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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류신검(飛流神劍) 제4권 - 차 례 - 1. 뒤집힌 승부 2. 채찍 하나와 책 한 권 3. 청평강기 VS 절명곡 4. 처절한 사랑 5. 빙화동주 6. 교활한 속셈 7. 선우휘의 비밀 8. 성사(成事)는 재천(在天) 9. 개방의 삼로 10. 무림성회 11. 비실의 보물 12. 현량은부 13. 죽마고우의 짝사랑 14. 사대 도주의 계교 15. 도장맹과 지령보의 혈투 1. 뒤집힌 승부 도장맹주 선우휘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돌리며 말했다. “철아! 어서 물러가거라! 아비를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백발노인은 마치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귀찮게 굴지 마시오. 지금 나는 손을 쓰겠소.” 선우휘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귀하는 흑룡강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소?” 백발노인은 섬뜩한 눈치였다.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려 남의소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태도는 마치 남의소녀의 의견을 기다리는 듯했다. 남의소녀는 이때 고개를 쳐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눈썹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으며. 얼굴에는 불안한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백발노인은 다시 고개를 돌리고 입을 열었다. “흑룡강의 고수들은 마치 해변가의 모래알과 같이 많소. 나는 다만 보잘 것 없는 소졸에 지나지 않소이다.” 선우휘는 호탕하게 웃더니 갑자기 노인을 쏘아보며 말했다. “그럼 어서 손을 쓰시오! 그러나 당신은 곧 후회하게 될 것이오.” 이때 남의소녀의 입에서 한숨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군웅들은 그녀의 한숨소리를 듣자 어찌된 일인지 그들도 따라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 광경은 마치 남의소녀의 한숨소리에 감염된 것 같았다. 복면 남의소녀는 고개를 약간 수그리고 중얼거렸다. “중원에서 선우휘가 제일 두려운 존재이며 공력 또한 가장 고강하다… …” 비류신은 이 말을 듣자 매우 불만스럽게 여겼다. 그는 남의소녀에게 대뜸 물었다. “낭자의 말은 너무 지나친 것 같소! 중원 땅에는 그보다 강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소. 낭자의 눈에는 선우휘 외에는 보이지 않는단 말이오?” 남의소녀는 그를 향해 조용히 웃어보였다. “당신의 공력은 비록 고강하나 애석하게도 심지가 너무 뒤떨어졌으며, 선악을 가려내는 데는 별로 고명하지 못해요.” “그렇다면 나는 어떻소?” 이때 느닷없이 지신도 소대천이 말참견을 하고 나섰다. 그 역시 선우휘에 대한 평론이 매우 불만인 듯싶었다. 그녀는 냉소를 지으며 싸늘하게 받아넘겼다. “당신은 그 반대로 심지는 넘쳐흐르나 공력이 부족하오.” 지신도 소대천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을 했다. “낭자의 고견에 실로 감탄해 마지않는 바이오. 낭자의 말은 모두 지당하며 현기가 서려 있는 것이외다.” 사대도의 영주들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물론 남의소녀가 자기들에 대한 평론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핑계를 대고 물어 보기가 곤란했다. 남의소녀는 이미 그들 네 사람 영주들의 말을 알아차리고 싸늘하게 말했다. “용맹은 있으나 계략을 펼칠 줄 모르며 우둔하니 당신들 네 사람은 오직 백정에 불과하오!” 장모도주 맹독도 사살수가 크게 노하여 소리쳤다. “뭐라고! 누가 백정이란 말인가?”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그는 이미 자리에서 뛰쳐나갔다. 그리고 맹렬한 기세로 남의소녀에게 덮쳐갔다. “돌아가라!” 선우휘는 재빨리 손을 떨쳐 비할 데 없이 강맹한 경기로 그를 물리쳤다. 장모도의 영주 맹독도 사살수는 가슴이 뜨끔하여 즉시 물러났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없었다. 이때 백발노인은 신중한 안색으로 천근이 넘는 굵은 쇠지팡이를 서서히 수평으로 뻗쳤다. 그가 진기를 끌어올려 내뻗친 일장은 분명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위세가 있었다. 선우휘는 두 눈을 감고 조용히 미소를 머금은 채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선우철은 안절부절 못하여 크게 소리쳤다. “아버님! 