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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세간 (世間)
세간은 ‘세상’이란 말이다. ‘세(世)’란 한자는 30년을 의미한다. 한 세대 즉 아이가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또 아이를 낳으면 그 다음 세대로 넘어 가게 된다. 자기의 부모와도 그런 식이었기 때문에 3대가 90년
거의 1세기이다. 우리의 대에 잘되면 조상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잘되지 못하면 나 대신에 자손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도에서 모카(loka)라고 한 것을 중국에서 ‘세간’이라고 번역했다.
로카는 개방된 공간을 뜻한다. 비슷한 말에 바수(vasu)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세(世)’나 ‘천(天)’으로도 번역되며 천공(天空) 즉 하늘을 뜻한다.
천친(天親,世親)의 천(天)이다. 世에는 격별(隔別), 천류(遷流)등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격별’은 널리 세간이라고 불리는 것에도 인간(人間,衆生)이니 국토(國土,世界)니 하는 구별이 있는
것이고 ‘천류’는 세간이 개방적이니 만큼 상주(常住)가 아닌 즉 무상(無常)인 것이다.
불교는 출세간(出世間)을 목적으로 한다. 무상한 세간에서 벗어나 상주하는 진실계에 다시 태어난다.
아니 그것을 진실한 세계라고 고정적으로 생각할 때에는 곧 우리가 부자유스럽게 되므로
세계도 세간의 형상이고 무세계(無世界)가 이상적(理想的)이다. 그것을 열반(涅槃)이라고 하니까
열반은 허무(虛無)가 아니다. ‘생사(生死)가 곧 열반’이란 말이 있듯이 생사의 이 세간에 다시 돌아오는
의미가 있어야만 참된 불교진리이다.
출세간을 내용상으로 충족시키는 것을 제일의(第一義,파라마르타. 勝義)라 한다.
이에 대해 세간은 ‘속(俗)’이라 한다. 세속과 제일의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둘을 언제나 둘이라고만 고집하는 것을 ‘분별’이라고 한다.
분별은 세간(世間)의 지식이다. 앞에 말한 격별의 경우에 세간의 생활에서는 그것이 불가결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세간(世間)의 생활은 삐걱거리는 것이다.
분별이라고 하는 세간(世間)속에 있으면서도 무분별의 불지(佛智)로 살게 되면 이상하게 세간(世間)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된다. 괴로움 자체는 없어지지 않지만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여기는 일만은
없어지게 되고 오히려 괴로움의 현실과 마주설 수 있는 용기가 그때 생겨나게 된다.
271. 세계(대천), 삼계 (三千大天世界, 三界) ☀불교에서 나온 말
☀ 세계는 범어 ‘lokadhatu’ 의 번역으로 본래 부서질 장소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시간적으로 나고 멸하고 변화함이 있고 공간적으로는 방위 등의 한정된 장소를 세계(世界)라 한다.
☀ 삼천대천세계 (三千大天世界)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말한다. 고대 인도인의 우주관이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그 주위에 네 개의 대주(大洲)가 있고, 그 둘레에 구산(九山)과 팔해(八海)가 있으니
이것이 우리들이 사는 세계로 하나의 소세계(小世界)라 한다. 위로는 색계의 초선천에서부터 아래로는
지하의 큰 풍륜(風輪)까지 이르는 범위를 말한다.
이 세계 가운데는 해ㆍ달ㆍ수미산ㆍ네 개의 하늘ㆍ사천왕ㆍ삼십삼천ㆍ야마천ㆍ도솔천ㆍ
타화자재천 등을 포함한다. 이 한 세계를 천 개 모은 것을 중천(中千)세계, 중천세계를 다시 천 개
합한 것을 대천(大千)세계라 한다. 이 대천세계 천개를 3회 합한 것이며, 소ㆍ중ㆍ대의 3종의
천(千) 세계가 되므로 삼천대천세계라 한다.
☀ 삼계 (三界) 범어 trayo-dhatavah. 삼유(三有)와 같은 뜻. 주생이 생사에 유전하는 미혹의 세계.
곧 유정의 경계를 셋으로 나눈 것. 즉 욕계(欲界)ㆍ색계(色界)ㆍ무색계(無色界)의 셋으로 분류한 것이다. 이것은 셋으로 분류한 미혹의 과보세계이니, 유정들은 이러한 삼계를 한계로 하여 무한한 생사의
윤회를 계속하는 것이다.
① 욕계(欲界)의 욕(欲)은 탐욕이니, 특히 식욕(食慾)ㆍ음욕(淫慾)ㆍ수면욕 (睡眠慾)이 성취한 세계.
② 색계(色界)는 욕계와 같은 탐욕은 없으나 미묘한 형체가 있는 세계.
③ 무색계는 색계와 같은 미묘한 몸도 없고 순수한 정신적인 존재의 세계. 이 삼계를 육도(六道), 이십오유(二十五有)로 나누기도 한다.
272. 수계의식 (受戒儀式)
수계의식(受戒儀式)은 불자가 계를 받아 지켜 나감으로서 참다운 불자가 되겠다고 서원하는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재가불자의 수계(受戒)는 삼귀의와 재가오계(在家五戒), 보살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수계(受戒)를 받는 의식가운데 연비(燃臂)는 법을 위해 육신의 욕망을 사른다는 의미로
왼팔에 뜸을 뜨는 의식이다. 최근에는 향으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수계의식은 보통 거향찬(擧香讚), 삼귀의, 반야심경, 청성(請聖), 청사(請師), 개도(開導), 참회,
연비, 수계, 선계상(宣戒相) 발원, 사홍서원, 회향 순으로 진행된다.
