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시대, 혼돈의 시대일수록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진 현자(賢者)에 대한 갈망은 절실해진다. 지난 5월 2, 3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 투자가의 이목은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로 쏠렸다. ‘오마하의 현자(The Oracle of Omaha)’로 불리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의 혜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의 회장이자 세계 두 번째 부자인 버핏은 주식투자에 관한 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식료품 가게 집 아들로 태어나 330억달러(39조6,000억원)에 달하는 부를 이룬 비결이 바로주식투자였기 때문이다.
매년 5월 첫 번째 주에 열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는 버핏 회장이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밝히는 유일한 자리다. 올해는 예년보다 훨씬 많은 1만5,000여명의 주주와 세계 각국의 취재진이 몰렸다. 인구 39만명의 도시에 1만5,000명이 넘는 외지인이 쏟아졌으니 오죽하랴. 오마하 시내에서 방을 잡는 건 하늘의 별따기였다. 10여 곳의 여관을 알아봤지만 방이 없었다. 싸고 깨끗하다고 알려진 호텔은 1월부터 예약이 밀렸다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미주리 강을 사이에 놓고 오마하와 마주 보고 있는 아이오와주의 카운실 블러프라는 도시에 숙소를 잡았다.
주주총회가 열린 5월 2일. 오마하에서 가장 큰 강당인 시민회관 앞은 아침 7시부터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주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한 주당 7만달러(8,400만원)가 넘는 주식을 가진 주주이건만 회사측에서 나눠주는 싸구려 기념품을 받기 위해 수십m는 됨직한 줄을 서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공짜 앞에선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아침 8시께 버핏 회장이 회관에 도착했다. 귀빈석에서 주주들과 담소를 나누던 버핏 회장은 8시 30분부터 시작된 회사 홍보 영화를 보기 위해 주주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왼쪽엔 아내 수잔(Susan), 오른쪽엔 딸 수지(Susie)가 앉았다. 한 시간 동안 상영된 홍보 영화는 한 편의 개그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버핏 회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때론 만화 주인공이 됐다가 때론 뉴스 프로그램의 앵커로 변신했다. 내용은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 광고였다. 대부분 버핏 회장의 아이디어로 만든 것이었다. 물론 TV에선 볼 수 없다. 주주총회를 위해 특별 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래부르기를 즐긴다. 광고에서도 장난감 같은 기타를 들고 나와 우스꽝스런 노래를 불러 주주들을 웃겼다. 군데군데 미식 축구나 농구 스타가 깜짝 출연을 하기도 했다.
한바탕 배꼽을 잡고 나자 9시 30분께 버핏 회장이 무대에 등장했다. 강당 한쪽 끝에 마련된 무대 위엔 버핏 회장과 버크셔 해서웨이의 2인자 찰리 멍거(Charlie Munger) 부회장이 앉았다. 주주총회는 늘 이런 식이다. 점심을 먹기 위해 쉬는 한 시간을 빼고 오후 3시 30분까지 무려 5시간 동안 버핏 회장과 멍거가 주주들과 일문일답 형식의 대화를 이끌어간다. 버핏 회장이 올해 72세, 멍거 부회장이 79세인 것을 감안하면 노익장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리 ‘오마하의 현자’라도 주주총회인 만큼 실적 자랑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39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려 사상 최고 성적을 냈다. 올해는 1분기에만 17억달러의 영업이익을 올려 신기록을 다시 갈아치울 태세다. 미국 주식시장은 ‘닷컴’ 거품이 빠지면서 몇 년째 죽을 쑤고 있다. 그런데도 버크셔 해서웨이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비결은 뭘까. 바로 보험부문 때문이다. 버핏 회장은 보험업의 장점을 일찌감치 간파하고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키웠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 6위의 자동차 보험회사인 가이코(GEICO)와 세계 4대 재보험사인 제너럴리(General RE) 등 8개의 보험사를 거느리고 있다.
