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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기 93년 9월 20일 토요정례법회 ○
청년 강연
8단 한경덕 교우님께서 교단품 8장 강연 해주셨습니다.
축하공연도 빠질 수 없겠죠? '-'
김제원 교무님 설법
오늘 비가 와서 오시는데 경계가 되진 않으셨나요.
8단의 경덕 교우님께서 교단품 8장 해주셨습니다. 잘 들으셨죠?
우리 경덕 교우, 참 착하죠?
진도 촌에서 올라와서는(^^) 열심히 하는 것 같습니다.
교단품 8장의 말씀은 덕타원 정양선님에 대한 이야기죠?
대종사님께서 대각을 이루시고 방언공사를 하셔서 법인기도를 하시고 변산으로 가셔서 법을 짜시고, 영산에 가셔서 법을 펴시죠.
그러면서 부산에서 서울로 내왕하시면서 인연을 구합하시고, 여러 가지 익산 총부를 건설하시게 됩니다.
그 때 당시에 원기 15년에 정일지라는 분을 만납니다.
그 분은 대종사님 보다 한 살 아래인데요, 정일지라는 분이 사업을 하시다가 몸이 안좋아서 건강도 회복할 겸 천하를 주유하고 계시는데 ‘대종사님이 생불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법회를 보러 가셨습니다.
법회를 딱 한 번 보고 출가를 결정하십니다.
그렇게 하고 농업부에서 일생을 열심히 일하시고 당신 자녀가 2남 3녀인데 4명을 출가시킵니다.
그 중 제일 첫째인 큰 따님이 정나선, 우리 선진님이죠. 둘째 따님이 정양선 장남이 준산 정광훈 셋째 따님이 정양진.
전부 우리 선진님입니다.
당신 내외도 다 법가항마위 올라가셨고, 당신 자녀를 출가 시키신거죠.
그래서 대종사님이 칭찬을 많이 하셨습니다.
법문에 선외록에 나오는데요, 도산 이동안 선생님 집안이 출가를 많이 합니다. 60여명이 출가합니다.
그 다음에 남원에 박씨들이 60여명이 출가합니다.
그리고 정나선, 정양선, 정광훈, 정양진 이 자녀가 아버지 뒤를 이어 전부 출가를 합니다.
그 중 둘째가 덕타원 정양선 선진님이신데 이 분은 14살 때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문출신을 생각하고 제사공장에 다니시고, 16살 때 고무공장에 가서 일을 하십니다.
그때 당시에는 총부 유일학림에 들어가려면 돈을 내고 들어갑니다.
1,2년 아니면 3년 동안 총무나 각 기관의 공장에 가서 돈을 모아서 유일학림에 들어갑니다.
그래서 14살 때 2년을 근무하고, 전무출신 서원을 19세에 하고 고무공장에 가서 주경야독으로 공부를 하십니다.
갔다 와서 공부를 하시는데 근무처가 어디냐, 총부 식당입니다.
2년간 하십니다. 그 때 총부 식당에 얼마나 먹을 것이 있으며, 지금 여러분들보다 나이가 더 젊으셨고, 여자셨고 그렇게 2년간 일을 하시는데 그 때 힘들어서 살이 쭉쭉 빠지십니다.
교단품 8장에 나오죠,
식당 고역에 골몰하여 얼굴이 빠져감을 보시고,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일이 고되어 얼굴이 빠짐이로다. 너희들이 이 공부 이사업을 하기 위하여 혹은 공장 혹은 식당 혹은 산업부(産業部)등에서 모든 괴로움을 참아 가며 힘에 과한 일을 하는 것은 비하건대 모든 쇠를 풀무 화로에 집어넣고 달구고 또 달구며 또 때려서 잡철은 다 떨어 버리고 좋은 쇠를 만들어 세상에 필요한 기구를 제조함과 같나니, 너희들이 그러한 괴로운 경계 속에서 진리를 탐구하며 삼대력을 얻어 나가야 법부의 잡철이 떨어지고 정금(精金)같은 불보살을 이룰 것이라, 그러므로 저 풀무 화로가 아니면 능히 좋은 쇠를 이뤄내지 못할 것이요 모든 괴로운 경계의 단련이 아니면 능히 뛰어난 인격을 이루지 못하리니, 너희는 이 뜻을 알아서 항상 안심과 즐거움을 생활해 가라」하는 법문을 받들게 됩니다.
지금 여기 앉아 계시는 분 중에 덕타원님 보다 힘들게 일하시는 분은 한 명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나이도 더 어린 사람이 더 고생하고, 더 힘들게 일한 상황이죠. 덕타원님은 대봉도의 법훈을 받게 되시죠.