조심하십시오!” 비류신이 위로를 했다. “염려 마시오. 필요시에 내가 아버님을 도와드리겠소!” 이때-- 백발노인의 쇠지팡이는 이미 내리쳐졌다. 휙 하고 공간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친 흑색의 장영(掌影)은 번개같이 선우휘를 향해 뻗어갔다. 장내는 갑자기 떠들썩해지며 한 결 같이 도장맹주 선우휘를 염려하였다. 군웅들은 손에 식은땀을 쥐었다. 모두 극도로 긴장한 가운데 펑하는 우렁찬 폭음이 터졌다. 천근의 거장은 벼락 치듯 선우휘의 왼쪽 어깨에 떨어졌다. 그 순간 백발노인은 철장을 움켜쥔 채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어깨를 맞은 선우휘는 대뜸 안색이 변했다. 그는 입을 벌려 왈칵 선혈을 토했다. 그러나 그는 몸만 약간 비틀거렸을 뿐 발은 추호도 떼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선우철은 자기 부친이 꼼짝도 하지 않고 맞고 있는 것을 보자 두 눈을 찢어져라 부릅떴다. 그는 장중의 기침소리 하나 없이 긴장된 분위기에 말려들어 있었으므로 자신의 아픔을 깨끗이 잊고 있었다. 선우철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은 어째서 반격하지 않습니까? 어째서… …” 지신도 소대천이 가로막고 나서며 말했다. “이것은 그가 스스로 원한 치욕이니 남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 있겠소?” 선우철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는 싸늘하게 소대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소대천! 당신은 나와 겨뤄볼 용의가 있소?” 소대천은 미소 지으며 즉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어찌 감히… 그러니 당신은 힘을 아꼈다가 잠시 후 부친의 시체나 거두어들이도록 하시오.” 비류신은 그의 오만한 말을 듣자 버럭 소리쳤다. “소대천! 너같이 악독하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놈은 시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려야 한다.” 이 말이 떨어지는 순간, 백발노인은 철장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나며 건곤도전(乾坤倒轉)의 초식으로 맹렬히 후려쳤다. 이 일 장은 음경(陰勁)을 사용한 것이었으며, 그 축세(蓄勢)는 그지없이 고강했다. 남의소녀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사형! 어리석게도 그 일 초를 또 헛되게 펼쳤군요.” 이때 백살 소녀가 서릿발같이 냉랭한 얼굴로 남의소녀에게 물었다. “나는 소저의 뜻을 이해할 수 없군요.” 그러자 남의소녀는 곧 대답했다. “때가 되면 자연히 언니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녀의 담담한 말은 이미 핵심을 밝힌 것이다. 금령대 주위에는 갑자기 질풍이 불어 닥쳤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돌모래가 하늘로 치솟으며 세차게 몰아쳤다. 선우휘의 입가에는 선혈이 낭자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그대로 버티기가 몹시 힘든 모양이었으나 어금니를 악물고 참고 있는 듯했다. 백발노인도 이때 머리가 산발이 되고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는 철장을 치켜 올리는 것이 첫 번과 같이 그렇게 거뜬하지 못했다. 선우철은 미친 듯이 장중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비류신은 재빨리 그의 몸을 붙잡았다. 두 사람은 모두 눈을 부릅뜨고 백발노인을 바라보았다. 백발노인은 그들을 향해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제 삼 장을 곧 펼칠 테니 두 분은 속히 물러나시오.” 주위의 군중들은 천지를 격동시키는 일장의 위세에 버티지 못하고 멀리 물러섰다. 비류신은 태연히 버티고 선 채 소리쳤다. “그 일 장은 내가 받겠소!” 멀리 물러선 군웅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직 그처럼 대담한 용기와 호걸다운 마음씨만으로도 비류신은 군웅들보다 뛰어난 것이다. 그러나 군웅들은 모두 비류신에 대하여 한 가닥 애석해하는 마음을 금치 못했다. 선우휘가 사납게 소리쳤다. “누가 자네에게 내 대신 맞아달라고 했나?” 비류신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다시 불끈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돌려 묵묵히 물러섰다. 선우철은 당황하여 그에게 변명을 했다. “비형!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가부의 성격은 본래 저렇소!” 