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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 시복추진 심포지엄 [연재5]
3. 세계교회를 섬긴 추기경 김수환
1969년 4월 추기경직 서임 이후 김수환 추기경의 사목 범위는 피차 전 세계교회를 대상으로 하게 된다. 이것은 추기경직의 본질적 속성과도 관련이 되어있고 필요에 의 한 영역이기도 했다. 교회법 (Code of Canon Law) 제2권 하느님의 백성 제2편 교회의 교계구조에는교황, 주교단, 추기경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 중에서 특별히 349조에서 “추기경들은 중대한 문제들을 다루기 위하여 함께 소집되는 때에 합의체적으로 행동하여 교황을 보필하거나, 또는 개별적으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직무로 특히 보편 교회의 일상 사목에 교황을 도와 드림으로써 교황을 보필한다.”라고 추기경직을 규정하고 있다.14)
따라서 김 추기경의 국제교류활동은 당시에 오랜 분단과 독재 군부정권에 의해 국제 외교무대에서 대한민국이 고립되고 있는 상태에서 대안적 민간외교로써 시대적인 요구에 의한 활동들이었다. 특히 바티칸의 외교양식은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양축 중심의 외교에서 다자화된 외교로 변화된 양상을 보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3년 5월 12일 담화에서 발칸반도의 여러 국가의 독립에 따른 교회의 부담을 인정하기도 하였다.15) 따라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시아 주교회의나 유럽이나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등의 지역 주교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했던 것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특별히 연보의 기록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1969년 4월 28일 서임 발표 이후 4.30-5.4일까지 로마에서 서임식과 명의 본당을 방문한 뒤에 첫 해외활동으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미세레오르 회의에 참석한다. 미세레오르(Misereror)는 독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있는 국제개발기구로 특히 기아, 식량, 질병 등에 대한 개선을 추 구하는 단체이다.16) 김 추기경의 국제 교류활동에서 주목할만한 점은 세계교회를 위한 섬김과 함께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관련된 활동에 언제나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이다. 아시아 주교 회의를 비롯하여 국제 엠네스티 활동, 사회문제 주교연구회, 기아 대책 및 인간발전을 위한 가톨릭 위원회(The Catholic Committee against hunger and for development), 미국 평화봉사단(Peace Corp) 참석 등은 김 추기경이 단순 히 주교이자 추기경으로서 주교회의, 인류복음화성 회의등 세계 교회를 위한 봉사와 더불어 국제사회 제반에 대한 섬김을 추구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러한 김 추기경의 사회 활동에대한 관심이 단순히 어떤 특별한 계기나 사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의 삶 전반에 걸쳐 점진적으로 발전해왔다는 점이다. 다른 기타 성인전이나 인물사 혹은 전기에서 흔히 보이는 양상과 같이 어떤 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김수환 추기경이 보수적인 교회 지도자에서 사회 개혁적인 예언가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 그는 삶 전반에 걸쳐 사회적 약자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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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교회법 - 가톨릭정보 - 가톨릭굿뉴스,” accessed December 18, 2024,
https://maria.catholic.o r.kr
:443/dictionary/doctrine/doctrine_view.asp?menu=canon&kid=&seq=4771&level1=2&level 2=2&level3=1&level4=0&level5=3&level6=0&level7=0&lang=ko.
15) Robert A. Graham, Vatican Diplomacy: Study of Church and State on the International P lane, Apparent first Editi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9), 6–15.
16) “About us,” accessed December 18, 2024, https://www.misereor.org/abou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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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심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을 고민해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17) 특히 김수환 추기경과 동학했던 마리아 에스토아(Maria Estor)의 회고는 이러한 사실을 뒷받 침한다. 그녀는 편지에서 “(토론시간에) 김수환은 힘없는 노동자들에 관해 자주 언급하고, 난 여성의 억압과 차별 문제를 토론 주제로 끌어오곤 했다… 그가 공업국가의 면모를 갖춰가던 한국에서 노동자층과 사회 정의를 위해 힘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김 추기경을 기억하고 있다.
이러한 추기경의 활동 중에서 현재까지도 세계교회에 지속해서 성덕을 끼친 활동으 로는 아시아주교회의(Federation of Asian Bishops’ Conference:FABC)의 조직과 운영을 들 수 있다.