거향찬(擧香讚)은 삼보를 찬탄하는 의식이며 인례자의 선창에 따라 한 소절씩 따라 한다.
거향찬을 한 후에는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고 삼보를 청하는 청성과 수계법사를 청하는
청사를 한다. 이후 수계자들은 호궤 합장하여 자리에 앉고 계사가 오계의 의미와 계를 수지하는
의미를 설하는 개도를 진행한다.
개도(開導)가 끝나면 수계자들은 자신이 지은 허물을 삼보전에 모두 참회한 후 연비를 한다.
연비를 할 때 모든 대중들은 참회진언(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을 외운다.
연비를 한 후에는 수계(受戒) 약속인 선계상(宣戒相)을 한다. 이때 계사는 오계의 한 가지 한 가지를
조목조목 설명하고 수계자에게 지킬 것인가를 묻고 수계자는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계를 받기 위해서는 3사(師)와 7증(證)의 덕이 높은 스님을 모시는데 삼사란 계를 주는 계화상(戒和尙)과 계단에서 계를 받는 이가 자격이 있는가를 심사하는 갈마사(羯磨師) 그리고 수계 받는 자에게 여러 가지 의식을 가르치는 교수사(敎授師)를 말한다.
그리고 계(戒) 받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덕이 높은 7명의 스님을 모시는데 이를 7증사라고 한다.
273. 수륙재 (水陸齋)
수륙재란 물이나 육지에 있는 외로운 귀신이나 배고파 굶주리는 아귀에게 공양하는 법회다.
양나라 무제의 꿈에 어떤 스님이 나타나 사생육도(四生六道)중생의 고통을 덜기 위한 수륙재를 베풀어
그들을 제도하는 것이 공덕 중 으뜸이 된다고 하여 지선선사에게 부탁하여 행한 것이 시초이다.
우리나라는 고려 광종 22년에 수원 갈양사에서 혜거국사가 처음 시행하고, 조선의 태조는 진관사를
나라의 수륙재를 여는 사찰로 지정하고 이외사찰에서도 고려 왕실을 위한 수륙재를 베풀었다.
☀ 수륙재 <사전>
이 의식은 중국 양나라 무제(武帝)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불교에 대한 신심이 두터웠던 무제는 유주무주(有住無住:떠도는 넋)의 고혼들을 널리 구제함이 제일가는 공덕이라 생각하고, 승려들과 상의한 후
스스로 의식문(儀式文)을 만들었다. 그 의식문에 따라 505년에 금산사(金山寺)에서 재를 베푼 것이 그
시초이다.
그 뒤 당나라에서는 그 의식이 유명계(幽冥界)를 이익되게 한다고 하여 크게 융성하였다. 송나라 때에는 희령 연간(熙寧年間)에 동천(東川)이 『수륙문(水陸文)』3권을 다시 지어 이를 널리 보급함으로써 수륙재가 크게 성행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 수륙재가 행하여진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광종 때에 때때로 성대히 열린 바 있었는데
970년(광종 21)에 갈양사(葛陽寺)에서 개설된 수륙도량이 그 최초의 예이다.
선종 때에는 태사국사(太史局事)로 있었던 최사겸(崔士謙)이 수륙재의 의식절차를 적어놓은
「수륙의문(水陸儀文)」을 송나라에서 구해 온 것을 계기로 보제사(普濟寺)에 수륙당(水陸堂)을 새로
세움으로써 수륙재를 더욱 성대히 격식에 맞게 하였다.
또한, 일연(一然)의 제자 혼구(混丘)가「신편수륙의문(新編水陸儀文)」을 찬술함으로써 이 의식은 더욱
널리 성하게 되었다. 이 의식은 충목왕 때까지 계속 열렸음을 『고려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비록 억불정책에 의하여 불교의식이 유교의식으로 많이 바뀌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태조는 진관사(津寬寺)를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하여 크게 재의를 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1395년(태조 4)에는 견암사(見巖寺)와 석왕사(釋王寺)
관음굴(觀音窟) 등에서 고려 왕씨의 영혼을 달래는 수륙재를 베풀었다. 그 이후 배불정책에 따른
불교의식의 유교화정책은 수륙재를 국행으로 거행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논란을 벌이게 되나 오랜
전통으로 계속되어 오던 수륙재를 쉽게 폐지시키지는 못하였다.
억불(抑佛:불교를 억압함)로 이름높 은 태종도 국행수륙재 폐지의 상소문을 받았으나 대대로 거행하여 온 유풍을 쉽게 폐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국행을 고집하였다. 처음에는 매년 2월 15일에 거행되었으나 1415년(태종 15)부터는 1월 15일로 변경하여 실시하였다. 이 수륙재는 대체로 1515년(중종 10)경까지
크게 변동됨이 없이 계속되었다.
