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전설에서 드래곤 하면 대부분 이무기를 가리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정도로 사람들 눈에 띄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었다. 이무기는 호수나 연못 같은 물 속에 살고 있다. 또한 인가 근처의 강이나 연못 등의 바닥에 몰래 숨듯이 사는 일도 있어 사람들에게 자주 목격되었고, 그만큼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드래곤이었다. 또한 연못이나 강에 숨어사는 이무기에는 ‘숨는다’는 뜻의 ‘잠’자를 붙여서 ‘잠룡’, ‘잠교’라는 친숙한 이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이무기는 용과 매우 닮은 드래곤이다. 길이는 3m쯤이 보통인데 큰 것은 몸의 폭만 수미터 이상 되는 경우도 있다. 얼굴은 용과 많이 닮았지만 짧은 뿔이 있는 것과 전혀 없는 것이 있었다.(뿔이 있는 이무기는 특히 기라고 하여 구별했다. 또한 뿔이 있는 것은 수컷 이무기뿐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이무기는 목 주위에 하얀 무늬가 있어 마치 목걸이를 한 것처럼 보인다. 또한 등에는 푸른 반점, 가슴은 주황색, 몸의 양옆은 비단처럼 오색 찬란한 광택을 가지고 있다. 네 개의 발은 물을 젓기 위해 끝이 넓은 노와 같이 되어 있고 꼬리 끝부분에는 딱딱한 살로 된 혹이 있다.
명나라의 박물사전인 ‘본초강목’에 따르면 이무기는 눈썹 또는 눈 위의 살덩이가 눈과 눈 사이에서 교차하고 있어 ‘교’라는 글자로 씌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무기는 호수, 소, 연못, 강 등 담수에 사는 모든 동물의 왕이며, 특히 헤엄치는 동물은 모두 이무기의 지배 하에 있다. 물고기 무리가 2천 5백 마리를 넘으면 어디선가 이무기가 나타나 그들의 왕이 된다. 다만 이무기는 물고기를 주식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물고기 측에서 보면 엄청난 폭군이고, 양식장 같은 곳에 이무기가 살면 큰 손해가 났다고 한다. 그러나 물고기의 무리와 함께 자라가 있으면 무슨 영문에선지 이무기가 오지 않는다고 믿어지기도 했다.
이무기는 차가운 물 속에서 5백 년 동안 지내면 용이 되어 하늘로 날아올라간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5백년이 지났다고 해서 모든 이무기가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는 바다로 흘러가 용왕의 부하가 되어 부자유스러운 궁정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던 듯하다.
물 속에 사는 이무기는 용과 마찬가지로 비나 물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나 용이 비를 불러오는 강력한 힘을 가진 물의 신이었음에 비해, 이무기는 비구름을 불러올 수 있는 정도의 약한 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또한 용처럼 물을 지배, 관리한다고는 보지 않았고, 이무기가 근처에 살고 있으면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정도로 생각되었다.
하지만 가뭄을 두려워하는 농민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물과 관계가 있는 것이라면 용이든 이무기든 어느 쪽이라도 좋았을 것이다. 오히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용보다 근처에 살며 비를 부르는 이무기가 더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무기가 모아놓은 물이 커다란 재해를 불러들인 일도 있었다. 중국의 복건성에 이무기가 살고 있다고 소문난 산이 있었다. 그 산은 메마른 날이 아무리 계속되어도 나무들이 울창하게 자라고 맑은 샘물이 솟아올랐기에, 그 산 지하에 이무기가 있어 물을 모아두고 있다고 믿어졌던 것이다.
어느 날 그 산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맑게 개어 있던 하늘이 금세 컴컴해졌다. 이윽고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더니 폭풍우가 몰아쳐 산으로부터 대량의 물이 넘쳐흘렀다. 산기슭에 있는 마을과 논밭은 갑작스러운 홍수에 잠기고 많은 사람들과 가축, 가옥들이 떠내려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산의 지하에 살고 있던 이무기가 5백 살이 되어 용으로 변한 뒤 구름을 불러 하늘로 날아올라갔을 것이라고 말했고, 개중에는 폭풍 속에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을 보았다는 사람까지 있었다. 물을 다스리던 이무기가 없어지자 산에 있던 물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이무기들끼리 호수 등의 권리를 두고 서로 싸우는 일도 많았다. 물론 강한 이무기일수록 크고 살기 좋은 호수를 장악하고, 약한 이무기는 작고 물고기도 적은 연못이나 강에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약한 이무기는 때때로 누군가의 도움을 빌려 싸우는 일도 있었다. 그런 이무기끼리의 싸움에 힘을 빌려준 남자의 이야기를 소개하기로 한다.
항상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던 어떤 사냥꾼의 오두막에 어느 날 밤늦게 새하얀 옷을 입은 도사가 찾아온다. 도사는 키가 3m나 되고 도저히 인간으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산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일과 괴이한 일에 익숙해져 있는 사냥꾼은 이 도사가 무엇인가의 정령이라는 사실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도사는 오두막에 들어와서, 산꼭대기에 있는 커다란 호수의 패권을 두고 싸우고 있는데 적이 강력해서 원군이 필요하니 자신을 도와달라고 머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사냥꾼은 도사의 예의바른 태도와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도사는 깊이 고마움을 표하면서 내일 정오에 호수로 와달라고 말하고는 떠났다.