추기경의 회고록에 따르면 아시아 주교회의는1970년 교황 바오로 6세의 필리핀 방문과 함께 시작되었다.18) 이러한 지역 주교회의는 남아메리카의 CELAM (Consejo Episcopal
Latinoamericano y Caribeño: 1955년 조직), 유럽의 CCEE (Council of European Bishops’ Conferences: 1971년 조직) 그리고 아프리 카의 SECAM (Symposium of Episcopal
Conferences of Africa and Madagasca r)등이 있다. FABC는 조직시기를 보았을 때 CELAM의 영향을 깊게 받았다고 간주할 수도 있으나 아시아 교회가 가진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특수하게 다루고 있었단 점에서 구별될 수 있다. 특히 황경훈의 연구에 따르면 FABC의 과제이자 목표로 설립된 ‘가난한 이들과의 대화’, 다양한 종교 전통과의 대회’, ‘풍요로운 다문화와의 대화’ 세 가지로 구성된 ‘삼중대화 (Triple dialogue)’는 그 내용상 김 추기경의 영향을 짐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19) 그러나 FABC의 공식 문서 6번에 따르면 이러한 신학적인 논의는 이미 1965년에 필리핀에서 있었던 아시아 사제들의 사회운동 모임 (PISA: Prie sts’ Institute of Social Action)에서 그 기원을 찾고 있다.
그러나 1970년 마닐라에 서부터 시작되어 FABC가 상설 회의체로 72년 교황청에서 인준되기까지의 직접적인 과정에 김수환 추기경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었다는 점은 자명하다.20) 예를 들어 FAB C 공식문서 69번에서 소개하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이 직접 작성한 FBAC 설립과정과 관련된 회고록에 따르면 추기경 본인은 인류복음화성 대주교세르기오피그네돌리(Se rgio Pignedoli), 홍콩의 프란시스 수(Francis Hsu)주교와 협력하여 교황청으로부터 공식적 인가승인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21) 특히 FBAC에서 함께한 카탈리노 (Catalino Arevalo) 주교는 김 추기경을 조직의 ‘창시자’(founding fathers)라고 표현하기도 했다.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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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이러한 왜곡은 단순히 교부나 성인에 대한 전기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현대인물 중에는 대 표적인 예로 엘살바도르의 성인Óscar Arnulfo Romero 주교에 대한 많은 전기와 기록 영화들이 그 의 군부 독재에 대한 용기 있는 항거를 동료사제 Rutilio Grande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됐다고 지목하 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비평으로Edgardo Colón-Emeric가 출판한 새로운 연구서에서는 Ro mero 주교가 생애 전반에 걸쳐서 강론했던 내용들을 바탕으로 그의 해방 신학이 생애 전반에 걸쳐 서 발전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Edgardo Colón-Emeric, Óscar Romero’s Theological Vision: Li beration and the Transfiguration of the Poor (Notre Dame, Indiana: University of Notre D ame Press, 2018).
18)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31 교황피격소동과 아시아 주교회의,” 서울대교구, accessed December 1 8, 2024, http://aos.catholic.or.kr.
19) 황경훈, “김수환 추기경과 FABC : 김 추기경 탄생 100주년과 FABC 창립 50주년을 맞아,” 가톨릭 평론 35 (March 10, 2022): 83–94.
20) Bishop Julio Xavier Labayen, “FABC Papers No.6,” n.d., 7–8, https://fabc.org/document-c ategory/papers/.
21) Kim Stephen Sou Hwan, “FABC Papers No.69,” n.d., https://fabc.org/document-categ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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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Reuter’s의 보도자료에서 스크린샷. 김수환 추기경과 다른 추기경들이 입장하고 있 다. 원본영상은 British Pathe에서 확인할 수 있음.23)
이러한 김 추기경의 활동을 통한 아시아교회의 연합은 단발성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1979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또 하나의 세계교회 연합모임이었던 ‘국제선교회의 (International Mission Congress)’에서도 김 추기경은 ‘예수께서는 가난한 하느님을 드러내신다. Jesus Reveals to Us a Poor God’이라는 제목으로 강론했다. 김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의 선교는 인간의 영적인 영역과 육체의 영역을 모두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회복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차원에서 교회의 활동이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 응답으로 이어질 때, 그곳 에서 복음화는 수행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의 활동이 단순히 의무감에서, 습관적으로 혹은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 이루어질 때, 복음화는 충분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며, 결코 복음화 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셨던 모든 행위에 일치와 효력 을 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 마음 안에서 흘러나온 사랑입니다.