보유 현금만 160억달러 보험업의 매력은 9 ·11 테러와 같은 대형 사고만 터지지 않는다면 언제나 현금이 넘쳐난다는 데 있다. 고객이 내는 보험료가 꼬박꼬박 들어오기 때문에 한꺼번에 물어줘야 할 보험금이 많지 않으면 보험회사 금고엔 항상 현금이 남아 있게 된다. 지난해 버크셔 해서웨이의 보험부문이 굴린 이런 현금(보험 용어로 float)은 412억달러(49조4,000억원)에 달했다. 천문학적 액수의 현금을 투자의 지존 버핏 회장이 운용해서 큰 이익을 남긴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160억달러나 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많은 기업이 자금난 때문에 부심하고 있는 이때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는 건 즐거운 고민이 아닐 수 없습니다. ” 버핏 회장의 목소리엔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백전노장이다. 한두 번의 승전에 도취해 만용을 부릴 장수가 아니었다. “그러나 보험업의 선전에 지나친 기대를 갖는 건 위험합니다. 언제 엄청난 자연 재앙이나 사고가 터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럴 경우 보험부문은 고전을 면치 못 할 것입니다.” 그는 투자에 관해서도 신중론을 고수했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몇 년 째 내리막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도 좋은 투자 기회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가장 현명한 투자일 수도 있습니다.”
옆에 앉은 멍거 부회장은 한술 더 떴다. “아마도 버핏 회장과 내가 살아 생전에 1973∼74년과 같은 호시절(당시 미국 주가지수는 40% 폭락했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의문입니다. 지난해 우리는 정크본드 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발견했지만 그 마저도 이제는 매력이 없어졌습니다. ” 그렇다면 오마하의 두 현자는 주가가 반토막이 날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인가. 주주의 궁금증에 버핏 회장은 현실적인 처방을 냈다. “얼마 전 설문조사를 해보니 미국 투자가가 기대하는 연간 수익률은 14∼15%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건 꿈일 뿐입니다. 미국의 주식투자가는 앞으로 잘해야 연간 6∼7%의 수익을 올리는 게 고작일 것입니다. 수수료와 경비를 떼고 나면 5∼6%를 건지기도 힘들 겁니다.”
투자 이야기를 할 때 버핏 회장이 빼놓지 않는 메뉴는 금융파생상품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다. 그의 설명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파생상품은 말 그대로 실제 존재하는 상품에서 파생돼 나온 가공의 상품입니다. 가공에 가공을 더하다 보니 파생상품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따라서 모든 파생상품에 시장이 형성될 수는 없게 됐습니다.
이러다 보니 파생상품의 가격은 수십 개의 수학공식으로 이뤄진 모델에 의해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의 기술자들은 모델을 미신(Myth)과 교묘하게 바꿔치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파생상품의 가격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 하는 때가 많습니다. 그 규모가 커질수록 위험은 점점 더 커집니다. ” 멍거 부회장은 언제나 버핏 회장보다 비관론을 폈다. “앞으로 몇 년 안에 파생상품과 관련된 대형 금융사고가 터지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기적입니다.”
곧바로 주주석에서 질문이 날아갔다. “그렇다면 금융사고는 언제쯤 터질 거라고 봅니까?”분위기가 너무 과열됐다고 여겼을까. 버핏 회장은 특유의 위트로 위기를 모면했다. “우리 얘기는 예언이 아니라 단지 경고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언가가 아닙니다.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은 환상의 복식조다. 버핏 회장이 재치와 유머로 무장한 공격수라면 멍거 부회장은 태산 같은 뚝심으로 뒤를 지키는 수비수다.
버핏 회장이 화려한 언변으로 주주들을 사로잡는다면 멍거 부회장은 촌철살인(寸鐵殺人)과 같은 한 마디로 급소를 찌른다. 버핏 회장과 어릴 적부터 어울렸던 멍거 부회장은 70년대 중반 버크셔 해서웨이에 합류한 뒤 줄곧 2인자의 자리를 지켜왔다. 버핏 회장은 멍거 부회장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30초 컨설턴트’라고 부추겼다.