왕실이 직접 그 시주가 되어 때때로 수륙재를 열게 됨에 따라 유생들의 시비와 비난을 받았으나,
1606년(선조 39) 6월에 창의문 밖에서 있었던 수륙재나 1433년(세종 15)에 효령대군이 시주가 된
한강에서의 수륙재 때에는 양반ㆍ평민 등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길을 메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그러나 중종 때에 이르러서 유생들의 강력한 반대에 의해 수륙재가 국행으로 거행됨이 금지되었고,
민간을 통해서만 전승되어 오늘날까지 전승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전래되고 있는 수륙재의 의문(儀文)은『범음집(梵音集)』속에 포함된「수륙재의문」ㆍ
『천지명양수륙재의문산보집(天地冥陽水陸齋儀文刪補集)』,백파(白坡)의『작법귀감(作法龜鑑)』에
수록된「수륙재의문」ㆍ『석문의범(釋門儀範)』 중「수륙재의문」 등이 있다.
이 가운데 『석문의범』에서의 의식절차는 앞의 세 가지와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그 취지는
대체로 같다. 이 『석문의범』에서는「수륙무차평등재의(水陸無遮平等齋儀)」라 하였는데,
그 뜻은 모든 영혼을 평등하게 천도받게 한다는 뜻이다.
그 절차를 보면,
① 먼저 재를 여는 취지를 밝히고, ② 영혼이 불보살로부터 설법을 들을 수 있도록 보리심(菩提心)을
일으키게 하며, ③ 명부사자를 맞이하기 위한 분향(焚香) 의식을 한다. ④ 다음 명부사자를 초청하여
공양하고 축원을 봉송한다. 이 의식은 문 밖에서 행한다. ⑤ 다시 재의도량이 청정도량이 되게 오방신
(五方神)에게 공양하며, ⑥ 명부사자를 대접해 보내고 의식도량을 청정하게 한 다음 불법승 삼보(三寶)에게 공양드린다. ⑦ 다음 호법제선신중(護法諸善神衆)인 천(天)·팔부신장(八部神將)·용왕 등을 청하며
공양을 드린 후 비로소 불교의 정법신앙인 삼보를 의식도량에 청하여 공양하고 불단(佛壇)에 모시게
된다. ⑧ 이 때 천도의 대상인 영혼을 청하게 되는데, 우선 불보살 앞에 나아가기 전에 조욕의식(藻浴儀式)을 행한다. 먼저 몸을 청결히 하고 다시 법의 뜻을 지닌 새 옷을 갈아입는 의식을 행한 다음 비로소
불보살께 고혼의 공양을 올림으로써 불보살의 가호를 받아 구제받게 된다. 이렇게 해서 구제받은 주무주의 고혼은 불법에 귀의하여 다보여래(多寶如來) 등 5여래의 성호를 선양하게 된다는 것이다.
⑨ 이후 고혼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의식이 펼쳐지는데, 이 때의 음식은 모두가 법식(法食)으로 변하게
된다. ⑩ 마지막으로 참회와 사홍서원(四弘誓願)이 펼쳐지는데, 이 때 고혼은 올바른 불제자가 되어
비로소 구제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으로 진행절차는 모두 끝난다. 이 수륙재의 진행방법을 살펴보면, 매우 예술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즉, 잘 다듬어지고 시적인 내용을 지닌 의식문뿐만 아니라, 그 의식문은 범패라고 하는 불교음악으로
창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반주악기로서 태징·목탁·요령·북 등이 따르게 되고, 의식의 중요한
부분에 이르면 불교의 상징적인 표현으로서 의식무용이 곁들이게 된다.
설단(設壇)의 양식을 살펴보면, 이 수륙의식이 불보살 이외에 다신교적인 신앙의 대상을 의식도량에
끌어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러 신앙의 대상을 의식도량에 끌어들여서 궁극적으로는 불보살의 신앙으로 통섭되고 만다는 밀교적인 지혜가 작용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그리고 수륙재의 수륙은 여러 신선이 흐르는 물에서 음식을 취하고, 귀신이 깨끗한 땅에서 음식을
취한다는 뜻에서 따온 말이므로 청정한 사찰 또는 높은 산봉우리에서 행하여도 무방하다.
그러나 오늘날 수륙재를 모두 강변이나 해변가에서 해야만 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음은 수륙의
‘수(水)’자만의 뜻을 취하여 방생재(放生齋:동물을 살려주는 의식)와 혼동하고 있는 데서 온 오류이다.
274.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깨끗하고 깨끗하고 크게 깨끗하게 하여 아주 깨끗함을, 끝내는 원만히 성취케 하소서.)
① 수리(修理, sri): 좋다(吉祥), 깨끗하다, 깨끗이 한다(淨)는 뜻.
② 마하(摩訶, mah): 마하(摩訶), 마혜(摩醯), 막하(莫訶)라고 한다. 큰, 위 대한이라는 뜻이며 대(大),
다(多), 승(勝)의 3가지 뜻 외에 여러 가지 뜻이 있다.
③ 수수리(修修理, susri): 수리(좋다)는 뜻에 묘하게라는 뜻의 형용사 su 가 붙어 묘하게 좋다(妙吉祥),
묘하게 깨끗하다는 뜻이다.
④ 사바하(沙婆訶, svaha): 간접사로 원래는 신들에게 물건 등을 헌납할 때 읊었다. 진언(眞言) 끝에
붙여서 성취를 구하는 말로 쓰며 구경(究 竟), 원만(원만), 성취의 뜻을 가지고 있으면서 결국
성취되어 지다, 라 는 의미를 지닌 채 일반적으로는 영광이 있기를 이란 뜻으로 이해되어 진다.
