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이 아니라 ‘실리’…베트남 최연소 트엉 주석 취임의 의미? [박종현의 아세안 코너] 박종현별 스토리 • 5시간 전 미국이 잊고 싶은 전쟁이 있다면 베트남전쟁이 앞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 베트남전쟁이 지속되면서 반전운동이 거세지자 미국은 1965∼1968년 7차례에 걸쳐 북베트남에 평화협상을 제안했다. 대화채널 확보가 쉽지 않자 미국은 사이공(호찌민) 주재 폴란드대사관에 대화 주선을 요청했다. 북베트남도 폴란드대사관의 중재를 수용했다. 1966년 11월부터 비밀협상이 시작됐으며, 암모명은 ‘마리골드 협상’이었다. 미국에 통보된 첫 협상 시간과 장소는 그해 12월 6일 폴란드 바르샤바 소재 외교부 청사 회의실이었다. 바르샤바 외교부 청사에서 미국 협상팀은 온종일 기다렸지만, 북베트남 대표단은 오지 않았다. 전쟁 통에 북베트남과 직접 연결 통로가 없었던 미국으로서는 북베트남 대표단이 오지 못한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 미국 대표단의 실망은 컸을 것이다. 미국은 이후 북베트남에 신뢰도를 낮췄을 수 있다.
보 반 트엉 베트남 신임 국가주석이 2일 하노의 국회의사당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하노이=AFP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미국·북베트남 1960년대 비밀협상 실패한 이유는
그로부터 한 세대가 흐른 1997년 6월 20일. 이날부터 나흘 동안 베트남 하노이 한 호텔에서 흥미로운 심포지엄이 열렸다. ‘놓쳐버린?’를 주제로 삼은 심포지엄에는 미·베트남 양국의 정치인과 군인, 외교관, 학자 13명이 참석했다. 눈에 띄는 인물은 양측의 대표였던 로버트 맥나라마 전 미국 국방장관과 응우옌꼬탁 전 베트남 외교차관이었다. 양측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전투를 지휘한 경험 등을 토대로 당시 상황판단과 전쟁 회피 혹은 종결 방법은 없었는지 등을 토론했다. 이런 과정에서 상대에 대한 오해와 실수는 없었는지도 묻고 답했다. 심포지엄 개최보다 2년 앞선 1995년 미·베트남 국국정상화를 지켜본 양국 전문가들이 평화스러운 분위기에서 옛 관계를 반추할 기회를 가진 것이다. 마리골드 협상도 화제에 올랐다. 북베트남의 당시 외교관 응우엔디프엉이 설명했다. 북베트남 대표단 역시 비밀유지에 유의하라는 엄명을 받고 미국 대표단과 협상을 위해 출국했다. 미국이 북베트남 대표단을 기다리던 1966년 12월 6일 바르샤바에서 상대 협상팀을 기다렸다. 문제는 기다린 장소가 북베트남 대사관 리셉션장이었다는 점이다. 미국이 대기하던 폴란드 외교청사가 아니었다. 양측 사이에 약속 장소를 두고 무엇인가 실수 내지 착오가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그의 설명으로 30년 넘게 상대에 대한 오해를 했던 게 확인되자 장내는 술렁거렸다. 전쟁이 이어지던 당시엔 협상일 이뤄지지 않은 원인을 놓고, 양측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을 개연성이 높았을 것이다.
