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5,000t의 무게를 견디는 하늘의 위로
글 : 김원배
제1부. 아스팔트 위의 물음표
정오의 태양이 고속도로의 아스팔트 위로 이글거리는 뜨거운 지면 복사열을 숨 가쁘게 쏟아내고 있었다. 자동차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바람은 시원하게 피부를 스쳤지만, 밀려오는 나른함과 삶의 피로로 인해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겁기만 했다. 조수석에 깊숙이 기대어 멍하니 차창 밖을 내다보던 도진은 문득 시선을 더 높이, 끝없이 펼쳐진 푸른 하늘 위로 던졌다.
차창 밖의 하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팍팍함과는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경이롭고도 숨이 멎을 듯 아름다운 모양들을 시시각각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거대한 캔버스 위에 흰 물감을 툭툭 풀어놓은 것처럼, 저 멀리 흘러가는 풍경은 누구나 한 번쯤 낯선 여행지의 바닷가나 한적한 시골 마을의 초원 위에서 올려다보았을 법한, 마음속 깊은 곳의 향수를 자극하는 예쁜 구름 그 자체였다. 누구나 여행길에 차창을 내리고 마주했던 그 아스라하고 포근한 솜사탕 같은 기억들이 고스란히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거기에는 눈 부신 햇살을 머금은 거대한 뭉게구름 한 점이 마치 세상의 모든 근심을 가볍게 비웃기라도 하듯 유유히 떠 있다.
"저렇게 하얗고 몽글몽글한 게, 어쩌면 저렇게 아무런 근심도 없다는 듯 무심하게 저 높은 하늘에 걸려 있을 수 있을까."
도진의 입에서 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새어 나왔다. 마치 세상의 모든 시시콜콜한 근심과 슬픔을 깨끗이 지운 듯 평온해 보이는 솜사탕 같은 형상. 하지만 그 목가적인 풍경의 이면에서, 도진의 머릿속에는 문득 예전에 읽었던 과학책 속의 기괴하고도 충격적인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전형적인 적운 하나의 무게는 약 5,000t, 코끼리 1,500마리와 같다.’
처음 그 문장을 접했을 때 사람들은 대체로 코웃음을 치거나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 그렇지!" 하고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 과학 시간에 어렴풋이 배웠던 대기과학의 지식이 머릿속에서 퍼즐처럼 맞춰졌다.
상상이 가지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단순한 부피와 밀도의 법칙을 대입해보면, 5t 트럭 백 대 분량의 무거운 물동이가, 아니 수천 톤에 달하는 거대한 액체 괴물이 지금 내 머리 위 빌딩 수십 개 높이의 공중에 아무런 밧줄도, 지지대도 없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는 셈이다.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물은 공기보다 수백 배는 무겁지 않은가. 중력의 엄정한 법칙에 따르면 그 거대한 무게는 단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지금이 아스팔트 바닥으로 무자비하게 곤두박질쳐야 마땅하다.
"무거우면 당연히 아래로 떨어져야 하는 게 세상의 냉정한 이치인데,“
이 대목에서 나는 문득 창밖을 내다보며 예전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머릿속을 맴돌든 엉뚱하고도 진지한 궁금증이 떠올랐다. 수백 톤에 달하는 거대한 철제 덩어리인 비행기가 수만 미터 상공의 저 하늘 위를 어떻게 떨어지지 않고 의연하게 날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구름의 무게만큼이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마법 같지만, 알고 보면 철저한 물리학의 승리였다. 비행기의 날개 위를 지나는 공기의 속도가 아래를 지나는 속도보다 빨라지면서 생기는 압력 차이(베르누이의 정리), 그리고 엔진이 뿜어내는 강력한 추력과 날개가 공기를 밀어 올리는 양력이 절묘한 균형을 이룰 때, 거대한 쇳덩이는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에 떠 있게 된다.
하늘에 떠 있는 5,000t의 구름이나, 그 구름 속을 가르며 날아가는 수백 톤의 비행기나 결국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세상은 냉정하게 우리를 아래로 끌어내리려 하지만, 인간은 그 보이지 않는 물리적 법칙의 허를 찔러 끝내 하늘 위로 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 신비로운 현상을 보며 신들의 마차가 지나가는 자리라거나, 하늘에 사는 거대한 물의 신이 이끄는 전설 같은 이야기로 풀이하곤 했다. 옛 동화 속 이야기처럼 구름은 하늘나라 신들이 마시는 우물물이라도 되는 양 여겨졌다.