☀ <다음은 무비스님의 천수경 강의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가 어째서 우리가 입으로 지은 온갖 업들을 청정하게 깨끗하게
청소하는 길이 되는가, 이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한번쯤 해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입으로 짓는 업이 어디 한 가지입니까. 악담하지요, 그 다음에 거짓말하지요, 그 다음에 두 가지 말, 여
기저기서 이간 부치는 두 가지 말하지요. 또는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비단결 같은 말을 하지요.
이런 등등의 방법을 통해서 온갖 업을 우리가 짓습니다. (妄語, 綺語, 兩舌, 惡口)
그런 입으로 짓는 업들을 모두 청정하게 하는 길이 바로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라고
하는 것입니다. 뜻으로는 ‘길상(吉祥)’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수리라고 하는 것이. 길상존, 인칭으로.
‘길상존이시여, 길상존이시여.’ ‘ 마하’는 우리가 알듯이 ‘큰 길상존이시여,’
그 다음에 ‘수수리’는 ‘지극한 길상존이시여.’ 그리고 ‘사바하’ 는 진언에 흔히 붙습니다.
‘성취 있으소서, 또 앞에서 말한 내용이 성취되어지이다’
여기서 길상이라고 하는 말은 입으로서의 길상입니다. 그래서 입의 길상은 뭔고 하니 축원과 찬탄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기서 수리수리 라고 하는 것은 남을 축원하고 찬탄하는 그런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막 결혼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행복을 비는 입장에서 우리가 예를 든다면
‘행복하십시요, 행복하십시요. 크게 행복하십시요’ ‘지극히 행복하십시요’ ‘ 그 행복이 영원하십시요.
꼭 성취되시기를 빕니다.’
그렇게 해서 행복이라고 축원하는 말이든지, 또 누구를, (예로) 자녀들에게 ‘너는 훌륭하다,
너는 훌륭하다, 아주 훌륭해, 정말 훌륭해. 그리고 너의 이 훌륭한 점은 아마 영원할 거야.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훌륭하게 잘 할거야.’ 라고 이렇게 해주는 그러한 형식입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축원과 찬탄을 다섯 번을 반복해서 하는 그런 입장이 바로 구업을 맑히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 구업을 우리가 깨끗하게 하는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내가 지은 온갖 악담, 거짓말, 또 두 가지 말, 비단결 같은 말, 이런 업들을 녹이는 길은
바로 남을 향해서 축원해 주고 찬탄해주고 훌륭하다고 해주고 행복할 것이라고 해주고 아주 영광이라고 해주고 축복해주고 축하해주는 그런,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에 보탬이 되는, 말로서 빌어주는 그러한 길이 바로 우리가 입으로 지은 온갖 악업들을 깨끗이 소제하는 지름길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 ‘수리수리 마하수리’를 뜻을 이해하고 또 해석해 놓고 보니까 참으로 우리가 구업을 맑히는 길이 바로 이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속에 들어있구나 하는 뜻을 우리가 알게 되겠죠.
우리가 살아가면서 말의 중요성은 참으로 큽니다.
팔만대장경에서 제일 많이 읽히는 경, 또 한국 불교도가 제일 친숙하게 읽는 경전, 다시 말해서
팔만대장경 속에서 그 읽히는 비율로 봐서 천수경이 대표적인 경전이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도 있죠.
그런 대표적인 경전, 중요한 경전에서 그 첫마디가 말조심하라, 말 잘하라, 입 조심하라, 라고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한다고 할 때 참, 말이라는 것이 인간 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을 새삼
'정구업진언'이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아니 천수경을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되는 거죠.
275. 수미산, 수미단 (須彌山, 須彌壇)
☀ 수미산(須彌山)
수미산은 범명(梵名) Sumeru, 음역 수미로산(須彌盧山)ㆍ수미류산(須彌留山).
원래는 인도 신화 속의 산이다.
사주(四洲)세계의 중앙, 금륜(金輪) 위에 우뚝 솟은 높은 산, 둘레에 칠산(七山)과 팔해(八海)가 있고
또 그밖에 철위산이 둘려 있어 물속에 잠긴 것이 8만 4천 유순이며, 물위에 드러난 것이 8만4천 유순이며, 동은 황금, 남은 가려(珂黎), 서는 백은(白銀), 북은 유리(琉璃)로 이루어졌다.
이를 중심으로 하여 옆으로는 사대하(四大河)가 있고, 위로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을 비롯하여
이십팔천(二十八天)을 비롯하여 이십팔천의 점층(漸層)으로 이루어졌다.
꼭대기는 제석천, 중턱은 사왕천의 주처(住處)라 한다.
☀ 수미단(須彌壇)
부처님을 모신 불단을 수미단이라고 한다. 이 수미단 위에는 불상을 모시거나 때로는 불사리가 안치되고 예불과 의식에 필요한 법구인 향로, 촛대, 화병 등이 놓인다.
수미산을 상징하는 장방형의 수미단이 불단의 가장 전형적인 형태이기 때문이다.
