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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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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근세조선이 중앙아시아라면...흑진국(黑眞國)은 어떻하나?
궐한 추천 0 조회 657 14.05.18 15:48 댓글 21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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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5.18 16:06

    첫댓글 상고로부터 근세까지 망라한 내용이군요. 님의 말씀대로 조선 말기까지 중아아세아를 영토로 했다는 것은 과장된, 확대해석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병지호란이후 조선영토의 서쪽인 신강성과 감숙 서쪽 및 청해성 청해호 건너까지, 청의 영토로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당시 시대를 살다가 간 선대님들의 유고집에 기록된 내용으로 판단합니다. 대통하와 황하와 황수가 겹치는 곳의 서쪽지방을 언제 수복할 수 있을까? 하는 내용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청에게 빼앗긴 땅이라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의 지명을 찾는 것입니다. 지명대사전이나 호위우공추지등을 보면, 내몽고 서쪽 거연(현 액제납기)지방에 부여기 있다했는데,

  • 14.05.18 16:20

    거연이란 지명은 자주 등장하는 지명인데, 독사방여기요를 보면, 이 "거연"이란 지명은 최소한 천산(헹텡그리산이나 박격달산)의 서쪽지방에 있을 수 있다라는 단서가 있습니다. 대막지대를 정의한 것을 보면, 거연으로부터 요해까지의 음산의 북쪽지방으로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막(대적)의 중심부를 알타이산맥과 포류해(토노번.언기 서남)까지를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대막지대는 요해로부터 거연까지라고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 당초의 지명을 찾는 것이 아주 종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4.05.18 17:04

    부여가 현 신강성 천산유역에 있었다 보면...당연 그 서부지역인 카자흐 동부 정도까지도 부여의 직접통치강역이고...부여 전성기라면...그 훨 서부 불가리아까지도 그 문명의 전파영역이라 해석해 봅니다...단지, 역사서가 말하듯...그 부여인들은...정확히 현재의 중원인들과 한반도인들 같은 얼굴였다기 보다는...백민(백인)이 많은 황백 혼혈적인 얼굴였다 보고여...

  • 14.05.18 20:19

    @궐한 백민이란 말은 두 가지 뜻이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얼굴이 희다. 흰옷을 숭상하였다.> 라고 우선 생각할 수 있는데, 백민이란 말로 백인종족이란 판단은 섣부른 일이 아닐까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부여에서 출발하는 고구려와 백제등 역시 백민의 후예가 됩니다. 그럴 경우가 가능할까요? 아주 오래전 상상고시대 황인종의 터전이 곧 분포가 어디까지 였는가 하는 것이 줗은 척도가 될 수 있을 것 같군요.

  • 작성자 14.05.18 22:57

    @문 무 부여 또는 부여 북쪽에 백민이 있는데...그 몸도 희고 털도 희다 되어 있으니...노랑머리 백인도 아닌 흰머리의 원조 백인이 부여의 백민일까 싶습니다...당연 부여와 그 유종인 고구려는 백민(백인)의 혼혈이 많고...그게 현재의 북방몽골로이드인 상당수의 카자흐나 위구르,몽골과 북중국 한반도인들의 조상일지 싶습니다...중원 남부와 동남아인들관 다르게... 체구는 더 크고 피부색이 더 밝은 황인들...이들은 백부인의 혼혈일지 싶습니다.
    백민의 뜻이...옷이 희니, 광명족이니는...근세의 반도인에 맞춘 우리의 자의적 해석이라 봅니다.

  • 14.05.18 18:53

    넓고 깊게 통챃하신 력작 입니다 감사 합니다

  • 작성자 14.05.18 22:54

    과분하신 칭찬에 쥐구녕이라도 찾고 싶습니다...ㅡ. .ㅡ

  • 14.05.18 22:26


    궐한 선생님의 모처럼 글을 대하니 무척 기쁨니다. 제가 본 싸이트에 입문(?)하게 된 동기도 궐한님의 글을 통해서였읍니다.
    궁금한 점은,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 연행사들의 행로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루트를 설정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있었다면 그 행로는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합니다 .

