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11 달날 날씨: 어제 비가 온 뒤로 아주 춥다고 하더니 텃밭 가는 길 땅이 얼어있다. 찬바람이 불어 가을 겉옷을 꼭
챙겨입어야 괜찮다.
모두 모여 아침열기-뒷산 가기(텃밭)-리코더 불기- 책읽기-글쓰기(독후감상문)-점심-청소-몸놀이(우면산 가랑잎 놀이)-마침회-부림교까지
걸어가기-교사회의
[11월 11일은 대나무 젓가락]
아침열기 마치고 뒷산 쪽 텃밭으로 올라갑니다. 줄그네를 타고 놀며 텃밭 배추와 무를 돌보러 가는 것입니다. 아침마다 산길을 걷고 나무와
숲을 만나는 건 참 좋은 교육 활동이고, 돌봐야 할 식물이 있고 신나는 놀이터가 있어 큰 즐거움입니다. 남자 아이들은 줄그네 타느라 바쁜데
지빈이와 민주는 선생 곁에서 줄곧 배추를 돌봅니다. 지난주 아이들이 지푸라기로 배추를 묶었는데 조금 헐렁하고 많이 풀려 있어서 한 번 더 손을
봐야 합니다. 아침에 최명희 선생이 돌보고 푸른샘 아이들이 한 번 더 살피는 셈이니 마무리는 된 셈이지요.
"선생님 여기 보세요. 지푸라기가 풀려있어요."
"선생님 여기요 여기. 배추벌레 찾았어요."
"와 진짜 배추색이랑 똑같아서 찾기가 정말 어렵겠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일하는 재미가 좋습니다. 다시 지푸라기로 헐렁하게 묶인 배추를 묶습니다. 차가운 날씨지만 가만히 배추 들여다보며
묶어주는 맛이 괜찮아요. 무가 지난주보다 더 크게 자라서 놀랄 정도입니다. 뽑힐 운명을 준비하는 것처럼 쑥 자랐어요. 지난주 무 맛은 봤으니
오늘은 배추맛을 볼 차례입니다. 이번 주 김장 하는 날이라 모두 뽑아야 하는데 배추가 어느 정도는 커서 양이 많아 보입니다. 조금 작은 배추를
뽑아 학교로 들어와 깨끗하게 씻는데 배추 속이 아주 노랗게 가득차 있어요. 접시에 담아 교실에서 한 입씩 먹는데 배추가 달아요.
"와 맛있다."
"선생님 조금 매워요."
"된장에 찍어먹으면 더 맛있는데."
배추잎 두세 개를 집어먹더니 약간 매운 맛을 잡아냅니다. 문득 맛있는 김장 생각에 침이 꼴딱 넘어가네요. 배추잎을 맛있게 먹고 있는데 한무리
아이들이 들어와서 빼빼로를 안깁니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래지는데 먹지 않고 따로 넣어놓고 하던 공부를 줄곧 합니다. 빼빼로데이라고 누가 가져왔나
나눠먹으려 나눠주는 마음이 예쁘긴 한데 그동안 아이들 문화에서 에써온 것들을 흐트러트리는 것 같아 따로 이야기를 해야지 싶습니다. 아침 나절에
송순옥 선생이 빼빼로데이라고 하지 않고 농업인의 날로 바꾼 뜻도 이야기 했기에 낮공부 열기 때 다시 불량과자 이야기를 꺼냈어요. 빼빼로
회사에서 과자 팔아먹자고 퍼트리는 것들보다 가래떡이나 젓가락놀이로 어린이 문화를 가꾸자는 말을 하고 대나무 젓가락을 만들어 즐거운 놀이를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해마다 젓가락과 가래떡으로 불량과자를 이겨내고 아이들 먹을거리와 문화를 지켜온 역사가 있지요. 또 무슨 데이 하면서
어린이들을 유혹하는 것에 넘어가지 말자고 영어말과 우리말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쉬는 때에 대나무를 잘라 젓가락을 만듭니다. 선생이 대나무를 잘라 놓고 아이들을 불러 대나무로 젓가락을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는데
학교 생활 겪어보기를 하러 온 현아가 어머니랑 같이 왔어요. 마루에서 모두 자른 다음 교실로 들어갔습니다. 돌아가며 현아를 맞이하는 소개를
했어요. 쑥스럽지만 재미있게 소개를 하고 현아도 자기 소개를 합니다.
전학을 오려는 아이들에게 학교 생활을 겪어보게 하는 뜻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무엇보다 전학하려는 아이와 부모님이 학교를 충분히 살피고 생각할 여유를 주는 까닭이 큽니다. 거기에는 새 식구를 맞이하는 학교 아이들과 교사들의 준비도 한 몫을 하지요. 아이 기운에 맞은 학교인지, 아이가 우리 학교 교육 환경과 교육 활동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지 서로 살필 수 있는 시간이기에 꼭 거쳐야 하는 과정입니다.