조세영 전 외교차관이 저서 ‘외교외전’(한겨레출판)에서 풀어쓴 미·북베트남 비밀협상 부문을 대략 정리한 내용이다. 미국 등 서구 언론과 전문가의 베트남 분석이 잘못됐던 것으로 차후 확인되는 경우도 더러 있는데, 이처럼 정보 취득의 한계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곤 한다. 외교협상 막전막후의 오해를 재론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최근 베트남 국가주석 교체를 두고 일부에서 쏟아지는 ‘역대 최연소 국가주석, 친중파 성향’, ‘베트남, 친중으로?’유형의 내·외신 기사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 취득 한계와 의도적 분석 등의 오류는 현재도 여전한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베트남 여성들이 8일 하노이 시내에서 전통의상 아오자이를 입고 사진을 찍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해마다 3월 8일, 10월 20일 각기 ‘세계 여성의 날’과 ‘베트남 여성의 날’을 각기 기념한다. 하노이=EPA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신임 국가주석 임명에 ‘친중노선’ 쏟아내는 언론 최근 베트남은 국가주석에 보 반 트엉(Vo Van Thuong)을 선출했다. 베트남에서 국가주석은 통상 권력서열 2위로 평가된다. 트엉 주석은 직전까지 공산당 상임서기로 활동했다. 그의 전임자인 응우옌 쑤언 푹이 1월 갑자기 사임한 데 따른 자리메우기 성격의 인사다. 간단히 자리 메우기라고 했지만, 내부 사정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전임자와 신임 주석의 비중, 정치 역정, 미래 전망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베트남 전문가들은 그동안 10년 터울의 응우옌 푸 쫑 당 서기와 푹 주석이 베트남 정치를 상징해 왔다고 평가해 왔다. 쫑 서기가 보수적이라면, 푹 주석은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은 각기 친중과 친미도 상징했다. 푹 주석은 지난해 10월 중국을 방문했지만,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한국 등도 방문하며 광폭 외교 행보를 펼쳤다.
푹 전 주석은 공무원들의 부패, 비리 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코로나19 방역 대응에 실패했다는 지적도 그에겐 제기돼 왔다. 신임 트엉 주석은 1970년 12월 출생으로, 베트남의 다른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젊은 편이다. 역대 주석 가운데 최연소이다. 2004년 호찌민 12군 당서기에 임명된 뒤 2016년 정치국원이 됐다.
트엉 주석의 발탁 배경은 다양하게 거론된다. 부패와의 전쟁을 지속하겠다는 쫑 서기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올해 78세의 쫑 서기장이 부패 척결운동 지속을 위해 52세의 최연소 주석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서구 일부 언론에서는 2026년 3연임을 끝내는 쫑 서기장이 자신의 퇴임 이후를 대비한 세대교체의 신호탄을 예고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친중파인 권력서열 1위가 권력서열 2위를 발탁했다는 이야기다. 베트남에서 권력서열은 당 서기장이 1위이며, 이어 2위 국가주석, 3위 총리, 4위 국회의장이다.
8일 베트남 북부 박닌의 박닌체육대에서 열린 ‘항저우 아시안 게임 펀 런’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달리기를 하고 있다. 박린=신화·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베트남엔 친미·친중 이분법 없는 실리주의 노선 확고”
니혼게이자이 등 일본 언론에서는 쫑 서기장의 부패와의 전쟁은 유사한 방식을 활용해 경쟁자를 제거했던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략과 닮았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영국 BBC방송은 쫑 서기장이 트엉 주석의 임명을 통해 서구친화적인 세력의 약화를 도모하고, 자신의 집권 체제 공고화를 모색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시선을 베트남 내부 전문가들은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베트남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우리나라가 미국과 중국 가운데 어디와 더 친하다고 규정될 수는 없다”며 “베트남은 중국이나 미국의 영향력에서 자유롭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일부 정치인이 북부 출신인이라고 해서 친중파라고 한다면, 베트남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라며 “그런 의견은 미국 등 서구 언론이 가질 수는 있어도 갈수록 교류가 늘고,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이해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제기되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삭 연구소의 히엡 르 홍은 “트엉 주석 체제 출범으로 베트남 외교 정책엔 변화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트엉 주석의 취임으로 베트남 외교 정책에 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왜 베트남 시장인가’을 저술한 유영국 작가는 트엉 주석의 취임이 베트남의 친중주의 심화 의미는 아닐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 업체의 법인장을 지내는 등 베트남에 12년 체류하고 있는 유 작가는 “트엉 신임 주석이 친중인물인지 보수주의자인지 아는 사람은 베트남에서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분명한 것은 쫑 서기장과 트엉 주석 등 베트남 정치인들이 평상시에 강조하는 ‘호찌민 주석의 청렴했던 정신’이라는 표현은 지켜봐야 한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베트남 공산당이 인민에게 외면받으면 존립 근거를 잃기 때문에 부정부패에 대한 사정 작업은 이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유 작가는 ‘트엉 주석의 친중인사설’은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보도가 계기가 된 측면이 강하다는 점도 거론했다. VOA가 푹 전 주석의 낙마에 우려를 표하자, 미국과 일본 언론 등이 이를 인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트엉 주석이 오랫동안 공산당에서만 활동한 인물이기 떄문에 미국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개연성도 크다고 그는 분석했다. 오히려 유럽연합(EU) 등은 베트남 당국의 부패 사정작업을 높게 평가하면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설명도 유 작가는 덧붙였다.