백발노인은 이때 다시 철장을 높이 치켜들고 세 번째 공세를 취하려 하였다. 지신도 소대천은 심중으로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다만 선우휘를 제거하기만 한다면 자기의 큰 강적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는 눈길을 돌리고 껄껄 웃어 제쳤다. “또 일장을 맞는다면 아마 선우 노인은 견디어 내지 못할 것이오.” 남의소녀는 이때 갑자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형! 그만 멈추십시오. 사형이 설사 그에게 일백 장을 때린다 해도, 그에게 상처를 입히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에 있던 군웅들은 모두 놀라며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남의소녀의 그런 기이한 발언에 모든 살마(殺魔)들은 의아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학철두는 이때 쏜살같이 남의소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선비를 밀어제치며 급히 물었다. “소저께서는 혹시 상대방의 어떤 수작을 눈치 챈 것이 아니요?” 남의소녀는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녀는 선비의 왼팔을 끌어당기더니 서서히 장중으로 걸어 나갔다. 백살과 백미 두 소녀도 동시에 그들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학철두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중이 쓴지 단지 아무런 표정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 사대 섬의 영주들은 이때 모두 일어나서 서서히 다가오는 남의소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신도 소대천은 절호의 기회를 놓칠 것을 염려했다. 그는 급히 외쳤다. “삼장은 아직 내려치지 않았으며 승부는 판가름 나지 않았소. 그러니 낭자는 물러가도록 하시오.” 남의소녀는 냉랭하게 쏘아붙였다. “당신은 나를 지배하자는 것이오? 아니면 명령을 하는 것이오?” 소대천은 가슴이 뜨끔했다. “내 어찌 감히 낭자를 지배하겠소? 우리들은 언약한 것이 있으니 가급적이면 피차 충돌을 피하도록 노력합시다.” 남의소녀는 복면 속에서 냉정하게 코웃음을 쳤다. “이해관계에 있어 서로 마음이 일치하면 합세하는 것이고 이해관계에 충돌이 생기면 갈라지는 것이오. 소대천! 우리들의 합세하자는 언약은 이 순간 취소된 것이오.” 소대천은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곧 대꾸했다. “낭자, 그것은… 좋소! 낭자가 약속을 취소하겠다니 나도 별도리가 없구려.” 한편 백발노인은 사매가 걸어오는 것을 보자 즉시 철장을 거두고 몹시 공경하는 태도로 옆에 우뚝 선 채 조용히 분부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그는 궁금증을 더 참을 수 없었던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낭자, 나는 이 일 장으로 그를 격상시키지 못하리라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소.” 남의소녀는 그에게 눈길을 돌리며 담담히 말했다. “사형께서 정 믿지 못하신다면 손 을 써 보십시오.” 선우휘는 이때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버티고 서 있었다. 마치 최후의 일격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선우철과 비류신도 묵묵히 서서 최후의 일격으로 일어날 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철은 긴장에 싸인 듯 비류신의 팔을 꽉 움켜쥐고 있었다. 전신이 땀에 흠뻑 젖었다. 남의소녀가 갑자기 소대천을 향해 물었다. “소대천, 당신은 이번 일 장으로 필시 선우휘를 격상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오?” 지신도 소대천은 서슴지 않고 즉시 대답했다. “틀림없이 그럴 수 있으리라 의심치 않는 바이오.” 그 한마디 말로 이미 선우휘의 운명은 결정된 것이다. 군웅들은 멀리서 장중에 우뚝 서 있는 선우휘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한 가닥 처량한 기색이 역력히 나타나 있었다. 남의소녀는 싸늘하게 그의 말을 받았다. “나의 일격으로 선우휘는 무사할 것이오. 그는 추호도 상처를 입지 않을 뿐 아니라 아무런 일도 없이 태연할 것이오!” 그녀는 소대천을 똑바로 쏘아보며 다부지게 말했다. “소대천, 당신 나와 내기를 해보겠어요?” 소대천은 낭랑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내기합시다. 낭자가 어서 조건을 말해 보시오.” 남의소녀는 냉소를 머금고 담담히 말했다. “조건은 선우휘가 죽지 않는다면 잔금섭혼신편을 내게 주시오.” 