출가를 하셔서 총부 식당에 2년 근무하시고 또 서울 교당 공양원으로 3년을 근무하시게 됩니다.
그것이 여기서 힘을 쌓으시고 호곡쪽에 가셔서 교화를 하시는데 아주 교화를 잘하십니다.
출장소를 나갔다가 나중에 지부로 즉 교당으로 승격하게 만드시고, 아주 재미도 있으시고 활달하신 분이다.
법문에 보시면 대종사님이 공부법을 말씀해 주셨는데,
여러분들 처음에 이곳에 오면 단장님이 대접해 주고 먹을 것도 사주죠.
그런데 대종사님은 공부는 시켜주지만 오자마자 매몰차게 고생을 죽도록 시키십니다.
그 때 당시에 힘이 들어서 못 버틴 사람은 나가게 되죠.
그렇게 해서도 마음이 딴 데로 새면 보따리 싸서 나가라 이렇게 교육을 시키십니다.
우리는 혹시 나갈까봐 전전긍긍하죠. 단원이 안나오면 밥 사주고 난리죠.
훈타원 양도신 선진님도 일본으로 공부하러 간다.
그것도 교화를 위해서 간다고 하셨다가 혼나고 나가라고 하셔서 펑펑 울고 며칠간을 빌어도 허락을 안해주시죠.
계속 나가라. 그렇게 무자비하게 하신 대종사님을 믿고, 고생을 시킨 스승을 믿고 정녀로 일생을 사신 그런 분이시다.
자, 여기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많은 사람들이 환경 탓을 하죠. 환경이 힘들다, 어렵다, 바쁘다, 등등.
아까 법문에 나왔듯이 화로 즉 용광로에 뜨겁게 달구어야 잡철이 떨어져서 정금도 나오고 연금도 나오는 것처럼 우리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실제 경계 속에서 단련이 없고서는 소중한 것이 나오기가 어렵다.
저는 교무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아옵니다. 출가하여 동기들, 선배님들, 후배님들, 그리고 많은 교도들을 보아온 것이 십년 이상을 지켜보고 또 몇 년 이상을 바라보는지 모른다.
우리가 법위사정을 금년에 하는데 3년 단위로 하게 된다.
우리는 경계가 참 누구나 있죠.
어떤 사람은 별 신경 쓰이지 않는 경계가 어떤 사람에게는 큰 경계가 되고요
어떤 사람은 힘든 경계를 거뜬하게 개선장군처럼 극복하고, 자신의 성장을 스스로 만족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종사님께서는 법위등급을 통해서 어떻게 공부의 과정과 경계가 있어지는지 삼학공부를 통해서 극복하는지 제시해 주셨다.
아까 경계에 넘어지는 사람은 대개 보면 서원이 약하거나 신심이 약하거나 또는 취사력이 약하거나, 지혜가 약하거나, 고집이 있거나 하는 사람들은 경계에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아니면 욕심이 많은 사람도 그렇다. 욕심을 법에다, 큰 부처가 되겠다 하는 큰 곳에다 두지 못하고 개인적 이욕을 끝까지 놓지 못한 사람은 결국은 불보살의 세계로 올라가지 못하고 범부의 세계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늘 아까 독경을 갔다 왔습니다.
91살이신데, 우리 교도회장님 어머니이십니다.
오늘 가서 참 놀란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 분은 대산종사님과 아주 가까이 모시고, 옛날에 총부 꽃꽂이 강의도 하시고,
장학금을 지급해서 여러 교무님들을 키우셨던 분이다.
내생에는 전무출신을 꼭 하겠다 서원을 세우시고 수양을 열심히 하시고, 염불도 하셨다고 합니다.
가서 보았더니 이미 뇌사가 되신 것 같아서 잘 돌아가시라고 천도 법문을 해드리고 왔는데
호흡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뇌사 상태 정도가 되면 호흡이 거의 흉식 호흡이다.
그런데 이 분은 91살 이신데도 단전으로 호흡을 하시는 것이다. 수행을 많이 하셔서 그랬다.
대산종사님께서도 열반하실 때 단전호흡을 한번 크게 들이 마시고 열반하셨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평상시에 수행적공하지 않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분은 수행을 많이 하셨다. 확실한 항마위가 되셨다. 내생에서도 원하시던 대로 전무출신하시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분 원불교를 만나서, 내 영혼의 맑음을 구하러 왔다. 인생의 방향을 잡을 때 좋은 지침이나 뭔가 괜찮은 것이 있겠지 하고 오시는 분이 계시는 반면, 어떤 사람은 정말 특신이 되어서 공부나 사업이나 신앙이나 생각이 다른 어떤 세상의 가치, 현실의 가치보다 진리의 가치관을 확실히 잡고 가는 사람도 있다.