수미단이 다른 어느 곳보다 장엄한 것은 부처님의 세계가 수미산 위에 있는 제석천의 세계와 다르지
않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불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 것은 부처님의 격을 최상의 위치로 높이기 위해 불교 우주간의 중심인
수미산을 부처님의 앉는 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미산을 불단으로 삼게 된 것이 석가모니 부처님이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궁에서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했다는 ‘위모설법(爲母說法)’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우리나라 현존 사찰의 불단 중 장식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는 영천 은해사 백흥암 극락전
수장식 문양들이 아름답고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그 내용도 풍부해서 신축 사찰의 불단 장식문양의 모델이 되기도 한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문양으로 가득 찬 수미단은 허공에 걸려 있는 닫집과 함께 ‘백흥암’ 극락전을 서방 극락정토의 세계로 장엄하는 데 모자람이 없다. ‘백흥암’ 수미단은 장방형을 기본으로 한 불단으로, 받침ㆍ신부(身部)ㆍ덮개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받침과 덮개 사이의 신부는 3단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정면은 15개면, 양 측면은 각 6개면 씩, 모두 합해 27개의 면으로 짜여 있다. 각 구획면마다 환상적인 색채와 기괴하고 신비로운 형상의 동물과 식물 문양이 가득 차 있는데, 일반적인 불단 장식과 달리 금니를 사용한 점, 연꽃보다 모란꽃 문양을 많이 활용한 점, 장식성이 강한 표현 등에서 궁정 취향이 엿보인다.
제작 기법을 보면, 얇은 판자에 문양을 투각하되 가장자리를 둥글게 처리하여 부조 효과를 내었다.
이렇게 완성된 투각판 뒤에 적황색을 칠한 얇은 판자를 덧대어 배경 구실을 하도록 했다.
색채는 기본적으로 적색ㆍ황색ㆍ녹색의 삼원색과 흑색ㆍ백색을 사용했으며, 용, 학 등의 동물은 특별히 금니(金泥)를 칠했다.
원색, 금니 등 화려한 색채 안료를 사용했음에도 전체적으로 무거운 느낌을 주는 것은 색의 채도와 명도가 낮고, 흑색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각 구획면의 문양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수미단을 정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측면에,
①연꽃 봉오리를 손에 든 가릉빈가 ②여의주를 든 거북 등의 인물상ㆍ익룡(翼龍) ③네 발 달란 물고기ㆍ게ㆍ사람 얼굴에 네 발 달린 물고기 ④인두귀갑(人頭龜甲)에 조족(鳥足)이 달린 동물ㆍ마갈어
⑤달리는 기린 ⑥두 마리의 물고기ㆍ자라 등이 시문되어 있다.
오른쪽 측면에는 밑에서부터,
①두 마리 물고기 ②여의주를 들고 있는 반인반어(半人半魚)형상의 동물 ③백호(白虎)형상의 동물ㆍ
여의주 ④인두어신(人頭魚身)형상의 동물 ⑤기러기 형상의 청조 ⑥기러기 형상의 황조 등이 조각되어
있다. 그리고 정면에는
①흰 코끼리 ②봉황 ③연잎 줄기를 잡고 있는 동자ㆍ황룡ㆍ개구리ㆍ여의주 ④말 형상의 동물ㆍ모란 꽃 ⑤용머리에 표범의 몸ㆍ용 발가락에 물고기 꼬리 형상ㆍ두 마리 공작ㆍ국화 ⑥연잎 줄기를 잡고 있는
두 명의 동자ㆍ여의주ㆍ물고기ㆍ황룡 ⑦두 마리 사자ㆍ모란 ⑧봉황ㆍ황금 연꽃 ⑨사슴뿔의 익마(翼馬) ⑩두 마리 꿩 ⑪두 마리 물고기ㆍ국화 등과 함께 다양한 식물문양이 시문되어 있다.
위에 열거한 내용을 다시 종류별로 분류 정리해 보면, 새 종류로는 학ㆍ기러기ㆍ꿩ㆍ공작ㆍ가릉빈가ㆍ
봉황 등이 있고, 동물로는 코끼리ㆍ사자, 수생동물로는 물고기ㆍ자라ㆍ개구리, 인물상으로 연꽃 동자,
그리고 식물로는 연꽃ㆍ모란ㆍ국화ㆍ매화ㆍ당초가 있다.
수미단에는 또 상상의 동물이라는 개념을 따로 설정하여 분류해야 할 정도로 신비롭고 기괴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 익룡ㆍ황룡ㆍ기린ㆍ백호ㆍ마갈어 등은 이미 그런 이름으로 불리고, 또한 일반인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는 동물이지만, 그 외의 것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기괴한 동물들이다.
그 형상은 반인반어(半人半魚)ㆍ인신귀갑(人身龜甲)ㆍ사족어(四足魚)ㆍ사조족인두어(四鳥足人頭魚)ㆍ조족인두귀갑상(鳥足人頭龜甲像)ㆍ인두어신상(人頭魚身像)ㆍ용두표신용족어미상(龍頭豹身龍足魚尾像)ㆍ마신녹각상(馬身鹿角像) 등인데,
모습이 기상천외하여 옛 사람들의 종교적 상상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下略- <사찰100美100選 下卷164쪽, 허균 글, 불교신문사>
276. 수보리존자 (須菩提尊者): 解空第一
사위성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난 수보리는 어려서부터 단정하고 총명하기야 그를 따를 자가 없었지만, 성질이 매우 험악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매도하고 불만을 표시하지 않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성격은 부모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의 큰 걱정거리가 되었고, 마침내 자기의 성질을 이기지 못한
수보리는 집을 뛰쳐나가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산신(山神)이 수보리를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수보리를 보자 성내는 마음, 질투하는 마음의 잘못을 깨우쳐 주셨고,
수보리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수행하여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었습니다.