그녀는 여기서 말을 끊고 소대천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고 여전히 냉소를 입가에 담은 채 계속 말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이겼을 경우 나는 흑룡강의 기서의 주권을 당신에게 넘겨주겠어요. 어떻습니까? 이런 조건이면 쌍방이 모두 손해 보지 않을 것 같은데… …” 지신도 소대천은 통쾌한 듯 한바탕 웃더니 쾌히 승낙했다.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사대 섬의 영주는 이때 갑자기 미친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전초도주 금환두발 진동철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사대도주는 증인으로 나서겠소.” 남의소녀는 웃으며 백발노인에게 얼굴을 돌렸다. “사형! 그럼 어서 손을 써보십시오.” 백발노인은 명령이 떨어지자 두 다리를 약간 굽혀 몸을 낮추더니 철장을 힘껏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 빛이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펑! 하고 우렁찬 폭음이 터졌다. 군웅들은 천지를 격동시킨 그 장력(掌力)에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입을 딱 벌렸다. 선우휘의 건장한 몸은 한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그가 서 있던 발밑에는 땅이 푹 패여 있었다. 선우철은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아버님! 아버님!” 선우철은 선우휘의 몸에 엎어진 채 통곡을 했다. 보고 있던 군웅들의 얼굴에는 한 결 같이 암담한 그늘이 졌다. 백발노인 역시 기진맥진하여 땅에 풀썩 쓰러졌다. 그의 손에 쥐어져있는 다섯 자나 되는 철장은 땅에 꽂힌 채 아직도 윙, 윙 소리를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공력이 비교적 약한 몇몇 고수들은 그 우렁찬 소리에 귀가 멍해지고 가슴이 뻐개지는 것 같았으므로 제자리에서 멀리 물러섰다. 지신도 소대천은 득의만면한 웃음을 지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낭자! 낭자가 졌구려!” 남의소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꼼짝도 하지 않고 다만 하늘에 떠있는 구름만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사대도주는 동시에 몸을 솟구쳐 장중으로 뛰쳐나왔다. 선우휘의 곁에 와서 그를 바라보고 외쳤다. “지령보가 승리했소!” 한차례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다. 지령보의 군웅들은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웅성거렸다. 선우철은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사나운 얼굴로 호통을 쳤다. “소대천! 만약 가부의 참사를 논한다면 당신의 죄가 제일 큰 것이오.” 지신도 소대천은 앙천대소를 하더니 싸늘하게 대꾸했다. “좋소! 좋아! 아무렇게나 당신 좋도록 생각하시오.” 이때 갑자기 은방울을 굴리는 듯한 아름다운 웃음소리가 슬픔에 잠긴 분위기를 깨뜨렸다. 남의소녀가 이렇게 웃는 것을 보자 주위의 군웅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그녀는 웃음을 그치고 낭랑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소대천! 당신이 지셨소!” 장중의 무림 군웅들은 또 다시 얼떨떨해졌다. 분명 그녀가 졌거늘 오히려 상대방이 졌다고 지적하자 그들은 즉시 비웃으며 웅성거렸다. “장중의 모든 사람이 똑똑히 목격한 사실이오. 낭자의 재간이 아무리 뛰어나다 한들 역시 천하 무림 인물들의 이목은 가릴 수 없는 것이오.” 그러나 바로 이때-- 장중에 호탕한 웃음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핫하하! 낭자의 안력은 과연 비범하구려… …” 모든 이목이 동시에 그곳으로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곳에는 바로 도장맹주 선우휘가 당당한 기세로 우뚝 서 있는 게 아닌 가? 그의 안색은 평소와 다름없이 담담했으며 풍채도 여전하였다. 더구나 그는 추호도 상처를 입은 것 같지 않았다. 실로 괴이한 일이었다. 군웅들은 모두 정신을 가다듬고 자기들의 눈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선우철 또한 돌연한 변화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눈을 화등잔같이 크게 뜨고 자기의 부상당한 일도 잊은 채 마치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정신이 번쩍 든 듯 비로소 기쁜 낯으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아아! 