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레’와
메탄올
‘술’이라는 것은 원래 ‘깨끗하다’나 ‘높다’라는 뜻을 가진 어소인 ‘수’에서
온 명사형 말입니다.
단오를 일러 ‘수릿날’이라고 하는데 이때 수리는 ‘높다’는 뜻이며, 머리를 일러 ‘수리’라고도 하는데 이 또한 같은 뜻입니다. 장가들지 않은 총각과 시집가지
않은 처녀를 일러 ‘숫총각’, ‘숫처녀’라고 하며,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자를 ‘숫내기’라고 하는데, 이때
접두어 ‘숫’은 ‘깨끗하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술은 깨끗한 것입니다. 그래서 한님이나 조상께 제사를 올릴 때도 술은 매우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화학적으로
제조한 오늘날의 한국판 ‘소주’도 그랬습니다. 물론 그것은 곡식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데서 중요한 차이점을 드러내지만 말입니다.
우리 옛 분들은 이런 중요한
물건을 먹거나 마실 때면, 늘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농사를 가르쳤다는 옛 조선의 ‘고시레’란 인물을 떠올리며 감사의 의례를 빼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은 음식을 먹을
때면 늘 ‘고시레’ 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음식 가운데 처음
약간을 땅에 뿌림으로써, 우주와 고시레에게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화학적으로 빚은 소주를 마실 때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처음 약간의
술을 부어서 땅에 뿌리면서 고시레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고시레를 부르던
감사 의례가 사라진 다음에도 사람들은 첫 잔을 마시지 않고 땅에 부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소주의 윗 부분에는 메탄올이 떠 있으니, 그것을 먼저 부어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참 궁색한 변명이었습니다. 고시레에 담긴
마음은 사라지고 그 의식만 남고 보면 그럴 듯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은 그 의례마저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고시레’를 그만 둔 것이 아니라 이제 화학적으로도 술 빚는 기술이 좋아져서 메탄올이 뜨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고시레에 담긴 의식이 사람에게
뿌리를 잊지 않게 하는 진실함을 길렀다면, 그것은 미래를 기를 수 있는 힘일 텐데도 말입니다.
- 모울도뷔 준비 제5호((1999.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