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폭포수 / 오문희
고압선을 타고 다니다 시커멓게 그을린 것일까
축 늘어진 채 지도에도 없는 허공 속으로 검은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어느 여인이 전기를 엮어 깊은 곳으로부터 불꽃을 피운 것일까
무엇을 꼭 끌어안은 채 바람의 부채질로 활활 타오르다
만지면 부서져버리는 뼈만 남겨진 것일까
그 속에 저장되어 있는 기억만 밤 속을 섬망처럼 웅얼거리며
시간을 엮어 매달아 놓은 폭포수
그 위를 날아가는 까마귀가 앉을라치면 어둠에 갇힌 들고양이가
울부짖는다
생의 심장마저 다 불태워버린 노래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면
이른 아침,
태양이 밀물처럼 들어와 썰물 되어 가져 가 버리고 난 후
새로운 날이 질기고 질겨 끊어지지 않을 억새풀 씨를 뿌려 놓는다
어둠이 숨겨놓았던 얼굴을 내미는 날 기다리며
섬망 / 오문희
외계에 대한 의식이 흐리고 착각과 망상을 일으키며
헛소리나 잠꼬대, 또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며,
몹시 흥분했다가 불안해하기도 하고
비애나 고민에 빠지기도 하면서
마침내 마비를 일으키는 의식 장애, 만성 알코올 의존증,
모르핀 중독, 대사 장애 따위에서 볼 수 있다.
거미에게 잡힌 사람들 / 오문희
그의 목 구녕은 빈집 같아서 거미가 살지
들끓어 오르는 가래를 뱉으면 뱉을수록 자꾸 쳐지는 거미줄은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에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나
뜨거운 햇볕 속에 서 있는 듯 따끔거렸지
접촉하기 싫은 벌레들까지 걸려들어 갑갑하기만 목구녕
그렁그렁 한 탓에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재채기로 말을 대신했지
씨팔
그의 목 구녕은 감옥이었어
어쩌다 사식 넣어 줘도 목구녕의 거미줄에 걸려 삼키지 못하고
병실을 둘러보며 병실을 읽기 시작했지
막말을 떠들어대던 어느 노인은 바다 한가운데에서 노를 저으며
빈 그물을 끌어올렸고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젊은 처자는 심봤다 하며 기쁜 소리로
웃고 있었지
미치지 않고서야 볼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곳은
거미줄 위에 다 벌거벗은 채 누워 있었지
나도 당신도 언젠가 될지 모르는 미래 속 거미에게
언제 잡힐지 몰라
조심해 / 오문희
햇살을 불러 세운 이유
아침 없이 밤이 없듯이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는 이곳은
곡식 심은 밭에 잡풀을 뽑다가 곡식까지 뽑아버리는 눈먼
농부와
시장 외진 곳에 자리 잡고 생선 비닐을 떼어내다 손까지 베어내는
아둔한 아낙네가 흘리는 눈물이 주름과 주름 사이 골을 파고 흘러내린다
그 주름들을 다림질해 구겨진 부분을 짝 펼 수 있다면
밭 바닥으로 밑줄 그어 놓고 물음표 그린 시간들이
세상을 읽으며 정답 없는 정답을 찾아 허공 속을 빙빙 돌며
찬바람만 쌩쌩 불어대는데
저기.
저 앞에 햇살을 불러 세우는 돌 틈의 꽃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