아까 기도문에도 있듯이 특신급에 그 사람이 여우와 같은 사람이 될지 중생이 될지, 불보살이 될지 그 때 결정됩니다.
입교한 지 3년~6년 사이에 본인이 작은 욕심을 놓지 못하고, 서원을 세우지 못하고, 끝까지 나는 내 것을 챙겨먹고, 적당히 원불교를 다니겠다라고 생각한 사람은 결국 범부의 세계에서 머물다가 내생도 기약하지 못하게 된다.
이 사람의 죽음은 해탈보다는 집착과 어둠으로, 전도로 가게 된다. 거의 육도를 끌려서 빨려가듯이, 어느 생령으로 빨려갈지 어떻게 집착으로 끌려갈지 모르는 상황이 된다.
원불교를 관념으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실질적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냉정한 이야기이지만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죠.
여기 앉아있는 분 중에 항마위 이상으로 올라갈 사람이 몇 명일까. 10년 후에 여기 앉아 있을 사람이 몇 명일까.
제가 그런 이야기를 드렸죠.
몇 년 전에 지금은 안보이던 몇 사람도 그 말을 할 때 웃고 있었거든요.
‘걱정마세요 교무님’ 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없습니다.
왜 그러한가? 이 법이나 진리, 교법, 스승에 믿음이 확실하지 않고, 내 가치관 내 욕심에 근간한 또는 인과와 영생에 바탕 하지 않은 가치관을 세울 때 그 사람의 삶은 한 경계만 와도 무참히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인과와 영생에 또는 신심이나 서원이 딱 박힌 사람은 오히려 경계 속에서 쑥쑥 커나간다.
경계가 무엇이 되는가 하는 것은 내안의 신심과 서원에 있지 결코 외부 경계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작은 것 하나에 신이 흔들리고, 작은 경계 하나에 나갈까 말까 해서는 멀었죠.
우리 경덕 교우가 바쁠 때에는 열심히 챙겨서 교당 왔는데 다 끝나고 여유 있게 텔레비전보다 보니깐 굳이 꼭 가야하나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고 하잖아요?
2년간 무결석을 한 사람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하니 무결석 안한 사람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겠네요?
공은교우, 죽어도 오는 것인가? 아니면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안오는 것이다.
남자친구가 “넌 내가 좋냐, 교무님 법회가 좋냐”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남자친구가 나를 놓고 법회를 간다고 헤어지자고 하면 그 정도 사람이면 안만나도 된다.
생각해 보세요.
내가 악의 구렁텅이로 때론 술 먹고, 계율을 어기고, 양심을 어기고 딴짓거리 하러 간다면 말려야겠죠.
하지만 자신이 가야할 신앙의 길을 막는다. 그 정도면 나를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 정도 지혜라면 차라리 헤어져버려라. 아니면 끌고 와서 그 생각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까 경덕교우가 이야기한 것에 나도 공감을 하였다.
묘하다. 정말 바쁠 때는 일기도 쓰고 헌배도 한다.
그런데 진짜 한가하면요, 교전 보는 것도 헌배를 놓치는 경우도 의외로 많습니다.
중생들은 어쩌냐면요, 막 바쁠때면 제발 한가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한가하면 뭐하죠? 여유 있게 헌배도 하고, 여유 있게 운동도 하고, 독서도 하고, 교당 일도 도와줄 거 같죠?
막상 한가해 보세요. 언제 그랬냐는듯이 무슨 경계가 들어가 있어?
그 때는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경계가 기다리고 있다.
제가 이등병 때, 묘하게 본부 중대인데 수색 소대였습니다.
이등병 때는 날마다 맞았다. 안맞으면 자다가도 일어나 맞았어요.
그런데 제가 날마다 전서를 봤어요.
관물대에 서서 교전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그것을 못하게 하는 사람이 있었다. 주로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저는 악착 같이 봤습니다.
저는 다섯 달을 부대 내에 살지 못하고 야전에서 살았었다.
그런데 이 교전을 군장에 넣어가지고 와서 하루도 안 빼놓고 보았다.
그런데 제가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니까 오히려 장기를 두고, 바둑을 두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가 교전을 하루도 안 빼놓고 보았는데 오히려 이등병 때보다 시간은 몇 배가 더 많은데 교전은 더 적게 보았다.
그 때 제가 깨우쳤죠. 유심조구나, 일체가 마음에 있구나, 시간에 있는게 아니구나.
