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커튼
강미란
훈이 커튼 가게로 들어선다. 두 부부의 정성이 깃든 작은 우주다. 사장님은 시공을, 사모님은 재봉을 맡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작품들을 만들어 낸다. 나는 내 마음에만 걸려 있던 커튼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말로 꺼내기 전까지 그 이야기는 늘 마음속에서 접힌 채로 머물러 있었다. 마치 햇빛을 보지 못한 천처럼, 펼쳐질 순간을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작년 여름, 열두 폭 모시 치마를 뜯어 능소화를 그리고 오래된 삼베 이불을 잘라 질경이와 야생화를 수놓았다. 그것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나의 기억과 사유, 시간과 감정이 천 위로 옮겨간 흔적이었다. 바늘을 들고 천을 마주한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한 땀 한 땀 바늘이 오갈 때마다 잊었다고 여겼던 장면들이 다시 떠올랐다. 바늘은 천을 꿰맸지만, 그 시간은 오히려 내 안의 기억을 풀어 놓았다.
나는 그 천을 커튼으로 만들어 창가에 걸고 싶다고 말했다. 그림을 액자에 넣는 대신, 바람이 드나드는 자리로 보내고 싶었다. 삶의 한 장면을 박제하지 않고 살아 움직이게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천이 빛에 따라 달라 보이듯 기억 또한 날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며칠 후, 부부는 마음의 커튼을 정성스럽게 달아 주었다.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듯 커튼을 올리자 느티나무의 푸르름이 창 너머로 스며들었다. 능소화가 늘어진 모시 삼베 커튼, 삼베 이불 위에 피어난 질경이는 단아하고 고즈넉했다. 마치 정원 한편에 앉아 있는 듯한 풍경이었다. 그 커튼은 단순히 창을 장식하는 물건을 넘어, 마음을 비치는 창이 되었다. 내가 세상과 소통해 온 방식이 그 안에 고요히 담겨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커튼 앞에 서 있었다. 커튼은 이상한 물건이다. 가리기 위해 존재하지만, 동시에 보여 주기 위해 달린다. 완전히 숨기지도, 완전히 드러내지도 않은 채 그사이 어딘가에 머문다.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늘 고백과 침묵 사이에서 적당한 거리를 찾으며 살아간다. 너무 열면 다칠지 두렵고, 너무 닫으면 숨이 막힌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커튼 하나씩을 달고 산다. 그것은 관계와 감정의 경계를 만들기도 하고, 세상과 나를 연결하거나 단절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부부와 친구, 이웃 사이에도 보이지 않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어떤 날은 그것을 활짝 열어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지만, 또 어떤 날은 두터운 암막처럼 내려 스스로를 가려 버린다. 그 커튼의 두께는 사람마다 다르고, 날마다 달라진다.
마음의 커튼은 우리의 의지로 여닫는 듯하지만, 때로는 타인의 말과 행동에 의해 무겁게 내려앉는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커튼을 단번에 끌어 내릴 때가 있다. 그러나 커튼을 닫는다고 해서 마음이 영원히 숨겨지는 것은 아니다. 커튼 뒤에 오래 머물다 보면 닫혀 있는 것이 세상이 아니라 결국 나 자신임을 깨닫게 된다. 그 고립감과 답답함은 다시 커튼을 열어야 한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우리를 가장 오래 아프게 하는 것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해석해 온 방식이라고. 같은 기억도 어떤 날은 견딜 만한 이야기가 되고, 어떤 날은 스스로를 가두는 문장이 된다. 치유는 새로운 일이 생길 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을 다른 빛에서 다시 바라볼 때 찾아온다. 커튼을 여는 일 역시 그렇다. 세상이 달라져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는 순간 열린다.
마음의 커튼을 여는 일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것은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커튼을 열어 바람과 빛을 맞이할 때, 나는 다시 세상과 연결되고 있음을 느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과 바람은 내 안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마음을 새롭게 채운다. 그것은 움츠러들었던 나를 다시 펴는 작은 용기다. 대단한 결심이 아니라 조용히 손을 뻗어 커튼 끈을 잡는 정도의 용기다.
아침이다. 밤새 내려 두었던 커튼으로 방 안은 어둡고 무거웠다. 커튼을 활짝 열었다. 봄날의 햇살이 창가로 쏟아지고 느티나무의 초록 잎들이 반짝인다. 안락의자에 몸을 기대며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 참 잘 살았어.”
그 말은 칭찬이라기보다 허락에 가까웠다. 실패와 후회, 늦은 깨달음까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허락. 웅크린 마음을 펴고 먼지 쌓인 마음을 털어낸다. 욕심도, 미움도, 미련도, 원망도 함께 털어낸다. 내 마음의 커튼이 자동문처럼 열린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에는 더 가벼운 커튼을 달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단단한 암막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이 스며드는 얇고 투명한 천 같은 커튼. 나를 보호하면서도 타인을 초대할 수 있는 커튼 말이다. 서로의 마음이 비쳐 보이고, 그 안의 풍경을 나눌 수 있는 커튼. 그런 커튼을 마음에 단다면 우리의 삶은 조금 더 따뜻하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타인이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가볍고 투명한 마음의 커튼. 가려져 있어도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튼. 그것이 내가 마음속에 달고 싶은, 꿈꾸는 커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