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다르고 바람과 햇볕 다른데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도 다를 수밖에
흔히 ‘봄 주꾸미, 여름 민어, 가을 낙지, 겨울 숭어’라 한다. 그 시기에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말이다. 때맞춰 텔레비전에서는 매일같이 맛집을 소개한다. 인터넷에도 맛집 정보가 넘친다.
그러나 정작 왜, 그 시기에, 그 해산물이 맛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농산물에도 저마다 파종시기와 수확시기가 정해져 있다. 해산물도 각기 맛있는 시기가 있다. 바다생물이 물때에 맞춰 연안을 찾아오고, 몸을 불리고, 산란하고, 다시 먼 바다로 나가기 때문이다.
어부는 바다와의 오랜 교감을 통해 이들이 가장 맛있는 시기를 골라 건져 올린다. 덕분에 우리는 제 철에 맛있는 주꾸미와 민어, 낙지, 전어를 먹을 수 있다.
홍어는 또 어떤가? 과거 흑산도에서 홍어를 잡아 영산포에 이르면 이미 삭혀졌다. 그 맛을 기억하는 이들이 삭힌 홍어를 찾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흑산 홍어는 쉽게 구경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획량이 줄었다. 그래도 여전히 유통되는 많은 홍어가 ‘흑산홍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최고의 맛을 약속하기 때문이다.
거친 파도가 만들어내는 미역과 진도곽, 신안의 젓새우와 갯벌천일염이 만들어내는 새우젓(오젓, 육젓)도 최고의 맛을 약속하는 이름이다.
먹는법 제대로 알아야 더 맛있어
이것들을 제 철에 주요 산지를 찾아 먹는다면 대략 90%의 맛을 보장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럼 나머지 10%는 뭘까?
아무리 맛난 음식이라도 먹는 방법을 모르면 제 맛을 즐길 수 없다. 남도에서 최고의 해장국으로 인정받는 매생이굴국은 김이 나지 않는다. 하여, 뜨거운 줄 모르고 먹었다간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진다.
매생이는 또 예쁘게 먹으려고 하면 흘러내리기 일쑤다. 그래서 제대로 그 맛을 즐기기 어렵다. 코 박고 후루룩 소리를 내가면서 먹어야 제 맛이다. 소리를 크게 낼수록 더 맛있다.
전복회를 먹을 때 칼을 대면 전복 살이 딱딱해진다. 그래서 전복을 통째로 베어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병어는 된장빵으로 먹어야 맛있다. 대구탕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직 대구만 넣고 끓여야 더 맛있다.
인간과 자연 탓에 바다맛도 변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가 갯벌을 차지했던 칠게는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갯벌의 개발과 인간의 탐욕으로 점점 사라지게 된 것이다. 칠게가 사라지면 칠게를 먹기 위해 찾아왔던 도요새도 발길을 끊기 마련이다.
한때 염전의 잡초에 불과했던 함초는 이제 고급 식재료로 쓰이고 있다. 부작용이 없는 명약으로까지 인정받고 있다. 그뿐인가. 김 양식장은 대부분 전복 양식이나 매생이 양식으로 업종을 바꾸었다.
동해에서 북쪽으로 사라져버린 명태와 남쪽으로 내려간 오징어 탓에 동해안 어부들의 삶도 많이 달라졌다.
이처럼 바다맛은 영원히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개입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자꾸만 바뀌고 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맛의 문화사 《바다맛기행》 발간…김준 전발연 연구위원
“같은 음식이라도 알고 먹는 것과 모르고 먹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어부가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해산물이 우리 밥상에 올랐을 때를 생각해 보세요. 그 이름과 생태, 어획 시기, 주요 어장, 음식이 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먹는 행위는 생계가 아니라 문화가 되는 거죠.” 김준 전남발전연구원 연구위원의 말이다.
그가 우리 바다에서 나고, 조상 대대로 즐겨온 대표적인 해산물과 그것을 지혜롭게 활용한 어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펴냈다. 도서출판 ‘자연과생태’에서 낸 《바다맛기행》이 그것.
신국판 272쪽의 이 책은 바다맛을 중심에 놓고 바다생물의 생태와 땀내음 가득한 어민들 삶의 이야기로 가득하다. 혀끝을 자극하는 바다맛에는 대양을 누비는 바다생물의 여정과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며 돌봐왔던, 그러면서 필요한 만큼 활용했던 바닷사람 특유의 삶의 태도가 녹아있다.
최고의 맛을 내는 시기, 요리 방법에 따라 천차만별인 맛, 꼭 그곳에 가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 명품 산지와 바다생물, 바다를 가꾸며 살아가는 어촌 사람들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고 버무려져 날 것 같던 바다맛이 문화로 다가온다.
오랫동안 어촌사회를 연구하며 갯벌과 섬을 찾아다니고, 어민들과 함께 바다음식을 즐겨온 저자는 “지역 특색에 맞게 발전한 음식이야말로 바다생물과 어민이 공생하며 이루어낸 어촌문화의 정수”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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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의 땅 전남새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