이것이 꿈은 아니겠지요?” 선우휘는 아들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철아! 안심해라. 이 아비에게 만약 진실한 절예가 없었다면 어찌 천하의 제일 고수라는 위치를 차지할 수 있었겠느냐?” 지령보의 천막에는 즉시 침울한 기운이 흐르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득의했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사대도주도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 말도 없이 다만 냉정한 눈초리로 장중을 훑어보고 있었다. 지신도의 얼굴은 즉시 잿빛으로 변했다. 그는 눈을 껌벅이며 중얼거렸다. “실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군.”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은 하고 싶은 말은 무한히 많으나 할 수 없는 듯이 보였다. 남의소녀는 선우휘를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중원 땅에 온신환영(穩身幻影)의 신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일이군요.” 그녀는 싸늘한 웃음을 흘리며 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득의하지 마시오. 나는 비록 그런 신법을 터득하지 못했소. 그러나 나의 가부께서는 당신보다 더욱 그 신법에 숙달하단 말이오. 그러니 당신은 아직 무림의 제일 고수라는 영예를 누릴 수 없는 것이오.” 선우휘는 섬뜩 놀라며 외쳤다. “아니! 그렇다면 낭자의 영존께서는 혹시 북호대로(北虎大老)가 아니신가요?” 남의소녀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야무지게 대답했다. “그래요! 당신은 그래도 견식이 넓은 편이군요.” 선우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웃었다. “낭자는 재치가 비범하니 필시 저 금령대가 무엇 때문에 세워졌는지 알고 있을 것이오.” 남의소녀는 코웃음을 치고 그를 쏘아보며 대꾸했다. “그렇다면 이번 성회는 당신이 주최한 것이구려?” 천하의 군웅들은 모두 떠들썩하며 웅성거렸다. 도장맹이 녹림인물도 초정하여 남칠(南七), 북육(北六) 십삼 성(十三省)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할 줄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도대체 어디에 목적이 있어서 그랬단 말인가? 지신도 소대천은 조금 전에 억울한 누명을 썼을 때 속으로 금령대를 세운 사람을 몹시 원망했었다. 그는 갑자기 울분이 치밀어 올라 안색이 돌변한 채 사납게 고함을 질렀다. “옳지! 선우 늙은이는 재화를 남에게 옮겨 씌우는 계략을 꾸몄구려?” 그는 사나운 기세로 한 무리의 고수들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 나가 도전할 기세를 취했다. 그 것을 본 도장맹의 고수들도 마주 덮쳐 나갔다. 그들 양파는 분명 풀 수 없는 깊은 원한이 있는 모양이었다. 선우휘는 냉정히 비웃으며 말했다. “잘못 말했소. 나는 아직 그렇게 약해지지 않았소. 각 파에서는 사람을 보내 금령대에 가보면 알게 될 것이오.” 군웅들은 그 말을 모두 믿지 않았다. 그러나 선우휘의 말투는 매우 긍정적이었으므로 또한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이미 몇 사람은 몸을 날려 신비에 싸인 금령대 위에 올라섰다. 지신도 소대천은 마곡인 마대부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 그러자 그는 곧 명령을 받들고 마치 독수리와 같이 몸을 날려 금령대 위로 올라갔다. 사대 도에서도 뒤따라 사람을 금령대에 보냈다. 그러나 오직 흑룡강 사람들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선우휘는 조용히 남의소녀에게 물었다. “낭자는 어째서 사람을 보내 진상을 알아보려 하지 않소?” 남의소녀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나는 이미 진상을 파악하고 있으니까요!” 금령대에 갔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모두 놀라움과 의아한 표정으로 되돌아 왔다. 그들은 대부분 고개 숙인 채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힘없이 제자리에 돌아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한 결 같이 우수가 서려 있었다. 마곡인 마대부는 지신도 소대천에게 귓속말로 뭐라 몇 마디 전했다. 그러자 소대천은 안색이 돌변하였다. 그는 경악과 공포에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단 말인가?” 