  • 작성자 14.05.18 22:53

    제가 처음 산정해 본 연행사의 연경가는 루트는...돈황(요동)을 지나 중가르분지를 지나 오히려 동쪽으로 하라호름 가는길 아닐지 하다가...다시,아니다...바로 알타이 서남부 카자흐고개를 그대로 넘어 아스타나 정도로 가는게 연행길였다 봤는데...여기서 요동벌은 중가르사막이고...요수(遼水)는 이르티쉬강을 이른다 봤는데...문무님등의 여러 고견들을 종합하고 냉정이 산정해 본 바...소륵하(압록강?)넘어 요동(돈황인근?)과 백룡퇴(요동벌?) 건너 요해(거대했던 포창해?)인근 천산(탱그리산맥)동남부 투르판 정도가 연경의 위치가 아닐지 싶은게 현재의 생각입니다.

  • 14.05.18 22:36

    뮨무 선생님의 글을 봐서도 느끼는 것인데, 조선 역사의 개략적 윤곽은 드러나는듯 합니다. 즉 조선의 강역은 대략 현 동아시아라 가정하고 그 중앙부에 (현 중원지방 )조선의 중앙정부인 중국이 있고 그 중국의 영역은 지금의 한반도 크기 많한 현 중국의 일개 성 크기많한 영역일것입니다. 궐한님과의 의견 차이가 있으나 조선사의 기본 개념에는 문무선생님과 궐한님과 큰 차이는 없는것 갔읍니다.

  • 작성자 14.05.18 22:44

    옛 조선...광역의미의 조선(고조선)문명권(환국)의 중심인 중국(中國)이라면 몰라도...근세조선의 왕도가 중국이란건 틀렸다가 제 생각이고...문무님의 고견도 대동소이하신거로 전 알고 있습니다.

  • 14.05.18 23:14

    무슨 한편의 소설을 보는 듯 하군요. 왜곡도 심하구요. 뭐하시는 것입니까?

  • 작성자 14.05.18 23:36

    그냥 아마추어의 가설정도로 봐 주십시요.
    이 글에서 주장하고픈 중점은...베링해 넘어 알래스카도 흑여진의 땅이였고...청나라나 조선의 극동 통치영역이 베링해 근처까지 미쳤단 얘기입니다...중앙아에만 조선이 있었단 주장들에 반해 나름 조선강역의 중심을 잡기위한 글였습니다.

  • 14.05.18 23:16

    이를 하나로 꿰어야 하는데, 조선사의 기본틀을 어떻게 정립할 것인가가 중요 한 것 같습니다. 단지 제 사견을 말씀 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부여의 위치는 현 산서성 일대 입니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개념은 현 황하 북쪽인 산서성 이대를 이릅니다. 이곳에서 고구려의 주몽이 갈라저 나와 현 서안 일대에 자리잡습니다. 이로부터 화하와 북쪽 오랑케가 분리되어 조선사 내내 조선과 중국(?)이 서로 다른 나라인양 갈등을 해 왔던 것이죠....
    현 감숙성 서쪽은 그야말로 조성의 변방일 따름입니다. 적어도 병자호란 이후의 조선 중앙 정부는 현 산서성 일대일 것입니다. 연행사들의 헹로를 설정해 보십시요 .....

  • 작성자 14.05.18 23:32

    산서성은 금나라시기 부턴... 고려나 조선의 동북도라 보입니다...망한 발해나 금나라의 유민들을 모두 여진이라 했는데...개중 극동쪽에 몰린 여진인들이 현 동북삼성에 있었던 것이며...이는 몽골 대제국도 완전히 복속시키지 못한 강력한 지대였단 정황이 있습니다...태행산맥과 흥안령산맥을 잇는 북경인근 어디가 바로 고려나 신라의 철령으로...상고대엔 신장 3장(7M)의 거인족(흑여진)들을 막던 요새가 거기였다 봅니다...그 거인족들이 숙신의 화살공격에 점차 베링해를 넘어 아메리카 대륙으로 몰린게 맘모스들의 이동과 멸종과도 희안하게 같은 것이라 보입니다.