교회가 어느 정도 그 효력과 그리스도의 투명성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려면, 오로지 사랑을 회복하고 지속적으로 그러한 사랑을 교회 생활 안에서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는 육체적이 거나 자연적인, 혹은 영성적인 것에서 인간을 분리하는 것을 중단 해야 합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단지 영성적인 것에로 집중하는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스승인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24)
이후에 작성된 IMC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김 추기경의 권고는 ‘예수의 가난한 자들을 향한 복음화 Jesus’ Evangelization to the Poor’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기록 하고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략 200여 명의 세계교회 지도자 외 800명 이상의 필리핀 현지 가톨릭 사제 및 수녀들이 모인 가운데서 김수환 추기경은 6명의 추기경 중에 한명으로 대회를 주도했다. 특히 대회에서 4일 동안 이루어진 9개의 세부 위원 회의 목록을 보면 김 추기경이 평소 치열하게 고민했던 신학적 주제들이 녹아있음을 알 수 있다.25) 특히 이제 아시아의 교회들이 더 이상 오래된 유럽교회의 영향력 아래서 선교의 수용자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바티칸 2차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모든 지역 교희는 ‘선교적교회’임을 천명한 부분은 세계 기독교시대를 향한 예언자적 선포로 여겨질 수 있다.
또한 김수환 추기경의 이러한 사회정의를 위한 추구는 가톨릭과 개신교의 벽을 넘 어서서 에큐메니컬 운동으르도 표현되었다. 특히 1990년 3월 5일부터 개최된 개신교와 정교회를 아우르는
세계교회협의회 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산하의 Justice, Peace, and the Integrity of Creation (JPIC) 세계대회에서 김 추기경은 환영사를 맡았다. 특히 추기경은 교회의 일치를 통한 사회정의의 추구의 필요성을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여러분이 참석하시는 이 세계 회의는 정의, 평화, 그리고 창조 질서의 보전이라는 대단히 뜻깊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주제는 오늘날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 이 갈망하는 인간적 삶의 기본 조건입니다. …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우리 가톨릭 교회도 인류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증진시키기 위해 일하는 것이 교회의 근본적 사명인 복음화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있습니다. 밤에 서울을 둘러보시면 수많은 십자가 네온사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곳에는 정녕 많은 교회 건물들이 있습니다. 만일 이 모든교회들이 하나가 되어 이 세상의 정의와 평화를 추구한다 면, 만일 우리 모두가 각 교회의 조직을 관리하는 것만큼 자연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에 힘을 쏟는다면, 하느님의 나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을 것입니다.26)
-------------------------------------------------------------------------------papers/.
22) Catalino Arevalo, “On His Eminence,” East Asian Pastoral Review 34, no. 3 (1997).
23) “PHILIPPINES: 200 LEADING CLERGY FROM AROUND WORLD ATTEND OPENING OF ROM
AN CATHOLIC CHURCH’S FIRST INTERNATIONAL MISSION CONGRESS,” British Pathé, acc essed December 19, 2024, https://www.britishpathe.com/asset/117411/.
24)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6: 함께하는 삶, vol. 6, 김수환 추기경 전집 (가톨릭출판사, 2001), 38.