선우휘는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은 당신과 내가 다투는 것이 아니라 전체 무림의 고수들이 다투는 것이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장중에는 즉시 공포 서린 분위기가 감돌았다. 군웅들은 모두 불안한 심정으로 다시 고개를 숙이고 수군거렸다. 태양은 이미 중천에 떠올랐다. 정오에 접어들고 있었다. 이 때-- 한 줄기 신속한 사람의 그림자가 지령보에서 쏜살같이 날아왔다. 그 그림자는 순식간에 장중으로 들어섰다. 군웅들은 나타난 사람을 보자 모두 웅성거렸다. 지령보의 인물은 이것으로써 이제 모두 이곳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다름 아닌 월광검 소대풍이었다. 소대풍은 구김살 없는 표정과 점잖은 선비의 모습으로 장중의 군웅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는 너무나 갑자기 나타났으며 또한 매우 신비스럽게 나타난 것이다. 군웅들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이곳에 나타났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비단 그들 뿐 아니라 지신도 소대천까지 자기의 형이 무슨 음모를 품고 있는지 몰랐다. 선우휘는 그를 보자 호탕하게 한바탕 웃었다. 그리고 곧 물었다. “세 사람 중 이미 둘은 당도했으니, 나머지 소대호는 언제 당도할는지 궁금하구려.” 월광검 소대풍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선우휘! 이곳은 지령보 땅이지 도장맹의 땅이 아니오. 여기서 당신이 함부로 날뛸 곳이 못되오.” 도장맹주 선우휘는 그를 비웃었다. “분명 당신은 옆에서 막대한 지원을 받고 있기에 그렇게 당당히 큰 소리를 치는 거겠지.” 월광검 소대풍은 코웃음을 치며 일소에 붙였다. 그는 몸을 돌려 비류신과 선우철을 향해 걸어갔다. 비류신은 섬칫 놀라며 재빨리 생각을 굴렸다. ‘아! 이 자가 분명 나하고 먼저 충돌할 작점이구나.’ 그러나 소대풍은 비류신을 거들떠보지 않고 그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이르자, 별안간 발길을 돌려 돌의자를 향해 다가가더니 아무 말 없이 그것을 네 개나 한꺼번에 집어 들었다.그는 돌의자를 든 채 재빨리 금령대를 향해 비호같이 달려갔다. 소대풍이 그것들을 금령대 위에 내려놓는 순간 공중에서 이미 네 덩어리의 구름이 쏜살같이 내려오고 있었다. 이러한 기묘한 거동을 본 장중의 군웅들은 모두 넋을 잃은 듯 바라보았다. 이때 남의소녀가 냉소를 치며 야무진 소리로 비웃었다. “당당한 월광검도 남의 하인 노릇을 하다니… …” 월광검 소대풍은 눈을 사납게 부릅떴다. “이 계집애야! 까불지 마라. 조금만 있으면… 후훗… …” 이렇게 말한 그는 공중을 향해 읍을 했다. 네 조각의 구름은 신속하게 날아오더니 순식간에 금령대 상공에 당도했다. 기다란 부르짖음이 공중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지며 네 덩어리 구름이 서서히 밑으로 내려왔다. “백의조(白衣鳥)이다!” 누군가가 놀라며 소리쳤다. 월광검 소대풍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예를 올렸다. “어르신네께서 이제 오십니까? 불초는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네 줄기 사람 그림자가 커다란 학의 등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흰 옷을 입은 노인으로 금령대 위에 우뚝 멈추어 섰다. 네 명의 기이한 노인은 모두가 애꾸눈에 절름발이였다. 선우휘는 견식이 풍부한 인물이라 그들을 보자 깜짝 놀라며 부지중 소리쳤다. “백의사괴(白衣四怪)!” 월광검 소대풍은 그 말에 곧 대꾸했다. “훌륭한 안력이구려. 이분들은 바로 백의사괴요.” 백의사괴는 백의선인(白衣仙人)의 제자들이었다. 일괴는 선천(仙天), 이괴가 선지(仙地), 삼괴는 선악(仙嶽)이고 사괴를 선해(仙海)라고 했다. 사괴들은 봉래에서 살고 있었으며, 강호에서 그들의 내력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들의 무공은 화경에 접어들었으며, 적수가 드물 정도라고 했다. 또한 성격이 냉혹하면서 괴이하여 인정이 통하지 않는 인물들이라고 했다. 일괴 선천이 금령대 밑의 군웅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소대풍! 이들이 바로 중원 무림의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란 말인가?” 소대풍은 공손히 허리를 굽히고 대답했다. “선배께서 내리신 분부는 이미 완전히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중원에서 명성이 있다는 인물들은 이미 모두들 이곳에 모였습니다.” 선천은 그들을 훑어보고 갑자기 소리쳤다. “숨어 있지 말고 썩 나와라!”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자 금령대 옆에 있던 한 그루 늙은 소나무가 송두리째 뽑혔다. 