그토록 성내고 시비하고 싸우기를 좋아하였던 수보리가 부처님의 설법 아래 대립과 투쟁이 모두
사라진 무쟁삼매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그 뒤 수보리 존자는 어떠한 일에도 동요됨 없이 묵묵한 가운데에서 중생을 교화하였고,
언제나 모든 법(法)의 공(空)함을 관찰하며 삼매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러한 존자의 태도는
부처님을 대함에 있어서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
어느 해 여름, 부처님께서는 어머니를 위해 도리천으로 올라가셔서 3일 동안 설법을 하고 염부리지
(閻浮里地)로 내려오신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모든 제자들과 신도들은 부처님을 맞이하고 예배드리기
위해 몰려갔습니다. 때마침 영축산에서 옷을 꿰매고 있던 수보리는 부처님께서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를 드리려다가 생각했습니다.
“여래는 무슨 모양을 하고 계신가? 여래의 참 모습을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眼耳鼻舌身意)이라 할까? 흙ㆍ물ㆍ불ㆍ바람(地水火風)이라 할까? 모든 것(일체제법:一切諸法)은 하나같이 비고 고요하며
(공적:空寂), 조작할 것도 없다(무조무작:無造無作), 모든 것이 텅비어 고요하다면 무엇이 ‘나’인가?
나는 오직 참된 법(진법:眞法)이라 하노라.” 그리고는 다시 앉아 옷을 꿰매었습니다.
한편 비구니 교단에서 신통이 가장 높았던 연화색(蓮華色) 비구니는 부처님께 가장 먼저 예비를
드리기 위해 전륜성왕의 모습으로 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국왕, 대신을 거느리고 부처님께
예배를 올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화색아, 네가 가장 먼저 나에게 예배를 올린 것이 아니다. 첫 번째 예배자는 수보리이니다.
수보리는 모든 것이 다 공(空)함을 관찰하여 언제나 여래를 예배하고 있다. 공을 알아서 해탈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불(禮佛)이니라.
이렇게 수보리 존자는 공(空)의 이치를 철두철미하게 깨달아서 참된 예불을 올리고 있는
해공제일의 제자입니다.
<금강경>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반야경(般若經)계통 경전에서 공의 이치나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논하는 분으로 언제나 수보리가 등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월간 법공양:조계종 원로위원 석주스님 글>
277. 수월선사 (水月禪師)
수월선사는 1855년 생으로 법호는 수월 혹은 음관(音觀) 외에 기록적인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선사의 성씨는 全, 田 혹은 金, 蔡, 崔 등 숱하게 많은 성씨들만 입으로 전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다.
수월선사는 젊은 시절을 머슴살이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른 살이 거의 다 되어 충남 천장사를
찾아가 태허(泰虛)스님으로부터 중이 되었다. 처음 맡은 소임은 땔나무를 해 오는 일이었다.
비록 수월이 땔나무를 해 오는 초심자였지만 기억력에 남다른 신통력이 있었다고 한다.
수월의 기억력에 감탄한 태허스님은 수월에게 <천수경>을 외우게 했고 이때부터 수월은 밤낮 가리지
않고 천수경을 외움으로써 천수삼매의 경지에 이르렀다. 삼매의 경지에 들게 되니 마음이 맑아졌고
따라서 아무 경전이나 그에게 물어도 막힘이 없었다고 한다.
선사의 도가 이렇게 높아짐에 따라 선사를 친견코자 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는데 조선총독까지
선사를 친견코자 했다. 그러나 수월선사는 세속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 결코 의미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자신을 친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피해 자리를 옮겨가며 정진하였다.
선사는 물욕이 없고 보시를 많이 한 스님으로도 알려져 있다. 백두산에 숨어서 정진할 때는
오가는 길손에게 짚신을 삼아 주었고 점심공양을 제공했으며 신자 중에 옷감이라도 들고 와서
공양하면 이를 찢어서 골고루 나누어주었다고 한다.
선사께서 1930년 입적하였는데 열반하던 날부터 일주일 동안 방광이 일었다고 한다.
278. 수인(手印)
사찰에서 부처님들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으나 그 구분법은 각기 다른 손 모양(模樣)을 잘 알면
쉽게 판단(判斷)이 된다.
그 부처님들의 손 모양을 수인(手印)이라고 합니다.
모든 부처님의 덕(德)을 나타내고 보살의 깨달음과 서원(誓願)을 열손가락으로 손 모양 또는
손동작 등 여러 모양(模樣)으로 만들어 나타낸 것을 표현한 것이다.
참고로 수인의 종류에는
● 석가모니불은 근본(根本) 5인(印)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선정인(禪定印), 전법륜인(轉法輪印),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
● 비로자나불(毘盧遮羅佛)은 지권인(智拳印),
● 아미타불(阿彌陀佛)은 구품인(九品印),
● 미륵불(彌勒佛)은 시무외인(施無畏印)과 여원인(與願印)등 매우 다양하다.
불상의 손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수인을 다른 말로는 인계(印契), 인상(印相), 밀인(密印), 계인(契印)이라고도 하며, 교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음으로 불상을 만들 때 함부로 형태를 바꾸거나 다른 부처님의 수인을 취해서도 안된다.
따라서 수인(手印)은 여러 종류의 불상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重要)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수인은 손의 형상으로서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계인은 지물을 들어 그 상징성을 표현한다.
수인과 계인은 불교 그 자체로 상징하기보다 불보살의 모습으로 근본서원(根本誓願)을 표현한 것입니다.