25) 1) the theology of mission, especially for Asia; 2) local churches, cultures and communit ies; 3) inter-religious dialogue and collaboration; 4) Mission and the task of human devel opment, liberation, and the promotion of justice; 5) basic Christian Communities and loca l ministries; 6) prayer, missionary spirituality and formation; 7) coresponsible evangelizati on; 8) mission and education (formal and non-formal); 9) media and evangelization “Repo rt On the International Mission Congress (December 2-7, 1979)” (International Mission Co ngress, 1979), University of Philippine Diliman,
https://repository.mainlib.upd.edu.ph/omek as/files/original/fd5c2cfb0d31b5c8c5f1e9316839cdf8c07e04f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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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의 연설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그의 연설에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넘어서 인류 전반이 추구하고 있는 공통의 관심에 대한 환기이다. 정의, 평화, 창조질서의 보전은 단순히 교회를 넘어 인류의 과제이며 이를 담지할 주체로서 교회는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았다는 신학적 메시지가 본 환영사에 드러나고 있다. 특히 교회의 양적 성장이 아닌 피조세계를 ‘돌보는’ 사역이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간다는 메시지는 많은 참석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냈다. 이후에도 추기경은 지속해서 세계교회 협의회 중앙위원회 의장과 독일 프로테스탄트 연합 감독 등을 만나며 그리스도교 안 의 분열과 다툼을 넘어서서 공동선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계속했다.27)
김수환 추기경의 이러한 국제교류 활동들은 국제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공인되 었다. 대표적으로는 추기경에게 수여된 다양한 명예박사학위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추 기경은 생전 노트르담 대학교, 조치대학교, 시튼홀 대학교, 보인대학교, 아테네오 대학교 등을 비롯한 해외대학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국내대학에서도 철학, 신학, 법학 명예박사학위를 수여 받았다. 명예박사 학위는 국내에서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47조에 따르면 “학술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의 향상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자에 대하여 대학원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수여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해외 대학 역시도 인류발전에 특별한 공적이 있는 사람 들을 대상으로 수여하고 있다. 특히 노트르담 대학교는 명예박사학위를 1849년부터 수여해왔는데 매년 1-4인에게만 수여해올 정도로 매우 선별적인 과정을 거친다. NYT에서는 1977년 5월 23일자 신문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 그리고 다른 두 명의 주교에 대해 보도했다. 그리고 지미카터 대통령은 김수환 추기경의 명예 박사학위 수여의 의미는 “그가 인류의 자유를 위해 싸웠던 공적과 개인의 희생에 대한 인정이며 미국이 겪고 있는 여러 국내적 문제들에 대해 김 추기경을 비롯한 다른 주교들의 삶이 좋은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28) 이러한 추기경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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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13: 국가 권력과 교회, vol. 13, 김수환 추기경 전집 (가톨릭출판사, 2001), 527–30.
27) 김 추기경의 연설과 직접적인 연관관계가 있었는지 밝힐 수는 없지만 외국 언론의 대표격이었던 이 탈리아 언론은 김수환 추기경의 연설이 진행된 시점 이후에 본래 JPIC를 집중보도하려던 계획을 바꾸 어 한국 천주교 전반에 대한 취재와 추기경과의 인터뷰를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이는 간접적으로 나마 김수환 추기경의 환영사가 많은 외신들에게 한국교회에 전반에 대한 관심과 특별히 한국 천주교 회의 사회 참여에 대해서도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신문, “JPIC ‘한 국천주교 취재’에 열띤 ‘경쟁,’” 가톨릭신문, accessed December 19, 2024, https://www.catholict imes.org/article/201905130060627.
28) 필자가 번역, 각색한 원문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That concern has been demonstrated agai n today by the selection of Bishop Donald Lamont, Paulo Cardinal Arns and Stephen Car dinal Kim to receive honorary degrees. In their fight for human freedoms in Rhodesia, Br azil and South Korea, these three religious leaders typify all that is best in their countrie s and in their church. I am honored to join you in recognizing their dedication and pers onal sacrifice. Last week I spoke in California about the domestic agenda for our nation. Our challenge in the next few years is to provide more efficiently for the needs of our p eople, to demonstrate—against the dark faith of the times—that our Government can be b oth competent and humane.” “Text of President’s Commencement Address at Notre Dame on Foreign Policy,” The New York Times, May 23, 1977, sec. Archives,