“내가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멍거 부회장을 찾으면 그는 딱 30초 안에 전 세계 어느 누구보다 간단 명료하게 해법을 제시해 주는 사람입니다. 그의 30초 짜리 조언은 세계 최고의 경영 컨설턴트가 1년 동안 연구해 온 자료보다 낫습니다. ” 이만 하면 멍거 부회장의 입이 귀밑에 걸려 있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다. 버핏 회장이 멍거 부회장을 수십 년 동안 한결같이 곁에 두고 있는 건 저런 뚝심 때문이 아닐까.
보험에서 에너지사업으로 이윽고 점심시간이 됐다. 대부분의 주주들은 시민회관에서 파는 핫도그나 샌드위치로 점심을 때웠다. 주주는 노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버핏 회장의 나이가 많기 때문에 노인 팬이 많은 것은 아닐 터. 시민회관 밖에서 5월의 햇볕을 쬐고 있는 주주에게 버크셔 해서웨이에 투자한 이유를 물었다. 시카고에서 온 앤 스밀랴닉(Ann Smilanic · 83)이라는 할머니는 주저 없이 대답했다.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것에만 투자한다는 버핏 회장의 철학을 믿습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닷컴 바람이 불 때 잠시 흔들렸지만 나는 버핏 회장이 역경을 훌륭하게 헤쳐나가리라고 믿었습니다.” 앤 할머니는 96년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샀다. 2년 동안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산가치는 미국의 S&P 500 주가지수의 상승률을 웃돌았다.
그러나 99년 할머니는 쓴 맛을 봤다. S&P 500지수가 25% 뛸 때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산가치는 0.5% 오르는데 그쳤던 것이다. 남들이 잔치를 벌일 때 옆에서 지켜만 봐야 하는 건 언제나 참기 힘든 고역이다. 버핏 회장이 ‘손에 잡히는 것에만 투자한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닷컴 기업을 외면한 결과였다.
워런 버핏 신화도 한물 간 게 아니냐는 비관론에 젊은 주주들은 앞다퉈 버크셔 해서웨이를 떠났다. 그러나 닷컴 거품은 1년도 채 못 가 꺼지고 말았다. ‘오마하의 현자’는 명예를 회복했다.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었던 앤 할머니에게 버핏의 철학은 투자의 바이블이 됐다. 할머니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홍보 영화 끝을 장식한 사가의 후렴을 흥얼거렸다. 후렴은 이렇다.
“우리가 찾는 건 실질적인 것입니다(That’s the real thing). 바로 그것입니다(That’s the way it should be). 세상이 그걸 원하고 있으니까요(That’s what the world wants today).” 노래가 흐르는 동안 화면엔 버크셔 해서웨이의 자회사가 만드는 ‘실질적인 것’들이 스쳐지나갔다. 자동차 보험, 카우보이 부츠, 캔디, 벽돌, 조립식 주택, 보석, 가구 등등…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는 에너지사업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2000년 3월 미드아메리칸(Mid-American)이라는 중견 에너지회사를 사들인 버크셔 해서웨이는 미국의 공공서비스 지분제한법(Public Utility Holding Company Act)의 폐지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PUHCA가 폐지되면 미드아메리칸은 보험업에 버금가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중추사업으로 커질 것입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세상이 깜짝 놀랄 빅딜을 할지 모릅니다.” 옆에 있던 멍거 부회장이 거들었다. “에너지에 대한 수요는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업을 좋아합니다.”
무거운 투자 얘기가 오가던 도중 자신을 13세 중학생이라고 소개한 동양인 주주 한 명이 마이크를 잡았다. “저는 지난해에도 주주총회에 참석해 버핏 회장님께 질문을 드렸고 좋은 답변도 얻었습니다. 올해도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성공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회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당돌한 학생의 질문에 천하의 버핏 회장도 말문이 막혔던지 멍거 부회장을 돌아봤다. 멍거 부회장이 못 본 척하며 잠자코 있자 버핏 회장은 자세를 고쳐 잡고 말했다.