그러자 이때 그림자가 번뜩이며 나무 위에서 늙은 도인 한 사람이 뛰어내리는 게 아닌가. 선우휘는 껄껄 웃었다. “순천진인, 당신도 왔구려?” 익공관주 순천진인은 놀라움과 의심이 가득 찬 눈빛으로 계속 사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선우휘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는 듯 거들떠보지 않았다. 분명 일괴의 절묘한 지력은 장중의 어떤 고수도 따를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오직 지력 하나만으로도 천하의 군웅들을 위협할 수 있었다. 소대풍은 어깨를 으쓱하며 통쾌한 듯 웃었다. “천 선배님의 천룡지(天龍指)는 과연 천하의 절기입니다. 오직 그 수법만으로도 충분히 무림에서 위세를 떨칠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의소녀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인으로서의 수치를 모르는 소대풍! 당신 때문에 중원 무림의 군웅들 체면은 크게 손상되었소!” 이때 선해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저 낭자는 누군가?” 소대풍은 얼굴을 약간 붉히며 대답했다. “흑룡강 북호 노인의 딸입니다.” 선해는 냉연히 고개를 끄덕이며 품속에서 하얀 옥피리를 꺼냈다. 선악이 갑자기 나서며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중원 무림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무림의 일류 고수라는 칭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데 그는 바로 자네의 동생 소대호라고 하더군. 그런데 소대호는 이곳에 당도하지 않았나? 이 자리에 있다면 속히 만나보고 싶네.” 소대풍은 놀란 안색으로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몰라 했다. 그러자 누군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소대호는 진검독자(眞劍獨子)라는 호칭을 받고 있는 인물이오. 그런데 어찌 당신 같은 하찮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소?” 고함소리와 함께 비류신은 이미 금령대로 솟구쳐 올랐다. 그는 노기어린 눈초리로 백의사괴를 날카롭게 쏘아 보았다.선악이 냉정한 눈빛을 소대풍에게 돌렸다. “이 자는 누구인가? 대단한 호기를 지니고 있군, 그래.” 월광검 소대풍은 비굴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그 자는 비류신이라고 하며 바로 가제(家弟)의… …” 비류신이 버럭 호통을 쳤다. “입 다무시오!” 백의사괴는 원래 비류신을 대수롭지 않게 어겼었다. 그러나 이때 그가 기세당당하게 그곳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을 보자 사괴는 모두 애꾸눈으로 그를 훑어보았다. 선악은 껄껄 웃으며 빈정거렸다. “자네는 얼마나 막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에 감히 우리와 맞서려고 그러는 것인가?” 비류신은 당찬 어조로 대꾸했다. “힘은 별로 없으나 괴인을 제압할 수 있소!” 주위에서 열렬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분명 비류신은 중원 무림을 대표하여 답답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이다. 선우휘도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듯 웃었다. “비 노제는 실로 훌륭하네. 나는 자네의 뒤를 밀어주겠네!” 이때 사대도의 영주들도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 사대도 역시 끝까지 자네를 지지하겠네!” 적편에서도 자기와 합세하여 백의사괴를 대항하겠다는 말을 듣자, 비류신은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친밀한 웃음을 보냈다. 그의 그런 미소 띤 얼굴을 본 선비 박애정은 고개를 숙인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지 못했다. 남의소녀가 박애정을 툭 치며 속삭였다. “흑룡강도 비형의 힘이 되어드리겠어요!” 장중의 형세는 즉시 결판이 났다. 주위에 둘러선 각 파의 고수들은 모두 자기들 사이의 원한을 잊고 중원 무림의 존망을 위해 백의사괴와 맞서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오직 지령보 사람들만 아직 아무런 것도 표명하지 않고 냉담하게 장중의 정세를 살펴보고 있었다. 비류신은 이때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몸을 갑자기 솟구쳐 백의사괴를 향해 덮쳐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