https://www.nytim es.com/1977/05/23/archives/text-of-presidents-commencement-address-at-notre-dame-on –foreig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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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어 다양한 활동들이 가진 신학적 의미 또한 재고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살펴본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평가로 우리는 추기경의 활동이 바티칸 2차 공의회 이후에 일어났던 세계 교회 전반의 새로운 변화의 바람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추기경으로 서임되기 전에 교황청 산하 가톨릭 통신사의 Fides 통신원으로 일했던 전력이나 가톨릭 운동 (Catholic Action)과 요제프 회프너 (Joseph Hoffner)교수를 통해 그리스도교 사회학을 공부했던 내용들은 익히 기존 연구를 통해서 많이 알려져 있다. 박승찬은 “그의 추기경 재임 시절의 중요한 과제는 공의회의 정신을 교회와 현대 사회 안에서 어떻게 실현하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평가 하고 있다.29)
이처럼 김 추기경은 바티칸 2차 공의회의 정신을 단순히 번역과 강론을 통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어떻게 그 사상을 ‘육화’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끝없이 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추기경이 공의회의 정신을 그저 설파만 하고 가난한 빈민촌에 가서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지 않았다 면 그의 사상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김수환 추기경의 해외 순방 기록들을 보면 유럽이나 미국의 선진국가들 뿐만 아니라 제3세계로 분류되는 남 아메리카, 아프리카, 필리핀 등의 나라에 거의 동일한 비율로 방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일본의 아사히 신문 아카이브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을 검색하면 교계에서 그가 끼친 영향들보다 대부분이 그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했던 이야기들을 보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89년 7월 18일에는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안 기부의 국가보안법 적용 보류소식을, 1995년 1월 13일에는 서울대교구를 대표하여 김 추기경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요청을 한 내용을 보도하고 1997년 1월 18일 조간신문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추기경의 노동자파업 관련된 회담을 보도하였 다.30) 이와 같이 김수환 추기경은 본인의 사목의 대상. 즉, “하느님의 백성”들을 전 인류로 확장시켜서 사랑하고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느님의 백성은 보이는 교 회보다 그 내용이 더 깊고, 그 폭이 더 넓습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전 인류를, 이 세상 전체를 구하는 것이요, 그의 성자 그리스도는 만인을 위해 죽었으며, 부활했 습 니다.”31) 박일영은 김수환 추기경의 사역이 대한민국의 신자들로 하여금 인간 존엄성 을 회복시키는 사회영성의 예표였음을 논하기도 하였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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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박승찬, “김수환 추기경의 ‘세상을 위한 교회’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관의 한국적 수용 -,” 인 간연구, no. 42 (2020): 11, https://doi.org/10.21738/JHS.2020.12.42.7.
30) 다음은 원문 신문 제목과 간행 날짜이다. 波佐場, “韓国安企部、⾦寿煥枢機卿への法適⽤⾒送る. 徐 議員のスパイ断定,” 朝日新聞, July 18, 1989. 清田治史, “元慰安婦への謝罪要請. 韓国カトリック教 会ソウル⼤教区,” 朝日新聞, January 13, 1995. “労働者のストで⼤統領と枢機卿会談. 韓国(地球2 4時),” 朝日新聞, January 18, 1997.
31)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7: 영원으로의 초대, vol. 6, 김수환 추기경 전집 (가톨릭출판사, 2001), 23.
32) 박일영, “김수환 추기경의 사회영성 : 현대사회 인간존엄성의 구현을 중심으로 :현대사회 인간존엄성 의 구현을 중심으로,” 원불교사상과종교문화 56 (June 2013): 2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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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한국교회
김수환 추기경은 학도병으로 징집되었을 당시 전쟁의 참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가톨 릭 교회의 보편성 (Catholicity)를 체험하게 된다. 그는 해방 이후에 임시로 주둔하던 괌에서 한 군인과의 만남을 통해 미사에 참석할 수 있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히 라틴어로 미사예식의 집전을 도움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세계 어디에서든 “하나의 교회”임을 체험하게 되었다고 한다.33)
이처럼 교회의 정통성이라고도 번역되는 “Catholicity”는 보편교회를 상징하는 하나의, 룩한, 사도적, 보편교회(one, holy, Apostolic, Catholic)라는 네 기둥이 되는 신학적 단어이다.34)
김수환 추기경은 외연적 측면에서 여러 지역교회들의 총합인 세계교회를 섬겼을 뿐만 아니라 이처럼 이 땅에 임했으나 온전히 임할 하나님 나라를 섬기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한국 가톨릭교회가 진정한 보편성/정통성을 가질 수 있도록 추기경은 지속해서 노력했고 특별히 국내 교회뿐만 아니라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들을 통해서 이러한 보편 교회의 이상을 세워나갔다.