“학생이 내 나이가 되면 내가 정말 사랑 받고 싶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때 진정으로 성공했다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그건 돈으로 살 수가 없으니까요.” 짧은 답변이 끝나자 장내엔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주총회장엔 소년 소녀 주주가 많았다. 대부분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왔다. 마침 앞자리에 앉았던 존 바이츠(John Weitz)라는 할아버지는 각각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손자 두 명을 데리고 왔다. “손자들에게 투자란 무엇인가를 가르치기 위해 몇 년 전에 이 회사 주식을 한 주씩 사줬습니다. 그리고 매년 주주총회에 함께 왔지요. 학교에서 백 마디 듣는 것보다 버핏 회장의 한 마디가 더 피부에 와 닿는 교육이 될 거라고 봅니다. ”
그러고 보면 버핏 회장도 11세 때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그가 일찌감치 주식투자에 눈을 뜬 데는 사연이 있었다. 버핏 회장은 3대째 식료품 가게를 이어 내려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은 삼촌이 운영했던 가게에서 심부름을 하며 용돈을 벌어야 했다. 힘들고 지루한 육체 노동은 어린 버핏에게 하루빨리 탈출해야 할 지옥과도 같은 굴레였다.
머리 회전이 빨랐던 버핏은 아버지로부터 주식에 투자하는 법을 기를 쓰고 배웠고 곧 식료품 가게 사환 노릇을 때려치운다. 그 이후로 버핏 회장은 단 한번도 육체 노동을 하는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실질적인’ 것만 고집하는 버핏 회장이 정작 자신은 실질적인 것을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본 적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버핏 회장은 가구를 어떻게 만들고 보석을 어떻게 가공하는지는 모르지만 그걸 어떻게 팔아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은 틀림없었다.
사인하는 버핏, 노래하는 아내 주주총회가 끝나자 버핏 회장은 곧바로 가구를 파는 자회사인 네브래스카 퍼니처마트(Nebraska Furniture Mart)로 달려갔다. 이날 가구회사에선 주주 초청 바비큐 파티가 있었다. 70대의 노인이 장장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한 뒤에 다시 저녁 바비큐 파티에 참석해 노래를 부른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 혹 숨겨놓은 산삼 밭이 있는 건 아닌지 의문스러울 따름이었다. 네브래스카 퍼니처마트는 버핏의 열창 덕분에 이날 하루에만 470만달러(56억4,000만원)의 매상을 올렸다. 어지간한 가구회사의 연간 매출을 단 하루에 긁어 모은 셈이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일요일인 이튿날 아침 버핏 회장은 단일 매장으론 미국 최고의 매출을 자랑하는 보석 판매회사 보샤임(BorSheim)의 팬 사인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버핏 회장의 사인을 받기 위해 주주들은 수십m 줄을 서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보샤임은 100만달러 짜리 다이아몬드 반지도 진열해 놓고 파는 보석매장이다. 그러나 버핏 회장이 이곳을 찾는다는 소식 때문인지 매장엔 고객들로 가득 찼다.