다음날 사냥꾼이 호수에 가보자 주위에 검은 구름이 가득 차 있고 호수의 수면이 심하게 파도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뇌성이 울리는가 싶더니 무언가가 호수에서 튀어나왔다. 잘 보니 그것은 두 마리의 이무기였다. 이무기끼리 서로의 몸을 얽으면서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담력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 센 사냥꾼도 이 광경에는 크게 놀라서 그저 두 마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두 이무기가 격렬하게 싸우는데, 아무래도 하얀 이무기가 눌리고 노란 이무기가 유리하게 공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냥꾼은 지난밤에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이 하얀 옷의 도사였음을 생각하고는, 그가 이 하얀 이무기의 정령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냥꾼은 정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란 이무기의 목을 겨냥해 무거운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노란 이무기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하얀 이무기가 우세해졌다. 이윽고 두 마리 모두 호수 속으로 모습을 감췄는데, 아무래도 승부는 판가름이 난 것 같았다.
그날 밤 다시 사냥꾼의 오두막으로 하얀 옷의 도사가 찾아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네 덕분에 산꼭대기의 호수가 내 것이 되었다. 그 보답으로 이 산에서 사냥을 할 때 많은 사냥감을 주도록 하겠다. 다만 그 기간은 1년뿐이고 그 이후에는 산에서 내려가 다시는 돌아와서는 안 된다.”
그후 사냥꾼의 사냥은 놀랄 만큼 잘 되었다. 마치 사냥감이 일부러 화살에 맞아주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덕분에 사냥꾼은 순식간에 부자가 되었다. 그래도 약속한 1년이 지나자 사냥꾼은 약속대로 산에서 내려가 도시에서 살았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쾌적한 생활을 하던 사냥꾼도 몇 년이 지나가 유복하지만 단조로운 도시 생활이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느끼던 사냥의 즐거움을 그리워하던 사냥꾼은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산으로 돌아갔다. 그러자 예전의 하얀 옷을 입은 도사가 나타나 사냥꾼을 강한 어조로 꾸짖었다.
“왜 돌아왔는가? 노란 이무기는 네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기 때문에 그 자식들이 너를 부모의 원수라 여기며 노리고 있는 터인데. 나는 이제 아무것도 해 줄 것이 없다.”
사냥꾼은 그 말을 듣고 허둥지둥 산에서 도망치려 했지만 검은 옷을 입은 큰 남자들 세 명이 그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입을 크게 벌리더니 무시무시한 눈으로 사냥꾼을 놀려보았다. 그 순간에 사냥꾼의 입에서 혼이 빠져나가고 사냥꾼의 몸은 차갑게 식어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사람에게 의지해야 하는 이무기는 역시 용에는 미치지 못했던 듯하다. 이무기가 용만큼 위대하지 않았다는 증거로 사람에게 잡아먹힌 이야기가 ‘본초강목’에 실려 있다.
한나라의 소 황제가 호수에 배를 띄워 낚시를 하고 있는데 기묘한 동물이 낚시바늘에 걸려들었다. 그것은 1m정도의 하얀 용으로, 이마에 작고 부드러운 뿔이 나 있고 입술 밖으로 이빨이 튀어나와 있었다. 황제의 신하가 황제의 몸에 무슨 일이 있을까봐 그 용을 막대리고 때려 죽여버렸다. 소 황제는 “용을 죽이다니 큰일을 저질렀구나. 무슨 재앙이 있을 것이다.”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재치 있는 대신은 “용이라면 막대기로 맞는 정도로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필시 이무기일 것입니다. 이무기가 재앙을 내렸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심한 황제는 그 ‘이무기’를 가지고 돌아가서 조리하도록 명령했다. 식초에 담근 그 고기는 생선과 닭고기의 중간쯤 되는 맛으로 매우 진귀한 맛이었다고 한다. 탄력이 있는 고기는 옅은 보라색이었고 꼬들꼬들한 뼈는 약간 흰색을 띤 파란색이었다.
만약 이것이 진짜로 용이었다고 해도 사람에게 잡아먹힐 정도였으니 아직 어린용이었을 것이다.
- 판타지 라이브러리 6권 ‘환수 드래곤’ 편 참조 -
첫댓글 역시나 용이란 존재는 환타지에서 빼 놓을 수 없나 봅니다. 첨부자료의 출처를 밝히긴 했습니다만 용의 자료로만도 책 한권이 넘는 분량이 나오더군요... ㅡ,.ㅡ;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군요. 저는 '이무기'라고 하면 용이 되기 위해서 수행을 하고 있는 괴물로 알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등용문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있는데. 등용문에 관한 건 없나요?
용이 되기 위해 존재하는 괴물이기는 하죠. 하지만 특별한 수행을 거치지는 않고 세월을 버티면 되는 존재였나 봅니다. 어쩌면 그것이 수행일지도...
음. 시간이 약이라는 건가. 과연, 그것도 나름대로 어울리네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