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운님의 글입니다.
: 할아버지는 김귀자 동자 입니다, 아버님은 김영자 철자이고요 저는 김용운 입니다. : 아들은 김정환입니다..부탁드립니다
답 변
안녕하세요 김용운님! 홈 방문을 환영합니다.
님께서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아래와 같은 여러 갈래의 김해김씨 중에 어느 김해김씨인지, 어느 파에 해당하는지 알 수가 없으므로 아래 설명을 참고하여 님의 집안에서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1) 김해(金海-金首露王)김씨 시조는 김수로왕. 41년 가락국(駕洛國)의 9간(九干)이 놀이를 나갔다가 구지봉에서 금합을 발견하여 열어보니 6개의 황금알이 들어 있었고, 그 알 속에서 여섯 동자가 나왔다. 제일 먼저 나온 수로를 왕으로 추대하고 나머지 다섯 동자는 각각 5가야(五伽倻)에 봉했다. 김수로는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으로, 여섯 동자 가운데 제일 먼저 나왔다 하여 이름을 수로라고 한 것이다. 그는 뒤에 아유타국(지금의 인도)의 공주 허황옥(許皇玉)을 왕비로 맞아 10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맏아들인 김거등(金居登)이 왕위를 계승했다. 가락국의 도읍은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로, 고려 충선왕 때 김해부(金海府)가 설치됨으로써 후손들이 김해를 본관으로 삼아 대를 이어왔다. 김해김씨의 후손은 148개 파로 갈라져 대를 잇고 있는데, 김목경(金牧卿)계의 경파(京派), 김익경(金益卿)계의 4군파(四君派), 김관(金管)계의 삼현파(三賢派)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인구수 376만 7061(1985).
(2)김해(金海-金濂)김씨 시조는 김렴(金濂). 대안군 김은열의 셋째 아들로서 고려 때 벼슬이 봉어(奉御)에 이르렀고 김해군에 봉해져 후손들이 김해를 본관으로 삼았다. 가야국의 1대 왕인 김수로왕을 시조로 하는 김해김씨나 임진왜란 때 왜군으로 참전했다가 조선에 귀화하여 김씨를 사성(賜姓)받은 김충선(金忠善)계의 김해김씨와는 그 출계(出系)가 다른 동음 이성(異姓)이다. 그리하여 김수로계를 선김(先金), 김렴계를 후김(後金)이라 불러왔다. 김렴계는 자손들이 번창함에 따라, 고려 인종 때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진 김시흥을 중조(中祖)로 삼고 금녕을 본관으로 삼았는데, 금녕은 김해의 옛이름으로 조선 헌종 때의 일이다.
(3)금녕(金寧)김씨 시조는 김시흥으로 신라 김알지의 35세손이다. 고려 때 공을 세워 금녕군에 봉해졌는데, 금녕은 김해(金海)의 옛이름이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김해로 하면서 선김(先金;金首露系, 김해김씨)과 후김(後金;김시흥계, 금녕김씨)으로 구별해 왔다. 그러나 충의공(忠毅公) 김문기(金文起)의 명성이 크게 알려진 뒤로 타인들이 김문기의 후손을 자청하는 등 종통(宗統)을 어지럽히는 일도 잦아 1849년(헌종 15) 후손인 김주성(金周聲) 등이 예조에 상소, 본래의 금녕을 본관으로 확정지었다.
(4)김해(金海-金忠善)김씨 시조는 김충선. 일본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스나야가[沙也可]이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의 좌선봉장으로 조선 침략에 앞장섰으나, 임진왜란이 조선에 대한 불의의 침략임을 깨닫고 조선의 문물을 흠모하여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투항, 일본군을 무찔렀다. 뒤에 도원수 권율(權慄) 등의 주청으로 김충선이란 성명을 하사받고 자헌대부에 올랐다. 진주(晉州)목사 장춘점(張春點)의 딸과 결혼하였고, 김해를 본관으로 하사받았다. 그의 일본 성이 스나[沙]임을 고려하여, 모래 중에는 사금이 으뜸이라 하여 김(金)씨 성을 하사하고, 금 중에는 김해의 금이 으뜸이라 하여 김해를 본관으로 하사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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