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산행시간은 후미 기준으로 약3시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입니다.
구룡령 옛길 등산지도
구룡령옛길은 문화재청으로부터 명승29호로 지정된 '문화재길'(옛길정상~갈천 산촌체험학교 2.76km)이기도 하다.
명승길은 죽령 옛길, 문경새재,문경의 토끼비리(관갑천잔도)와 함께 우리나라에 4개뿐이다.
하지만 홍천 내면 명개리~옛길정상까지 3.7km부분은 명승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구룡령옛길의 약 42%만 명승길인 셈이다.
횟돌반쟁이
횟돌이 많은 이 곳은 옛날 시멘트가 없을 때 이 횟돌로 관도 만들고 구들장도 만들었답니다.
아직도 캐니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솔반쟁이
옛날 경복궁 복원을 위해 아름드리 금강송들이 있던 곳입니다. 소나무가 많아서 솔반쟁이라합니다.
아직도 그때 베어낸 소나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묘반쟁이
이곳 묘반쟁이에는 한 젊은 청년의 묘가 있는데 옛날 양양골 원님과 홍천골 원님이 명계리를 서로 자기네 땅이라로 우기면서
싸우다가 서로 자기 관청에서 출발하여 만나는 지점을 경계로하자고 하였는데 땅을 한평이라도 더 많이 차지하려고 양양골에
건장한 청년이 원님을 들쳐 업고 뛰어 명개리까지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결국 지쳐서 쓰러져 사망했다는 그 청년을 위해
양양골 원님이 이 곳에 묘를 써 주었다고 합니다.
구룡령의 전설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홍천 내면 명개리로 이어지는 이 옛길은 고려시대까지는 전혀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고려중엽 양양 서면 갈천리에서 어릴 때부터 개를 기르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성이 지극한 노총각이 살고
있었는데, 산 너머 아름다운 처녀가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 처녀에게 장가를 가고 싶어했다. 이 마음을 알게 된 개가 길을 안내하여 처녀를 데려오는데 홍천의 동네 총각들이 몽둥이를 들고 뒤를 따라 왔으나
구름이 끼어 양양의 노총각은 무사히 양양으로 넘어와 이 처녀와 결혼을 하고 어머니를 모시고 더욱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이 길을 개가 안내하여 장가를 간 길이라 하여 개 구(狗)자와 구름 운(雲)자를 써서 ‘구운령’이라 하였다. 지금의 구룡령이란 지명은 현재의 56번국도가 생기면서 까닭 모르게 구룡령이란 이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하였다. 이 옛길은 조선시대 말까지도 젊은 청년 30명 이상이 모여야만 넘어가던 길로 항상 산적이 많았으며
일본사람들도 이 길을 감히 넘지 못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옛날 양양, 고성 지방 선비들이 과거를 치르러 한양으로 갈 때 명칭에서 유래하듯 용의 영험함을 빗대어
과거 급제를 기원하며 넘나들던 길이라 하며, 구룡령이라는 이름은 ‘아홉 마리 용이 고개를 넘어가다가 지쳐서
갈천리 마을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갯길을 넘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