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 어듼(어딘)듯 한편에 끗업는 강물이 흐르네
도처오르는 아츰날빛(햇빛)이 빤질한 은결(銀波)을 도도네(돋우네)
가슴엔듯 눈엔듯 또 핏줄엔듯
마음이 도른도른 숨어잇는 곳
내마음의 어듼듯 한편에 끗없는 강물이 흐르네
- 영랑 김윤식의 <동백닙에 빗나는 마음> 전문
* 영랑은 사투리와 옛말 외에도 일상적으로 쓰이지 않는 말을 뜻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이 내에서 만들어 쓴 시인이다. 언어의 조탁에 심혈을 기울였다. 이는 일제 식민지 하에서의 모국어에 대한 사랑이며 나라에 대한 사랑이 아니겠는가.
이 나라 나라는 부서졌는데
이 산천 여태 산천은 남아 있더냐
봄은 왔다 하건만
풀과 나무뿐이어
오, 서럽다 이를 두고 봄이냐
치워라 꽃잎에도 눈물뿐 흩으며
새 무리는 지저귀며 울지만
쉬어라 이 두근거리는 가슴아
못 보느냐 벍핫케(벌겋게) 솟구치는 보웃불이
끝끝내 그 무엇을 태우랴 함이료
그리워라 내 짐은
하늘 밖에 있나니
애닲다 긁어 쥐어뜯고서
다시금 짧아졌다고
다만 이 희끗희끗한 머리칼뿐
인제는 빗질할 것도 없구나
- 김소월의 <봄> 전문
* 이 시는 두보의 시 춘망(春望)을 소월식으로 쓴 시이다.
도치법이 사용된 이 시는 운율이 딱딱 들어맞는다. 쉽게 읽히며 이해도 쉬운 이 시가 우리 가슴속을 깊게 파고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가 온다
오누나
오는비는
올지라도 한닷새 왓스면죠치.
여드레 스무날엔
온다고 하고
초하로 朔望이면 간다고햇지.
가도가도 往十里 비가 오네
- 김소월의 왕십리(往十里) 1, 2연
* 언어가 물결을 타고 흐른다. 마치 빗물처럼. 소월 시어와 운율(3음보 민요조)의 탁월성을 보여주는 시. 진달래 등도 그렇다.
* 남쪽의 김영랑과 북쪽의 김소월은 우리말을 잘 다룬 시인이다. 이 밖에도 경상도 사투리는 이상화와 박목월의 시, 전라도 사투리는 송수권의 시가 우리 시를 풍요롭개 한다. 북한 땅의 사투리를 보자.
섣달에 내빌날이 들어서 내빌날 밤에 눈이 오면 이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녀기며 엄매와 나는 아궁읗에 떡돌읗에 곱새담읗에 함지에 버치며 대양푼을 놓고 치성이나 들이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눈 약눈을 받는다.
- 백석의 <고야(古夜)> 부분
* 이런 시가 표준어로 쓰여졌다면 북방의 정서는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시의 맛도 죽어 버렸을 것이다.
* 오늘 우리의 시는 우리말에 대한 학대가 너무 심하다. 소통되지 않는 시, 감정의 교류가 없는 시, 자학적이고 가학적인 시, 유아독존적인 오만 시 등등. 방언은 각 지방의 향토적 정서와 자연환경과 통토, 사람의 습성과 기질까지 드러낸다. 이런 사투리가 적절히 배어 있는 시도 좋다. 이는 북쪽의 김동환, 백석, 이용악 등과 남쪽의 서정주, 박목월, 박재삼 등이 있다.
넥타이를 한 食人種은
니그로의 料理가 七面鳥보다 좋답니다
살갗을 희게 하는 검은 고기의 偉力.
醫師 콜베르씨의 處方입니다.
헬메트를 쓴 避暑客들은
亂雜한 戰爭競技에 熱中했습니다.
슬픈 獨唱歌인 審判의 號角소리.
너무 興奮하였으므로
內服만 입은 파씨스트.
그러나 伊太利에서는
泄瀉劑는 일체 禁物이랍니다.
- 김기림의 <기상도(氣象圖)> 부분
* 우리나라에 서구 모더니즘을 열심히 소개하려고 한 사랍입니다. 1920년대 감상주의 낭만주의와 카프파의 이데올르기를 배격하고 시의 화화성을 추구하며 주지주의적 성격이 강한 시를 쓴 사람입니다. '현대문명의 모순과 위기의식을 진단한 시'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한자어, 구체적이지 못한 관념어의 남발, 어색한 이국적 취향과 어설픈 문명 비판이 신경을 거슬리게 합니다. 요즘도 이런 시들이 많습니다.
* 시인은 한 나라의 언어와 얼을 가꾸는 사람입니다. 시인은 잊혀져 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되살리기, 향토성 짙은 사투리의 발견, 의미 깊은 언어의 조탁을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할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