⑴ 석가모니불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근본 5인(印) 중 대표적인 수인으로 대부분의 사찰에서 볼 수 있다.
⑵ 미륵불 / 여원인(與願印)과 시무외인(施無畏印)
여원인(與願印,밑으로 향한 손)과 시무외인(위로 들어 펼친 손)은 동시에 좌우 손 모양을 취하며,
통상 미륵불의 손모양이다.
⑶ 아미타불 / 구품인 또는 구품정인(九品定印) 아미타불이 취하는 9가지 수인(手印).
극락에 왕생하는 중생들의 성품은 모두 다르다. 이에 따라 아미타불이 알맞은 설법을 위해 중생들을
상중하(上中下) 3등급으로 나눈 뒤 이들 3등급(等級)을 다시 3분(分)하여 모두 9등급(等級)으로
나눈 것을 ‘구품(九品)’ 이라 한다.
각 단계에 맞게 설법해야 모두 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구품을 아미타불의 수인(手印,무드라)에
적용한 것이 구품정인(九品定印)이다. 묘관찰정인(妙觀察定印) ․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이라고도 한다. 크게 상중하 3품(品)으로 나누어진다.
279. 승무 (僧舞)
승무는 스님이 추는 춤이라 하여 ‘승무’ 또는 ‘중춤’이라 불려왔다. 승무는 불가에서 의식 무용으로
행해지는 전통 무용과 이에 영향을 받은 일반 무용 즉 속인이 승복을 입고 추는 민속무용으로 나눌 수
있다. 학계에서는 전통불교의식의 무용을 의식무(儀式舞) 또는 작법무(作法舞)라 칭한다.
전통불교의식인 이 작법무의 기원은 석존께서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하실 때 하늘에서 4색의 꽃을
뿌리니 ‘카샤파 존자’가 이를 알아차리고 빙긋이 웃으며 춤을 추었는데, 후세에 다른 제자들이 이를
모방함으로써 승무가 생겨났다는 기록과
중국 위나라 조자건(曺子建)이 하루는 천태산에 올라갔는데 범천(梵天)에서 오묘한 음악소리가 나자
때마침 연못 속에서 놀던 고기무리가 이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므로 이 소리를 본받아 범패를 짓고
고기무리의 노는 모습을 기억하여 승무를 만들었다고 한다.
승무는 나비춤, 바라춤, 법고춤으로 나누어진다. 대개 작법무(作法舞)라 하면 나비춤을 말하고,
추는 사람의 수에 따라 혼자 추는 향나비춤, 둘이 엇도는 쌍나비춤,
다섯이 어울려 추는 오행나비춤이 있다.
바라춤은 ‘바라’라고 하는 서양 악기의 심벌즈같이 생긴 기구를 들고 춤을 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 바라춤은 악귀를 물리쳐서 도량을 깨끗이 하고 아울러 마음도 정화한다는 뜻으로 추어진다.
법고춤은 북(法鼓)을 두드리며 춤을 추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이 춤은 수행과 정진을 독려할 때나 아침,
저녁 예불시에 추게 된다. 큰 사찰의 법고(法鼓) 앞에서 이른 새벽이나 황혼이 질 저녁에, 미망(迷妄)에
잠긴 중생의 번뇌를 덜어주고자 북을 두드리는 것이 법고춤이다.
이러한 의식 춤은 오늘날에는 수륙재(水陸齋), 예수재(豫修齋), 방생법회, 기원법회 등에서 많이
행해지고 있어 그 전통을 잇고 있다.
280. 스님 예경
ㆍ스님은 삼보(三寶: 佛,法,僧) 가운데 승보이며 모든 이의 복전이 되므로 공경스러운 마음으로
귀의해야 한다.
ㆍ사찰이나 길에서 스님(낯선스님, 어린스님)을 만나면 공손한 자세로 합 장하고 인사드린다.
ㆍ스님의 이름이나 법명은 함부로 부르는 것이 아니며 되도록 직함을 호 칭하고 스님에 대하여
허물 등을 말하는 것을 절대 삼가야 한다.
ㆍ스님께 여쭐 것이 있으면 찾아뵙고 공손히 물어야 한다.
ㆍ스님의 방을 출입할 때는 노크하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다음, 답을 들 은 후 들어간다.
ㆍ스님의 수행생활에 필요한 음식, 의복, 의약 등을 공양한다.
ㆍ스님의 말씀이 끝나기 전에 말하지 아니하며, 스님의 자리에 장난삼아 앉거나 눕지 않고 옷과 모자를
입거나 써보아서는 안된다.
ㆍ스님 앞에서는 벽에 기대거나 탁자에 의지하지 않고 단정히 바로 앉아 야 한다.
ㆍ스님의 말씀을 엿듣지 않으며 앉아서 스님 지나는 것을 보면 일어나서 합장하여야 한다.
☀ 스님께 예배하지 않아도 좋을 때
ㆍ예불 드리실 때 ㆍ좌선하고 계실 때
ㆍ경을 설하실 때 ㆍ경행하고 계실 때
ㆍ공양 드실 때 ㆍ양치하고 계실 때
ㆍ누워 계실 때 ㆍ해우소 갔다 오실 때
ㆍ손에 불상이나 경전을 받들고 있을 때
ㆍ스님 앞에서 상좌나 제자들끼리 서로 절하면 결례가 된다.
ㆍ스님 앞에서는 신도와 신도끼리 서로 절하면 결례가 된다.