“이번 주말에만 1만5,000명이 넘는 고객이 다녀갔습니다. 평소 주말의 세 배 정도 됩니다. 매출 실적은 밝힐 수 없지만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가 열리는 주의 매출이 연중 가장 많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를 안내한 보샤임의 펠리샤 콜린스(Fellicia Collins)라는 여직원의 설명이었다. 잠시 후 버핏 회장이 아내 수잔과 함께 보석상 앞에 마련된 사인회 자리로 나왔다. 버핏 회장이 주주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동안 수잔 여사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수잔 여사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두 번 째 대주주이자 사외 이사다. 가끔씩 버핏 회장이 아내가 있는 자리에 가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부부애를 과시했지만 사실 이들 부부는 77년 이후 따로 살고 있다. 버핏 회장도 대단하지만 수잔 여사도 보통은 넘는다. 그녀는 한때 카바레에서 노래를 불렀던 가수이자 열렬한 낙태 찬성론자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총회 때마다 낙태반대론자들이 몰려 와 피켓 시위를 벌이는 건 이 때문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재 버핏 회장과 함께 살고 있는 애스트리드 멩크스(Astrid Menks)라는 여인도 수잔 여사가 버핏 회장에게 직접 소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돈 많은 사람들의 여성 편력이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얘기다. 그러나 버핏 회장과 수잔 여사의 관계는 남다른 면이 있다. 매년 초 버핏 회장이 친지들에게 보내는 선물의 겉봉투엔 항상 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다고 한다. ‘버핏, 수지, 애스트리드. ’
사인회를 마친 버핏 회장은 보샤임 보석매장 옆의 메리어트 호텔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으로 갔다. 세계 각국에서 온 취재진 60여명이 한 시간 전부터 자리를 잡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핏 회장과 멍거 부회장의 뒤에는 은으로 만든 큰 대접이 놓여 있었다. 그게 무얼까 궁금했는데 의문은 금방 풀렸다. 두 사람은 기자회견이 시작되자마자 은 대접에서 코카콜라 한 캔씩을 꺼내 컵에 따랐다. 버핏 회장은 보통 콜라, 멍거 부회장은 다이어트 콜라였다. 버핏 회장의 코카콜라 사랑은 정평이 나 있다. 오늘날 그를 투자의 지존으로 만들어준 종목이 바로 코카콜라가 아니던가. 버핏 회장은 스테이크나 바비큐를 먹을 때도 코카콜라로 씻어서 먹을 정도로 콜라를 끼고 산다.
주주총회장에선 화기애애한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지만 기자회견장은 달랐다. 처음부터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회를 겨냥한 가시 돋친 질문이 쏟아졌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회는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버핏 회장이나 멍거 부회장의 측근들이라는 점이다.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가 상장돼 있는 뉴욕증권거래소(NYSE)가 회사로부터 독립적인 사외이사의 선임을 의무화하자 버크셔 해서웨이도 새 사외이사를 선임하라는 압력을 받아 왔다.
버핏 회장은 예상했다는 듯 담담하게 밝혔다. “현재 십여명의 후보를 놓고 인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곧 새 사외이사를 발표할 수 있을 겁니다.” 실제로 버크셔 해서웨이는 5월 8일 도널드 커프(Donald Keough) 전 코카콜라 사장과 토머스 머피(Thomas Murphy) 전 ABC 회장을 새 사외이사로 영입했다고 발표했다.
워런 버핏, 그는 누구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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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과 함께한 정경민 기자 | 투자의 ‘살아있는 전설’....40년 만에 주가 1만배 키워
버크셔 해서웨이와 워런 버핏 회장을 소개할 때면 언제나 회자(膾炙)되는 유명한 얘기가 있다. 1965년 1만달러를 가진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스탠더드 앤 푸어스(S&P) 주가지수에 연동 하는 상품에 투자를 했다.
다른 한 사람은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시에서 막 출범한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식을 샀다. 40년 가까이 흐른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S&P 지수에 투자했던 사람은 50만달러(6억원)로 큰 집을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마하시의 이름 없는 투자회사에 돈을 맡겼던 사람은 어떻게 됐을까. 그는 5천만달러(600억원)의 돈방석에 앉은 거부가 돼 돌아왔다.
버핏 회장은 1930년 오마하에서 식료품 가게를 3대 째 이어온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의 가업은 식료품 가게였지만 그의 아버지는 주식 중개인이자 공화당 하원의원이었다. 집안의 식료품 가게에서 잠시 사환 노릇을 하다 육체 노동에 염증을 느낀 버핏은 11세 때 아버지로부터 주식 투자하는 법을 배운다. 그가 처음 산 주식은 CSP라는 주식이었다.
그가 주당 35달러에 주식을 사자마자 CSP의 주가는 27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조바심이 난 버핏은 이 회사의 주가가 40달러까지 회복되자 바로 팔아 버렸다. 그러나 버핏이 주식을 팔고 나자 CSP 주가는 2백달러까지 치솟았다. 당시의 뼈아픈 경험은 어린 버핏에게 인내력이야말로 투자가가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이라는 교훈을 남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닥치는대로 손을 대던 버핏은 어느 날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이라는 컬럼비아대학의 교수가 쓴 ‘현명한 투자자(The Intelligent Investor)’라는 책을 접하고 충격을 받는다.
