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개령공소
1962년 9월 14일 설립
관할본당: 신룡성당
경북 김천시 개령면 동부길 113-7 (동부리 9113-7)
신룡성당이 설립될 시에 신룡공소(1961년 설립),감문공소(1970년 설립)와 함께
개령공소(1962년 설립)는 신룡성당 설립의 원천이 된다.
코로나19 시작 이후로 공소 활동은 중단되었고,
공소활동이 중단된 이후로 관할본당으로 가서 미사 참례를 하고 있답니다.
공소 바로 앞에 살고있는 형제님이 관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32. 수륜공소
1962년 설립
적성동에서 현 위치로 이전
관할본당: 가천성당
경북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927-7
코로나19 발생한 이후로 공소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33. 송계공소
1967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경북 성주군 수륜면 송계3길 26-3
34. 넉바위공소
1962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경북 성주군 무학1길 241 (무학1동 172번지)
장한식(리노) 신부, 장환영(요셉) 신부 2명과 수도자(수녀) 2명을 배출한 공소이다
넉바위공소는 서울에서 천주교에 입교하고 충청도 말라리라는 동네에서 살던
김해연(스테파노)씨의 가정이1866년 병인박해 때 쫓기어
이 곳 넉바위 동네의 깊은 산중인 큰 골(넉바위공소 뒤 산)에 터전을 잡고
같은 처지의 몇몇 교우와 더불어 살기 시작하면서 연혁은 시작된다.
1877년 사목보고서에서는
교우26명, 판공성사20명, 영성체17명, 영세자4명, 예비자3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후 장한식(마태오) 공소회장집 사랑체를 첨례 장소로 사용하였으나
1936년 대홍수 때에 무녀져버리고 만다.
교우들의 정성과 왜관 분도 수도원의 도움으로
1962년 현재의 공소 강당을 준공하였다.
현재는 교우 가정이 2세대 뿐이고
미사는 관할본당인 가천성당에서 보고있으며,
본당 미사에 참석하지 못할 경우 지금도 공소를 사용하거나
기도 모임등을 할 때에도 사용하고 있다.
35. 금수공소
1967년 설립
관할본당: 가천성당
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로 1875 (광산리 171-4)
36. 감문공소
1970년 5월 건축 완공
관할본당: 신룡성당
감문공소를 신축할 시에는 황금성당 관할이였다가
신룡성당 설립으로 지금은 신룡성당 관할이다
감문공소는 신자들 스스로 기반을 이룬 곳이다.
2000년 11월 신룡공소, 감문공소, 개령공소 세 개의 공소를 합쳐서
신룡성당이 설립이 될 때 밑거름이 된 공소이다.
감문공소는 공소이면서도 본당에 속한 하나의 구역으로 바뀌었다.
37. 아포공소
1968년 설립
아포공소 설립 당시에는 원평성당 관할으며,
도량성당이 원평성당에서 분가하면서 도량성당 관할이 되고,
도량성당에서 봉곡성당이 분가하면서 봉곡성당 관할이 된다.
경북 김천시 아포읍 국사길 62-6 (국사리 141-3번지)
1965년경 왜관 베네딕토 수도원의 교세확장에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고
이후 1966년 왜관 수도원이 대지를 매입해 주면서 아포공소 시작이 된다.
1968년 10월에 축성과 함께 원평성당 소속 공소가 된다.
현재는 봉곡성당에 편입, 공소 기능을 하면서 본당 4구역으로 편성되어 있다
38. 황점 신앙 유적지황점공소
경북 김천시 증산면 원황점길 418-12 (황점리 816)
증산면 장전리 서무터 공소와 같이
천주교 박해인 병인박해(1866) 때 난을 피하여
천주교 교우들이 이곳으로 숨어 들어와
처음에는 황점리에서 약1km 떨어진 장자터라는 골짜기에서
교우촌을 형성하여 숯과 옹기를 굽고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유서깊은 이 교우촌의 개발을 위하여 대구대교구에서는
장자터를 중심으로 마을 일대의 땅을 매입하여
황점 신앙유적지로 조성중이다.
39. 서무터공소
2023년 현재 설립 157년 역사를 지닌 교우촌
1866년 설립
관할본당: 지례성당
경북 김천시 증산면 장전2길 225
안주원(공사가)는 충남 공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이곳에서 천주교 박해로 전라도 무주 산막터로 피신한다.
전라도 무주 산막터에서도 관현에게 쫓기게 되자
1866년에 서무터로 또다시 피신한다.
서무터에서 숯도 굽고 화전도 일구면서 교우촌을 형성하게 된다.
2001년 5월 27일에 서무터 교우촌의 안씨 가문에
대구대교구에서 주는 '가문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40. 벽진공소
1957년 10월 25일 설립
관할본당: 초전성당
경북 성주군 벽진면 벽소로 5
벽진공소는 1957년 성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소속 정묵도(엑벨트) 신부가
성주성당 주임으로 사목할 무렵 설립되었으며
최초의 신자가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공소가 생기기 전, 복 안나 가정에서 공소예절을 하던 중
외인 소유의 399.3㎡(121평)의 부지를 매입하여 공소를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어 1970년 5월 18일 1089㎡(330평)을 더 매입하여 현재의 부지를 형성하였으며
2003년도에 초전성당 9대 주임 안상호(요셉) 신부가 현재의 공소건물을 완공,
같은 해 8월 9일 당시 3대리구장 이성우(아킬로) 신부 주례로 공소축복식을 거행하였다.
공소설립 당시 40여 명의 신자로 출발한 벽진공소는
1967년 석찬준(요한보스코) 유급전교회장의 파견으로
한때 352명까지 신자수가 증가하였으나 현재는 50명 안팎에 머물고 있다.
1980년 1월 5일 초전성당이 설립되고 김상규(필립보) 신부가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
벽진공소는 초전성당 소속으로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