내 마음이 오히려 이등병 때 날마다 맞으니까 이 경전을 보면서 마음을 다래고, 힘을 얻은거예요.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니까 텔레비전을 보고, 기타를 배웠던 것이다.
오히려 안보더라, 아하 그렇구나.
여러분들 여기 앉아계신 분들 중에서 그렇게 생각하신 분들 있을 것이다.
‘교무님, 저 법회 오는 거 정말 힘들어요. 시험 공부도 해야 하고, 나 직장생활 너무 힘들어요. 경제적으로 안정되지도 않았어요. 나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교당 오는 것 쉽지 않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정말 대단하다.
그러나 정말로 나의 현실적 경계가 편안해지고 풀려나가면 과연 그 마음이 헌배할 수 있고, 법회도 안늦고, 유무념할 수 있겠는가.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그것하고는 상관이 없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여러분들이 앉아있는 여기에서 법회 빠지는 사람은 환경이 바뀌어도 빠집니다. 그렇지 않을 사람 10%도 안됩니다.
지금 나는 힘들어서 좌선 못하겠다. 빠지는 사람 있죠. 그 사람 일생동안 좌선 못합니다.
아까 91세 돼서 단전호흡. 안됩니다.
지금 이 젊은 시절에 바쁘다고 또는 힘들다고 수양시간 안 갖는 사람 항마위 기대 하지 마십시오. 절대 못 올라갑니다.
견성은 수행하지 않고 할 수 없고 그런 발심이 되지 않고, 특신이 되지 않고서는 견성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안암교당이 숫자가 많은 교당이 되는 걸 거꾸로 원하지 않고 있습니다.
숫자 많은 교당이 실없는 사람이 많고, 명대실속후무가관(名大實小後無可觀)이라고 이름만 크고, 뒤에 볼 것이 없으며 껍데기 인생은 본인도 그렇지만 교당도 껍데기 교당이면 안되죠. 실속이 있어야죠.
정말로 제가 말한 것을 다 실행한 사람이 몇 명 있겠는가.
아침에 선도 하고, 헌배, 일기, 법회 다 나오고. 그렇지만 제가 다 알거든요.
정말로 오고 싶은데 못 오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내 가치관이 다른 것에 앞서 있는지,
내 안에 마음이 정말로 진정으로 내가 바빠서 그런 것인지 핑계인지.
저는 기독교인들 보면서 존경스러울 때가 많았습니다. 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자기 직업, 상관 없습니다.
저도 아침에 사가에 갔다가 5시 조금 넘어서 나옵니다. 이 근처에 교회에 가는 사람들과 시간이 같습니다.
그렌저를 비롯해서 여러 차들 올라갑니다. 성경 끼고 걸어서, 택시타고 올라갑니다.
그리고 전 내 교당에 들어옵니다. 아, 비참합니다.
교당 가까이 사는데도 진짜 일어날 수 있는데 그 시간에 드렁드렁 자고.
정말로 온 지 얼마 안되었거나, 몸이 안좋거나, 아직 늦게 가서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따로 시간을 갖는 사람이 아니고서는
그것이 아니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늦고, 가치관이 덜해서 늦는다면 언젠가는 그 사람이 떨어지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원불교는 쉬운 것 같으면서 어렵고,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쉽습니다.
여러분 그것을 잘 아셔야 한다. 이 법이 그냥 법 아닙니다.
법위등급 설명을 들으시면요, 미치고 팔짝 뛰고, 통곡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잘 안하시죠. 왜, 모르기 때문에.
이 세상의 종교 문화 역사에서 우리 법위등급 같이 공부의 길을 밝혀 놓은 법이 없어요.
대산종사님께서 전무후무한 법이라고 하셨다.
이렇게 좋은 법 만나서 좋은지도 모르고 내 생각 주견에 묶여서 자기 나름대로 판단해 버리고.
그렇게 하면은 마치 봉사가 문고리 잡았다가 놓쳐버리고, 거북이가 바다에서 판자를 하나 만났다가 놓쳐버린 것이다.
여러분들도 처음처럼 여기에 뭐하러 왔는가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핑계를 잘 대는 것 같다.
제가 어제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저께 저녁에 집에 가서 잤는데, 우리 정토회원이 텔레비전을 보고 있어요.
저는 집에 가자마자 씻고, 다음 날 입을 옷을 다 정리해 놓고 바로 누워요.
그래도 10시 반, 11시입니다.
그런데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죠. 제가 텔레비전을 보면 10분 안에 잠듭니다.
그런데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았더니 무척 재미있는 것이다. ‘블랙북’이라는 영화였다.
독일군 치하에서의 비겁함, 도덕적 욕심의 세계, 거짓됨. 그러한 인간의 심리를 리얼하게 그린 실화이다.