‘가치 투자(Value Investment)’의 경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책을 본 버핏은 곧바로 뉴욕으로 날아가 그레이엄 교수의 제자가 됐다. 그레이엄 교수는 버핏에게 가치 투자의 진수를 전수했다. 가치 투자란 한 마디로 잠재적 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기업을 찾아 투자한 뒤 시장이 그 가치를 깨달을 때까지 기다리는 전략을 말한다. 경기 변동이나 월스트리트의 유행은 철저히 무시한다.
말은 쉽지만 잠재적 가치에 비해 저평가돼 있는 숨은 진주를 찾아낸다는 건 엄청난 인내력과 산술적인 능력을 필요로 했다. 난수표나 다름없는 기업의 회계 장부에서 시장이 보지 못한 잠재적 가치를 끄집어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수리에 뛰어난 감각을 보였던 버핏은 결국 암호 해독에 성공한다. 그리곤 1957년 오마하로 돌아와 투자조합을 결성했다. 그의 첫 투자조합은 1969년 해산하면서 연 수익률 30%라는 경이적인 수익을 투자자들에게 돌려줬다.
돈과 자신감을 얻은 버핏은 62년 매사추세츠주의 뉴 베드포드라는 도시에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방직회사를 발견한다. 사양산업이던 방직업 때문에 골병이 들긴 했지만 이 회사는 튼튼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월스트리트의 은어로 누군가 피우다 버린 ‘장초(cigar butts)’였던 것이다.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한 버핏은 이 회사를 투자회사로 환골탈태(換骨奪胎)시킨다.
몇 년 전 한국에서도 닷컴 기업이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굴뚝업체’를 인수한 다음 주가 뻥튀기를 통해 투자회사로 탈바꿈시키는 A&D(인수 후 개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버핏은 그 기법을 40년 전에 이미 써먹었던 것이다. 버핏 회장은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하자 보험업에 먼저 손을 댔다. 보험업은 대형 사고만 터지지 않으면 큰 현금을 가만히 앉아서 굴릴 수 있는 사업이었다. 보험 고객이 낸 보험료로 주식투자에 나선 버핏은 막대한 투자이익을 쌓아 나갔다.
80년대까지 무명에 가까웠던 버핏 회장을 일약 주식투자의 지존으로 만든 종목은 코카콜라였다. 88년 버핏 회장이 코카콜라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코카콜라는 평범한 음료수 회사였을 뿐이었다. 주가도 주당 10달러를 맴돌았다. 그러나 버핏 회장은 남들이 보지 못한 코카콜라의 가능성을 읽었다. 다른 음료수 업체는 따라갈 수 없는 브랜드 가치와 해외시장 개척 가능성이었다. 그의 예언은 5년이 못 가 현실로 나타났다. 코카콜라 주가는 5년만에 주당 74.50달러로 치솟으며 버크셔 해서웨이를 미국 최대의 투자회사로 발돋움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
“기업 부정, 기댈 곳은 기관투자가 뿐” 자신에게 날아온 화살을 멋지게 피한 버핏 회장은 상장기업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공격으로 화제를 돌렸다. “90년대 후반 증시에 거품이 일면서 일부 기업의 경영진은 주가 부풀리기가 마치 자신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주주들을 현혹하는가 하면 회계 장부의 조작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터무니 없는 스톡옵션과 연봉을 보장받기 위한 이기심의 발로이지 주주를 위한 서비스는 아닙니다.”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들도 버핏 회장의 도마에 올랐다. 일부 경영진의 회계 부정에 이들 투자은행들이 방조를 넘어 공범에까지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부정 행위를 저지해야 할 이사회조차도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고 그는 열을 올렸다. “우리가 이제 기대할 곳은 기관투자가 밖에 없습니다. 경영진과 이사회는 믿을 수가 없고 개인투자가는 힘이 없습니다. 기관투자가만이 상장기업 경영진과 이사회가 주주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하지 못 하도록 막을 수 있습니다. 어느 상장기업 경영진이나 이사회라도 800파운드가 나가는 고릴라(기관투자가)를 흥분하게 만들어선 재미없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버핏 회장이 깨끗한 기업 경영의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선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투자 분석이나 유행을 철저히 무시한다. 심지어 “내가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이 쓴 자료를 볼 때는 개그 소재가 필요할 때”라고 조롱할 정도다. 대신 버핏 회장은 기업의 회계 장부에 파묻혀 산다. 그 속에서 아직 시장이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 진주를 찾아내 10년이고 20년이고 돈을 묻어두는 게 그의 투자 전략이자 철학이다.