김수환 추기경의 한인교회 방문은 그가 방문한 여러국가들 숫자 만큼이나 다양했다.35) 특히 추기경은 외국의 한인 성당에 속해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고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했다.36)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김수환 추기경은 각 성당이 대한민국 교회의 확장 (expansion)이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세워가는 선교지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 설립 30주년을 설립을 기념하며 추기경이 전한 인사말을 다음과 같았다.
“샌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 공동체 설립 30주년을 맞이하여 본당 신부님과 신자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3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수많은 교포들이 외롭고 고달픈 이민 생활 속에서 샌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를 통하여 받은 영적인 힘과 위안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클 것입니다…지금 한국 천주교회는 ‘2000년대 복음화’를 위 하여 총력을 기울여 매진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제 외적인 성장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교회로서 그 복음적 자세를 확립하기 위하여 ‘소공동체 운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국내외를 막론하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는 이 역사적 대열에 방관자나 낙오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한인 천주교회도 한국 천주교회의 ‘2000년대 복음화 운동’에서 빠져서는 안될 것입니다.”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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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 이야기 (서울: 가톨릭평화방송 평화신문, 2004), 전쟁터에서 만난 귀한 인연, FBI가 나를 추적한 사건. 위 책의 두 장에 걸쳐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34) 교회의 네 표징(Four Marks)이라고도 번역되는 가톨릭 기초교리중에 하나이다. 원문은 다음 교황청 홈페이지에서 확인 가능하다. “Part One Section Two I. The Creeds Chapter Three I Believe I n The Holy Spirit Article 9 I Believe In The Holy Catholic Church Paragraph 3. The Chur ch Is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accessed December 19, 2024, https://www.vatic
an.va/content/catechism/en/part_one/section_two/chapter_three/article_9/paragraph_3_th e_church_is_one,_holy,_catholic,_and_apostolic.html.
35)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정리한 연보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이 방문한 해외소재 한인성당은 다음과 같다.
미국: 댈러스 김대건 성당, 로스엔젤레스 한인 천주교회, 뉴욕 퀸즈 한인성당, 미네소타 한인 성당,
워싱턴 한인성당, 필라델피아 한인 천주교회. 미국 외 한인 성당소재지: 괌, 캐나다, 브라질, 파 라과이, 아르헨티나,
칠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연보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김수환 추기경은 샌프란시스코 한인 성당, 시애틀
성 김대건 한인성당, 뉴욕 버팔로 성 김대건 성당등에도 방문 한것 으로 성당 자체 홈페이지 연보에서 확인할 수 있
었다. “연보.”
36) 가톨릭신문, “남미 칠레에 한인교회 탄생,” 가톨릭신문, accessed December 19, 2024, https://w ww.catholictimes.org/article/20110516011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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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특히 해외 교회의 한국화가 아니라 보편교회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세간에서 강조되었던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신조어처럼 지역 교회의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 보편교회의 정통성을 함께 연대를 통해 함께 세워가는 이상을 엿볼 수 있다.
<사진 2> 교토 가와라마치 교회 김수환 추기경 방문 홍보 포스터38)
특히 재일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김수환 추기경의 활동들은 미주지역에 있는 성당들과는 달랐다. 작은 교세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한국과 근접한 재일 한인신자 공동체는 하나의 대안 외교적 공동체로서 한일 양국의 오랜 앙금을 풀어낼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가톨릭교회와 정치권력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오해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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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9: 세상 구원의 방주, vol. 9, 김수환 추기경 전집 (가톨릭출판사, 2001), 459–60.
38) 원본사진은 다음 웹사이트 주소(교토교구)에서 확인 가능. “韓国・金壽煥枢機卿講演会 信仰に生き る,” accessed December 19, 2024, https://kyoto.catholic.jp/hp/up_data/y02/kim42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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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앨런 (John L. Allen Jr.)은 The Catholic Church라는 책에서 이러한 가톨릭과 정치권력 간의 기본적인 문제를 밝히고 있다. 첫 번째로 가톨릭 교회가 권력지향적이 거나 기존권력을 옹호하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는 오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시대와 지역마다 다른 양상을 보여왔다고 앨런은 설명한다. 예를 들어 로마제국 초창기에 세속권력은 바빌론에 비유될 만큼 악으로서 규정되었지만 이후 에는 구원의 방주로서 묘사되기도 하였다. 두 번째로 기본적으로 가톨릭 전통에서 사제는 세속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는 사실로서 가톨릭 헌법은 사제가 세속정치 직을 맡거나 선출되는 것을 금한다.