너무나 재밌는 것이다. 제가 영화 100개 보면 99 개는 자는데, 그것을 제가 끝까지 보았다 아닙니까.
그래서 보니 아침에 걱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4시 50분에 시계를 맞춰 놓고 잤는데, 눈을 떴는데 5시 30분인 것이다.
5시 30분에 기도 시작인데.1분에 준비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원교무님이, 내가 부 교무 같으면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을텐데 시작해 버렸다.
입정하는 중간에 쥐 같이 앉아 들어가는 나의 모습이 비참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나고 대중을 바라보는데 저는 늘 면도를 하고 기도합니다. 3-40분 전에 일어 납니다.
그런데 오늘은 면도를 못했잖아요. 인사하고 고개 숙이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할려고 블랙북을 보았는가, 결혼을 안 했으면 집에 가서 안 보았을 텐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제가 전농교당에서 한번 늦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가 시계를 만져버린 것이다.
그때도 기도 할 때네요. 그 때 운타원님이 빠져서 그렇다고, 나는 시계를 5개를 맞춰놓는다고 하셨다.
저는 그 말 듣고 아무 불만이 없었습니다.
맞다, 마음이 있으면 일어나는 것이다.
내가 5시 반에 일어났어도 사실은 4시간 반을 못잔 것이다. 그 때가 1시가 다 되었으니까.
4시간 반을 자도 눈 떴죠.
여러분이라면 어떠셨겠는가. 여러분이 블랙북 보고 잤다면?
저는 하루 종일 마음이 참회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래, 내 마음 가운데에 풀어진 마음이 있었다. 영화를 본 것도 풀어진 마음이다.
내일 기도가 있다면 안 보아야 맞지 않겠는가.
그리고 설사 봤다 해도 풀어진 마음이 아닌가.
우리가 살아가면서 풀어진 마음은 주위에 은혜도 안되고, 본인 스스로가 밉게 된다.
한 때 아무리 나보다 신심 있는 사람이 있으면 나와 봐라.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도 태엽 풀리듯이 풀린다.
그런데 풀린 줄 모르고 풀립니다.
그 증거가 많이 나옵니다.
우리 혜향 교우가 좌선 나오다가 기도로 전향을 하더라고요, 그러다 집에서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집에서도 스스로 안하나봐 그러다 훈련 나고, 다시 마음 먹을 게요 하더니 이후 교당에 좌선시간에 나오더라.
그러다가 요즘 또 풀어졌다.
저는 혜향 교우 모습이 아름답다.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다. 어느새 풀리고 녹아버린다.
아까 말씀하셨듯이 챙기고 챙겨서 챙기지 아니하여도 되어 버릴 정도까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때 챙길 때 두 가지를 말씀 드리고 싶은 게
하나는 서원이 있어야 챙겨진다.
서원과 신심이 없는 사람은 챙기고 싶은 마음이 잠깐 들었다 마는 것이지, 하면 좋겠다 하는 희망 사항이지 실제로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성리를 알면 길을 알고 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챙겨도 성리를 알고 챙기면 자학을 하지 않아요. 교만하지도 않습니다.
성리를 모르고 챙기면 챙기는 마음이 구속이 되요.
제가 지난 화요공부방에도 이야기 했죠. 챙기는 공부를 함에 있어서, 원불교의 챙기는 공부는 서원을 확실히 챙기는 것이지만 무념으로써 챙기는 것이다.
즉 성리를 알고 챙기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챙기지 못했을 때 스스로 엄청난 자박과 스스로 자신감이 없어지면서 스스로가 오히려 더 구속된다.
그래서 마음의 원리를 알고 챙기자.
원래는 챙기고 말 것도 없느냐. 그렇지만 우리가 경계따라 챙김이 없어지기도 하고, 챙길 수도 있는데 그 마음을 우리가 정말로 능이 챙기지 않아도 챙길 수 있도록 해보자.
마음의 원리를 알고 챙겨야지 챙김이 자학이나 비난으로 가지 않고 교만으로 빠지지 않고 얼마든지 지속적인 성장이랄까.
지속적인 자신의 사랑을 바탕으로 주위사람들을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함께하면서 나 역시 계속 해나가며 서원을 다지는 계기가 되고 또 그 속에서 진정한 참회가 이참, 사참이 같이 되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첫댓글 91세 뇌사상태에서 단전호흡...월요일 청년들이 새벽에 말없이 일어서는걸 무슨 일이냐 묻지 못했는데...회장님 어머님이시라고...수행적공 장하시고, 항마위시라고...천도재 참석해야겠네요...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