그런데 파생상품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이를 이용한 회계 부정이 극성을 부리면서 숨은 진주를 찾아내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졌다. 회계 장부를 믿을 수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회계 부정이야말로 버핏 회장에겐 가장 악질적인 기업 비리다. 한국이 IMF 직격탄을 맞았을 때 앞장서서 한국기업의 회계 부정을 질타했던 미국이 기업들의 회계 부정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건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질문 차례가 되었기에 세 가지를 물었다.
“최근 버크셔 해서웨이는 중국 국경 석유회사인 페트로차이나(PetroChina)의 지분을 13.35%로 끌어올리며 3대 주주가 됐습니다. 이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신호탄으로 봐도 되는 것인 지요. 덧붙여 한국 시장에 대한 버핏 회장님의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틀간 회장님을 지켜보면서 경이적인 에너지와 정력에 놀랐습니다. 특별한 건강 비결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페트로차이나 투자 건은 미국과 유럽에서도 화제가 됐던 터였다. 취재진은 버핏 회장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바짝 긴장했다. 잠시 생각하던 버핏 회장은 입을 열었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선 최근에 관심을 가진 게 아니라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연구해 왔습니다. 훌륭한 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 우리 기준에 맞는 투자 기회를 찾지는 못 했습니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은 실적에 비해 가격이 많이 싸진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미국 바깥의 시장에 대해 미국 시장 만큼 잘 알지 못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위험요소가 많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아시아 시장에 투자하기 위해선 이런 위험요소를 충분히 상쇄해줄 만큼의 투자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미국 기업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언뜻 보면 구렁이 담 넘어 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미국의 주가지수가 반토막이 나다시피 했는데도 아직 비싸다고 했던 버핏 회장이다. 그런 그가 중국 국영기업의 주식을 사 모았다면 철저한 시장 조사와 회계 검토를 거쳤으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아시아 시장에 대해 몇 년 전부터 관심을 갖고 연구해 왔다는 말엔 이런 뜻이 숨어 있었다. 다만 그는 한국 기업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던 버핏 회장은 필자를 바라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참 건강 비결을 물어보셨죠. 딱히 숨겨둔 비방은 없고 바로 이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가 들어 보인 건 코카콜라였다. 기자회견장에선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부시의 감세정책은 반대”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기자들의 짓궂은 질문에 발동이 걸렸다. 대뜸 조지 부시 대통령의 감세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미국 경제계에선 기업의 배당금에 매기던 세금을 면제해주자는 부시 정부의 감세안을 놓고 논란이 분분한 터였다. 이번에도 선문답이 이어지겠지 했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나는 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을 반대합니다. 세금을 깎아 줘 봤자 현재로선 기업이 투자를 늘리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백 번 양보해 경기 부양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감세 정책은 경제 정의에 어긋나기 때문에 반대입니다. 매년 수십만달러씩 배당을 받는 기업에게 세금까지 깎아주는 건 불공평합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대기업의 총수가 대통령의 경제 정책을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정면으로 비판하고 반대하는 건 뜻밖이었다.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밖에 서 있던 보안요원이 황급히 버핏 회장 쪽으로 달려가 귀엣말로 뭔가 속삭였다. 심각하게 듣던 버핏 회장은 기자들에게 말했다. “지금 울린 사이렌은 토네이도(회오리 바람) 경보라고 합니다. 호텔 측에서 모든 고객은 지하실로 대피하라고 했답니다. 그러나 나와 멍거 부회장은 이 자리에 남아 기자 여러분의 질문에 답변을 계속 할 테니 혹 불안한 기자 분이 있으시면 대피하기 바랍니다. ”