도진은 핸들을 단단히 잡은 채 말없이 앞을 응시하는 친구 민우를 향해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어쩌면 인간의 삶도 저 구름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인생의 짐은 5,000톤짜리 구름처럼 무겁기만 한데, 우리는 어떻게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바닥으로 추락하지 않은 채 이토록 묵묵히 버텨내고 있는 걸까. 차창 밖의 구름은 도진의 복잡한 심경을 알 리 없다는 듯, 대답 대신 바람을 따라 느릿한 모양새로 형태를 유연하게 바꾸어 가고 있었다.
구름의 그 부드러운 유영을 바라보자니, 문득 까마득하게 잊고 지냈던 파릇파릇한 젊은 날의 추억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대학 시절, 아무것도 가진 것 없지만 두려울 것도 없던 그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 누워 올려다보던 하늘, 매일같이 꿈을 꾸며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던 그 날의 구름이 지금의 거대한 뭉게구름과 겹쳐지며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세월은 흘러 몸도 마음도 무거워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하늘 아래서 치열하게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그 아련한 여운을 품은 채, 구름의 비밀을 품은 또 다른 세계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옮겨진다….
[제2부] 공기와 중력의 밀고 당기기
- 보이지 않는 손들의 합창
구름이 하늘에 그렇게 웅장한 자태로 떠 있는 비밀은 지상에서 보기엔 마술이나 기적 같지만, 알고 보면 극한의 물리학적 줄다리기 그 자체다. 도진 이 조용히 스마트폰을 꺼내 과학 저널의 페이지를 훑어 내려갈 때, 화면 속의 건조한 글자들은 마치 자연의 숨겨진 설계도를 해독하는 듯 놀랍도록 생생하게 다가왔다.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은 우리가 비 오는 날 우산을 두드리며 맞는 거칠고 굵은 빗방울이 아니다. 그 하나의 지름은 고작 10마이크로미터(0.01mm) 안팎으로, 인간의 머리카락 굵기보다도 훨씬 가늘고 미세하다. 물이 이처럼 극도로 쪼개지면, 부피보다 외부에 노출되는 표면적이 엄청나게 넓어진다. 미세함의 미덕, 표면적의 승리)
입자가 워낙 작아지다 보니 아래로 잡아당기는 중력의 힘보다, 공기가 아래에서 위로 떠받치는 저항력(항력)이 급격히 우세해진다. 여기에 뜨거운 태양열로 데워진 지표면에서 쉴 새 없이 피어오르는 미세한 상승기류까지 더해져 완벽한 부양력을 만들어낸다. (항력과 상승기류의 마법이다)
"종단 속도 즉,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질 때의 속도가 시속 고작 몇 센티미터라고?"
도진은 혼자 속으로 감탄하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겉보기에는 그저 한 자리에 묵직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저 평온한 구름 안에서는, 사실 아래로 떨어지려는 중력과 위로 쉼 없이 밀어 올리는 공기의 보이지 않는 숨결이 매 순간 치열하게 부딪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궤적도 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매달 통장을 스쳐 지나가는 월세와 공과금 고지서, 나이가 들수록 어깨를 짓누르는 부모님의 흰머리와 책임감, 그리고 내일의 안정을 담보할 수 없는 막막한 미래가 마치 거대한 중력처럼 우리를 차가운 바닥으로 끝없이 끌어 내린다.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주저앉고 싶고, 이 무게를 이기지 못해 그대로 추락해 버리고 싶은 순간들을 견디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암담한 추락의 순간, 우리를 외롭지 않게 지탱해 주는 것은 세상의 거대한 기적이나 극적인 반전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너무 평범해서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온도들이다. 늦은 밤 퇴근길, 지친 나를 위로하듯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차가운 소주잔을 기울여 주는 오랜 친구의 투박한 손길; "밥은 먹고 다니냐"는 무심한 말 한마디 속에 꾹꾹 눌러 담긴 가족의 염려; 그리고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따뜻한 햇볕이나, 피곤한 하루 끝에 누운 침대의 포근함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묵묵히 밀어 올려주는 소박한 상승기류들이 모여 있다. 그 미세하지만 끈질긴 공기의 흐름이 매 순간 벼랑 끝에 선 우리를 간신히 붙잡아, 오늘도 살아갈 힘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