1975년과 1979년 미국에서 로버트 존 코넬 (Robert John Cornell)과 로버트 드리난(Robert
Drinan) 두 사제가 공화당원으로 선출직에 당선된 사례가 있었고, 교황 바오로 2세는 이들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혔다.39) 그러나 가톨릭교회가 모든 방면에서 세속정치 참여를 금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20세기 냉전시대 이후로는 종교기관은 민간외교의 보루로서 많은 적대 국들 사이의 평화를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40) 일본인에 대해 한국인이 갖는 양가적인 감정에서 김수환 추기경 역시도 자유롭지 않았다.
김 추기경은 Sophians Now에 기고한 글에서 일본 독자들에게 자신의 개인적으로 일본에 대한 불편한 감정과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일본 사람은 제일 예의가 바르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손님들에 대한 친절은 대단합니다. 일본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씨를 잘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라로서의 일본’ 하게 되면, 경제 대국으로서의 강한 이미지는 있어도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일본보다 뒤떨어진 나라에 대한 태도에는 때때로 과거의 군국주의 시대를 생각하게 하는 일조차 있습니다. 저는 일본인의 그 친절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나라로서의 역 태도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나라로서의 일본도 전 세계를 향해 열린 마음의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일본이기를 바라고 빕니다.”41)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서서 추기경은 언제나 일본교회의 초청에 응했고 특히 재일조선인들의 척박한 삶을 위로했다. 마이니치 신문 2002년 4월 11자 기사에 보면 김수환 추기경이 교토에 방문해서 재일한인들의 민족학교, 복지시설, 교회 등을 시찰했다고 보도하고 현지인들의 소감과 감격을 보도하였다.42) 그리고 추기경의 이러한 헌신은 사후에도 일본 전역에서 재일한인들을 중심으로 추도미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다시 한번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인 한인사회에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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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John L. Allen, The Catholic Church: What Everyone Needs to Know (Oxford University Pr ess, 2013), 148–53.
40) Jacob Bercovitch and Ayse Kadayifci, “Religion and Mediation: The Role of Faith-Based A ctors in International Conflict Resolution,” International Negotiation 14 (February 1, 2009): 175–204, https://doi.org/10.1163/157180609X406562.
41)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13: 국가 권력과 교회, 13:519–22.
42) 林由紀子, “元カトリックソウル教区長で枢機卿の金寿煥さんが入洛 同胞らと和やかに交流/京都,” 毎日新聞, April 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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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3>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선물 받은 성경책을 들고 있는
이철(60)씨와 김수환 추기경 추도미사 소식. 원본출처: 요미우리신문43)
마지막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해외에 있는 한인교회들뿐만 아니라 역으로 국내에 있는 외국인 공동체를 “외부”교회가 아니라 그의 사목 대상으로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섬 겨왔다. 한국 안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여러 평신도 운동들을 통해서 그는 해외 동포들의 설움만큼이나 타국에 와있는 나그네들을 섬겼다. 1994년 4월 24일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최초의 미사를 시작으로 96년에는 외국인 노동자 보호법 청원서 제출, 97년에는 외국인 노동자 축제 미사 등 이중 삼중의 배제와 차별을 받고있는 이들을 통해 추기경은 한국 땅 안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편 교회를 섬겼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한 첫 미사를 드리는 날 김수환 추기경의 인사말은 앞에서 이야기했던 그의 모든 교회론적 이상을 담고 있다. “저는 이 미사가 여러분을 향한 한국 교회의 관심과 배려의 표시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는 이곳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목자 없는 무리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그리고 세계 교회 속의 진정한 구성원임을 깨닫게 되길 바랍니다. 사실, 우리 가운데 여러분이 함께 한디는 것은 가톨릭이 진정 세계 보편 교회이며 모든 인간을 향한 그리스도 사랑의 증거임을 내포하는 징표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거룩한 미사를 여러분 모두와 함께 거행하게 되어 감사하며 기쁘게 생각합니다.”44)
한국교회를 통해 한국과 세계를 잇고 소외된 자리에 존재하는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추기경의 사목활동은 언제나 이처럼 나그네들에 대한 환대를 실천하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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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金枢機卿きょう追悼ミサ 軍事政権下、在日留学生と交流 生野の教会など=大阪 | 読売新聞記事表 示 | ヨミダス,” 読売新聞, February 20, 2009.
