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4백 년 전. 이 땅에 침입한 왜구들은
많은 절에 불을 지르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노략질해 갔다.
왜구의 불길은
의상대사가 화엄대학지소를 열었던
계룡산의 천년 고찰 갑사에까지 옮겨져
천 여 칸의 화엄대찰이 일시에 잿더미로 화했다.
☆☆☆
임진왜란과 정유왜란이 평정된 후
뿔뿔이 흩어졌던 스님들은 폐허가 된 절을 찾아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여보게, 학인들이 이렇게 찾아드니
아무래도 중창불사를 시작해야 할 것 같네.』
『시중 살림도 살림이지만
마을 신도들도 난리에 시달려 모두 생활이 어려운데 불사가 여의 할까?』
난을 피해 피난을 가지 않고
절을 지킨 인호, 경순, 성안, 병윤 네 스님은
갑사를 다시 중창하여 지난날처럼 많은 학인스님들이
공부할 수 있는 도량을 이루기로 의견을 모으고 모두 탁발에 나섰다.
☆☆☆
어느 날 해질 무렵, 동쪽으로 길을 떠난 인호스님은
어디선가 절박한 듯 울어대는 소 울음소리를 들었다.
『저 울음소리가 아무래도 예사롭지 않군.』
인호스님은 울음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가까이 가보니 고삐가 소나무에 칭칭 감긴 어미 소가
거의 숨이 넘어갈 지경에 이르렀고
옆에는 송가지 한 마리가 어미 소의 아픔을 안타까워하는 듯
「음메에∼」거리며 소나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스님은 소의 고삐를 잘라서 소를 구해 주었다.
『자 이제 시원하지? 마음놓고 풀을 뜯어먹어라.』
소를 구해준 후
스님은 다시 길을 재촉했다.
☆☆☆
스님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탁발하기 어느덧 7년.
인호스님을 비롯한 네 명의 스님들은
고픈 배를 주리며 비바람 풍랑 속에서 구한
시주 금을 한데 모아 대웅전 건립 불사를 시작했다.
목수의 손길이 바빠지면서
법당이 제법 그 모양새를 드러내게 되자
스님들은 흐뭇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일시적이었다.
서까래를 얹어야 하고 아직도 법당이 완성되려면
돈이 더 필요한데 계획한 공사대금이 예산보다 훨씬 부족했다.
스님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다.
불사를 중단하고 다시 시주에 나선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
그러던 어느 날 밤,
인호스님은 소 한 마리가 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
인부들이 못 들어오게 내몰았으나
소는 막무가내로 들어와 인호스님 앞에 멈췄다.
『스님, 너무 상심치 마십시오.
저는 스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이렇게 왔사옵니다.
법당 건립 불사를 제가 도와드릴 것입니다.』
소는 이렇게 말하고는
느릿느릿 절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
잠을 깬 인호스님은 꿈이 하도 생생해서
다시 꿈속의 소를 되살려 보았다.
『아, 바로 그 소였구나!』
인호스님은 몇 년 전 시줏 길에 구해준 소 생각이 떠올랐다.
스님이 문밖으로 나서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꿈에 본 소가 스님을 기다리기나 한 듯 문밖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소는 스님을 쳐다보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는 3일 후 서까래를 한 마차 싣고 왔다.
다시 3일 후,
이번에는 기와를 가득 싣고 왔다.
☆☆☆
소의 도움으로 대웅전 불사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제 마지막으로 법당 마루만 깔면 불사는 완공을 볼 수 있었다.
『마루는 단단한 향나무가 좋은데…』
『향나무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번번이 소한테 신세만 질 수 없으니
이번엔 우리들이 직접 탁발에 나서도록 하세.』
예로부터
울릉도 향나무와 백두산 향나무가 유명하다는 말을 들은 스님들은
2명씩 짝을 지어
한편은 백두산으로 다른 한편은 울릉도로 떠났다.
☆☆☆
백두산에 도착한 스님들은
향나무를 구하긴 했으나 운반할 일이 걱정이었다.
인호스님과 경순스님이 서로 궁리를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미풍이 일더니 그 바람을 타고 온 듯 갑자기 소가 나타났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운반해 드릴 것입니다.
어서 이 나무를 제 등에 앉으세요.』
소는 마치 무쇠로 된 듯
그 무거운 나무를 지고도 끄떡없이 훌쩍 가버렸다.
절에 와 보니 소는
어느새 향나무를 절에 실어다놓고 또 나가는 것이었다.
☆☆☆
소는 다시 울릉도에 나타났다.
향나무를 등에 진 소는 바다를 헤엄쳐 건너갔다.
무쇠 같던 소도 여러 차례 걸쳐
바다를 오가며 향나무를 운반하더니 지쳤는지
입가에 흰 거품이 일기 시작했다.
스님들이 먹이를 주었으나
소는 먹지도 않고 여러 차례 쓰러지면서도
쉴새없이 울릉도 향나무를 뭍으로 옮긴 후
계룡산 불사의 현장까지 무사히 운반을 마쳤다.
☆☆☆
필요한 향나무가 다 마련되자
목수들은 나무를 켜고 다듬어 법당 마루를 깔았다.
법당 안에는 은은한 향내 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향나무 운반을 마친 후 지쳐 쓰러진 소는 영 일어나질 못했다.
법당 불사가 완공되던 날,
인호스님 등 네 명의 스님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고 소에게로 갔다.
소는 큰 눈을 끔벅이며 스님들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스르르 눈을 감은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
스님들은
눈물을 흘리며 소의 무덤을 잘 만들어준 후
왕생극락을 빌었다.
『아무래도 소는 우리 절과 전생부터 깊은 인연이 있었을 걸세.
그리고 그 소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법당을 중창할 수 있었겠나.
후세에까지 소의 거룩한 뜻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우세.』
스님들은 절 입구에
소의 공을 칭송하는 3층탑을 세우고 「공우탑」이라 명했다.
지금도 갑사로 오르다 보면
중창리에 석탑이 하나 서 있으니 이 탑이 바로 공우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