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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례"와 "세례"에 대한 비교 질문에 대하여... [질문 1] 침례 교회에서는 침례를 베푸는데 침례와 세례와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다른 점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형식이 다릅니다. 세례는 물방울을 머리에 떨어뜨리든가 혹은 부어서 베풀지만 침례는 침례 받는 자의 전신을 물에 잠그어 베풉니다. 둘째는, 그 의미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의 일반적인 의미는 예수님을 믿고 죄씻음을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고, 침례는 "죽어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믿음으로 연합하여 나도 옛생활을 십자가에 못박아 장사하고 성령의 새생활로 중생한 사실"을 간증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옛생활을 장사지냈다는 사실을 선퐇하는 것이고 물에서 올라오는 것은 성령으로 중생한 생활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입니다(골 2:12). 셋째는, 받는 사람의 자격에 차이가 있습니다. 세례는 신앙고백을 한 사람에게와 예수님을 모르는 어린 아이에게도 베풀지만 침례는 예수를 나의 구주로 믿고 구원의 확이 있는 분에게만 베풉니다(행 2:41~42, 8:36~37, 9:17~18, 10:47~48, 16:30~34). [질문 2] 우리 한국어 성서에는 "침례"라는 말이 없이 모두 "세례"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표기문제) 그렇습니다. 한국어 성서에는 "침례"라는 말이 없고 모두 세례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 원문은 한국어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 쓰여졌습니다. 세례는 헬라어로 란티스모스:(물방울을 떨어뜨림)라 하며 침례는 밥티스마 :(물에 잠김)라고 하는데 한국어 신약에 세례라고한 곳을 신약 원문에 비추어보면 란티스모스가 아니고 모두 밥티스마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문을 한국어로 바르게 번역하였더라면 침례로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일본 성경에는 원어인 헬라어 그대로 밥티스마라고 하고 영어 성경에도 헬라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밥티즘이라고 했습니다). [질문 3] 성서적인 침례가 어떻게 세례로 바뀌었습니까? (변질 과정) 원래 성서에는 침례를 가르쳤고 예수님께서도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에서는 침례 만을 베풀었습니다. 2세기에 이르러 사도들이 세상을 떠나자 진리가 흐려지기 시작하여 침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그릇된 교리가 교회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로마 황제 콘스탄틴은 일생동안 지은 모든 죄를 한번에 완전히 씻을려고 죽기 직전까지 침례를 연기했습니다. 이렇게 침례를 받아야 구언을 받는다고 하니 어린 아이나 노인이나 병자에게는 침례를 주기가 곤란했습니다. 작자미상의 디다케 (12사도의 교훈)라는 2세기에 쓰여진 경외선(성서로 인정받지 못하는 책)에 의하면 "침례를 실시할 수 없는 경우에는 물을 부으라"고 하여 성서적인 침례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고 3세기의 씨프리안이라는 사람은 "죄를 씻는 것은 물의 양의 문제가 아니니 세례도 좋다"고 하며 세례를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8세기 까지의 모든 교회는 주로 침례를 실시했습니다 8세기 반에 로마 교회의 법왕 스데반 3세가 영을 내려 침례 대신 세례를 주어도 좋다고 정식으로 공포했고, 주후 1311년라벤나 회의에 모인 로마 카톨릭교 대표들은 세례만을 실시하고 침례를 실시하는 자는 사형하기로 결의하여 많은 성도를 핍박했습니다. 그후 부터는 세례만이 실시 되었습니다. 16세기에 종교 개혁이 일어나 성서의 교훈에 따르자는 운동이 있었지만 전기한 바와 같이 칼빈과 같은 분은 "성서에는 침례로 되어 있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인 이유로 세례를 고집하여 왔습니다. 각 교파는 자기의 지도자나 과거의 관습을 따를 경향이 있으므로 아직도 세례를 시행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정리한다면 침례받을 수 없는 병자 등 부득이한 경우에 약식으로 세례를 행한 것이 중세기 교회의 타락과 함께 세속화 현상으로 지금까지 시행되어 왔던 것입니다. 오직 성서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도 이런 의미로 본다면 온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 4] 침례가 참으로 성서적이라면 왜 우리 나라의 많은 교회는 침례를 시행치 않습니까? (시행문제) 제일 큰 이유는, 우리를 가르쳐 주신 분들이 세례가 성서적이라고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침례가 성서적이라는 것을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례가 성서의 가르침인지 혹은 교파의 가르침인지를 잘 분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미국의 교회중에서 침례교회는 물론 순복음교회, 장로 교회, 감리교회 중에서도 침례를 실시하는 교회가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에서도 순복음교회나 그리스도교회, 장로교회, 성결교 회등에서도 목회자뿐 아니라 성도들 가운데서도 복음과 연결된 침례의 깊은 뜻을 깨닫고 침례를 요청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린시절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은 성결교회 부흥사이셨는데 그 분은 침례가 더 복음적이라고 말씀하시며 여름에는 하천에서, 겨울에는 목사님 사택 욕실에서 침례를 베푸셨습니다. 또한 장로교(통합) 총회에서도 2년전 침례를 베풀어도 좋다는 승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득이한 환자나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약식인 세례가 아니라 의식가운데 복음의 의미가 내포된 침례를 받는 것이 더 올바른 자세라 하겠습니다. 주님이 분부하신 것이 두가지인데 그것을 약식으로 행해서야 되겠습니까? 샬롬!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6:3~5) |
첫댓글 이 글을 이모혜숙양도 읽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