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ON- 여기 어때] 창원 구산면 원전 ‘벌 바위 둘레길’ 가을路 가다 빼곡한 나무 아래 호젓한 오솔길 바스락 대며 찾는 이 발걸음 유혹
기사입력 : 2022-11-24 20:46:40
벌 바위 오르면 산·바다 한 눈에 1시간 20분 투자하면 심신 가뿐 인근 원전항 방파제는 낚시 명소
낙엽이 소복이 쌓여 늦가을 정취를 뽐내고 있는 창원 마산합포구 구산면 원전 ‘벌 바위 둘레길’.
창원 원전 벌 바위 둘레길.
처음 들어봤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원전항은 몇 번이나 갔지만 둘레길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원전 벌 바위 둘레길은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2년 10월에 조성한 곳이다. 10년 전에 만든 둘레길의 존재를 이제 알았던 것도 그렇지만 막상 가보니 구석구석 좋은 곳이 많구나 싶어 놀랐다.
둘레길의 이름이기도 한 ‘벌 바위’는 어마어마한(?)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천지개벽 때 원전마을 뒷산에 있는 바위에 벌 한 마리 겨우 앉을 공간만 남기고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해서 벌 바위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벌 바위와 함께 이곳 둘레길의 또 다른 포인트인 천둥산(해발고도 184m)의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원전 벌 바위 둘레길 초입에서 바라본 풍경./성승건 기자/
벌 바위에서 비라본 풍경.
창원시 마산합포구 구산면 심리 구산반도의 동쪽 끝자락인 원전항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시작한다. 버스정류장 바로 길 건너편에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 시작이다. 여기가 맞나 싶어도 길을 따라 계속 오르면 펜션을 지나 왼쪽으로 다시 꺾어 오르고 다시 오른쪽으로 꺾으면 고갯마루다. 공사 중인 건물 맞은편에 둘레길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시작 때 잠깐 인공(?)적인 계단을 오르고 나면 곧 오솔길이다. 잎이 말라 떨어져 낙엽이 되고 또 수많은 발걸음을 맞았을 터인데도 여전히 기분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낙엽길이다.
뒷짐을 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완만한 오르막에서 어느덧 제법 가파른 계단길이 나온다. 통나무를 베어 촘촘히 심어놓은 계단 길. 요즘 많이 보이는 이른바 데크 느낌이 아니어서 더 좋다. 그런데 좀 가파르다. 창원시 홈페이지에 있는 안내를 보면 난이도가 5단계 중 1단계인데 이게 맞나 싶게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오르막이다.
낙엽이 쌓인 원전 벌 바위 둘레길./성승건 기자/
천둥산과 벌 바위 갈림길이 나오기에 벌 바위 쪽으로 길을 잡는다. 비도 간간이 내리고 조금 썰렁하다 싶었는데 계속 오르다 보니 어느새 더워진다. 그러다 문득 시원한 바람이 목뒤를 스친다. 곧 검은 돌이 보이더니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벌 바위다. 커다란 바위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선 곳은 벌 바위 전망대다. 차를 타고 오며 반도의 끝을 돌아왔던 그곳이다.
진해와 창원의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복산, 덕주봉, 대암산, 용지봉, 불모산, 시루봉, 천자봉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 이어져 있다. 그 아래로 진해 시가지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눈을 돌리니 우뚝 솟은 솔라타워도 또렷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파노라마를 돌리듯 보면 가덕도가 있고 다음은 거가대교, 그리곤 거제도다. 마산의 끝자락에 서서 진해와 창원, 부산, 거제까지 모두 볼 수 있는 곳이 이곳이다.
벌 바위 둘레길 정자에서 바라본 풍경.
한참 동안 바다를 보다 다시 길을 재촉하니 금세 정자가 있다. 아래로 원전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바다 건너가 실리도다. 정자 뒤쪽으로는 여럿이 둘러앉아 도시락이라도 먹을 수 있는 너른 평상이 있다. 평상 뒤로 보이는 바다에 양식장이 펼쳐져 있다.
흐린 날이어서 바닷물 빛도 검푸르다. 맑은 날에 왔으면 쪽빛이었겠으나 흐린 날의 바다는 또 그것대로 좋다. 양식장 하얀 부표들이 ‘고스트 바둑왕’에 나왔던 ‘일색 바둑’을 둔 반면 같기도 하고, 혹은 밤하늘 라이트 쇼를 위해 늘어선 드론 같기도 하다.
이제는 내리막이다. 천둥산으로 가는 길은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는 능선길이다. 그래도 처음 올랐을 때에 비하면 능선길은 1단계에 딱 어울리는 길이다. 벌 바위보다 천둥산이 더 높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산행보다는 트래킹 길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길이기에 여름에 와도 좋을 것 같은 길이 언제고 계속된다. 숲길이지만 드문드문 바다는 계속 보인다. 다시 만나는 갈림길 표지판을 지나 천둥산으로 오른다. 빼곡한 나무 아래 호젓한 오솔길, 낙엽을 밟으며 나만의 시간을 만끽한다. 천둥산 정산에서 또 한참을 있다 내려가는 길을 재촉한다.
둘레길 초입에 오르는 길과 능선 길에서 그렇게 정겨웠던 낙엽은 이제 조심해야 할 대상이 된다. 미끄럽다. 꽃게로 빙의해 옆으로 걸어 내려온다. 아주 잠깐은 내 무릎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확실히 느끼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파르지 않기도 하고 그리 멀지 않은 길이기에 마음은 가볍고 몸도 가벼워지는 시간이다.
원전 벌 바위 둘레길 끝자락에서 바라본 풍경.
바다는 점점 가까워지고 마을의 지붕들이 한순간 다가온다.
안내에는 둘레길을 다 걷는데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고 하는데 중간에 많이 쉬었음에도 그 정도면 넉넉한 시간이다. 내려와서 보니 온 부산과 거제까지 다 보였던 벌 바위와 전망대는 숲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다.
원전항 오른쪽 방파제에는 평일 낮인데도 제법 많은 조사들이 보인다. 실리도 뒤쪽으로도 해상낚시콘도가 많은데 낚시객들에게 이곳은 명소인가 보다. 그런데 벌 바위 둘레길도 꼭 한번 걸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소소하게 좋다. 시간도 딱 적당하다. 단,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갔기에 물 한 병 들고 가지 않은 것은 후회가 된다.
다음은 실리도다. 그곳에도 둘레길이 있다고 하니 트래킹과 낚시를 동시에 즐겨볼 참이다.
글= 차상호 기자, 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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