44) 김수환, 김수환 추기경 전집 13: 국가 권력과 교회, 1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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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러한 나그네를 보살피지 못하는 이중적인 도덕성을 가진 기존 교회에 대해 서 추기경은 비판의 목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1995년 1월 27일에 있었던 실업인회 신년 하례미사에서 추기경은 “결코 남을 무시하거나 나보다 또는 우리보다 못 산다 하여 외국인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을 착취하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하는 그런 비인간적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고 수많은 가톨릭 실업인들을 깨우쳤다.45)
김수환 추기경은 어느날 메리놀 외방전교회 소속 외국인 신부의 구멍 뚫린 속옷바 지를 보고 “한국의 어느 신부가 그처럼 구멍 뚫린 속옷을 입어본 적이 있겠는가”라고 부끄러워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있다.46) 이처럼 외국인 선교사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한국교회가 일본의 강제징용과 외화벌이로 인해 외국인 노동자의 설움을 겪은 신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를 차별하는 행태의 이중성을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의 예언자적 목소리로서 끊임없이 쇄신을 요청했다.
5. 결론
죽은 자를 위한 기도 혹은 고인에 대한 예를 갖추는 방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필자는 Chaplaincy Practical Education (CPE: 원목 훈련 교육)이 라고 하는 미국 The Standard for Spiritual Care & Education기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이수하면서 종합병원에서 사목활동을 경험했었다. 현재 미국의 종합병원은 의무적으로 종교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가톨릭, 힌두교, 불교, 개신교, 유대교 등 다양한 종교지도자들의 영적 보살핌(Spiritual Care)을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배경을 가진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장례 예식을 할 때 공통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Their memories will be strengthened” 번역하면 “그들에 대한 기억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질 것입니다” 혹은 직역하면 “강해질 것입니다”라는 문구 였다. 매일 평균 8명 정도가 사망하는 공간에서 종교인들은 그들의 배경과 상관없이 고인들의 ‘기억’이 계속되기를 기원했다.
이처럼 앞선 연구에서 보듯이 김수환 추기경의 삶은 한국교회 내에서도 다양하게 평가되고 있으며 세계 교회와 다양한 개인과 기관들을 통해서 기억되고 있다. 특히 해외에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성덕과 명성은 그가 남긴 세계 교회를 향한 외연적 섬김과 여러 교회 정치기구, 교황청 산하 위원회들에서 했던 활동들을 중심으로 그 기록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이 개인이나 작은 지역적 단위에 끼친 영향들은 여러 대륙과 나라에 편재해 있기 때문에 지역 혹은 시대별로 추기경의 해외 활동에 대한 후속 연구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외에도 추기경의 세계교회를 위한 여러 활동 들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서서 인류 전반에 대한 섬김 과 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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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김수환, 13:540.
46) 곽승한, “[김수환 추기경 선종] 김수환 추기경이 남긴 말,” 가톨릭신문, February 22, 2009,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090222021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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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르담 대학의 저명한 교회사학자 마크 놀 (Mark A. Noll)은 히브리서 12장 1절에 서 “구름과 같은 증인들 (a cloud of witnesses)”라는 표현으로 현대교회사의 흐름을 바꾼 많은 인물들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47) 김수환 추기경은 이러한 구름과 같은 시대의 증인으로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 보편교회에 많은 증언들을 남겼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할 책임이 있음을 통감 하며 다시 한번 이 연구를 통해 김 추기경에 대한 기억이 더욱더 선명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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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Carolyn Nystrom and Mark A. Noll, Clouds of Witnesses: Christian Voices from Africa and Asia (Illinois: IVP Books, 2011). “그러므로 이렇게 많은 증인들이 구름처럼 둘러싸고 있으니, 우리도 모든 짐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합시다." (히브리 서 12,1 새번역 성경 2005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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