마침 이 말이 끝나자마자 질문 차례가 된 기자가 자리에 없자 버핏 회장은 “벌써 한 분이 대피 하셨네요”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다시 한번 폭소가 터진 후 기자회견장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더 이상 버핏 회장의 아픈 곳을 찌르는 질문은 없었다. 회견 말미에 그는 후계자 문제를 거론했다.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는 젊은 인재이며 네 명 정도가 물망에 올라 있다고 소개했다. 버핏 회장이 굳이 후계자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워런 버핏 프리미엄’을 의식해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가가 승승장구하고 있는 건 바로 버핏 회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이는 버핏 회장이 없는 버크셔 해서웨이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버핏 회장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도 자리를 뜨지 않고 기자들의 질문 공세와 사인 요구를 웃으며 받아넘기는 그의 모습에서 ‘워런 버핏 프리미엄’은 신기루가 아니라 실체가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그의 뒤를 이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1만5,000여명의 주주와 60여명의 전 세계 취재진을 몇 시간 만에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는 마력을 가진 현자가 금세기 안에 과연 다시 나올 수 있을까.
워런 버핏의 말말말 |
“지역신문에 부음 광고를 내러간 과부가 있었다. ‘프레드 브라운 사망’이란 문구를 내민 과부에게 신문사 직원은 한 단어엔 25센트지만 7단어가 최소 단위라며 1달러75센트를 내라고 했다. 그러자 과부는 즉석에서 문구를 고쳤다. ‘프레드 브라운 사망, 중고 골프 클럽 세일.’ 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직원들이 이 과부와 같은 비용 절감의 마인드를 갖기 바란다.” -버핏 회장이 주주총회 전 주주에게 보낸 편지에서.
“훌륭한 비즈니스맨이라는 명성을 남기고 싶다면 장사가 잘 되는 사업만 인수하면 된다.” -5월 2일 주주총회에서.
“개인적으로 나는 주주총회를 월요일에 하는 게 좋다. 그러나 주주들에게 투표에 부쳐 본 결과 토요일이 좋다는 의견이 두 배 많았다. 따라서 내년에도 주주총회는 토요일에 열기로 했다. 이게 우리가 시도하는 민주주의다.” -5월 2일 주주총회장에서 버크셔 해서웨이의 이사회가 버핏 회장 및 멍거 부회장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
“내가 자회사 경영진이 하는 소리를 못 알아들을 때는 그 경영진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때는 반드시 회사에 뭔가 사고가 터졌다고 보면 된다.” -5월 2일 주주총회에서.
“버크셔 해서웨이에는 60여개의 자회사가 있지만 거기에 투자자문업을 하는 회사는 없을 겁니다.” -5월 3일 기자회견장에서 버크셔 해서웨이가 중국 국영 석유회사인 페트로차이나에 투자한 이유를 묻자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앞으로 세계의 평화와 안전을 위협할 가장 큰 불안 요인은 핵무기와 화학무기다. 가공할 무기를 가진 테러리스트들은 과거 미국이 써먹었던 변명을 둘러댈지 모른다. 핵무기를 씀으로써 수십만명의 미군 희생을 줄일 수 있었다고.” -5월 3일 기자회견장에서. |
포브스 코리아의 작년 기사 입니다.
서핑 하다가 무료로 풀려 있어서 퍼왔어요.
첫댓글 크..항상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꾸벅~
감사합니다. 소년님...
한국시장에 대해서는 왜 언급을 안했을까요?? 그만큼 우리시장이 리스크가 크다는 암시인가.....
저도 읽어봤습니다.. 내용 좋던데요.. 기억이 가물가물 ...^^; 재밌게 읽고 갑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
버펫님 언제 보아도 존경스럽습니다. 에너지 사업이라 sk가 생각이 나는군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