  • 14.05.18 23:33

    현 요동과 요서는 하나의 강을 건너서 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 연행록등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연행사들은 강('''계곡..)을 따라 갔고 그 강 (발해)의 가장자리에 제방을 만들어 버드나무도 심고 해서 이정표를 삼아 연경을 향하여 갔읍니다. 그 연로의 끝자리에 산해관이 있고 그 산해관은 군사적 요충지(병목현상과 같은 혹은 요동 벌이 다하고 병목과 같아 험한 산악지대로 이여지는 길목의 초입새 지리학에서 선상지 같은... )지점입니다.

  • 14.05.18 23:39

    궐한 선생님의 연행사 들의 행로는 어떻게 되는가를 듣고 싶습니다...
    연원직지 유관별록 천지산천
    무릇 이 지방 토질은 요동에서 북경까지가 모두 곱고 부드러우면서도 찰져서 해동(解凍) 때나 장마 때는 바퀴에 붙어 지나가기 어렵고, 또 집 벽에다 바르면 빗물이 스며들 걱정이 없다. 그런데 곱고 부드러운 이 흙은 다 모래여서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마치 연무(煙霧)처럼 먼지가 인다. 그래서 아무리 큰 눈이 쏟아져도 이 먼지와 뒤범벅이 되어 버리면 이내 눈발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 되는데 그중에도 사하역(沙河驛)이 제일 심하다. 산해관 안쪽은 왕래하는 거마(車馬)가 더욱 많아서 밤낮으로 먼지를 일으키어 아주 바람이 없는 때라도

  • 14.05.18 23:43

    꼭 잿가루가 날리는 것같이 분분하다. ~~~중략~~~
    이곳은 석탄(石炭) 앙금으로 된 지방으로서 가루가 쌓여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옛날 문자의 ‘치진(緇塵 세상 풍진 속에 분주하여 의복이 더럽혀짐)’이란 것이 곧 이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시킬 위치를 먼저 이야가 해야 하지 않을까요....

  • 14.05.18 23:59

    연행사들이 간 곳은 유주로 유주의 땅은 검다 했읍니다. 그 검은것의 정체는 바로 석탄 앙금입니다. 우기(雨期)에 비가 오면 노천 탄광은 검은 물이 흘러 내려 이른바 흑수가 됩니다. 이런 물이 평야지대를 만나면 유속이 느려 강물의 고형체가 침전이 되죠... 따라서 땅이 검게 되고, 건조한 겨울이 되면 수레 바퀴에 먼지가 흩날리어 이른바 검은 모래사막이라 하는 실체가 됩니다...적어도 연행사들의 행로는 산서성 일대일 것입니다...

  • 14.05.19 00:07

    옥문관이나 백룡퇴 등의 지명은 왜곡 이동된 것이라 생각됩니다. 동쪽으로 요동과 심양이 왜곡 이동 되었듯이 서쪽으로도 옥문과 백룡퇴 등의 지명이 이동되어 우리의 시야를 흐리개 하고 있읍니다. 기존의 지명은 믿을것이 거의 없읍니다. 제 생각에 대륙조선의 중국에 있던 지명들이 현 중국 대륙 사방으로 이동되여 일개 성 크기의 본래의 중국이 현 중국대륙으로 왜곡 이동되여 우리를 혼란케 한다 생각됩니다.

  • 14.05.19 00:34

    대륙조선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일관된 생각이 현 중국 중원 지방은 조선의 중요부이다 라고 하실것입니다 저 역시 그렇개 생각하고 있읍니다만 정작 이 중요부를 파 헤치는 글은 보기 어렵습니다. 조선의 심장부인 현 산서성과 섬서성을 파 헤치지 않고서는 조선의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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