ㆍ큰스님 앞에서는 스님들이 먼저 인사드리고 신도나 불자들은 기다렸다 가 인사드려야 한다.
281. 승나, 승열 (僧那 僧涅)
승나는 홍서(弘誓;서원을 널리 사홍서원), 대서(大誓;크게 세우는 서원)라 하고
승열은 자서(自誓;스스로의 서원)라 한다. 다 같이 보살의 사홍서원을 이루고자 맹서하는 것을 말한다.
또 사홍서원은 갑옷에 비유하여 승나를, 갑옷 승열을 입는 것으로 번역하여 갑옷을 입고 4가지 서원을
꼭 이루도록 굳게 맹세하는 것에 비유한 말이다.
282. 승찬대사 (僧璨大師: 三祖 미상~606)
중국 선종(禪宗) 불교(佛敎)의 제3대 조사(祖師)로서 '삼조(三祖)'라고 불리며,
당(唐)의 8대 황제인 대종(代宗, 재위 762~779)에게 감지(鑑智)라는 시호(諡號)를 받아
'감지승찬(鑑智僧璨)'이라고도 불린다.
선(禪)의 요체를 146구(句) 584자(字)의 사언절구(四言絶句)로 풀이한 [신심명(信心銘)]을 남겼다
‘스승님 승보는 알겠습니다만 어떤 것이 불보이며 어떤 것이 법보입니까?’
‘마음이 바로 부처님이며 이 마음이 바로 법이니 법과 부처님은 둘이 아니다. 승보 또한 그와 같다’
중국 선종사의 3조인 승찬선사와 그 스승인 혜가선사의 선문답이다. 승찬선사는 이 선문답을 통해 비로소 자성청정심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승찬선사의 행적과 출신은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단지 <능가사자기> 권 1에서 “수나라 수주 사공산의 승찬선사는 혜가선사의 후계자다.
승찬은 그 경력을 알 수 없고 출신지도 밝혀져 있지 않다. 그는 사공산에 은거 고요하게 좌선에만
전념할 뿐 저서도 내지 않고 입을 굳게 다문 채 사람들에게 불법을 설하지 않았다” 고 적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은 요인은 당시 사회적 상황 탓으로 풀이된다.
초기 중국선종을 이끌어온 수행자들은 대부분 일의일발(一衣一鉢)에 충실했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던 전통 때문이다.
승찬선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심명> 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겨놓고 갔다.
초조 보리달마선사의 이입사행(二入四行) 사상과 혜가선사의 안심법문에 이은 선의 깊은 깨달음과
사색을 담아내고 있는 <신심명>은 오늘날까지 선의 고전으로 읽히는 명저로 손꼽힌다.
283. 시다림 (尸茶林)
상가집에 가면 스님들이 목탁과 요령으로 영가들을 천도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된다.
이를 불교에서는 ‘시다림’ 한다고 표현한다.
시다림을 할 때는 대개 금강경과 천수경, 반야심경을 독송하여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한다.
시다림(尸茶林)은 ‘죽은 사람을 위하여 설법하는 불교의식’을 나타내는 불교용어이다.
시다림은 본래 인도 마가다국 북문 밖에 있던 숲의 이름으로 성내에서 숨을 거둔 이들의 시신을 버리는
묘지였다. 이것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영가를 위해 설법하고 경전을 읽는 것을
시다림이라 표현하게 되었다.
시다림(屍陀林)이라고도 쓰는데 시다림과 같은 뜻을 담고 있으며 망자(亡者)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설법을 말한다.
284. 시방삼세 (十方三世) ☀불교에서 나온 말
우리가 가장 흔하게 쓰는 불교용어가 바로 ‘시방삼세(十方三世)’다. 그러나 그 연원과 깊은 뜻은 잘 알지 못하면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시방삼세는 시간과 공간을 한꺼번에 추월한 개념이다.
모든 것은 한꺼번에 존재하며 그 인과(因果) 역시 윤회(輪廻)를 하며 시공간에서 서로 교류하며
적용될 수밖에 없는 개념을 뒷받침하고 있는 용어다.
먼저 시방이란 용어는 동서남북 사방과 건(乾)ㆍ곤(坤)ㆍ간(艮)ㆍ손(巽)의 사우(四隅) 또는 북서ㆍ남서ㆍ북동ㆍ남동의 사유 및 상하를 아울러 이르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시방세계는 곧 공간적 개념이다.
이에 반해 삼세(三世)는 과거ㆍ현재ㆍ미래ㆍ전세ㆍ현세ㆍ내세 등 시간의 흐름을 뜻한다.
과거세는 지나간 때를, 현재세는 현재 있는 때를, 아직 오지 않은 때를 미래세라고 한다. 다시 말해 삼세는 일체의 존재가 생멸 변화하는 과정에서 기간적으로 각각 차별을 내는 것이기도 하다.
삼세를 법의 상태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법이 생겨서 작용하는 때를 현재라 하고, 법이 없어서 작용이 끊어진 때를 과거라 하며,
법이 아직 생겨나지도 않고 작용하지도 않은 때를 미래라고 한다.
삼세는 불교의 가장 근본원리라고 할 수 있는 인과응보(因果應報)에 관한 것을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현재 우리가 받고 있는 고락(苦樂)은 과거의 업에 대한 결과이며,
현재에 행해지는 것은 미래의 고락을 결정하는 주요하면서도 결정적인 요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삼세는 경세적(警世的) 측면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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