정치국원 17명의 합의를 중요시하는 집단 지도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베트남이 외교노선을 극명하게 바꾸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도 거론된다.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중국과 오랜 갈등을 펼쳐왔고, 현대사에서는 중국은 물론 미국과 프랑스 서구와 싸웠던 경험을 지녔던 나라다. 베트남 국부 호찌민은 2차세계대전 이후 인접국 지도자들이 친서방과 친일본 등으로 외교적 접근법을 구사할 때도 일본의 패배를 예측하고, 미국과 관계 개선에 주력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에 승리를 거두고도 암흑기를 보냈던 베트남은 이후 도이머이 정책과 등거리 외교 등으로 존재감을 과시해 왔다. 그렇기에 결코 친중이나 친미 노선을 표면적으로 드러낼 이유가 없다는 시각이 짙다. 중국에 거리감을 두고 있는 인민의 시각을 고려해야 하는 집권세력으로서는 중국친화적인 행보 자체는 더 힘들다. 오히려 외부 세력들이 베트남을 자국이나 자파 세력의 자장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분석이 강하다.
베트남 농부가 6일 수도 하노이의 높은 빌딩숲과 인접한 논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하노이=AFP연합뉴스© 제공: 세계일보
◆“베트남 시장은 한국에 여전히 상수…외신 보도 맹신 말아야”
트엉 주석의 등장에 일정 부문 외교노선 변화 가능성을 거론하는 일본은 베트남을 적극 챙기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2021년 10월 취임한 다음달인 그해 11월 팜 민 찐 베트남 총리와 만나 양국 협력방안을 논의했는데, 찐 총리는 기시다 총리가 취임한 이후 일본을 방문한 첫 외국 정상급 지도자였다.
베트남의 제1 투자국인 한국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베트남 정치권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야 하지만, 전문성이 결여된 채 ‘자국 우선주의’에 경도된 외신이나 전문가의 주장을 즉각적으로 수용해서는 곤란하다는 이야기다. 자동차 시장만 예로 들더라도 베트남 상황에 대한 정확한 분석 필요성이 제기된다. 최근 현대차가 인도네시아 투자를 늘리고 있지만,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자동차 시장에서는 일본이 여전히 절대 강자이다. 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의 일본 우위 구도는 좀처러 허물어지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베트남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절대 우위의 시장을 내주지 않고 있다.
트엉 신임 주석 자체가 개혁파 범주에 포함된다는 시각도 있다. 트엉 주석은 개혁가였던 보 반 끼엣 전 총리 집안의 구성원이다. 끼엣 전 총리는 도이머이(개혁개방) 정책을 처음으로 주창했던 정치인으로, 베트남 경제를 재건했다. 재임 시절 인접국과 관계를 개선하고, 베트남의 아세안 가입을 결정했다. 트엉 주석은 지난 2일 의회 첫 현설에서 부패 척결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는 “부패와 싸움을 강력하게 전개할 것”이라며 “조국과 인민에 충성하고, 당과 인민이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엉 주석의 임기는 2026년 3월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