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가사(金襴袈裟)는 석가세존 생전에 이모였던 마가파도파제 부인이 세존께 금실로 수놓은 가사를 한 벌 지어 올린 데에서 유래했다. 그후 선종(禪宗)에서는 세존께서 가섭 존자에게 이 금란가사를 전법의 신표(信標)로 전해준 것으로 여겨 금란가사(중국에서는 조사의 의발衣鉢)를 전해 받은 분들을 선종의 조사(祖師)로 숭앙(崇仰)해왔다. 그런데 요즈음은 지혜롭지 못한 불제자(佛弟子)들이 겉모습만 취해 자신들의 스승들께 금란가사를 지어드리며 검소하고 청정해야할 수행자의 정신을 망각하게 하는 불충(不忠)을 저지르고 있는 것 같다. 더 나아가 이 주제는 비단 출가(出家)의 세계뿐만이 아니라 금란가사에 견줄 수 있는 명품을 포함해 겉껍데기 과시하기에 중독(中毒)된 재가(在家)의 세계에서도 깊이 성찰해야 할 주제라고 판단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금란가사와 관계된 ‘가섭찰간(迦葉刹竿)’(<무문관> 제22칙)을 들려다 본다.
迦葉 因 阿難問云, 世尊 傳金欄袈裟外, 別傳何物. 葉喚云, 阿難. 難 應諾. 葉云, 倒却門前刹竿著.
가섭 인 아난문운 세존 전금란가사외 별전하물 섭환운 아난 난 응낙 섭운 도각문전찰간착
아난이 가섭 존자에게 물었다.
“세존께서 금난가사를 전하신 이외에 따로 무엇을 전해주었습니까.”
가섭 존자가 말하였다.
“아난아!”
아난이 대답하였다.
“네.”
가섭 존자가 말하였다.
“문 앞의 찰간을 꺾어 버려라.”
[評唱]
無門曰, 若向者裡 下得一轉語 親切, 便見靈山一會 儼然未散. 其或未然, 毘婆尸佛 早留心, 直至而今 不得妙.
무문왈 약향자리 하득일전어 친절 변견영산일회 엄연미산 기혹미연 비바시불 조류심 직지이금 부득묘
만일 여기서 한 마디를 적실히 내릴 수 있다면 영산의 회상이 흩어지지 않아 지금도 엄연함을 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비바시불이 일찍이 마음에 머물러 지금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묘함을 얻지 못했다 하리라.
[頌]
頌曰. 問處何如答處親, 幾人於此眼生筋, 兄呼弟應揚家醜, 不屬陰陽別是春.
송왈 문처하여답처친 기인어차안생근 형호제응양가추 불속음양별시춘
질문은 어찌 되었건 대답은 적실하다
몇 사람이나 여기서 눈에 핏발 섰을까
형이 부르고 아우가 대답하여 집안 망신 시켰는데
음양(계절)에 속하지 않은 별도의 봄이라니
[蛇足]
아시겠지만 가섭은 불조법맥의 제1조 祖師다. 막내 사제 아난을 얼마 후에 깨우치게한 화두로 2조로 법맥을 잇게했다. 가섭은 영산회상에서 破顔微笑(파안미소)로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았지만 십대제자중 막내인 아난은 多聞第一이나 깨달음 측면에선 하근기였다.
그러니 파안미소, 즉 염화시중의 미소의 뜻을 알리없는 아난이 징표로 물려받은 금란가사외에 별도의 무엇을 물려받아서 깨우친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하고 사형에게 그런것이 있으면 나에게도 알려달라는 아난의 請이다. 가섭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이에 가섭이 "아난아!"하고 불렀다. "네!"하고 대답은 했지만 꿀먹은 벙어리다. 웬만하면 "네"라는 대답속에세 선지를 보련만 별반응이 없자 "문앞의 찰간을 꺾어버려라."하고 일갈한다. 난데없는 문앞의 찰간은 무언가? 찰간에 얽매이지 말라.
評唱은 영산회상시 거염화의 뜻을 파안미소로 답한 그 이치를 모르면 가섭이 "아난아!"하고 부른 의미도 모를것이므로 영산회상은 해산되고 좌선만하면서 머무른 비바시불이 된다면 부처님의 법은 끊어지고 만다는 얘기며 頌은 가섭의 "아난아!"하고 부르니 "네!"하고 대답한데서 질문과 대답은 훌륭하지만 깨닫지 못한 아난의 나무람이다. 자, 이제 본칙에 한마디 일러보라!.
첫댓글 왜 육조 혜능은 오조 홍인대사로 부터 받은 발우와 가사를 전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