덕이 심한 곳이다. 광풍은 물론이고 잠시 비가 오는가 하면 해가 나고 다시 눈발이 쏟아지며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던 이상기후의 연속이 였는 데 입춘과 우수가 지나면서 봄이 본격적으로 밀려온다. 3월에 들어서면서는 훈훈한 바람이 불고 햇빛도 좋아 따뜻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으니 봄이 오는 소리, 꽃이 피는 소리를 듣고 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존재에 대한 만남을 갖게 된다 만남의 존재를 통해 그 존재를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고 깨달음으로 이어지며 인식 전환도 하게 된다.
어제와 같은 오늘을 제주에서 보내면서 예전과 다른 내 마음, 행동, 평생 안하던 짓을 하는 요즘이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설사 내가 그렇다 하더라도 전과는 달리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아가는 길고양이들의 처지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는 지금의 내가 좋다고 나에게 이야기 한다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살아오면서 편견 때문에 길 고양이를 좋아해 본적이 없다. 그런데 길고양이에게 도움을 받은 일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고 고양이와 좁쌀 같은 작은 인연으로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버리는 기적으로 길고양이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 선한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바로 정수기에서 물 한 병을 받아 가지고 밖으로 나와 아파트 단지 내의 길고양이들의 급식소로 간다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켓 맘은 참으로 부지런한 봉사자 이다. 아침 일찍 가보아도 어느새 들 고양이들이 먹을 사료를 가득 담아 놓았고 마실 물도 잔뜩 부어 놓은 것을 보게 된다. 고양이들을 돌보는 사람이 누굴까 궁금한 마음으로 한 번 쯤은 켓 맘을 만나고 싶은데, 급식소를 다녀가는 시간 차이로 엇갈리는 통에 만날 수 가 없다. 식량이 넉넉하게 놓여 있는 것을 보면 오늘은 고양이들이 잘 먹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안심이 되나 종종 급식소에 먹을 것이 없이 텅 빈 밥 그릇, 빈 물그릇만 있을 때가 있다. 그런 날은 음식을 주는 켓 맘이 육지를 나간 날이라고 아파트 관리 하시는 분이 알려 주셨기에 먹을거리가 없는 날은 고양이들의 끼니가 걱정 되 그런 날은 내가 사료를 사다가 그릇에 채워놓고 물도 가득 부어놓는다. 사료는 있는데 물이 충분히 없을 때를 대비해 물병을 항상 준비해 나간다. 급식소를 찾는 길고양이들의 종류는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누런 고양이, 얼룩고양이 들인데, 나를 보면 황급히 담을 타넘어 쏟살 같이 달아난다. 고양이들은 나에게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다.
고양이 급식소를 돌아본 후, 나는 커피 한 병을 들고 야외 의자에 앉자. 새 소리를 들으며 상쾌한 기분으로 여유 있는 아침 시간을 누린다. 로마시대의 철학자들은 스콜레(schole)를 강조했다. 스콜레는 여유란 뜻으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속도의 변화가 빠르고 경쟁의 강도가 더욱 높아지는 인고의 시대를 살면서 눈앞에 닥치는 일들에만 매이며 유한한 시간을 치열하게 살았다.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에 몰입하여 주어진 삶의 시간들을 촛불처럼 남김없이 불태우며 여유 없이 산 삶이다.
인생을 이해하는 것이 연륜이고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것이 내 연륜임을 인정하며 아는 얼굴도 없고 마음이 통하는 사람도 없는 낯선 곳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떻게 살고 있었는지 지나온 내 삶을 골똘히 진실하게 돌아보게 된다. 이제는 내게 남은 짧은 여생을 뜨겁게 살아야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사는 것이 뜨겁게 사는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인류에게 문학적 영감을 쉬지 않고 전해준 고양이들이다. 헤밍웨이는 고양이들을 아껴 그의 작업실에는 다양한 고양이들이 머물었다고 한다. 알버트 슈바이처는 인생의 고통들로부터 유일한 탈출구는 음악과 고양이라고 했다.
고양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고양이들을 혐오하며 공격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고양이들은 싫어하든 좋아하든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 길 고양이들의 삶인 것 같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자기인생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들이며 생명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고 글을 써야만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렇다. 내 영혼을 돌보며 육신의 건강을 유지하며 글을 잉태하고 또 탄생 시키는 삶을 살고 싶다. 자연의 숲이 울창한 제주, 새로운 영역에서 적적하고 외로워 들 고양이들과 침묵의 대화를 나누는 조용한 안식의 생활에 감사한다.
오늘도 나 홀로 앉자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여유 있는 시간을 즐기나 내가 거주하며 산 세월 저쪽의 추억이 그리움으로 다가와 해일처럼 나를 덮친다 |
첫댓글 잔잔한 일상을 풀어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글을 읽다 보니 문득 며칠 전 읽은 폴 오스터의 겨울 일기가 생각났습니다. 작가는 인생의 겨울 문턱 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솔직하게 풀어냈더군요. 젊어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차츰 보이는 이유가 저도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