현아와 현아어머니까지 교실에 둘러 앉으니 교실이 가득차 보입니다. 아이들이
골라놓은 책을 읽어주는데 모두 재미있고 좋은 책을 골라왔어요. 세 권을 이어 읽은 다음 저마다 쓰고 싶은 책을 골라 독후감상문을 씁니다. 반듯한
현아 글씨를 칭찬하니 아이들이 보겠다며 현아 쪽으로 오네요.
청소 시간에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 나눠줄 대나무 젓가락을 다듬는데 마당 청소를 마친 승민이가 오더니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대나무",
"젓가락"을 말해요. 아침나절 선생이 보여주고 말한 대나무 젓가락을 잘 기억하고 있어 자꾸 말을 겁니다.
낮 공부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몸놀이인데 대운동장 가자는 목소리가 높아요. 그런데 지난주에도 갔고 오늘은 바람이 차고 추운 날이라
바람을 막아주는 나무가 있는 우면산으로 갔어요. 지난주 가을 산에서 하루종일 놀아서 한바퀴 돌지 않고 숲 곳곳에서 가랑잎 놀이 한 판을 했어요.
나뭇잎은 왜 떨어지는지 발표하는 시간을 잠깐 갖는데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잘 알아요. 겨울을 준비한다고, 추운 겨울에는 뿌리가 물을 끌어올리기도
힘들고 영양분 만들기도 어려워 떨어뜨린다고, 본디 색이 나오는 거라고 아이마다 다르게 말하지만 모두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세 모둠으로 나눠
가득 쌓여있는 가랑잎으로 뭔가를 만들어 발표하는 거라 한참이 걸립니다. 1, 2학년은 가랑잎 수영장을 만들자고 정말 많은 가랑잎을
모았어요. 벌러덩 누워보니 제법 푹신합니다.
"애들아 수영장도 좋긴 한데 뭐 다른 거 만들만한 거 없을까?"
"스핑크스 만들어요."
"아니예요. 수영장 만들어요."
수영장은 이미 한 번 만들어본 것이니 예술 작품을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정우가 말한 스핑크스를 만드는데 처음에는 가랑잎 더미 위에 얼굴을
표현하다가 아이들이 아주 가랑잎 더미로 들어가 눈, 코, 입, 귀가 되어봅니다. 가랑잎과 아이들이 잘 어울려 멋있습니다. 드디어 모두 모여 서로 작품을 발표하는 시간입니다. 5, 6학년은
썩은 나무를 뼈대로 가랑잎을 쌓아 피라미드를 만들고, 하트 모양을 만들어 놨네요. 3, 4학년은 살아있는 나무를 살려 가랑잎과 조화를 이루는
가랑잎 케익을 만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모두 투표로 멋진 작품을 뽑았어요. 5, 6학년 아이들 작품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는데 모두
훌륭합니다. 사람과 가랑잎이 한 데 어울려 작품을 만든 1, 2학년, 나무와 가랑잎을 써서 작품을 만든 아이들과 철마다 할 놀이가 참 많습니다.
철마다 하는 생태놀이 책도 있지만 조금 생각해보면 아이들의 감각과 상상력을 끌어내는 놀이감이 산에는 가득합니다. 대중매체와 오락, 게임이 갈수록
아이들이 집중하는 힘을 흐트러뜨리고 있는 세상에서 진정한 상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 아이들을 자연에서 자라게 하고,
일과 놀이를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어른들이 가꿔야 할 몫이 아닐까 중얼거립니다.
마침회 시간에 아침 나절에 잘라 놓은 대나무 젓가락을 다듬는데 모래종이로 부드럽게 만드는 솜씨들이 아주 좋습니다. 30-40cm
대나무자로 만들어본 아이들이라 젓가락은 아주 쉽게 금세 마치네요. 부드러운 대나무 젓가락에 자기 이름을 써넣으니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자신이
만든 대나무 젓가락이 생겼어요. 다른 학년 아이들에게도 많이 나눠줬으니 대나무 젓가락으로 콩 집기 대회를 한 판 크게 해야겠습니다. 빼빼로를 이길 수는 없겠지만 내가 만든 젓가락으로 맛있는 새참을 집어먹는 재미도 즐겁습니다. 알찬샘
3학년과 최명희 선생이 대나무로 뜨개질에 쓸 대바늘을 깎고 있는 걸 보니 대나무가 쓸모가 많은 날입니다.
첫댓글 지빈이가 대나무 젓가락 만들었다고 보여주었는데, 참 잘 만들었더군요. 그리고 그 속에 불량과자회사의 상술에 휘둘리지 말자는 깊은 뜻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