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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전라남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동아시아역사언어학과에서 수학했다.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와 박물관장·부총장·대학원장 등을 지냈으며 문화관광부 문화재위원, 단군학회 회장, 남북역사학자 공동학술회의 남측단장 등을 역임했다. ‘오늘의 책’상, 일석학술상, 금호학술상, 국무총리상 등을 수상했다. 고조선에 대한 연구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중국의 원시시대』, 『상주사(商周史)』, 『중국사』(전 3권), 『고조선 연구』(상·하), 『한국 열국사 연구』,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우리 역사의 탄생』, 『우리 고대사: 상상에서 현실로』, 『사료로 보는 우리 고대사』 등 많은 저서가 있다.
목차
머리말
제1부 국가이전시대
제1장 무리사회
무리사회의 성격
무리사회의 자연환경
한반도와 만주 지역 무리사회의 유적
무리사회의 문화
제2장 마을사회
마을사회의 성격
자연환경의 변화와 농경의 개시
한반도와 만주 지역 마을사회의 출현
마을사회의 문화 43
제3장 마을연맹체사회
마을연맹체사회의 성격
마을연맹체사회의 역사적 의의
한반도와 만주 지역 마을연맹체사회의 형성
마을연맹체사회의 문화
제2부 고조선시대
제1장 고대국가의 출현
민족신화의 이해
고조선의 건국
고조선의 영토
제2장 고조선의 정치
고조선의 국가 구조
고조선의 통치 조직
제3장 고조선의 경제와 사회
고조선의 경제
고조선의 사회
제4장 고조선의 문화
고조선의 종교와 예술
고조선의 과학 기술
제5장 고조선의 대외 관계
고조선과 이민족의 관계
기자국, 위만조선, 한사군의 흥망
제3부 열국시대
제1장 열국시대의 개시와 변천
고조선의 해체
열국의 성립과 변천
제2장 동부여의 정치와 대외 관계
동부여의 정치
동부여의 대외 관계
제3장 고구려의 세력 확장
고구려 초기의 정치
고구려의 성장
제4장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국, 대방국, 말갈
읍루
동옥저
동예
최씨낙랑국, 대방국, 말갈
제5장 한의 정치와 사회 변화
한의 정치
한 사회의 변화
제6장 백제 초기의 세력 확장
백제 초기의 정치
백제의 성장
제7장 신라 초기의 세력 확장
신라 초기의 정치
신라의 성장
제8장 가야의 정치와 흥망
가야의 정치
가야의 대외 관계
제9장 열국시대의 정국 변화
중앙집권제와 신분제의 강화
민족 재통합의 추진
제10장 열국시대의 경제와 사회
열국시대의 경제 발전
열국시대의 사회 변화
제11장 열국시대의 문화
열국시대의 사상과 학술
열국시대의 과학과 기술
제12장 열국시대의 대외 관계
열국시대 북부의 대륙 진출
열국시대 남부의 해외 진출
해제: 21세기 겨레가 나아갈 길을 밝히는 책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속에서
첫문장 | 무리사회[군(群)사회 또는 군집(群集)사회]란 인류사회의 최초 단계로, 사람들이 아직 정착 생활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동 생활을 하던 시기를 말한다. |
그러나 위의 두 가지 특징 가운데 첫 번째인 거주 형태 변화는 동아시아 사회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동아시아 사회는 국가사회가 출현한 이후에도 마을이 혈연 집단에 의해 형성되어 있었다. 지난날 거주 형태의 변화를 국가사회의 특징으로 들었던 것은 국가사회의 성격에 관한 이론을 만드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사회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서양 고대사회의 특성만을 토대로 했기 때문이다. 서양의 고대국가는 도시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혈연 중심의 거주 형태가 와해되었다. 그러나 농경사회였던 한국이나 중국은 이와 달랐다. 그러므로 국가사회 단계가 가지고 있었던 이전 사회 단계와 다른 세계적 보편성을 가진 특징은 법이 존재했다는 것 하나라고 볼 수 있다. - 본문에서
토지의 가치에 대한 관념이 거주지와 그 주변 농경지로 구성된 마을 단위에서 토지의 면적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 지배귀족은 더 넓은 토지를 소유하기 위해 토지 쟁탈전을 벌였고, 후에는 거수국들까지도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토지의 가치를 면적으로 생각하는 경제관념의 변화는 거수국들로 하여금 넓은 영토를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어 마을집적국가 구조의 붕괴를 가져왔고, 이는 고조선 멸망의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영역국가를 추구하는 열국시대가 출현했던 것이다. - 본문에서
따라서 열국시대에는 각 지역 주민들의 혼합이 많아졌다. 이러한 주민의 혼합은 민족 융합을 가져왔고, 각 지역의 생산 기술과 문화가 상호 전파·혼합되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따라서 열국시대는 한민족이 정치적으로는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지만 민족의식은 한층 강해진 시대이기도 했다. 열국시대에 일어난 각 지역의 생산 기술과 문화의 혼합은 다음 시대에 찬란한 문화를 이루어낼 기초가 되었다. - 본문에서
일제강점기는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싸웠던 영토전쟁의 시기이자 역사 해석을 두고 다투었던 역사전쟁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 역사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백암 박은식, 단재 신채호 선생 같은 학자 겸 독립운동가들이 전면에서 싸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백암 박은식 선생과 단재 신채호 선생 등 역사전쟁의 선봉에 섰던 선열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윤내현 교수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우리 역사는 바로 설 것이다. 그런 인식의 확산에 『한국 고대사』가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 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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